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 것을 생각하면 슬퍼진다고 말한다. 나이가 자신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역설적으로, ″나이 드는 것은 삶의 기세가 꺾이는 쇠락(衰落)의 과정이 아니라, 인생을 더욱 성숙시키는 완성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삶의 완성(完成)은 중후한 노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한 게 아닐까? 특히 노년기는 인생 최고의 절정기(絶頂期)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고 싶다. 청장년(靑壯年) 시절,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각박한 경쟁구도 속에서 치열(熾烈)하고 타산적(打算的)인 생활방식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으나, 폭풍의 시대를 지난 노년기의 일상은,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인생을 관조하며, 자연과 휴머니즘(humanism)이 주는 천연(天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는 완숙(完熟)의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늙어간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삶의 마무리 과정이며, 타인들로부터 축복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나이를 먹었다 해도 계속 학습하며 성장(成長)하지 않으면 그가 설 자리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시선(視線)은 항상 앞으로, 미래(未來)로 향해야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것이 지금의 노객(老客)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표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B. Pascal)」은 자신의 수상록 ″팡세(Pensées)″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유(思惟)의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을 이성적(理性的)이며 긍정적인 존재로 본 개념이다. 그러나 내가 보는 인간상은 다소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어찌 보면 “뻔뻔스럽고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생물″ 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인간의 사상적(思想的) 넓이와 심온(深穩)함의 깊이는 더러 장엄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사실상 태생적 이기심(利己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용렬한 속물일 뿐이고, 고결해 보이지만 욕망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는 불결한 존재의 이중적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부끄러움을 감추고 내 것을 찾아 뻔뻔하고 억척스럽게 밀고 나가지 않는다면, 과연 이 험난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것은 바로, 내가 본 나 자신(自信)의 모습이기도 하다.
첫댓글 일조 선생님의 나이 철학이 깊이 스민
글입니다. 저 자신도 다시 한 번 돌아
봐야겠습니다.
궁궐에 생기를 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 회장님의 정겨운 관심이 새로움을 남깁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