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산행 초짜를 벗어나자 못한 제가 등산 영화를 보고 평을 쓰기는 멋쩍지만,
왜, 내려올 산을 목숨 걸고 올라가려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해답을
얻고서 나름 산지기입장에서 “버티칼 리미트“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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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글즈의 노래, 'Take It To The
Limit'을 흥얼대는 주인공들이 등장하지요. 'Take It To The Limit', 쉽게 말하자면
'Do Everything You Can', 해볼 수 있는 만큼 다 해보라는 뜻의 이 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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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앨범인 'One Of These Nights'에 실려 있던 곡입니다.
버티칼 리미트(Vertical Limit)는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수직한계점을
일컫는 전문용어로 산악인들에게는 지옥의 의미로도 사용된다고 합니다.
유명한 산악인 로이스는 아들 피터(크리스 오도넬), 딸 애니(로빈 튜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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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등반을 즐기다 다른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일행 모두가 애니의 로프에
매달리게 됩니다. 로이스는 한 로프에 두 명까지는 매달릴 수 있다며 피터에게
로프를 끊으라고 강요하지요. 로프를 끊으면 아버지가 죽고, 로프를 끊지 않으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 피터는 어쩔 수 없이 로프를 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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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는 피터는 부유한 사업가가 협찬하는 히말라야 등정
이벤트에서 등반대에 합류한 애니를 만나지요. 아버지를 죽인 게 피터라고 생각하는
애니와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피터의 관계가 매끄러울 수는 없지요.
현실적인 피터와 의무감이 강한 애니, 그들의 어색한 관계는 히말라야 산의 분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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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질수록 부드러워집니다. 이 영화는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영하 40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서
체감온도는 영하 67도라고 합니다. 바람은 피부를 에이고, 구름과 안개는 시야를
좁힙니다. 히말라야의 폭풍은 등반대 중 3명에게만 생존게임을 허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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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중의 산소부족으로 산소호흡기가 필요하지만, 3명의 조난자들에게 주어진 것은
단지 최대 생존시간인 22시간뿐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조난자들을
죽이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인간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조난자를 구하러 떠나는 지원자 한 명마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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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되는 하프 밀리언 달러, 즉 50만 불의 돈은 여섯 사람의 생명과 미래를 보장해
줄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원자들을 죽이는 것은 그들에게
제공되는 돈입니다. 조난자가 된 애니는 다시 한 번 현실과 의무감 속에서 갈등을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등산이라는 것이, 또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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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이론처럼 간단하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지요.
결국, 애니는 피터에게 말합니다. "로프를 자른 것은 옳은 일 이었어,~
아버지가 원하는 그런 산악인이 되고 싶었어,~" 애니는 죽은 아버지의 유해를
공동묘지에 묻지 않고, 히말라야로 가져왔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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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정한 산악인이 무엇인지, 진정한 인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요.
진정한 산악인이 되는 것이 가장 높은 산의 정복자가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겁니다.
애니는 “인간은 다 죽지만,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죽기 전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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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대부분의 영화들이 주인공을 비참하게 죽이지 않듯이, 애니도
살아납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애니를 살린 것은 바로 그녀의 살겠다는 의지입니다.
살겠다는 욕망, 인간의 삶의 의지는 얼마나 강한 것일까요? 살아남기 위해 정말
끝까지 버텨보는 그 굳은 의지야말로 어떤 한계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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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스크린으로 가득 채워 보는 것은 정말 스릴이 넘칩니다.
평지에서 중력에 이끌려 있는 안정적인 모습, 그것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평지가
아닌 허공 속에서 중력의 반대방향인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스크린 속 인물
들에게서 아찔함을 느낍니다. 거대한 산이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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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을 때, 그 운명을 어기고 끝까지 살아보고자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본능에
관객들은 긴장을 하게 되지요. 거기에 보편적인 사회적 의무감이 더해져, 본연의
인간성이 상실될 때, 관객들은 스크린 속 인물로 투영되어 심한 갈등을 하게 됩니다.
내가 죽고 남을 살려야 하는지, 이미 죽을 사람이라면 차라리 내가 살고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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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야 하는지~ 어쩌면 버티칼 리미트라는 그 한계상황은 생물학적 한계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의 이기주의는 어디까지 갔는지,
그 휴머니즘의 한계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015.3.8.su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