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럽구나! 동해안을 수놓은 전통 고택들의 봄 풍경
2024년 5월 고을학교는 <영덕고을의 고택 순례>
고을학교(교장 최연. 고을답사전문가) 제109강은 반가(班家)의 면모를 잘 갖춘 집성촌이 많을 뿐만 아니라 명현을 많이 배출하여 예로부터 ‘작은 안동[小安東]’이라 불렸던 경북 동해안 영덕고을로 갑니다. 영덕에는 고택들이 너무 많아서 이번 답사에는 전통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인량리와 괴시리를 중심으로 반가를 훑어보고 그 집 주인들의 행적을 살펴보려 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동해를 끼고 있어 풍광이 아름다운 영덕고을엔 많은 전통 고택들이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작은 안동[小安東]’이라 불리기도 했다.Ⓒ영덕군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2013년 10월 개교한 고을학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을을 찾아 나섭니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하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찾는 고을마다 인문역사지리의 새로운 유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고을학교 제109강은 2024년 5월 26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고을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109강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영덕-축산면(신돌석장군유적지/신돌석장군생가/무안박씨무의공파종택)-창수면(난고종택/경수당종택)-인량리전통마을-영해면(점심식사겸뒤풀이/영해만세시장/영해향교)-괴시리전통마을-서울의 순입니다.
▲<영덕고을> 답사 안내도Ⓒ고을학교
*코로나19와 독감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참가회원님은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를 권합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제109강 답사지 설명을 듣습니다.
영덕은 영해와 영덕이 합해져 지금의 영덕이 되었습니다.
영덕고을의 지형은 서고동저로 서쪽으로 낙동정맥이 가로막혀 있고 동으로는 동해가 넘실거리고 있어 고을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며 남쪽으로 포항시, 북쪽으로 울진군, 서쪽으로 영양군, 청송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덕의 물줄기는 모두 낙동정맥에서 발원하는데 송천은 과거 영해부였던 영해면에서 동해로 흘러들고 오십천은 행정 중심인 영덕읍과 새로운 어업기지인 강구항을 거쳐 동해로 흘러듭니다.
영덕은 크게 보아 읍치 구역으로서 영해부였던 영해와 행정의 중심이 된 영덕과 새로운 어업 전진기지인 강구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 답사는 과거 읍치 구역이었던 영해면을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영덕(盈德)은 삼국시대에는 야시홀(也尸忽)이라 하였다가 신라통일 후 야성군이라 하였고 고려 초엽에 영덕으로 개칭하여 현종 조에 예주에 속한 후 감무를 두었다가 고려 말 충선왕 때 현으로 되고 조선 조 1415년(태종 15)에 지현사를 두었다가 1914년에 영해를 합병하여 영덕군이 되었습니다.
영해(寧海)는 삼한시대에는 우시국이라 칭하였고 고구려 시대에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79년(탈해왕 23)에 신라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신라 시대 757년 경덕왕 때 전국을 9주로 나누면서 주로 개칭되어, 주장을 두면서 유린군이 되었고, 고려 시대 태조가 처음 순시하였을 때 주민들이 예의 바르고 서로 사양하는 미풍이 있다고 예주라 칭하였습니다. 1022년 현종 때 방어사를 두었고 성종 때 단양이라 칭하였고 고종 때 덕원소도호부로 되었으며 후에 예주목으로 올려 목사를 두었으며 1310년(충선왕 2)에 영해부로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는 1397년(태조 6)에 진(鎭)으로서 병마절제사 겸 부사를 두었고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로 되었다가 1895년(고종 32)에 영해군이 되었으며 서기 1914년에 영덕에 합병되었습니다. 현재 영덕군은 1읍, 8면, 204개 행정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