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연중 제30주일 주제는 자비와 사랑입니다.
그런데 자비와 사랑이 같은 것 같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에 사랑이 넓고 일반적인 의미의 사랑이라면
자비는 사랑 중에서 가엾은 이들에 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복음에서는 사랑을 일반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에 비해
탈출기의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이나 가난한 이나
억눌린 이처럼 가엾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가엾은 이들에게 자비롭게 대하라고 우리에게 하시면서
가엾은 이에게 무자비한 자에겐 당신도 무자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면서도 무자비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모순적이십니까?
주님이 복음에서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과도 다른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순적이지 않으십니다.
자비하시기에 무자비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가엾은 이들에게 무자비한 자들에게 자비하시면
가엾은 이들에 대한 무자비를 수수방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첫째로 정의로운 자비와 사랑입니다.
불의한 자들의 불의를 괜찮다고 하지 않으시는 자비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둘째로 상선벌악의 자비와 사랑입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 선에 대해서는 상을 주고 악에 대해서는 벌을 준다는 뜻인데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참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자비하시기에
악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처럼 미워서 벌을 내리시고 화가 나서 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돌아서는 것이 정의요 사랑이기에 회개하도록 벌을 내리시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마약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자비가 아니라 마약을 끊을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자비이고,
마약을 끊도록 무자비하게 조처를 취하는 것이 자비이겠지요.
하느님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어제 복음에서 봤듯이
하느님께서는 이 무자비한 벌을 내리시기 전에 유보의 기간을 주십니다.
어제 복음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자르라는 주인에게 재배인이
1년간의 유예 기간을 달라고 청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유보의 기간을 벌어주시며 우리 스스로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아무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실천해야 할 자비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선 자신이 가엾은 이에게 무자비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이고,
무자비한 사람이 악에서 돌아서도록 뭔가 하는 것이 다른 하나인데
벌은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기도해주면서 눈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생각한 것은
사랑하는 나도 좋지만 자비로운 내가 되어야겠다는 것인데 여러분도 그러시길.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T평화를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사랑 받기 보다 먼저 사랑 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해 봅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