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출시작 <서든 임팩트> <승리의 전쟁> <아이거빙벽> <앱솔루트 파워>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추악한 사냥꾼> <퍼펙트 월드> <화이어폭스> <후계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만큼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도 없을 것이다. 이스트우드는 TV 서부극시리즈를 시작으로 한때 흥행순위의 상위를 독식한 스타였고 나이 들어서는 감독으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 거장의 위치에 성공적으로 올라섰다. 제작자로서는 주로 중간 규모 예산의 영화를 만드는 맬파소라는 프로덕션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캘리포니아 카멜시에서 민선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카멜시에는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있다.
이스트우드는 미국 공황기에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군대에서 수영교관 노릇을 하기도 했던 이스트우드는 군복무기간중 로스앤젤레스 시립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다. 전역한 뒤 유니버설사와 계약하여 주로 B급영화에 출연하던 이스트우드는 TV시리즈물 <로하이드>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 만든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속 석양의 무법자> 등 소위 마카로니웨스턴 3부작이 성공하면서 찡그리며 담배 피는 그의 모습은 서부영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고전적 서부극의 근엄함을 완전히 뒤집으며 과장된 제스처로 가득찬 마카로니웨스턴의 스타로 출세했다는 점은 이후 그의 영화세계에 중요한 바탕이 된다.
70년대 들어서는 망나니 형사의 원조인 <더티 하리>에서 주연인 해리 캘러핸을 맡아 액션스타로서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다 해도 이스트우드는 오늘의 액션스타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파시스트적이며 편집광적인 해리는 60년대적 방종에 대한 미국 기성질서의 광적 혐오감을 서부극의 무법자 캐릭터에 주입한 매우 모순적이고 함축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스트우드는 이 캐릭터를 옹호하는 발언을 자주 했고 로널드 레이건과의 친분까지 구설수에 오르면서 진보적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을 사기도 했다. 여하튼 <더티 하리> 시리즈는 이스트우드의 스타 이미지를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면서 가장 인기있는 시리즈 영화의 목록에 오른다. 1971년에 시작된 <더티 하리> 시리즈는 1988년 <더티 하리5>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배우로서 전성기를 이어가는 와중인 1971년 이스트우드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Play Misty for Me>로 감독 데뷔한다. 매일 같은 음악을 요청하는 한 여인과 DJ의 심리게임을 매우 세련되게 그린 스릴러였다. 데뷔작 이후에도 그의 연출작 목록은 <화이어 폭스 Firefox>(1982) <서든 임팩트 Sudden Impact> (1983) 등의 흥행 액션작들을 낳으며 꾸준히 이어진다. 작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게 한 작품은 <페일 라이더 Pale Rider>(1985)였다. 금광채굴마을에 찾아든 정체불명의 성직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기묘한 서부극은 형식이나 스타일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캐릭터의 깊이를 이끌어내는 사색적 연출이 돋보였다.
전설적인 재즈음악가인 찰리 파커의 생애를 그린 <버드 Bird>(1988)는 흥행, 비평 양면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은 이스트우드가 인물을 그려내는 힘이 일정 정도 경지에 올랐음을 보여줬고 <추악한 사냥꾼 White Hunter, Black Heart>(1990)에 이르면 그 점은 더욱 확실해진다. 존 휴스턴 감독이 <아프리카의 여왕>을 만들 당시의 에피소드를 재구성한 <추악한 사냥꾼>(1990)은 예술가의 내면과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관찰한 수작이었다. 그의 이름을 명실상부한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 및 감독상 수상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1992)였다. 자신이 출연했던 서부극의 관습을 뒤집은 이 영화에서 이스트우드는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냉정한 통찰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영화적 이력에 대한 고통스럽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르영화의 힘, 그것의 엄청난 대중성을 가능케 한 배후의 구조와 이데올로기, 그것을 통해 스타에 이르게 된 자신 모두가 이 성찰의 대상이 되고, 이 도저한 명상적 자세가 영화 전체에 불가해한 위엄을 부여한다.
다음 작품은 한 탈옥수의 여정과 그와 소년과의 서글픈 우정을 그린 <퍼펙트 월드 Perfect World>(1993). 단순한 휴먼드라마처럼 보이지만 미국사회의 폭력성과 이상사회에의 동경을 가슴저리게 묘사한 수작이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1995)는 두 전작의 무게에 비하면 마치 휴식 같은 소품이었다. 한 도둑이 거대한 국가적 음모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해가는 과정을 그린 <앱솔루트 파워 Absolute Power> (1997) 역시 주류 액션영화의 공식을 전혀 거스르지 않은 대중성 강한 장르영화.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비디오로만 조용히 출시된 <미드나잇 가든 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1998)에서 이스트우드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는 다시 확인된다. 사바나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한 기자의 눈으로 관찰한 이 영화는 반전과 스릴은 아랑곳없다는 듯 극히 느린 발걸음으로 흐르다, 마침내 이 호화롭고 잡다하고 나른하고 추악한 도시가 미국사회의 정밀한 축도임을 확인케 한다. 스타일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와 캐릭터만으로 이만큼 묵직한 의미를 전하는 감독은 적어도 할리우드에선 이스트우드 외에는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는 희귀한 고전적 작가다. / 영화감독사전, 1999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