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의 감옥 / 조유리
저 검독수리는 나도 아는 독수리다.
저 새를 가둔 철창 역시 내가 아는 감옥이다.
시인이 상재한 시집 「왼손의 쓸모」를 보면, “지구의 한켠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
다”로 시작하는 〈열린 감옥〉이라는 친필로 쓴 시를 서문보다 먼저 읽게 된다.
나는 이 짧은 싯구절에 해머로 정수리를 얻어맞은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 한 구
절로 시집 한 권을 통째로 다 읽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장을 넘기니 시인
은 담담한 목소리로 “여기 묶인 시들 대부분이 포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라고
말한다. 지난겨울 잠시 스치듯 만났던 시인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여
릿여릿한 외모였는데, 그에 반해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난 후엔 이 시인이 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내적 에너지는 무섭도록 강한 야성의 본성을 포석에 두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인은 아이와 함께 동물원을 산책하던 중 맹금사 앞에 우뚝 발길을 멈춘 채 철창
안에 갇혀 있는 검독수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날개를 잔뜩 파묻은 채 박제
처럼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저 새가 한때는 하늘을 제압하던 제왕이었다고, 아이에
게 설명해 주는 동안 시인은 자신이 알고 있던 맹금의 정체에 점차 의구심이 생긴
다. 정말 저 날개로 하늘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던 적이 있었던가, 저 부리로 한 시
절이나마 날카롭게 물고 위협해 본 적이 있기나 했었던가!
시는 시인에게 있어서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내면적 자아를 성찰하게 하는 도구이
다. 나는 이 시에서 시인의 억압적 자의식을 읽는다. 시인이 여성으로서 상당 부분에
대한 포기각서를 쓰게 만든 사회적 제약과 가부장적 권위하에서 청년기를 보냈던 세대임
을 감안할 때, 어쩌면 “인생은 감옥”이다, 라는 단정을 무의식에 깔고 살아오지 않았나 싶
은 생각이 든다. 제 몸에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채, 뾰족해져 가는 부리를 앙다문 채 한
번도 펴보지 못한 날개를 제 몸속에서나마 퍼덕거리며 정신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자아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살아온 그간 반생을
돌아보니, 젊고 윤기나던 깃털은 희끗희끗해지고 오랜 활공의 꿈이 비축되어 있다고 믿었던
날개는 어느덧 퇴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나마 꿈꿔 온 세상이 결코 저 갑갑한
철창 속은 아니었을 것인데, 무엇이 그의 꿈과 의지를 저리 꼼짝 못하게 묶어 두었던 것일까.
아침 밥 대신 포식한 비애 한 덩어리가 목구멍에 걸려 한 평 반 지상의 기류가 팽팽한데, 날
선 발톱을 안으로 잔뜩 오므린 검독수리 한 마리가 제 야성의 본성을 가둔 철창살을 두 눈 부
릅뜬 채 가만히 노려보고 있다.
첫댓글 조시인의 시안과 김시인의 야성이 꿈틀거리는 두 산맥 같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제 부족한 단평을 단 한 줄로 일갈해 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외돌님^^
제 이름 속에 갖혀 사는 것은 저 독수리 만은 아닐 것입니다. 조유리시인님^시인이라는 이름 속에, 아버지라는 남편이라는 이름 속에 갖혀 사는 저 자신도 저 독수리 같이, 보이지 않는 창실 속에서 조금씩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인으로서의 감옥, 가정의 구성원으로서의 감옥, 또한 직위나 명칭 등 무수한 창살 속에서 제 본 모습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지요.
이성웅 시인님의 덧글을 보니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러나 독수리는 다만 비상을 위해 긴 시간을 침묵하며 기다리는 것... 언젠가는 날아오를 겁니다. 좋은 시와 조 시인님의 깊은 사유까지 엿보고 갑니다. ^^*
비상을 위해 긴 시간 침묵하며 기다린다는 말씀, 그리고 언젠가는 날아오를 거라는 그 희망이 어떤 창살 속에 갇힌 삶일지라도 깊게 포용하리란 생각이 들어요, 화두를 하나 더 얻은 듯싶어요, 감사드려요^^
검독수리가 자유를 속박 당하며 자연스럽게 사육 당하듯 우리의 자아도 현실과 조건 속에 갇히고 스스로 또는 타의에 의해 조금씩 그 야성이 길들여 지는 것일 테지요... 허나 그 야성은 남아 언제고 기회만 닿으면 있는 힘껏 날 것입니다. 좋은 시와 단평 감사히 읽습니다. 건강하세요.^^*
정말 그렇지요?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 갇히거나 타의에 의해 속박당한 채 많은 걸 포기한 듯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언젠가는 비상하리란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이지요. 들러주신 마음, 깊이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