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집에 언젠가부터 나방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쌀에 벌레가 났나? 쌀독을 내려다보고 들여다보고 만저보고 날아다니는 나방을 없애기 위해 쌀을 냉장고 야채실에 넣었다.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다.
애벌레도 기어다녔다. 새집이어서 나무에서 나오나?
집을 돌며 샅샅이 둘러보았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보지 않고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일은 일어나고 있었다.
집들이 하고 남은 땅콩이 서랍속에서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2.
우리집에 우렁각시가 며칠전부터 찾아왔다.
남편이 어느날은 고기, 또 어느 날은 갓김치가 손에 들여 있다.
남편은 요즘 회사일로 전국투어중이다. 어느 지방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낸 사람이 남편의 성실성, 회사에 대한 애정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자기 돈으로 고기를 사서 안겨준단다. 거절하고 다른 사람을 주고 했더니 집 앞까지 들어다 주기에 할 수 없다며 받아 온다.
오늘 집에 있으면서 남부럽지 않게 고기반찬을 해서 막 먹는데 친정엄마가 갑자기 오셨다. 이사하고 두번째 오셨는데 용케 잘도 찾아 오셨다.
시장끼를 안고 오신 엄마는 이름모를 이가 건내준 갓김치와 고기반찬을 맛있게 드셨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매우 기쁘다.
그래, 갓김치를 담은 그 여성은 어떤 마음으로 낯모르는 이에게 건네주었을까.
3.
새터교회가 가을 바자회 때 팔았던 면 생리대를 사용한다.
생리를 막 시작할 때는 일회용이 없었다. 일회용 생리대가 판을 칠때,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면 생리대를 거부했었다.
나는 오늘도 면 생리대를 빨았다. 어렸을때 더럽다고 생각했던 그 생리가 생리대를 얼룩지우고 새 하얗게 변하는 모습에서 내 몸이 웃고 있음을 느낀다. 붉게 피어오르는 핏물이 내 몸에서 빠져나온 생명이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내 몸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의 세계가 존재함을 인정한다.
4.
영하 10도를 가르킨 어느날,
출근길을 나섰는데, 아파트 입구에 가톨릭의대 부속병원 여성노동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얼마나 추울까? 진작 알았더라만 따신 커피라도 타 올 걸' 생각만 하고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뒷마음이 내내 찜찜하다. 말로는 가난한 여성, 노동자에게 있다면서, 정작 몸과 마음은 멀어져 있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길을 걷다보면 힘에 겹게 짐을 가지고 가는 이들에게 짐을 덜어주는 손길 또한 뻣치지 않는다. 쭈빗쭈빗, 멀뚱거리는 모습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 당당함이 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