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잔잔한 웃음과 얼굴 본지가 한 달여, 4월18일부터---.
형은 일찍이
상주의 상산국민학교, 상주중학교, 졸업하시고
1955년 경북고등학교에서 만났지요,
고 윤철순과 서울농대 (임학과)를 졸업했지요.
열심히 공부하여 1967년에 한국 최초로 UN 기금으로 네델란드의 ITC(국제 항공측량 및 지구과학 연구과정) 유학후,
1986 강원대학교에서 항공사진 임분재적표 조재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후 임업연구원에서 산림조사과장 기획과장과 산림환경부장,
1998,10월 제 5대 국립산림과학원장을, 하시면서
산림관리체계를 마련, 도시림과 산림지역을 위한 산성비 대책,
도요새의 이동경로 연구, 등으로 애국했습니다. 공직을 마친후 상주대에서 후진 양성,
39 친구들 월례회 모임에서 중국의 황사에 대하여 좋은 설명도 했고, 그리고
국가로 부터 근정포장(훈장)을 받았습니다.
좋은 메너는 친구들과 모임에서도, 술자리에서 테니스 당구 등산/39산 경맥삭악회 모임등에서도,
소주7병을 맥주컾에 발리와 스매싱의 테니스공격 직접 조재한 술로 인정 나누기 야 우리가 산에 왔지 술만 무거 지는 몇배 더 무면서도 먼저 간 이재희와 같이 소주 만 묵디이 재희가 가기 며칠 전에 원자력병원에서 경락 재욱 한테 재희가 한말, 인재 술 고마무래이 오래 산다는 주목 씨로 담근 술묵고 3-4시간 먼 나라 갔다온 얘기들 참 대단하다, 고마하자 이제 밤 1시가 넘었내.
아픈 마누라 한태 내 밥해났대이 반찬도 그기에 운동중에도 잊지 않고 전화하는, 아픈 아줌시 손잡고 시장바닥으로 산뽀시킨--어느 날 어이 홍박 우리 집 큰 놈 주례 좀 해주소, 아들이 어느 날 아부지 병원 좀 갔다 오이소 일산 암센터에서 의사가 어러신 좀 보시지요
중한 암인대요 여러번 항암주사 치료의 고통에도 간간히 운동 등산 월례회에 검은 가짜머리를 쓰고 나왔지요.
4웡18일 새로나온 명부를 가지고 집행부 넷이 병실을 갔을 때에는 이미 곡기는 끊었고 두 며느님이 하는 말, 1-2달이네요,
아버지가 절대 안 내시던 화를 병실에서 이따금 내시면서 나는 절대로--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으로는 안간다고--. 새로 만던 명부를 고개숙여 보고 있는대 나는 그만 눈을 감았습니다, 재욱이 한태 기적이 일어날 수 없을가.
발인 하루 전 오후 늦게 종근형 내외, 친구들 10여 명과 내일 아침 일찍 또 오께 하고 나오는대 주례한 큰 며느리가 날 뿌뜰고 울음을--
형은 큰 일 했소 명복을 빕니다 사랑했던 아지매 옆에서 푹 쉬소, 그리고 유가족 모두에게도 좋은 일 있으소서.
홍 주 보 올림
첫댓글 국민학교 중학교 일부 경력에 대하여는 큰 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주 동향이었지만 미국과 독일에서 한국 산림조성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여 한국산림녹화의 큰 획을 그었고 그 지식을 상주대학에서 후진들에게 가르쳐 준 상주의 인물이며 삼구의 자랑이었습니다. 그의 산림조성 중 한 일화가 홈커밍 50주년 책자에 등재되어있습니다. 깊은 산중에서 눈속에 빠져 사경을 헤맨 일들입니다.
5. 12 낮 제가 빈소에 갔을 때에는 우리 친구들이 아무도 안 보여 씁쓸한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만 전하고 왔는데 그 전 날과 그날 낮 이후에도 테니스회를 비롯하여 많은 친구들이 와서 조문을 했다는 말을 듣고 역시 우리 39 친구들이 의리깊고 정이 많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홍 회장을 비롯한 여러분의 우의와 노고에 동창의 한 사람으로 또 다른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