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함경남도 타향을 유랑하는 시적 화자의 소외감과 고독감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북관에서 병이 들어 의원을 뵘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알버지의 이미지와의 유사성 관운장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동화적 요소 - 과거회상의 실마리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신선 같은 의원이 고향을 물음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화자의 아버지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의원이 반갑고 따뜻하다.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아무개 씨와 막역지간이라는 의원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아버지의 친구로서 진맥하는 의원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육친과 고향의 이미지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의원의 손길에서 느껴오는 향수(鄕愁)
육친과 고향을 그리워함
▶성격-서정적, 서사적
▶어조-다정다감한 어조
▶제재-고향
▶주제-육친(肉親)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출전-<사슴>(1936)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 州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 어느 목수네 허름한 방 하나를 세내어 기거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개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무능하고 나약한 삶 에서 오는 슬픔과 어리석음을, 되새김하는 소처럼 곱씹어 생각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
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는 면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의지의 표상이자 희망이다.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반성에서 갈매나무처럼 살겠다는 삶의 태도가 나타난 부분이다.
삿-삿자리의 준말, 갈래를 엮어서 만든 자리
딜옹배기-둥글넙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 질옹배기
북덕불-짚이나 풀 따위를 태워 담은 화톳불
손깍지 베게-두 손을 깍지 껴서 머리를 받침
앙금-여기서는 마음에 일어나는 슬픔·한탄 등이 차츰 가라앉아 진정되는 것을 가리킴.
▶감상
다소 특이한 느낌을 주는 이 시의 제목은 편지 봉투의 발신인 주소를 연상케 한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남신의주의 유동에 있는 박시봉이라는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자신의 근황과 심정을 마치 편지 쓰듯 적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시의 문맥으로 볼 때, 박시봉이라는 인물은 목수 일을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시적 화자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객지에 나와 박시봉이라는 목수네 집에 세 들어 지내면서 자신의 지나 온 삶을 되새기고 있다. 시적 화자는 슬픔과 어리석음으로 얼룩진 자신의 지난 삶을 회상하면서, 비애와 영탄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오게 된 것이 자신의 의지를 넘어서는 운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삶에 대한 운명론적, 수동적 세계관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적 화자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굳세고 깨끗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수동적, 운명론적 세계관에 갇혀 있으면서도 맑고 꼿꼿하게 살아가겠다는 시적 화자의 삶의 태도에서 한국인의 마음 속에 자리한 인생관의 단면을 보게 된다. 또 한편으로 이러한 시상의 전개 과정을 통해 일제 말의 암흑기에 자신의 무기력함을 반성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석양(夕陽)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 거리에 영감들이 지나간다
영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족제비상을 하였다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콧잔등이 잘룩하게 생긴 코
그 코에 모두 학실을 썼다
다리 가운데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안경
둥글고 굵은 셀룰로이드 테
돌체돋보기다 대모체돋보기다 로이도 돋보기다
석영 유리 바다 거북이 껍데기로 만든
영감들은 유리창 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북관(北關)말을 떠들어 대며
쇠리 쇠리한 저녁해 속에
눈부시다. 눈이 시다
사나운 짐승 같이들 사라졌다
▶갈래-자유시
▶성격-향토적, 회화적, 남성적, 희극적
▶제재-장날
▶주제-장날에 만날 수 있는 노인들의 수수하고 친숙한 삶
※감상
매우 희극적이고도 코믹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이다. 저녁 때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인생의 석양이란 의미까지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에는 눈물겨운 주체의 정서가 마디마디 서리어 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북관 지방의 노인들이 그들만의 투박한 방언을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지껄이며 지나간 뒤의 고요……. 다분히 현장의 생동감을 중시하면서 여러 유형의 이미지들을 다채롭고도 능란하게 구사했다.
이들의 인상을 묘사함에 있어 매우 해학적인 표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말상', '범상', '족제비상' 등은 동물과 관련 지은 얼굴의 생김새이고, '개발코', '안장코', '질병코'는 그 생긴 모습들이 너부죽하거나 투박한 코의 생김새이다. 그 코가 재미있게 묘사된 것은 다음 행의 안경들을 걸치기 위한 것이고, 안경 속의 번뜩이는 눈빛들은 해질 무렵의 햇살과 조응한다. 그리고 투박한 북쪽 마을의 방언으로 시끄럽게 떠들면서 '사나운 짐승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한 무리의 영감들을 연상할 수 있다.
이들 인상이 하나같이 기묘한 데도 두렵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고, 우리 장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낯익은 모습들이다. 그리고 이 시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백석이 그의 시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시골 사람이 쓰는 말 그대로'의 어법이다. 이 어법은 모국어의 지역성과 향토성을 가장 짙게 풍기는 것이었고, 이러한 어법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 체제의 폭력적 구조에 버티어 대항할 수 있는 독자적 방언이 되었다.
여승(女僧)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취나물의 일종(감각적 어휘)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속세의 번민을 잊은 모습(산골에
나는 나물 연상)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찌든 모습은 그대로였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여승(현재)과의 만남
화자 자신의 처지도 비슷함
平安道 어는 산 깊은 금점판
과거의 사건 금광의 일터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여승의 과거1 - 딸, 자신
서럽고 고통스런 삶(풍성한 계절이나 수확할 아무것도 없음)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재래종 벌의 한 종류 섶벌-민족의 유랑의 현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같다. ▶여승의 과거2 - 남편, 딸
어린 딸이 도라지꽃이 많은 돌무덤에 묻힘
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서럽고 외로운 분위기. 여인의 울음으로 형상화
머리카락 여인의 슬픔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마당 한귀퉁이 여인이 스님이 되던 장면을 감각적으로 표현 ▶여승의 과거3 - 스님이 되던 날
▶성격-애상적, 감각적, 토속적
▶제재-한 여자의 일생
▶주제-여승의 비극적인 삶(가족 공동체의 상실)
▶특징
①감각적 어휘의 구사 ②시상의 압축, 절제
③서사적 구성 ④토속적 소재와 시어
▶출전-<사슴>(1936)
<감상>
이 시는 한 여자의 일생을 역순행적 구성으로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한 여인의 일생, 가족 구성원들이 상실되면서 일어나는 삶의 비애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 가족은 지아비와 지어미 그리고 딸아이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농사일을 했을 법한 지아비는 광부가 되어 집을 나갔다가 소식이 끊어지고, 아내는 남편을 찾아 금점판을 돌며 옥수수 행상을 하고, 그 고생에 못 이기어 딸은 죽어 돌무덤에 묻히고, 자신은 산 속 절간에서 삭발을 하여 여승이 되었다.
절제된 시어와 직유의 표현 기법으로 일제 강점기의 민족 현실을 전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섶벌'처럼 일터를 찾아 나간 지아비, '가을밤 같이 차게' 울면서 자식을 때리는 어미, '도라지 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간 어린 딸, 온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 ― 산꿩의 울음이 곧 여인의 울음이요, 여인의 머리오리가 곧 여인의 슬픔을 담은 눈물인 것이다.
이 '가지취 냄새'가 나는 여인의 삶의 역정을 생각하면서 화자는 자신의 처지와 결국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고 불경처럼 서러워진다.
이 시는 사회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리얼리즘 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라지 꽃'으로 비유된 죽은 아이의 형상은 돋보이는 표현이다.
여우난 곬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後妻)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시구풀이
1)여우난 곬족:여우난 골 부근에 사는 일가 친척들.
2)진할머니 진할아버지:아버지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3)포족족하니:빛깔이 고르지 못하고 파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4)매감탕:엿을 고거나 메주를 쑨 솥을 씻은 물. 진한 갈색.
5)토방돌:집의 낙수 고랑 안쪽으로 돌려가며 놓은 돌. 섬돌.
6)오리치:평북 지방에서 오리 사냥에 쓰이는 특별한 사냥 용구.
7)반디젓:밴댕이젓.
8)저녁술:저녁 숟가락. 저녁밥.
9)숨굴막질:숨바꼭질
10)아르간:아랫간. 아랫방
11)조아질하고 ∼ 제비손이구손이하고:아이들의 놀이 이름들.
12)화디:등장을 얹는 기구. 나무나 놋쇠로 만듦.
13)사기방등:사기로 된 방에 켜는 등
14)홍게닭:새벽닭
15)텅납새:처마의 안쪽 지붕.
16)무이징게국:민물새우에 무를 넣고 끓인 국.
▶백석 초기 시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이 시는, 명절날의 풍경을 통하여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즉 시적 화자가 직접 생활의 공간에 참여하여 그 공동체의 질서를 지켜 가는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시는 축제를 즐기는 공동체의 풍요로움을 다양한 시적 대상을 동원하여 표현하였다. 즉 유년의 시각에서 본 동화적·민속적 세계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형상은 다른 각도에서는 당대의 민중적 삶과는 유리된 것이라는 진단도 가능하리만큼 서정적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형상화하기 위하여 후각적·시각적 이미지 등의 감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구사하여 이들의 마음 속에 보존되고 있는 순수성과 고향의 정취를 찾아내고 있다.
특히 다양한 유희와 음식을 등장시켜서 '그득히들' 모여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신비한 삶을 드러내는 방식은 고향을 상실한 시대에 백석의 시가 이룩한 가장 대표적 특성으로 지적된다.
여기서 '여우난 곬'은 민족 본래의 삶이 있고 원시적인 생명의 건강성과 공동체적 삶의 풍요로움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