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샤인 (Sunshine)
1973년 미국영화 (TV영화)
감독 : 조셉 사전트
삽입곡 작곡 : 존 덴버
출연 : 크리스티나 레인즈, 클리프 드 영, 멕 포스터
브렌다 바카로, 빌 머미, 알란 퓨즈
코리 피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
<살아있는 사람, 살아 있었던 사람들의 영화>
그리고 <치유의 영화>
1970년대 우리나라 극장가는 '감성의 시대'였습니다. 1970년 아서 힐러 감독의 '러브 스토리'가 개봉된 이후 '선샤인' '조이' 저 하늘에 태양이' '휠링 러브' '라스트 콘서트' '사랑이 머무는 곳에' '세븐 어론' '챔프' 까지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성영화들이 많이 개봉되었고, 흥행에 성공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50년대 영화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까지 재개봉 할 정도였습니다. 60년대 한국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그리고 70년 '러브 스토리'로 인한 감성 시대가 70년대 내내 이어졌지요.
'선샤인' 역시 그런 감성영화 부류의 작품입니다. 불과 20세의 나이로 골육종에 걸려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러브 스토리'의 여주인공 보다 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케이트 헤이든 이라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 영화가 단지 '러브 스토리' 이후에 양산된 여러 감성 멜러 영화의 아류 중 하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부분은 아닙니다.
우선 '선샤인'은 러브 스토리와 달리 '실화'를 영화화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내용도 죽어가는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아름다운 판타지나 눈물강요 감성을 이용한 신파적 이야기라기 보다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투병하고 사랑하고, 특히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의미를 던져주는 내용입니다. 다른 감성물에 비해서 억지로 연출된 듯한 장면이나 감동자극 장면 같은 것이 없고, 투병과정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표현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6살에 집을 나와 결혼을 하고 임신한 채 남편과 헤어진 케이트(크리스티나 레인즈)는 산악지대에서 캠핑과 노래를 하는 무리들 속에서 샘 헤이든(클리프 드 영)이라는 청년을 만납니다. 둘은 감정이 통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싹틉니다. 케이트는 샘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20살도 안된 여자가 결혼 경험이 있고 아이까지 가진 상태였지만 샘은 그런 케이트를 받아들입니다. 케이트는 예쁜 딸을 출산하고 샘과 함께 키우면서 질 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소박하고 행복한 젊은 부부가 될 수 있었던 두 사람, 하지만 케이트가 다리에 골육종 이라는 무서운 병이 생기고 의사는 다리의 절단을 권유하지만 케이트는 아이에게 다리가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며 다리 절단을 거부한 채 투병을 시작합니다. 샘과의 병상의 결혼식, 그리고 오래 남지 않은 삶이었지만 함께 케이트를 키우며 살아가는 두 사람, 간혹 샘과 다투고, 샘은 집을 훌쩍 나가버리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부부로서, 부모로서 함께 합니다. 케이트는 녹음기에 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녹음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정리를 담담하게 합니다.
1976년 1월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상당한 관객을 모으며 폭발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감성적인 내용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고, 특히 존 덴버의 주제곡 'Take Me Home Country Road' 'Sunshine' 'My Sweet Lady' 등 여러 곡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면서 영화의 히트와 함께 노래도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존 덴버의 이 삽입곡들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하며 존 덴버를 상징하는 곡들이 되었습니다.
원래 '선샤인'은 1973년 미국에서 제작된 TV용 영화입니다. 70년대에는 우리나라에 TV용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조지 C 스코트 주연의 '제인 에어'를 비롯하여 '조이' '몬테 크리스토 백작' 등이 TV영화지만 극장상영을 하였습니다. '선샤인' 역시 그런 유형의 극장 상영작이었지요. 1951년에 태어나 1971년에 사망한 재클린 헬튼의 육성 녹음을 바탕으로 그녀의 짧은 삶에서 벌어진 삶과 사랑, 투병에 대한 내용이 책과 TV영화가 나왔고, 크게 인기를 모은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재클린 헬튼이 녹음한 카세트와 테이프가 어느 날 도둑을 맞았고,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을 통해서 알려지기도 했으나 결국 도둑은 테이프를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재클린 헬튼은 방송국에서 선물한 새 카세트에 다시 녹음을 하였고, 1971년 안타까운 죽음 이후에 이러한 육성 녹음을 토대로 책과 영화가 나온 것입니다.
영화는 착한 내용 입니다. 샘과 케이트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 선량한데, 샘과 함께 공연을 하려는 두 동료를 비롯해서, 아래층에 사는 노라(멕 포스터)라는 여성은 샘, 케이트와 친하게 지내면서 질을 돌보기도 합니다. 노라는 샘과 잘 통하는 친구였고, 약간 선을 넘을 듯 한 상황까지 가지만 그럼에도 케이트와 질에게 꽤 헌신적인 좋은 이웃이었습니다. 케이트는 자신이 죽은 뒤 샘과 노라가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노라는 샘이 질을 키우지 않는다면 자신이 키워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케이트의 담당 의사인 캐롤(브렌다 바카로) 역시 아주 좋은 의사입니다. 이런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 펼치는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1976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어 인기를 누렸고, 이후 1978년 서울 대한극장에서 재개봉되기도 하였으며, 1980년 6월 TBC TV 명작초대석 이라는 영화 프로그램을 통하여 공중파에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사실상 자취를 감춘 초희귀작이 되었습니다. 보통 인기를 모았던 상영작은 몇 번이고 재방영을 하지만 '선샤인'은 1980년 방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고 비디오, DVD출시조차 안되었습니다. 주로 TV영화인 경우 이렇게 희귀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튜브에 꽤 안좋은 화질로 풀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최근 해외출시가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1973년 2시간짜리 TV영화로 만들어진 이후 1975년 30분짜리 TV외화로 그 후의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총 13부작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77년 '선샤인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TV시리즈를 몇개 묶어서 '선샤인 나의 귀여운 딸' 이라는 제목으로 방영이 되었고, 같은 해 '선샤인 크리스마스'가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TV시리즈에서는 기존 73년 첫 작품에 출연했던 샘의 두 명의 동료와 이웃여인 노라도 계속 등장했습니다. 간단히 후일담을 이야기하면 케이트가 죽은 후 샘은 혼자서 질을 친딸처럼 키웠고, 노라와는 좋은 친구로 계속 지냈습니다. 다만 직업이 변변찮았던 그는 여전히 안정적인 자리를 잡지 못하고 택시운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았고 노라는 의사와 결혼을 합니다. '선샤인 크리스마스'에서도 아직 질의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었던 만큼 그 이후의 샘과 질의 이야기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샘이 좀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었다면 노라와 결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랑하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인데 안타깝게도 여주인공이 불치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슬픈 내용이지만 저는 이 영화를 오히려 '치유의 영화'로 받아들였습니다. 주인공의 안타까운 투병과 죽음을 다룬 영화는 참 많습니다. '러브 스토리'를 비롯하여 '휠링 러브' '조이' '라스트 콘서트' 우리나라 영화로도 최진실, 박신양의 '편지'를 비롯하여 '선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 많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잘 만든 영화들도 많았지만 주로 관객들에게 '슬픔에 대한 공감'과 '아름다운 감성'을 던져주려는 의도가 많았던 것에 비해서 '선샤인'은 '삶의 의미와 감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케이트가 다리를 절단하지 않은 부분, 만약 의사의 권유대로 다리를 절단했으면 좀 더 오래 살았을까요?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케이트 방식의 투병과 주관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삶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얼마나 살았느냐' 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모든 사람의 운명이지만 1년도 못살고 죽는 경우도 있고 100년을 넘게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모든 삶이 다 나름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은 모두 공평하게 주어지지요. 그 시간의 길이가 다를 뿐. 즉 주어진 시간동안 얼마나 잘 살았느냐,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케이트는 '얼마나 사느냐'의 문제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선택함 셈입니다.
케이트의 대사 중에서 거의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오늘 하루 아프지 않고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라는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굉장히 큰 선물이 아프지 않은 하루와 숨쉴 수 있는 자유인데, 늘상 그걸 느끼기 때문에 그런 고마움조차 잊고 살게 됩니다. 삶이 있으니 죽음이 있는 것이고 죽음도 삶의 한 과정입니다. 죽음이란 삶에서 받는 여러가지 많은 선물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받는 선물일 것입니다. 삶이 없었다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죽음조차 없겠죠. 내가 살고 겪어오면서 남긴 여러가지 삶과 흔적들, 죽음은 그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단계입니다.
케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사랑하는 남자, 사랑하는 딸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온전한 신체를 가지고 살고 걷고, 말하고 간혹 짜증부리고 다투기도 하고. 그리고 자신이 떠난 후의 질의 장래를 걱정하고, 질에게 엄마의 존재를 알려주기 위해서 녹음을 하여 자신의 존재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길지 않은 삶을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르지 않은 다리의 병이 장기로 전이되고 결국 만 21살을 맞이하기도 전에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샘과 케이트의 만남과 질의 출산, 그리고 사랑과 죽음을 다룬 2시간 짜리 영화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케이트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은 살아 숨쉬며 자연을 벗하고 만나고 사랑하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그렇게 살다가 떠납니다. 삶에 대한 의미, 삶에 대한 감사함. 삶이란 내가 태어나면서 받은 선물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가지 환경, 공기, 물, 부모, 집, 먹을 것 등이 주어집니다. 얼마나 언제까지 주어질지를 모를 뿐. 그런 삶이란 선물에 대해서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치유의 영화'가 바로 '선샤인' 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 그건 하루 하루의 조합이고 순간순간의 시간의 조합입니다. 결코 돌이킬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는 시간의 조합. 케이트의 20년의 시간처럼 모든 사람에게 삶의 시간은 주어집니다. 삶이 힘들다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삶은 큰 선물이고 매주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주며 위로해주는 '치유의 영화'이고 삶의 영화입니다.
ps1 : 이 영화를 연출한 조셉 사전트 감독은 그레고리 펙 주연의 '맥아더'로도 우리나라에 알려진 감독입니다. 주로 TV영화르 많이 만든 인물이지요.
ps2 : 영화는 80년 방영후 자취를 감추었지만 존 덴버의 삽입곡들은 오래도록 영화음악 방송을 비롯하여 많이 들려졌지요.
ps3 : 만 3세 밖에 안된 질 역의 아기가 너무 연기를 자연스레 잘하네요.
ps4 : 영화 오프닝에 장례식에서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부르며 록키산맥에 유골을 뿌리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재클린 헬튼의 장례식에서 그랬다고 합니다.
ps4 : 선샤인 영화의 실제 인물이었던 재클린 헬튼의 추모 사이트와 사진입니다.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22944291/jacquelyn-marie-helton
[출처] 선샤인(Sunshine, 73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삶'에 대한 영화|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