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현대자동차가 북미 오토쇼에서 싼타크루즈 콘셉트를 공개했다. 외신들은 현대차의 새로운 도전에 관심을 쏟았다. 이유는 바로 ‘픽업트럭’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어반 어드벤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미국 픽업트럭 시장 진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싼타크루즈는 포드 F 시리즈나 램 트럭이 주류를 이루는 상업용 시장이 아닌, 혼다 릿지라인이 개척해온 도심형 픽업트럭 시장을 겨냥한 모델이다. 그러나 당시엔 픽업트럭은 곧 ‘상업용 자동차’였다. 레저용 모델에 도전하기엔 아직 환경이 무르익지 않아 보였다. 어느덧 현대차가 첫 씨앗을 뿌린 지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 4월, 미국에서 현대차의 로고를 단 픽업트럭이 데뷔했다. 이제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여긴 걸까?
글 폴 황(PAUL HWANG, 로드테스트 미국 통신원)
사진 현대자동차 미국법인, 폴 황
① 익스테리어
싼타크루즈 앞에 서면, 거창한 슬로건 없이도 현대차가 노리는 타깃과 전략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 시승 모델은 네 가지 트림 중 최상급인 리미티드. 현대차는 대형과 중형 픽업트럭, 그리고 콤팩트 SUV 오너들이 가진 자동차 이용 패턴 중 겹치는 부분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그리고 4가지 공통점을 짚어냈다. 데일리카 역할과 운전의 재미, 여행, 직장 출퇴근용으로 사용한다는 부분이다. 이를 한 데 담아내고자 했다. 새로운 틈새시장 노리는 픽업트럭의 변화를 뜻한다.
뼈대는 N3 플랫폼이다. 보디 온 프레임 픽업트럭을 고집하는 이들에게는 조립식 유니보디 설계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업용 모델이 아닌 이상, 고정관념을 들이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최근엔 신형 닛산 프론티어도 탈 프레임을 외쳤고, 혼다 릿지라인도 유니보디를 고수한다.
차체 크기는 중형 SUV와 비슷하다.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195.7×75×66.7인치(약 4,970×1,905×1,695㎜)다. 휠베이스는 118.3인치(3,005㎜), 최저 지상고는 8.6인치(218㎜)다. 길이는 현대 팰리세이드와 비슷하며, 너비와 높이는 싼타페 급이다. 하지만 휠베이스는 팰리세이드(2,900㎜)보다 길다. 투싼을 닮은 외모 때문에 싼타크루즈가 작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얼굴에는 투싼을 통해 먼저 선보인 파라메트릭 쥬얼 패턴 그릴을 달았다. 현란한 주간 주행등은 분명 이 급에서 참신한 시도다. 헤드램프 커버 주변 모양은 살짝 다르다. 투싼은 각을 아래로 주면서 날씬한 모습을 유도했다면, 싼타크루즈는 사각형 모양으로 빚어 다소 묵직한 감각을 불어넣었다. 앞 범퍼 하단도 투싼과 다르다. 서로 닮은 듯 다른 앞모습이 제품의 차별성으로 다가온다.
측면 실루엣은 전형적인 적재함 일체형 트럭이다. 일반적인 픽업트럭의 90° 직각으로 떨어지는 2열 뒤 필러 라인 대신, 지붕과 적재함을 부드럽게 이었다. 특히, 볼륨감을 강조한 플라스틱 몰딩으로 휠 아치를 뒤덮어 터프한 멋을 살리고, 험로 주행 시 차체 손상을 예방하는 효과도 챙겼다.
리어램프 디자인은 앞과 비교하면 다소 점잖다. 화살표 모양으로 개성을 줬지만, 미적 감각은 아쉽다. 테일 게이트 아래에는 ‘SANTA CRUZ’ 레터링을 큼직하게 새겨 넣었다. 발 받침대는 총 다섯 개를 달았다. 어떤 방향과 자세에서도 적재함에 쉽게 다가가기 위한 설계인데, 픽업트럭을 처음 만든 메이커치고는 꼼꼼한 배려가 눈길을 끈다.
② 인테리어
인테리어는 영락없는 투싼이다. 대시보드 디자인과 센터페시아, 계기판, 10.25인치 디스플레이 등 전부 같다. 버튼식 기어는 노브 타입으로 바꿨다. 개인적으로 다이얼이나 버튼보다는 노브 타입의 조작성이 조금 더 편리하다. 공조 장치를 비롯해 자주 쓰는 버튼들은 센터페시아에 모아 두었고, 대부분 터치 방식이다. 가죽 시트의 질감은 무난한 편.
상급 트림에는 서라운드 & 버드 뷰 모니터 시스템이 들어간다. 버드 뷰까지 준비한 건 분명 픽업트럭 오너들이 가진 주차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의도다. 투싼에 넣은 멀티 에어 모드 송풍 구조도 싼타크루즈에서 만날 수 있다. 에어컨 바람이 얼굴로 직접 오지 않아서 좋다. 기어 레버 뒤로는 경사로 내리막 감속 보조 장치와 드라이브 모드 변경 버튼, 중앙 디퍼렌셜 기어를 잠그는 버튼 등이 있다. 센터 암레스트 앞쪽엔 히팅 및 통풍 시트와 열선 스티어링 휠 버튼이 모여 있다.
소비자가 가장 궁금해할 부분은 바로 뒷좌석일 거다. 사실 크루캡 디자인 픽업트럭에서 2열 승차감이나 공간적 이점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싼타크루즈의 2열 헤드룸과 레그룸, 숄더룸 크기는 각각 40.1×36.5×56.1인치(약 1,019×927×1,425㎜)다. 최근 등장한 경쟁 상대인 포드 매버릭보다 넓다. 뒷좌석 시트 엉덩이 부분을 들어 올리면 별도의 수납공간도 있다. 6대4로 나눠서 들어 올릴 수도 있다. 직접 2열에 앉아보니 답답한 느낌은 덜하다. 열선을 심은 슬라이딩 유리 덕분에 적재함에서 뒷좌석으로 음료나 간식 등을 건네기도 쉽다.
이어서 적재함 내부를 살폈다. 현대차는 싼타크루즈를 만들면서 공간 활용성과 크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을 거다. 적재함을 늘리자니 탑승 공간이 줄어들고, 반대로 줄이면 공략하고자 하는 시장(여럿이 함께 떠나기에 좋은 차)에서 구매 포인트를 놓칠 수 있다. 적재함 크기는 길이와, 너비, 높이 각각 52.1×53.9×19.2인치(약 1,323×1,369×488㎜)다. 테일 게이트를 열면 길이는 최대 74.8인치(1,900㎜)까지 늘어난다. 현대차 자료에 따르면 29인치 산악자전거 3대가 들어가며, 155㎝ 스노보드 1쌍과 기어까지 삼킨다. 굳이 자를 재고 들어가지 않아도 2인 캠핑 장비나 도구 등을 커버할 수 있어 보인다.
그뿐만 아니다. 로프 등을 연결할 고리와 유틸리티 레일을 달아, 적재함 내부를 나눠 공간 활용성을 높였다. 버팀목 두 개를 나란히 놓을 홈도 파 놓았다. 위아래로 층을 나누어 물건을 수납할 수 있다. 또한, 물건 도난을 막기 위해 쉽게 여닫을 수 있는 토너 커버도 제공한다. 업계 최초로 공장 출고 단계에서 미리 설치할 수 있다. 또한, LED 등 3개를 적재함 좌우 뒷유리 상단에 달아 야간작업도 거뜬하다.
좌우 끝에는 별도의 수납 박스를 넣었다. 자주 쓰는 도구들을 보관하기 좋다. 그중 한쪽 끝에는 115V 파워 아웃렛을 마련해, 규격에 맞는 일반 전자기기 등을 연결할 수 있다. 바닥에도 비밀 공간이 숨어있다. 버튼을 누르면 배낭 등을 보관할 커다란 공간이 나온다. 바닥에는 물 빼는 구멍도 있다. 캠핑지에서 여기에 얼음을 부어, 아이스박스로도 활용하라는 뜻이다. 적재함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현대가 얼마나 많은 경쟁자 분석과 소비자 조사를 통해 이 차를 만들었는지 몸소 느꼈다.
③ 파워트레인 및 섀시
좋은 재료를 잘 섞은 싼타크루즈의 맛은 어떨까? 현대차는 직렬 4기통 2.5L 가솔린 스마트스트림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그리고 직렬 4기통 2.5L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듀얼클러치 자동변속기를 맞물린 두 가지 파워트레인을 준비했다. 2.5 터보 모델은 네바퀴굴림(AWD) 시스템이 기본이며, 앞바퀴굴림(FWD)은 1,500달러(한화 약 174만 원)를 더 내고 AWD를 더할 수 있다. 이번 시승차는 285마력을 내는 2.5 터보. 엔진과 변속기는 현대 쏘나타 N 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다. 픽업트럭에 N 라인 급 성능을 담았으니, 이 차가 바라보는 방향은 분명하다.
④ 주행성능
공회전 소음은 꽤 조용하다. 초기 반응과 몸놀림은 영락없는 SUV 느낌. 일반적인 픽업트럭을 생각하고 탔다면 반전을 경험할 수 있다. 변속기는 생각보다 경쾌하다. 최대 토크 43.0㎏ ·m는 1,700~4,000rpm 사이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낸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노래 첫 소절을 시작하기도 전에 넉넉한 힘을 곧장 네 바퀴로 전달한다. 0→시속 100㎞까지 시간은 약 6초 중반.
시승차는 SUV 전용 올 시즌 미쉐린 프라이머시 LTX 245/50 20인치 타이어를 달았다. 승차감은 무난한데, 아무래도 도로에서 올라오는 소음은 어쩔 수 없다. 오프로드 주행 비중이 크다면 올 터레인 타이어로 교체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일체형 적재함 구조가 주는 장점도 있다. 차체 앞뒤가 따로 노는 느낌이나 뒤에서 오는 진동 및 소음이 적다. A 필러와 루프, 뒷좌석과 적재함 연결부 비틀림 강성을 높이기 위해 핫스탬핑 부품을 적용했고, 승객 공간과 적재함 사이에 더 튼튼한 파티션 패널을 설치했다. 또한, 적재함 하중 분산을 위해 조인트 부품도 강화했다.
픽업트럭이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핸들링도 만족스럽다. 리어 멀티 링크 서스펜션에 적재 무게에 따라 높이를 조절하는 셀프 레벨링 기능도 더했다. AWD 시스템의 토크 배분 능력은 영리하다. 주행 상황에 따라 4휠 스피드 센서와 가속 페달, 스티어링 휠 각 등을 빠르게 분석해, 어떻게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지 빠르게 판단한다. 덕분에 하중 분산이 어색하지 않고 뒤가 금방 따라오는 매력이 있다.
약간의 롤을 동반한 급한 커브 길에서는 이따금씩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만, 픽업트럭이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지적할 부분은 아니다. 견인 능력은 2.5 터보 AWD가 최대 5,000파운드(약 2,270㎏), 일반 2.5가 3,500파운드(약 1,588㎏)다.
AWD의 진가는 부드러운 모래 길을 달릴 때 드러났다. 헛도는 바퀴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 다른 바퀴가 강한 힘으로 끌고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최저 지상고는 218㎜, 접근 각과 이탈 각은 17.5°/23.2°로 포드 매버릭보다 오프로드 접근 능력이 좋다. 아웃도어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SUV인 스바루 아웃백보다도 뛰어나다. 센터 디퍼렌셜 기어를 잠가 구동력을 앞뒤 5대5로 나눠, 눈길 등 미끄러운 땅도 손쉽게 지난다.
첨단 안전장비는 구색별로 갖췄다. 전방충돌방지 보조(FCA)와 차로 유지(LFA) 및 차로 이탈방지 보조(LKA), 하이빔 어시스트, 운전자 주의 경고 장치 등이 기본이다.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BCA)와 후방 교차 충돌방지 보조(RCCA) 등의 스마트 안전장치도 고를 수 있으며,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 운전자 보조(HDA) 장치도 마련했다.
⑤ 총평
미국은 픽업트럭에 대한 다소 고정적인 관념을 가졌다. 따라서 유니보디 SUV 플랫폼으로 만든 픽업트럭이 큰 성공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 수요가 많은 상업용으로 쓰기도 힘드니 대량 판매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혼다 릿지라인이 대표적 증거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콤팩트 SUV 소비층에서 픽업트럭에 대한 니즈가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우연히도 미국 트럭 명가 포드에서 비슷한 시기에 동급 모델 매버릭을 공개했다. 심지어 가격도 2만 달러 아래로 시작한다.
요즘 주변을 보면, 콤팩트 SUV를 타면서 서핑이나 무거운 장비를 싣고 캠핑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쩍 늘어났다. 젊은 세대일수록 차박이나 오지 캠핑을 더 즐긴다. 한 번은 해치백에 서핑 보드를 달고 다니는 지인에게 미드 사이즈 픽업트럭은 어떠냐고 권해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부담스럽다’였다. 업무용으로 쓸 차도 아니라 필요 없다는 뉘앙스였다. 싼타크루즈는 아마 그런 친구들에게 흡족한 대안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 때를 기다린 현대가 매우 좋은 시기에, 트렌드에 어울리는 픽업트럭을 내놓은 듯하다.
<제원표>
깊이 있는 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