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상징 ‘루돌프’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면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가 우리 집까지 무사히 오기를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 세계를 하룻밤에 돌 수 있는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는 ‘얼마나 빠른 걸까’라고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앞에서 썰매를 끈다는 ‘루돌프’(사진)를 상상하면서요.
‘루돌프 사슴 코’라는 노래 때문에 루돌프를 사슴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루돌프는 사슴이 아닙니다. 같은 사슴과 포유동물인 ‘순록’입니다. 순록은 사슴보다 훨씬 화려한 뿔이 머리에 달려 있고, 북극 가까운 지역에서 삽니다. 순록은 핀란드 북쪽 지방에서는 물건을 끌거나 짐을 운반하는 동물로 기르고 있으며, 시베리아에서는 교통수단으로도 이용된다고 합니다.
루돌프는 1939년 미국에서 출간된 ‘루돌프, 빨간 코 순록’이란 책에서 처음 태어났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안개 낀 거리를 걷던 작가 로버트 메이(1905∼1976)가 빨간 코의 순록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따돌림을 당하던 루돌프가 오히려 빨간 코 덕분에 동료들의 찬사를 받게 된다는 메이의 동화는 600만 부나 팔렸습니다. 이후 썰매를 끄는 루돌프는 산타클로스와 함께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됐습니다.
사실 루돌프의 빨간 코 이야기는 1931년부터 시작된 코카콜라의 산타 이미지 홍보 정책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코카콜라 홍보부에서 겨울철에도 콜라를 팔기 위해 자사 제품의 붉은색 도안과 비슷한 붉은 옷의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게 했습니다. 그리고 쉬면서 콜라를 마신다는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붉은색 옷을 입은 산타 이미지는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됐고, 루돌프의 붉은 코 이야기는 이를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세계인의 축제입니다.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지고 오지 못할까 봐 기도하던 어린 시절 걱정이 어쩌면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썰매를 끌어야 하는 순록들이 기후변화로 먹이를 구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눈이 아닌 비가 내리고 땅이 얼어붙는 것이 문제입니다. 순록은 눈을 헤치고 이끼를 뜯어먹어야 하는데 얼음을 깨지 못해 굶어죽고 있는 겁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순록들의 서식지는 겨울에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에도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 추운 지역입니다. 순록은 이런 혹독한 추위에 적응해 온 동물입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서 몸에 땀을 분비하는 기관이 없는 순록들이 체온을 조절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순록은 현재 높은 단계의 멸종위기등급을 받았습니다.
썰매를 끌 순록들과 루돌프가 전설과 동화로만 남을지 모른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닐 겁니다. 어린 시절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마음으로 지구 환경을 보호하려는 실천이 간절한 크리스마스입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