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넓은 마음
열왕기상 4:29,30,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찬송가 475장(인류는 하나 되게), 222장(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이스라엘 왕국을 가장 번성하게 했고 가장 영광스럽게 만든 왕입니다. 그의 부와 귀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뛰어난 모델로 손꼽힙니다. 그가 이렇게 이스라엘의 황금 시대를 이룩한 비결에는 그가 국정 초기에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일천 번제를 드린 예배의 축복이기도 합니다. 일천 번제를 다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열왕기상 3:5)
고 말씀하셨고, 솔로몬은 백성들을 재판을 할 수 있도록, 국정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주시고 하나님의 법도를 잘 지키면 주신다는 조건으로 장수의 복도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에 그는 놀라운 지혜로 재판을 잘 하였으며, 그의 탁월한 국정 운영 능력을 통하여 나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여서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나라가 근동 지역에서 가장 탁월한 나라가 되고, 그 중심에 있는 솔로몬 왕의 탁월한 지혜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주변 나라의 지도자들이 다들 와서 그 지혜를 듣고 선물을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를 보필하는 신하들은 자기의 재능을 다 발휘하여 왕을 도와 나라가 발전하는 일에 모두 힘을 합하였기에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의 영광은 전무후무한 영광의 시대로 회자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영광의 황금 시대를 이룩한 솔로몬이 탁월한 지도력은 단지 지혜와 총명의 탁월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지혜와 총명이 잘 발휘될 수 있는 저변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귀중한 내면 자질 한 가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넓은 마음입니다. 29절에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넓은 마음’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원문에 ‘로하브 레브’로서 직역하면 ‘넓은 공간을 가진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넉넉한 수용력이 있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지혜와 명철은 지성의 역할입니다. 탁월한 지성은 쪼개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서 좀 더 풍부해지고 강해지는 효과까지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넓은 마음은 서로 전혀 다른 것들이 함께 섞여져서 더 풍부해지고 넓어지고 더 강해지고 새로운 창조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포용하는 힘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넓은 마음은 지혜와 명철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해주고 서로 다른 성격과 재능들이 한 데 어울려 일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또 다른 차원의 큰 자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사물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지혜와 명철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다 포용하여 자기 밑에서 아우르는 능력도 주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과 사상들을 섭렵할 수 있는 포용력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사물이나 사건의 다양한 면들을 통찰력이 있게 파악하고 서로 정말 다른 사람들도 그의 지도력 아래에서 적재 적소에서 유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세상의 모든 학문과 문화를 다 아울러서 훌륭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시대에 왕을 보필하는 각 성전과 왕궁을 지극히 아름답게 건축하는 등 건축 분야도 발전하고 군사력 분야도 발전하고 상업도 발전하고 농업도 발전하고 대외 무역도 발전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도 가장 잘 짜여진 예배 문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발전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넓은 마음’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넓은 마음’의 축복을 사모합시다. 사물과 상황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는 지혜, 시시비비를 잘 판단하는 분별력, 뜻한 바를 추진하여 어려움을 딛고 이루어내는 의지력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성향과 사상과 다양한 재능과 은사들을 한 데 아울러서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며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한데 어울려서 마음껏 서로의 기량을 펼치고 서로 상반되는 성품과 기질들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극한 대립으로 치닫지 않고 도리어 서로의 다름이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이루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관대함과 아량을 가진 ‘넓은 마음’을 우리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진리의 본질만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양보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질구레한 것들은 양보하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연합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로마 교회의 탄압과 핍박에 맞서서 종교 개혁의 중대한 사명을 추진해야 할 절박한 시절에 세 명의 뛰어난 종교지도자들 마르틴 루터, 존 캘빈, 찌빙글리가 만나서 성찬의 본질에 대하여 논의하였다가 그만 차이점을 발견하고는 연합하지 못하고 각자 종교개혁의 길을 흩어져 행하고 말았습니다. 로마 교회의 화체설을 배격하고 각자 공재설, 영적 임재설, 상징설을 주장하였는데, 그 다름 때문에 그만 더 중요한 목표인 로마 교회에 맞서는 연합 전선을 이루지 못했으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본질이라고까지 할 수 없는 해석문제였으니 서로 이해했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훗날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의 예정을 강조한 칼빈주의를 배격하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주장했는데, 당시 그와 옥스퍼드 동창생이었던 죠지 휘트필드와 첨예한 논쟁을 벌였지만 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갈등을 접고 서로 복음을 위하여 화해하고 연합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목숨을 걸어야 할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아니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하나가 되고 관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넓은 마음이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대인배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어 단어에도 ‘big heart’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표현할 때 ‘big heart’라고 말합니다. 이 단어가 바로 오늘 본문의 넓은 마음이라는 단어에 일맥 상통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써 보낸 편지 속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립보서 4:5)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좁은 마음, 내 생각과 내 판단만 옳다고 끝까지 우기는 마음,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경험과 과거의 상처 등에 대하여 전혀 이해심을 갖지 않고 내 경험만을 기준으로 섣부른 판단을 하고 선악간에 판단을 내려버리고, 다른 영역에 대하여서는 전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폐쇄적인 안목만을 고집하는 태도를 내려놓도록 합시다. 진리의 본질이 아닌 경우에는 상대방의 생각과 사상도 이해하도록 애쓰고, 나와 전혀 다른 다른 사람의 기질도 포용하고자 애씁시다. 내가 전혀 모르는 수많은 영역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그들의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고 배우고자 힘씁시다.
그렇게 한평생 이 세상과 사람들과 사람의 내면에 대하여 이해하고 배우려고 힘쓰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지 아니하고 이해하려고 포용하고자 힘쓸 때에 그것이 곧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더욱 유연하고 풍요롭게 하고 더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밑바탕이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처럼 우리 곁에도 다른 이들도 평안히 와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경험을 나누고 힘을 함께 모아서 더 풍성하고 좋은 것들을 마음껏 창조해낼 수 있는 넓은 그릇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