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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주의’와 ‘행정수도론’
1. 친북정치권력강화의 네트워크 만들기로서의 이북실향민들의 북한 방문 충동질. 전세계적 반미 동맹 형성을 위한 이중기망성으로서의 한국 기독교에 이슬람 선교 충동질 ; 진정한 자유 통일을 기대하는 사람과 진정한 세계 복음화를 기대하는 사람은 자중하고, 진정하게 다가올 때를 기다렸었어야.
‘한기총’의 이슬람 선교 충동질은 납득하기 어렵다. 교회 한번 나가보았다가, 좌익 신념의 목사님이 왔다고 교회를 더 이상 안나가는 3류 신자의 입장에서, ‘한기총’의 기본 입장은 이렇게 파악된다. 미국이 한국에 복음을 전파한 것과 같은, 그러한 동일한 사명이 한국 기독교에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한기총’의 이러한 작업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정교과서 편찬위원회가 쓴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변화에 발맞추는 흐름 정도로 여겨진다. 요즘의 중고생들이 이슬람을 뭘 알고 미국에 뭘 안다고, 학생운동권식 선입견을 그대로 내뱉는 것을 길거리에서 본 일이 있다. 누구에게 어떠한 내용을 들었는지를 생각하니, 소름이 짝 끼쳤다.
이러한 ‘한기총’의 납득 못할 유도의 근원에는, 역시 [조선일보] 문화면에 등장한 좌익 지식 문제가 드러난다. [조선일보]를 주의깊게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국에 이슬람 문화를 앞세우고 홍보한 쪽에는 임지현 교수의 [당대비평]이 선두주자라고 기억한다. 국정교과서 [도덕]은 임지현의 관점이 들어간 것이다. 거시적으로는 송두율의 관점이 국정교과서에 불순하게 개입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 한국식 다민족주의= 1980년대적인 레닌주의적 민중주의+대한민국의 근대 국민국가적 동일성 해체
프랑스 철학 바탕의 요란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한국식 다민족주의의 밑그림은 예상외로 명쾌하다. 임지현의 기본 관점이 학생운동권식의 소규모 집단의 수평성 중심에, 외국인 근로자를 주체로 불러모으는 권익 찾기로서 거시적 본질적 측면의 레닌이즘적인 민중성 찾기, 그리고 대한민국의 근대 국민 국가 동일성 파괴작업으로서 ‘한국사’와 ‘민족주의’공격작업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임지현 교수 작업에 대한 [조선일보] 문화면의 홍보작업이 없다면, 한국 사회에서 이슬람 문화권이 소수 문명-말은 고상하다-으로 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하다. 이 땅에 외국인 노동자의 일정 부분은 확실히 이슬람권이고 그들 내부의 문명은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 좌익이 그들 내부 문명에 관심 가져서 뭐하자는 수작이란 말인가? 이거가 궁금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임지현의 철학 개념어들은 이중 기망성으로서 ‘속뜻’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한 가운데에,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우파 이론가들의 엉뚱한 대응방식이었다. 임지현의 이러한 지향성은, 송두율식의 ‘북한민족주의의 본질적 측면의 옹호’와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본질적 수준의 박멸’이란 양공작전에 매우 닮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파 이론가들은 ‘민족’이란 단어만 쓰면 아주 더러운 똥을 밟은 듯한 논리를 반복하고, 우파 네티즌 대중들에게 따라 해주기를 강요했다. 그런데, 그렇게만 하면 송두율의 의도가 200% 완수되는 게 논리적이 아닌가?
참수사건의 악마는 ‘알’씨 성을 가진 이슬람계열의 소문난 악마라고 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슬람 전문가가 아닌 나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한국인의 참변에 대해서 진심의 유감을 갖는다. 다만, 알씨 성을 가진 악마의 주변에 왜 한국인이 선교하러 가야만 하는가? 왜,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는가를 문제 삼고 싶다. 공산주의적인 이성 만능주의 입장으로, 이슬람 전문가가 없다는 식의 주장으로, 한국내에 간첩 경력의 이슬람 전문가 정수일씨(깐수)를 잊어주기도 사실 쉽지 않다.
행정수도론 문제에서도 그러하다. 행정수도론이 국가발전을 가져다준다는 보장은, 윤영관의 실천으로 검증된 쓰레기 이론을 곧이 곧대로 속아주는 속에서만 이다. 행정수도론만이 국가발전의 길이란 주장 자체가 괴상하기 짝이 없다. 참수 사건을 맞이하는 자세도 그러하다. 참수사건이 나면 ‘한기총’의 이슬람 선교 프로젝트는, 원점 재검토가 되어야 맞다. 그런데, 왜 이라크와 헤어지면 안된다는 듯이, 이슬람 전문가가 없어서 그모양 그 꼴이란 주장이 왜 나오는가?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전통적 골격은 반드시 부서져야 하고, 전 세계적 수준으로 대한민국은 반드시 반미동맹영역으로 가야하고, 한미동맹은 부서져야 한다는 방향성 설정에서만 가능한 발언이 아닐까? 외교부 책임을 다 씌운다 하더라도, 미국과 기독교 문명에 적대 문명권인 곳에 선교를 하러 가야만 하는 식으로, 한기총이 방향설정을 일정 부분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도 없고, 그러한 점에서 빚어진 책임도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한기총은 조선일보 문화면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정교과서 편찬위원회의 책임을 들 권리와 의무가 있다.
3. 유교를 버리고 역사를 잃고 도덕을 잃고 권력마저 잡지 못하는 우파 : 대학가에서 강만길 학파의 학생운동권 역사가로 대학가에 도배될 동안, 우파는 문약타령으로 우파 역사가 생성을 틀어막은 거 외에는 무엇을 했을까?
행정수도론과 다민족주의 유행을 통한 한국 기독교의 이슬람 문명에 대한 잘못된 선교의 근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국민교육헌장’을 읽을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데에 있다.
한국 기독교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반드시 들어야 하고, 답변을 피하지 말고 해야 한다.
제사 볼래? 이슬람 갈래? 여기에서, ‘제사’보다 ‘이슬람’을 선택한 한국 기독교의 잘못이 ‘참수사건’의 근원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문적 사고에 가까운 편인 소시민이라,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담론에서 정치적 정당화를 하는 철학적 차원에 관심이 더 많은 편이다. 박대통령의 담론은 경제 분야에는 그 시대 경제 전문가의 도움이 있고, 과학분야에는 과학전문가, 철학 분야에는 철학 전문가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장자]에서 ‘천자’의 검 ‘제후’의 검 비유처럼, 박대통령이 한번 칼을 들어 내리칠 때 국가적 파워를 과시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위대한 사람들의 능력을 전부 끌어모았다고 본다.
박대통령의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는 박대통령의 민족주의관을 떼어서 볼 수 없다. 유불선의 종합과 기독교와 천주교의 종합으로서 정신문화의 총합으로서 민족관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 민족주의관은 완벽하게 잊혀졌다. 원불교 천도교 증산도가 민족종교라고 하면서 북한의 민족주의관에 가깝게 주장하는 동안, 한국 기독교가 박대통령의 민족관을 파괴하는 이기적 풍토를 분명히 보인 것은 사실이다.
박대통령을 꼭지점으로 했을 때 기독교인은 ‘제사 콤플렉스’를 가지면서도,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민정부에 김영삼대통령을 꼭지점으로 했을 때, 기독교인의 ‘제사 콤플렉스’는 민족공동체를 분열적으로 만들었다. 제사 콤플렉스가 공공의 목소리가 되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유는 급격하게 파묻혀졌다. 우파 내 군인중심주의의 대학가 현학적 담론보다 수준 낮게 설정되는 슬로건 주의와 맞물려, 우파 내부의 우파 역사 소거 움직임은 심각하게 드러났다.
이승만대통령 때 독립운동 할 당시에는, 이승만대통령은 유교적인 공동체 만들기를 교회 만들기에서 잘 활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 기독교인들은 이승만대통령의 유교와 기독교를 아우르는 방식을 대단히 부러워 했다고, 최근의 한 연구는 증언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유교 정치와 기독교와 각 종교의 종합을 시도했다. 군인중심주의로 나아가면서도 실제로 박대통령의 정치 담론의 주체는, 일반 국민이었다. 그런데, 문민정부 시대에 기독교의 제사 콤플렉스가 공적 담론이 되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사유의 복원 기회는 재갈이 물려지고, 좌파에 모든 인문적 사유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얼’ ‘은근과 끈기’ ‘한’ 기타 등등의 우리 민족적 정서를 판단하는, 과거 시대 철학자의 동일성 사유의 틀이 오늘날 왜 완벽하게 사라졌는가? 이것이 정말 한국 기독교의 한국 현대사에서의 진정한 잘못을 말해주지 않을까? ‘제사 볼래’ 보다는 ‘이슬람 갈래’를 선택하는 한국 기독교의 문제가 이번 참수 사건을 만든 것이라고 봐도 좋다.
나는 박대통령 시대에 박대통령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박대통령의 실체는, 바라보던 세대들의 문화의 반영이지 실제의 그것이 아닐 수 있다고 자주 환기시켰다. 한국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 측면에서 제사를 안 볼 수가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철학적 자기 정당화 차원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아우름 없이는, 우리는 무슨 수로 ‘한미동맹’을 정당화하고, ‘유교’의 조상의 전통을 오늘에 살리려는 것을 지키지 않고는 무슨 수로 좌익 혁명사관에서 대한민국의 전통성을 살리겠는가?
(나는 철학적 보편주의 차원의 정당화로서 오늘날에도 인문학도에게 매력적 요소로 박대통령의 정치담론이 자리하는 것과, 한국 우파의 북한인권 문제제기의 문제점의 분명한 차이를 자주 환기했다. 황장엽 선생의 저작에서 북한인권 문제제기를 하자고 했지만, 황장엽 선생의 저작은 1985년 이전의 반공주의 저작의 일반적 논리위에 있다. 서구 근대 보편 사상을 옹호하면서, 한국 전통의 문화적 토양을 긍정하고 있다. 이것도 제사 콤플렉스로 난도질 되는 것은 아닌가 의문해 본다. 철학자 황장엽 선생의 저작에서 북한 인권 문제제기를 철학적 보편주의로 정당화하는 작업과, 그것을 단순히 전략적으로 읽는 차이가 얼마나 다른가를 문제제기 하는 게, 오해도 참 많이 된 듯 하다. 박대통령 시대에 박대통령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반공주의를 슬로건화한 암기거리로 바꾸었다. 그러나, 박대통령을 바라보던 어른들의 자식 세대는 곧장 박대통령의 정치 담론의 보편주의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4. 다민족주의, 행정수도론, 등은 보편주의적 이성관에 입각한 근대 국민국가 담론을 하지 말자는 말. 그것의 궁극적 취지는 ‘근대 자본주의’를 부정하며 기독교를 발본적으로 부정하는 공산적 담론일 듯.
한기총은 이슬람 선교를 원점에서 재고하고, 이슬람선교를 긍정적으로 제시한 차원에서 일정한 책임의식을 느끼는 차원의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며칠 전 티브이 일일 드라마에서 이덕화배역이 딸을 사랑해서, 이혼을 권유하고 묶어두는 발언을 한 것을 보았다. 한국의 현재의 어른들은 ‘실용주의’(자기들 수준을 허락하는 적절한 속물주의가 진짜 의미이다. 그러한, 한국의 실용주의 논리는 절대로 미국 실용주의의 퍼스에 도달 못한다.)를 내세우며, 도덕군자를 묻어 두려 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유교와 기독교는 동일하게 생활과 문화 차원을 이끄는 국가기구이다. 대한민국 한반도 내부의 고유한 ‘미션’을 져버리고서 밖에서 없는 ‘미션’찾겠다는 발상부터가, 괴이하고 수상쩍은 것이라 봐야 된다.
한기총이 이슬람에 선교를 해야만 세계 복음화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와, 행정수도론을 통해서만 국가발전이 된다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송두율식의 유물사관의 대한민국 장악이 검증을 통해서 철회될 수 있고, 철회되어야 한다면 그러하다.
첫댓글 많은 '박사모'회원이 잘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알'씨 성을 가진 악마가 개자식인 것은 말해 지겹구요, '알'씨 성을 가진 악마와, 한국기독교인의 만남에는 '송'씨가 또 자리했다는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