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홍콩에 바치는 사랑 노래
두기봉은 지금 가장 위대한 홍콩의 작가다. 그는 매년 2편 이상의 영화를 미친 듯이 창조해내면서도 단 한번도 미학적인 완성도를 놓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순수하게 돈을 벌기 위한 상업영화(게다가 액션영화)로 세계 3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지속적으로 초청받는 유일한 작가다. 문제는 홍콩영화의 열광적인 팬이 순식간에 멸종해버린 한국에서 두기봉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록 <익사일>(放逐)과 <매드 디텍티브>(神探)가 국내 개봉하긴 했지만 진정한 걸작인 <대사건>(大事件)과 <흑사회>(黑社會) 연작을 놓친 것은 비극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가 놓친 또 한편의 두기봉 영화가 있다. 두기봉의 가장 경쾌하고 기분 좋은 소품 <문작>(文雀)이다.
참새라는 의미의 문작(文雀)은 소매치기를 일컫는 홍콩의 속어다. 당연히 <문작>의 주인공들은 소매치기다. <흑사회>나 <익사일>처럼 피가 장미처럼 터지는 총알발레는 없다. 의리를 지키기 위해 죽어가는 남자들의 최후도 없다. 대신 두기봉은 거의 자크 드미의 영화나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음악적 우아함을 통해 소매치기를 예술로 승격시킨다. 참새를 키우며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홍콩의 모습을 담는 게 취미인 케이(임달화)는 다른 세명의 고수들과 함께 지존급으로 활약하는 소매치기다. 그런데 어느 날 케이 일당한테 미모의 여인(임희뢰)이 접근해온다. 네명의 소매치기 모두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늙은 갑부의 정부인 그녀는 자신을 위해 어떤 물건을 훔쳐달라고 케이 일당한테 요청한다. 그러나 그녀에겐 늙은 갑부로부터 벗어나려는 숨은 의중이 있었고, 결국 케이 일당은 물건을 훔치려는 찰나 자신들이 덫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케이 일당이 맞서야 하는 상대는 홍콩 소매치기 세계의 전설적인 거장이다.
<문작>은 두기봉의 홍콩 예찬이다. 케이가 오래된 라이카 카메라로 홍콩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는 장면으로부터 이 영화가 홍콩에 바치는 사랑 노래라는 건 쉬이 직감할 수 있다. 끝없이 위로 향하는 수직선 아래의 답답한 누아르 무대는 여기에 없다. <문작>의 홍콩은 참새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고 활강할 듯한 열린 공간이다. 두기봉은 주인공 케이의 사진처럼 오래된 필름의 질감을 되살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도시를 담아내는 데 열중한다. 팜므파탈의 제의로 시작되는 미스터리한 음모의 해결이 헐겁다고 불평하는 건 별로 소용이 없다. 어차피 두기봉 영화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는데다가 <문작>은 두기봉의 가장 유미주의적인 영화니까 말이다. 특히 마지막 소매치기 액션 시퀀스는 명불허전이다. 네명의 문작은 비오는 홍콩의 밤거리에서 우산을 펼쳐들고 수많은 상대편 문작들과 대결을 벌인다. 고속촬영으로 창조된 이 클라이맥스는 <사랑은 비를 타고>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버스터 키튼의 활극 같다. 서사도 대사도 없이. 두기봉은 오직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영화적 기법으로 영화적 명장면을 셀룰로이드에 흩뿌린다. 마술이다.
TIP/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복수>가 한국에 수입됐다는 사실이다. 이왕이면 <문작>도 함께 수입해줬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바이오그래피와 필모그래피
두기봉(두기펭)은 72년 홍콩 TVB에서 프로듀서로 방송계에 입문했고, 그 해에 <설산비호>라는 작품으로 뉴욕국제방송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83년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조감독 생활을 거치지 않고 <벽수한산탈명금>으로 바로 감독 데뷔했다.
<천장지구> 시리즈를 연출하며 유명해졌고, 국내의 영화팬들과도 친숙해진 감독이다. 한국·홍콩 합작영화였던 <언픽스> 총제작을 맡기도 했다. 그 외 유명한 영화로는 <지존무상2>(1991) <동방삼협> (1993) <적각비협> 등이 있다. <동방삼협>은 매염방, 양자경, 장만옥 주연의 SF무협영화로 환상적인 화면을 연출했다.
주성치와 매염방 주연의, 80년대 홍콩영화 스타일을 풍자한 영화 <심사관>(1992)으로 그해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기도 한 상업적인 감각도 특출난 감독이다. 두기봉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천장지구>(1989)는 오천련이라는 스타를 탄생시키며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아 홍콩영화의 멜로드라마의 새 틀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전편의 유명세에 힘입어 계속해서 만든 곽부성의 <천장지구2>(1993), 유덕화와 오천련의 <천장지구3>(1996)는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시리즈의 관습성을 드러내주고 있다.
베테랑 제작자이자 장르영화의 대가인 두기봉 감독은 현재 홍콩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들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SF 무협영화 <동방삼협>(1992), <동방삼협2>(1993)는 세계적인 컬트영화가 되었으며, 올리비에 아싸야스의 걸작 <이르마베프>를 만드는데 영감을 주기도 했다. 더불어 두기봉 감독은 독특한 스타일의 갱스터 영화 <암전>과 <미션>등의 영화는 물론 긴박감 넘치는 경찰 드라마 <풀타임킬러>, <PTU>를 통해 꾸준히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새로운 감각의 느와르 액션을 통해 현재 세계 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두기봉. <대사건>(2004)과 <흑사회>(2005)로 칸영화제 공식부문에 진출했고, <대사건>은 시체스-카탈노냐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두기봉 감독은 최근 유독 세계 영화계의 지대한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또한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제2의 <디파티드>를 기대하며 <익사일>의 리메이크를 결정한 상태다. 할리우드판 <익사일>은 <사일런트 힐>, <도미노> 등을 만든 새무얼 하디다가 제작을 맡기로 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
글 김도훈 2009-07-09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