전남매일 한송주칼럼
'거적선조 비단자손'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이 인물 평전에 들어가면서 천명한 말이 있다. '인물의 공(功)과 과(過)는 서로 상쇄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의 일생을 정리할 때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뒤섞어 저울질하지 말고 잘한 일은 잘한 일대로 못한 일은 못한 일대로 구분지어서 철저하게 밝히라는 뜻이다. 이 명명백백한 춘추필법이 '사기'를 동서고금에 통한 역사서의 전범(典範)으로 만들고 있다.
작금 친일파 명단 공개로 장안이 떠들썩하다. 해방 후 50년만의 쾌거라고 국민들은 반가와하는데 친일파로 지목된 인물들의 후손들은 모함이요 독선이라며 앙앙불락이다. 특히 지금도 사회 각 부문에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친일거물들의 후예들이 가문의 명예가 더럽혀졌다고 못견뎌하며 오욕의 과거를 덧칠하고 윤색하느라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다.
친일명단 중에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한 지도자들이 많이 끼여 있다. 그것은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공개가 안 되어서 그렇지 진즉부터 그들의 친일 행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왔다. 그 인사들의 공헌도, 그 후손들의 영향력, 광복회 등 관련단체들의 무능 때문에 역사의 지엄한 소명을 외면해 왔을 뿐이다.
이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로 인해 친일매국집단이 지금껏 사회의 정상부에 군림하며 호사를 누리고 적반하장의 심사로 민족정기를 흐려놓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 제 핏줄의 구린내를 들춰내자 살맞은 개호랑이처럼 천방지축 날뛰고 있는 일부 당사자들도 기실은 명예의 추락보다도 기득권의 붕괴를 더 두려워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속담에 '비단선조 거적자손 거적선조 비단자손'라는 말이 있다. 선조가 비록 훌륭해도 자손들이 보잘 것이 없으면 선조를 빛내지 못하고 선조가 보잘 것이 없어도 자손이 출세께나 하면 선조를 아름답게 꾸민다는 의미다. 인간사 늘 그랬겠지만 독립투사와 친일매국노의 경우처럼 정도가 거꾸로 선 예가 없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집안을 돌보지 않고 싸운 의열들의 자손은 지리멸렬 흔적이 없고 일제에 빌붙어 구전을 핥은 주구들의 후예들은 대를 물리고 시절을 바꿔 호의호식이다. 거적자손들은 비단선조의 비석 하나를 못 세우지만 비단자손은 거적선조의 사당을 짓고 과거까지 바꿔친다.
비단선조 만들기의 요란한 굿거리판을 벗어나 초야에 호젓이 묻혀 잔잔하나 늠열하게 민족 정기를 쏘아주고 있는 선현의 유택을 찾는다. 화순 앵남 야산에 자리한 지강(芝江) 양한묵(梁漢默)선생의 묘소다.
지강선생은 3.1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의 한 사람이며 유일한 전남 출신이다. 그리고 거사자 가운데 감옥에서 순절한 유일한 사람이다. '백성이 하늘이다'는 신념으로 겨레사랑을 실천하다가 57세의 나이로 옥중 산화한 보기 드문 열사인데 오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손이 '거적'인데다 나라조차 그를 잊었다. 비단보다 더 곱고 꽃보다 더 붉은 만고절충이 잡초 속 우거에 초라하게 버려져 있다.
친일의 거두들은 생가 복원이며 기념관 건립, 문화재단 설립들을 마치고 호화묘역에 누워 단잠을 즐기고 있다. 자손이 '비단'인데다 나라가 그들을 받들어 모셨다.
이제 거꾸로 된 역사를 바로 세울 절호의 기회가 왔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고 죄 지은 호사 편할 리가 없다. 과오가 공훈을 가리지 않으니 겸허하게 고해성사를 하고 역사의 짐을 이쯤해서 내려놓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다. 거적에 비단을 둘러서 얼마나 가겠는가. (200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