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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와 꿈돌이
낡은 돌담 틈새에 오부자의 들쥐 가족이 살고 있었어요. 가벼운 봄비가 와서 저녁을 먹으려고 싱싱한 초록 잎들을 찾아 밖으로 나갔습니다.
또 다른 쪽 돌담 틈에는 날라리 쥐와 꿈돌이 쥐가 살고 있었어요. 봄날 아침, 그들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파리들은 거두지 않고 데. 데.. 데.. 룰라 룰라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수풀 밑에 누워 있었지요. 돌담 아래로 종종걸음으로 바삐 내달리던 다섯 마리의 쥐들은 날라리와 꿈돌이가 수풀아래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 너희들은 뭐하고 있는 거냐?” 날라리와 꿈돌이가 눈을 떴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찾고 있어. 빗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희도 눈을 감고 들어 보아.”
그래서 오부자 쥐들도 눈을 감아 보았으나 노래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저녁밥을 지을 양식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지요. 그러자 날라리와 꿈돌이가 말했습니다.
“오직 먹을 것만 생각한다면 행복할 수가 없단다. 이런 노래가 있지.”
행복은 둥글게 원으로 돌아요.
삶은 바다에 떠있는 작은 보트
누구나 모든 것의 한 부분
내가 바로 내 자신(My Self)이 된다면 모두를 가질 수가 있어요.
왜냐고? 왜냐면! 왜냐고? 왜냐면!
오부자 쥐들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날라리와 꿈돌이를 비웃고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오후 늦게, 해가 막 지기 전에야 날라리와 꿈돌이는 저녁밥을 지을 요량으로 이파리들을 모았습니다.
여름이 오자 오부자 쥐들은 먹을 것을 찾아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들에 밀이 익어서 초록 잎들을 따로 모을 필요가 없었지요. 그들은 날마다 밀밭으로 나가 밀과 곡식들을 먹고 집으로 가져와 겨울을 대비하여 저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돌담에서 밀밭으로, 밀밭에서 돌담으로 수없이 왕래하였습니다. 날라리와 꿈돌이도 들에 있었습니다. 그들도 겨울을 대비하여 씨앗들을 모았을까요? 아니요. 그들은 햇볕에 내달리며 놀고 밀밭 사이로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 여름 날 오부자 쥐들이 들에서 돌아오는데 날라리와 꿈돌이가 하늘을 응시하며 누워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우리는 빛깔들을 줍고 있어. 파란 하늘을 보아. 금빛 노란 태양, 아름다운 분홍빛 꽃, 자주빛 꽃, 빨강 꽃들을 보고 있지.” 그러자 부지런한 오부자 쥐들 중의 하나가 말했습니다.
“빛깔을 먹는다니? 빛깔들은 절대 먹을 수 없어.” 그러자 다른 쥐들도 비웃으며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날라리와 꿈돌이도 들에서 놀면서 여름의 색깔들과 약간의 밀들을 모았습니다.
가을에 옥수수가 익고 견과들이 나무에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은 쥐들에게 몹시 바쁜 계절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낟알과 밤 등을 모아 다른 곡식이 있는 창고에 보탰습니다. 곧 겨울이 올 터이고 먹을 것이 충분해야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지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라리와 꿈돌이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옥수수와 견과들을 다 모운 후에는 나무 아래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았습니다. 거위와 오리들, 북쪽에서 남쪽으로 창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철새들, 쿵쿵 걷는 큰 곰들 보기, 남은 블랙베리들을 먹기, 겨울이 오는 것을 대비해서 살도 찌기, 겨우살이를 위해 꿀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꿀벌가족과 둥지에 먹을 것을 나르느라 나뭇가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다람쥐들 바라보기. 공부도 해야 할 것들도 너무 많았습니다.
저 너머에 있는 들에서 오부자 쥐들이 옥수수를 지고 종종대며 오는 것을 보고 날라리가 불렀습니다.
“얘들아, 우리랑 낙엽 위에서 놀자. 아주 재미있어!”
“안 돼! 우리는 먹을 것 모으느라 너무 바빠.”
“그래? 우리도 모으고 있지.”
“이번에는 뭘 모우는 데? 더 많은 소리들을? 더 많은 색깔들을?”
“아니야. 우린 단어들을 채집하고 있어.”
“뭐, 단어라고!” 오부자 쥐들이 동시에 소리쳤습니다.
“무슨 말들인데?”
“이야기들을 만들 단어들이야. ‘곰’, ‘벌’, ‘다람쥐’, ‘나무’, ‘행복’, ‘평화’, ‘사랑’ 등과 같은 것들이지.” 오부자 쥐들 중에는 누구도 그런 말들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둘러서 옥수수가 있는 들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날라리와 꿈돌이는 일을 끝마치자 낙엽 위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겨울이 오자 밖은 춥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낡은 돌담의 집은 안전하고 따스했습니다. 오부자 쥐들은 먹을 것도 넉넉해서 아늑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겨울 끝자락이 오자 쥐들은 먹을 것이 봄까지 충분한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날라리와 꿈돌이에게 투덜거렸습니다.
“너희들이 우리랑 같이 거들기만 했어도 봄까지 먹을 것이 충분할 텐데.” 그러자 꿈돌이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우리도 많이 모아두었지. 둥글게 모여 보아. 우리가 모은 것을 나누어보자.” 그리고 날라리와 꿈돌이는 작은 나무에 대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야, 작은 나무가 있었지.
열매도 못 맺는 나무
그런데 은빛 호두와 황금빛 배라니!
스페인 공주까지 나를 보러 왔지.
꼬마 나무를 위해
나는 물 위를 걷고 바다 위에서 춤을 추었지
공중의 새들도 나를 잡을 수는 없을 걸.
이내 모든 쥐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금방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을 춤추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러나 주말이 오자 다시 몇몇 쥐들이 걱정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날라리와 꿈돌이를 비난했습니다. “너희들이 거들어주기만 했어도 먹을 것이 충분할 터인데.”
그러자 날라리와 꿈돌이가 “우리가 모아둔 것을 보여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쥐들에게 눈을 감도록 하고 마음속에 여름의 색깔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파란 하늘, 황금빛 태양, 빨강, 노랑, 분홍, 자주색 들꽃들. 이내 모든 쥐들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들은 주일 내내 서로 꿈을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쥐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먹을 것이 바닥나려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거의 봄이 오긴 했습니다. 날라리와 꿈돌이는 모두에게 둥글게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을에 모았던 말들, 즉 곰, 벌, 다람쥐, 행복, 사랑등과 같은 단어들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의 단어로 이야기들을 만들고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랑, 사랑, 모든 아이들이 노래해
사랑, 사랑, 겨울이나 봄이나
평화, 평화, 여름이나 가을이나
평화, 평화, 새들이 노래해
행복, 행복, 눈이 내려요.
행복, 행복, 땅을 덮어요.
기쁨, 기쁨, 여름 공기 속에
기쁨, 기쁨, 경이 속에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기쁨이
모든 아이들의 눈 속에
사랑은 위에도, 아래에도
사랑은 높은 곳에도, 낮은 곳에도
사랑은 내 안에도, 모든 곳에도
금방 한 주일이 지나더니 마침내 봄이 왔지요. 쥐들은 먹을 것만 찾는 동안에는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이 많은지!
그 다음 해 쥐들이 먹을 것을 찾으러 갔을 때 춤추고, 노래하고, 꿈꾸고, 이야기를 짓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었는가를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쥐들은 집에 저장해둘 밀과 옥수수를 모으면서 가슴에다 소리와 색깔, 말들을 저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
오래전에 번역해둔 '사랑의 서클'동화를 교정하다가 전에도 이곳에 보였던 이 글을 다시한번 실어본다. 요사이 어느 조직이나 나라나 사회, 가족 안에서조차 물질적인 논리가 우선하고 정당하게 느껴지는 요즈음, 눈에 보이지 않은 영성을 지향하는 아난다 마르가의 네오휴머니즘 교육을 생각해본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은 아름다움의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이렇게 서로 대적하고 싸우는 일이 없지 않을까? 아니, 싸워도 된다. 다만 웃을 수 있다면! 환타지와 메타포, 전체를 보는 유머가 참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첫댓글 나마스카! 아름다운 동화 번역해서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_^
아난다 마르가의 방식 대로 삶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모두 눈뜬다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해질지요?
바바남 케발람!
네요휴머니즘 교육메뉴얼의 동화는 다 이렇게 아름다워요.동화를 다 번역해놓았으니 꼭 책으로 내고 싶어요.
아름다운 산티지.. 나마스카.. 지금 현대인들의 삶에 꼭 필요한 좋은 동화네요. 책으로 내셔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정말 이 현실삶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을 일궈주세요...
아름답다니요? 노친네 날라리 부끄럽사와요.ㅎㅎ 시인 ㄷㄱ씨, 책으로 내게 많이 도와주시와용.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들 하는 날라리와 꿈돌이가 있어서 그나마 사회에 희망이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마르기들도 그런 존재인 듯합니다 ^^
바바남 께발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