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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에 관한 설명
중국전래
[능엄경]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중인도의 나란타사에 秘藏하고 부처님 입멸후로부터 이 경은 본국(인도)에만 유통하고 타국에는 전하지 말라는 왕명에 따라 당나라 이전까지 중국에는 전래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전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으나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唐 中宗 신룡2년(705) 中天竺 사문 般刺密諦(Paramiti)가 전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그 사상적 풍부함과 논리 정연한 교리체계, 그리고 유려한 문체로 인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天台․華嚴․禪宗 등에서 유행하였다. 이러한 것은 [능엄경]의 註釋書를 지은 저자들의 다양한 종파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송․명대에 이르러서는 화엄종의 長水子璿(964-1038), 천태종 吳興仁岳(992-1064), 臨濟계통의 溫陵戒環, 그리고 [楞嚴經正脈疏]로 유명한 眞鑑 등 많은 승려들이 註釋書를 저술하였으며 각 宗派에서 자기의 종의에 따라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주석서가 唐代엔 4인, 宋代엔 18인, 元代엔 4인, 明代엔 42인, 淸代엔 12인이나 되었다.
唐代 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圓覺經]이었던 사실에 비해 송이나 원․명의 시대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은 [능엄경]이었다.
[능엄경]은 당대이후 송․원․명을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임제종․조동종․법안종․운문종 등 종파를 가리지 않고 애독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남송․원대를 거치는 사상사적 전환과정에서 선종계의 간화선 성행은 [원각경]과 [능엄경]의 지위를 급속히 향상시켜, 중국불교의 중요한 소의경전으로 확립시켰다.
우리나라 전래
우리나라의 경우 [능엄경]은 언제 어떤 경로로 누가 전해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九山禪門 중 曦陽山派의 開祖인 「智證大師寂照之塔碑銘」에 대사의 여섯 가지 異蹟 중 맨 마지막 6번째에 “스스로 구제할 여가도 없으면서 없는 그림자를 쫓으니”라고 한 ‘自濟未暇無影逐’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말은 [능엄경]권4에 있는 “演若達多가 어느 날 거울에 아름다운 얼굴을 볼 수 있으나, 자신의 面目은 보이지 않는다 하여 거울 속의 얼굴이 도깨비라 착각하여 겁에 질려 달아났다”는 ‘演若達多迷頭逐影之事’6)의 고사에서 취한 말이다7)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능엄경]의 공식적인 전래는 大覺國師 義天(1055-1101) 때이다. 의천이 宣宗 2년(1085) 宋에 들어가 화엄종의 대가인 淨源을 만나 교학을 담론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정원은 그의 스승인 長水子璿(964-1064)에게 [능엄경]을 수학하였으며, 그 자신도 주석서를 남길 정도로 [능엄경]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
또한 宣宗 6년(1089) 乾德殿에서 7일간 개설되었던 楞嚴道場'은 그의 주선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속장경의 준비작업으로서 저술한 [新編諸宗敎藏總錄]에서 무려 28종이나 되는 [능엄경] 주석서를 정리하였던 것으로 보아 이들 주석서는 대개 당․송대에 나타난 것으로서 의천이 귀국하면서 수입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능엄경]은 고려 중기 선종의 부활과 간화선의 수용이라는 새로운 사상적 변화과정에서 폭넓은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경의 내용
경전은 그 종교가 지니고 있는 믿음체계, 의례체계, 유지집단 등의 전반적인 내용을 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종교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믿음체계란 그 종교가 갖는 이념 및 이론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고, 의례체계는 믿음체계를 일정한 행동양식으로 표현하는 행위이며, 유지집단이란 그것들을 생활화하고 전승시키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경전에 의지하여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고양시키고 믿음을 실천하며 삶의 지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수많은 경전 중『楞嚴經』은 이러한 경전의 3요소를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옛부터 이 경의 가르침을 棄濁染, 發妙明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혼탁하고 물들은 마음을 버리고[棄濁染]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지혜를 발하는 것[發妙明]이다’라는 의미를 말한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경에서는 아난과 부처님의 긴 문답을 통해 진실과 허망을 분별할 수 있는 바른 통찰력의 구비와 엄정한 계율의 실천, 그리고 모든 장애를 물리칠 수 있는 다라니의 지송과 여러 성인의 지위를 바르게 알고 더 나아가 수행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마구니의 일을 밝히고 있다.
그 가르침의 폭은 불교의 대소승과 현교․밀교를 모두 포괄하고 있을 정도로 광활하다. 총 10권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경권의 내용은 음탕한 여자의 환술에 걸린 아난을 구제한 부처님이 그를 대상으로 수행의 방법 등을 설법한 내용이다.
처음 序說分은 설법의 동기가 설해지는 내용으로서, 여기서는 걸식을 나갔던 아난이 음실에 빠지고, 이를 부끄러워 한 아난이 부처님께 수행의 뜻을 밝히고 가르침을 원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부처님이 설한 내용을 正說分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불도의 실체를 발견하는 대목으로 불도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부처님은 사물의 현상을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진상을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고 설한다
이에 대해 제1권에서 아난은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놓고 부처님과 문답을 벌인다.
그것이 유명한 칠처징심이다. 在內,在外,潛根,藏暗,隨合,中間,無着 등의 일곱 가지 장소를 대면서 마음의 소재를 추궁했으나 부처님은 모두 아니라고 답한다.
아난은 다시 마음이라는 것은 마치 돌과 나무와 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것 역시 분별 망상이라고 말한다.
제2권에서는 이어서 참다운 견해 즉, 眞見은 일정한 형태나 일정한 주처가 없을 뿐 아니라 일정한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제3권에서는 眞見이 허망함을 달관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즉 5온과 6입처 등의 모든 법이 그 자체 내에 眞如性을 함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4권에서는 불교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보이는 교설로 가득차 있으며, 이어지는 의문에 답하고 있다. 즉, 모든 법계 속에 여래장이 충만해 있다면 세계 속의 모순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 가를 설명한다.
제5권과 제6권 에서는 修行眞要로서 각각 解決眞要와 入圓眞要, 두 가지를 설명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빠른 수행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전자의 경우는 6근으로 지은 업을 푸는 방법을 말하고, 수행의 참다운 요체를 밝히고 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매듭을 푸는 요체이니, 즉 이러한 번뇌의 매듭이 맺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모두 육근을 의지해서 생기며, 또한 구경에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게 되는 것도 육근을 의지해서 얻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며, 그 차례에 있어서는 먼저 인공(人空)을 얻고, 공성(空性)이 원명(圓明)해지면 법해탈(法解脫)을 이루며, 법해탈을 이루고 나서 구공(俱空)도 불생(不生)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후자는 圓通을 얻은 자의 수행담에 의지해 자신의 근기를 入道하게 하는 방편을 말한 것으로 원통에 들어가는 요체이니, 즉 25원통을 낱낱이 밝히고 그 가운데 특히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이어서 제6권에서는 內攝 즉 持戒를 보이고, 제7권에서는 外攝 즉 持呪를 보여 섭지궤칙에 대해 설한다. 이는 심신을 잘 수습하여 수도를 완성하는 방법으로 계행을 철저히 지키고, 壇을 차려 부처님을 경배하거나 [능엄주]를 지송하여 가피력으로 해탈을 얻는 방법 등을 말한다.
제7권 끝 부분부터 제8권 끝 부분에서는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10信,3賢,4加行,10地,等覺,究竟覺 등 55위의 행상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경의 5가지 이름을 제시한다. 이 5가지 이름에 경의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
제8권 끝 부분에서 10권 끝까지 해당하는 부분의 내용은 수행자, 특히 초심자들이 만나기 쉬운 岐路를 예시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데 그 뜻이 있다. 가령 12종의 生이 생기고 천상이나 지옥 등의 집착이 일어나는 이유나, 색․수․상․행․식에 각각 열 가지의 마가 생길 수 있는 까닭을 밝히고 수행을 잘못함으로써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고 있다.
수용 및 영향
한국에서 [능엄경]이 고려중기 이전에 읽혀졌던 기록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미미하다. 사실 선종에서 [능엄경]이 알려지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이는 고려 후기에 선종이 부활할 수 있는 일종의 거사선의 토양을 마련한 淸平居士 李資玄(1061-1125)을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그가 선에 심취된 계기는 [능엄경]이었으며, 항상 이 경을 중요시 하고 강의하면서 적극 권장하였다.
사실 이 시기는 왕실과 밀착된 華嚴宗이나 法相宗과 대각국사 의천에 의한 천태종의 창립으로 선종은 침체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때 선종에서는 새로운 선사상의 경향이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하나는 선사상의 이론과 실천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서 [능엄경]이 성행되었던 것이고, 또 하나는 북송대 임제종과의 직․간접적인 교류를 통해 문학적인 선의 흐름과 간화선이 수용되고 있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迦智山門의 學一(1052-1144)과 왕사에 책봉된 闍崛山門의 大鑑國師 黙庵坦然(1069-1159)에 의해 꺼져 가는 禪宗系의 맥락이 유지된다. 그중 탄연은 스승인 慧炤國師와 거사로서 禪에 심취하여 禪勢의 부흥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던 眞樂公 이자현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楞嚴禪과 임제선으로 禪宗을 일으켰다.
탄현이후 거사 이자현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키고 널리 드날린 이가 바로 고려 중기 曦陽山門의 圓眞國師 承逈(1187~1221)이다. 승형은 조계산의 지눌을 찾아 법요를 받고, 청평산 이자현의 유적을 찾아 순례하다가 「文殊院記」에 기록된, ‘능엄경은 마음의 본바탕을 밝히는 지름길‘이라는 대목을 보다가 느낀 바가 있어 거기에 머물면서 [능엄경]을 공부하여 諸相이 幻妄하고 自心이 廣大함을 알아 발원하기를 法敎를 弘揚함에는 반드시 이 [능엄경]으로 으뜸을 삼으리라 했으니 [능엄경]이 세상에 盛行하게 된 것은 師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이 승형은 이자현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 [능엄경]을 중시하였으며, 이를 선문에 널리 유포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입적하던 해인 1221년 강회에서 [능엄경]을 강의하고, 몇 달 후에 입적할 만큼 [능엄경]을 중시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13세기 수선사 계통에서도 [능엄경]은 華嚴經, 金剛經, 圓覺經 등과 함께 선 관계 경전으로 중시되었다.
그 뒤 승형은 이자현의 선을 더욱 개발하여 ‘楞嚴禪’을 확립하여 한때 경기일대에 ‘楞嚴禪風’을 드날렸으며, 또한 불법을 선양할 때는 언제나 [능엄경]을 으뜸으로 삼았으니, 이자현에 의해서 개창된 ‘楞嚴禪’이 탄연을 거쳐 승형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또한 [능엄경]이 한국 선종의 필수교과서로 존중받게 된 것도 승형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 백련결사 지류에 속하는 禪僧 閑庵普幻도 ‘楞嚴道場’을 개설하는 등 일평생을 [능엄경]을 수행의 전거로 삼았다. 師는 高宗 32년(1245)에 「弘傳首楞嚴經發願文」을 짓고, 원종 5년(1264)에는 「求結道友文」을 발표하여 자기가 깨달은 [능엄경]의 참뜻을 세세생생에 전법할 결의를 보이고 있다.
[능엄경]의 영향은 고려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선승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신유학자들에게도 널리 영향을 미쳤다. 성리학을 크게 일으킨 李穡(1328-1396), 주자 성리학 뿐 아니라 불교, 도교에 대한 이해도 깊었던 李崇仁(1349-1392), 동방이학의 조로 추숭될 정도로 당시의 대표적인 정통성리학자로 평가받은 鄭夢周(1337-1392), 八隱의 한 사람으로 역성혁명이 이루어지자 조선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杜門洞에 은거하여 節義를 지켰던 성리학자 朴翊(1332-1398), 종래 척불론자로 알려진 權近(1352-1409), 고려말의 대표적인 철불론자인 鄭道傳(1342-1398)과 같은 신유학자들에까지 광범위하게 선호되었다.
또한 조선조의 대표적 유학자인 이율곡도 [능엄경]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율곡은 선조대왕께 글을 올릴 때 四行의 글을 많이 썼는데, 한 번은 선조대왕께서 “경은 왜 四行의 글을 즐겨 쓰는가?”하고 물었을 때 율곡이 답하기를, “臣이 昔在山中하야 多讀楞嚴입니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능엄경]의 문장은 四行詩와 같이 四字體의 유려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중기 이후 이른바 履歷科程이 정비되었는데, 조선중기 月潭雲霽(1632- 1704)스님이 이력과정을 조직하였다고 본다. 강원의 학제는 沙彌科, 四集科, 四敎科, 大敎科의 4단계 이외의 隨意科가 있다. 교과목의 선정에 관해서 유추해 보면 履歷科程 중 [능엄경]을 사교과의 맨 처음에 둔 것은 [능엄경]이 心宗을 符印한 것으로 禪學人의 필독서로 규정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근대전래
근대에 들어와선 선승인 龍城震鍾(1864-1940)이 저서 覺海日輪 가운데 「修心正路」에서 주로 선수행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는데 있어 먼저 공부길을 잘 선택하여야 함을 강조하면서 화두를 참구할 때 생기는 十種病과 마음이 동요함에 나타나는 魔境에 대해 잘 알아서 속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공부할 때는 불가불 마군이를 잘 알아야 한다면서 주로 [능엄경]의 50마경에 준하여 설명을 한 대목이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대의 선사 중 退翁性徹(1912-1993)은 여러 대승경전 중 [능엄경]도 중시하였던 듯하다. 그 이유는 저서 [禪門正路評釋], [백일법문], [영원한 자유]등에서 [능엄경]을 자주 인용하였고, 특히 [능엄경]10권에 나오는 ‘寤寐恒一’에 대해서는 “오매일여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하고서 돈오견성을 자부한다면 이는 자신을 그르치고 남까지 그르치는 커다란 죄과를 짓는 것으로, 수도하는 과정에 있어서 무서운 병통이며 장애이다.”라고 하였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다시 오매일여를 다시 夢中一如와 熟眠一如로 나누어 제8식인 아뢰야식의 미세한 망상을 여의어야 佛地의 眞如恒一이 되므로 ‘몽중일여’는 깨달음의 경지라 할 수 없고 오직 ‘숙면일여’의 경지라야 見性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제8아뢰야인 識陰이 다 없어지면 안팎이 한 번 뛰어 곧바로 여래 지위에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ꡔ능엄경ꡕ10권의 識陰이 滅盡한 내용을 들어 설명한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의 저서 가운데 ‘오매항일’이나 ‘識陰 滅盡’에 대하여는 하나의 깨달음의 준칙으로 중요시 여겨 일관성있게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능엄주
또한 선종의 청규에 보면 선원의 각종의례에 대비주와 함께 [능엄주]가 빠지지 않고 독송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勅修百丈淸規에서는 여러 곳에서 이 주문을 외울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안거를 원만히 마칠 수 있도록 음력 4월 13일부터 7월 13일까지 거행되는 ‘능엄회’에서는 [능엄단]을 설치하고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이나 午時에 능엄주를 독송한다.
그 절차는 維那가 宣疏를 한 뒤 楞嚴頭가 능엄주를 선창하고, 대중들이 그 뒤를 이어서 염송하게 된다. 대체로 선종에서는 結制 기간 중에 楞嚴壇을 설치하고 능엄주를 외운다. 능엄주는 [능엄경]권7에 나오는 '다라니'로 옛부터 修禪者가 修禪中에 나타나는 魔境을 없애기 위해서 誦持해 오던 神呪이며, 더구나 여름과 겨울의 安居 때에 정진 공덕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수지해 왔다.
50마경
[능엄경]의 50마경은 이 경의 극치로 선을 수행할 때 禪定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境界와 魔事를 체계있게 시설하고, 또 마사를 떨치는 비밀법문까지도 밝히고 있어 말법시대 참선인이 기로에서 헤매지 않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경책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선하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지침서가 되어왔다. 대부분의 경과 선어록에서 마음을 닦는데 나타나는 병통과 마경을 언급하고 있으나 [능엄경]의 50마경만큼 체계적으로 시설한 경은 드물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능엄경]은 [小華嚴經]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그 내용이 수행에 대해 이론과 실천 부분에 있어 직설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많으며, 또한 禪旨와 계합하는 바가 있어 선종에서 널리 지송되고 연구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스크랩합니다,,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