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는 승복에 고깔을 쓰고 법고를 두드리며 추는 춤이다.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 어느 깊은 가을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하얀 비단 고깔을 쓴 젊은 비구니가 승무를 추고 있다.
이 춤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춤이 아니라, 구도자로서 수행 과정의 고통과 번뇌를 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이 세속의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순간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3ㆍ4조, 4ㆍ4조의 전통적 가락에 '나빌레라', '파르라니', '외씨버선', '살포시' 등의 우리말을 사용하여 시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신현배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