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베들레헴에 다시 태어나심이 천 수백번 헤아려도
그리스도 네 자신의 마음에 나서지 않으시면 그 영혼은 아직 버림받은 채로니라"
앙겔루스 실레시우수 Angelus Silesius 의 시입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립니다.
그것은 창문에 끼는 성애 때문이 아닙니다.겨울 추위라서 가슴이 시린 것도 아닙니다.
12월이 되면 주인 없는 축제의 마당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기쁨'인양,'은총'인양,하는 축제가 공허하고 부질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소란은 아닐
까 하는 불안 때문입니다. 두려운 일입니다.예수가 베들레헴에 태어났다고 해서 또 그
예수가 아기가 되어 해마다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네 자신의 마음에 태어나는 예수가 무
슨 소용일까요?
마음속에 예수가 태어나지 않는데 삶을 통해 그 예수가 자라지 않은데 성탄절이 무슨 소
용일까요? 혼자 사는 여인이 아기를 배었다가는 돌에 맞아 죽는 사회에서 예수의 모친은
어느 날 그런 일이 자기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길한 말을 듣십니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통보였습니다.그러나 예수의 모친은 그것이
하나님의 통보인 줄을 알자 죽음을 각오하고 받아들였습니다.인류 최초의 여인인 하와는
눈군가의 말을 듣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역천逆天한데 반하여 예수의
모친은 약혼자가 버릴지도 모르는데도 심지어 죽음까지 각오하고서 順天 하였습니다.
예수의 모친은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으뜸으로 두었던 것입니다.이런 마음과
태도로 인해 비로서 예수가 이 땅에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사람이자 하나님이고
나는 그분에게 사람이자 하나님이다.
내가 그분의 목마름을 풀어드리면 그분은 나를 곤경에서 건져 올리신다. 이제 말하거니와 이
번 상탄절이야말로 '하나님의 목마름'을 해결해 드려야 할것입니다. 죽을을 각오하고 받아들
일 수 없는 일을 받아들였던 예수의 모친처럼 순천하는 갸륵한 인간이 되기를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아기 예수를 맞을 마음의 방에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주님 오심으로 인해 우리의 나약함에 불을 지르시고 우리의 눈먼 것을 생명수로 씻어
주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능력과 권세가 우리 속에 좌정케 해 주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