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임종이 다가올 때 나타나는 현상들
시카고대학의 큐블러 로스(Elizabeth Kübler Ross)박사는 전 세계적으로 죽음을 선고받았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에 관한 사례를 2만 가지 이상 조사하여 분석하였다. 분석결과에 의하면 죽음의 현상은 아주 쉽게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문제로, 죽음은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죽음의 과정은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또는 연령이나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이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출생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과정인 것처럼 죽음 역시 누구에게나 똑같이 겪게 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믿고 안 믿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아느냐 모르느냐”라고 하는 지식의 문제라고 말한다.28)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비슷한 심리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즉 육체가 와해(瓦解)되는 과정 속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고, 마음속으로 세상을 떠날 준비를 스스로 하게 된다. 임종 시에 나타나는 심리상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공통적인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인 신부 알폰스 데켄(A. Deeken) 박사는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심리상태를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첫째,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있기를 원한다.
둘째,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
셋째, 자신의 상태에 대해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넷째,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기를 원한다.
다섯째, 일생을 돌이켜 보며 남은 삶을 정리하려고 한다.
여섯째. 마지막 자기성장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일곱째. 사후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올 때 느끼는 심리상태와 함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죽음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육체적으로도 유사한 변화를 거치게 된다. 육체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각종 질병과 노쇠의 요인들이 누적되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의식이 흐려지고, 식욕부진과 배설의 어려움 등 일상생활에 장애를 겪게 된다. 그러나 임종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은 사람마다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즉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임종을 맞이하는 모습도 각각 다르다.
죽음은 사람마다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며 다가오지만, 대체적으로 임종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다음과 같이 정형화(定型化)하여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임종 30일 전부터 눈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목소리도 작아진다. 목소리가 거의 중얼거리거나 속삭이는 수준까지 줄어든다.
그리고 점점 몸에 기력이 떨어지면서 권태감을 느끼고 메스꺼움이나 구토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활동장애를 겪게도 된다. 주위에 대한 반응들도 위축되기 시작하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고, 몇 사람 또는 단 한 사람하고만 있으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몸의 기능들이 정지하기 시작하는 정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는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임종 15일 전부터는 몸의 움직임이 더 어려워지고, 식사나 수분 섭취, 배설 등의 일상생활은 할 수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근육이 무기력해 지면서 대소변도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임종자의 식욕부진은 정상적인 현상으로, 강요된 음식공급이 증상호전이나 삶의 연장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죽음이 임박해 질수록 더 이상의 영양공급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음식 공급이 중단된다고 해도 고통을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음식 공급이 중단되면 엔돌핀 공급을 촉진시키고 통증의 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보호하는데 효과가 있다.
따라서 강요된 음식은 임종자를 힘들게 하거나 오히려 해가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약간의 얼음조각이나 물, 주스 등과 같은 음료로 입술을 적셔주는 것은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구역질을 최소화 하는데 도움을 줄 수가 있다.
특히 임종 2,3일전부터는 전신이 나른해지면서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고 의사소통도 어려워지고 반응하기도 힘들어진다. 시간, 장소, 주변 사람 등에 대해서도 분간을 못하고 혼란을 일으키게 되며, 임종자의 상태가 불안정해 지면서 사지를 휘두르거나 허공을 잡으려는 등,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뇌에 산소공급이 부족해지고 신진대사가 변화됨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임종자는 잠자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다가 결국 의식을 잃게 된다. 눈꺼풀반사가 없어지면 혼수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록 의식이 없고 말은 할 수 없어도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위로의 말이나 애정표현에 대해서도 인식(認識)할 수 있다. 즉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의식이 저하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반응하는 것 이상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경험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평상시처럼 대해 주어야 한다.
임종 1일 전이 되면 급속도로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데, 특히 마지막 3,4시간전부터 임종자는 맥박이 약해지고 혈압이 떨어지며 매우 괴로운 듯 숨이 거칠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본인이 힘들다고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또 호흡이 빨라지거나 무호흡 상태가 중간 중간 동반되는 체인스톡 호흡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내부기관의 순환감소로 인해 일어나는 일반적인 증상들이다. 그리고 죽음이 임박해 지면서 가슴에서 가래가 끓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이는 수분섭취가 적어지고 분비물을 기침으로 내보내는 능력이 저하되면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폐에서 혈액으로 전달되는 산소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 때 나타나는 호흡 부전 상태에 빠지게 되면 손과 발이 싸늘해지면서 입술, 얼굴, 피부 등의 색깔도 검푸르게, 또는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다. 순환기 장애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신체가 반응하기 시작하여 횡격막 뿐 아니라 목에 있는 작은 근육들까지 사용하여 호흡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경우 1분에 30번 정도 숨을 쉬다가 마지막이 가까이 오면 1분에 5번 정도로 호흡수가 크게 떨어지고, 턱을 천천히 상하로 움직이면서 '턱 호흡'을 하기 시작한다.
임종 직전에는 아래턱이 한층 더 크게 움직이면서 입은 약간 벌어지고, 동시에 동공이 열리게 되는데, 까만 눈동자가 크게 보이고, 초점도 잘 맞추지 못한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러한 동공 확대나 광반사(光反射) 소실을 죽음의 징후로 해석한다.
죽음의 순간에는 심장박동과 호흡 등, 몸의 모든 기능이 사라지게 되지만 청각은 죽음 직전까지 계속 유지될 확률이 높다. 몸을 흔들거나 만지는 등의 자극에는 반응이 없더라도 목소리만은 여전히 들린다는 것이다.
머리맡에서 의사의 사망선고 소리를 듣기도하고, 귀에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요란하게 울리는 불쾌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혹은 멀리서 울려오는 종소리나 방울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다. 청각적으로 혼란스러운 감각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눈에 무엇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갖가지 신상(神像)을 보기도 하고, 자기를 찾아오는 무서운 저승사자나 요괴(妖怪)를 보고 벌벌 떠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천사가 찾아오기도 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구를 보게 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환각이나 약리작용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는 단계로, 임종자가 새로운 영적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다.
註 28. Kubler Ross, 사후생, 최준식 역, 대화출판사, 2003,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