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1932년 볼가강변 유례베츠가 지역의 차브라셰 마을에서 태어났다. 특히 시인이자 저명한 번역가였던 아버지 아르세니 알렉산드로비 타르코프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39년에 모스크바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많은 시간을 모스코바에서 보내면서 러시아 중앙문화의 세례를 받는다. 특히 7년간 음악학교에서 러시아 전통음악에 관한 교육을 받았는데, 느리면서도 장중한 영상미는 전통 음악 교육의 영향력을 보여준다.(1932-04-04~1986-12-28)
그는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졸업작품인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Katok I Skripka>(1960)을 만든 이후 영화 만들기를 갈망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제작 여건은 무척이나 제한적이었다. 그가 <노스탤지어 Nostalghia>(1983)를 이탈리아에서 촬영한 이후 망명에 큰 뜻을 둔 것은 이러한 영화제작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가 존경하는 스웨덴의 잉마르 베리만은 매년 영화를 만들며 다작을 하는 데 반해 4, 5년에 한편꼴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현실은 절망감을 가중시켰다. 타르코프스키는 아버지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많은 소재를 문학으로부터 가져왔다. 평생 영화화하고 싶었던 <햄릿>을 비롯하여 많은 유럽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탐독하면서 영화적 영감을 떠올렸다. 타르코프스키의 가장 난해하면서도 독창적인 <거울 Zerkalo>(1975)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을 자신의 체험과 뒤섞어 각본을 쓴 것이다.
이외에도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 등의 교양주의 작가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 것을 계획하였다. 헤세의 경우 주목의 대상이 된 작품은 <유리알 유희>이다. 완성을 향해 가는 한 예술가의 초상은 타르코프스키 영화 전편을 통해 구현되는 바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택을 보더라도 그가 어떤 세계에 관심을 기울였는지는 단박에 드러난다. 그러나 교양주의의 완성, 혹은 종교적이며 형이상학에 함몰했다는 지적과 반대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역사적이며 마르크스주의적인 입장으로 보는 견해들도 최근에 대두하고 있다. 가령 <안드레이 루블료프 Andrei Rublev>(1969)는 성화를 그리는 성상화가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기는 하지만 배경이 되는 중세의 분위기는 모호하며, 인물들은 스탈린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적인 역사 서술 방법으로 러시아의 역사에 해석을 가하고 있다는 이러한 분석은 다분히 탈역사적인 그의 영화에 대해 재독해를 가능케 해준다. <스토커 Stalker>(1979)나 <솔라리스 Solaris>(1971)와 같이 다분히 우화적인 작품들 속에서 보여준 창조적 공간과 기억과 시간의 문제 또한 정치적 상황을 역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의 일반적인 관심사는 러시아 민중과 밀착해 있었다.
그의 초기작인 <이반의 어린 시절 Ivanovo detstvo>(1962)은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비상의 꿈은 억압받고 있는 민중들의 이상향이자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영화에 참여하도록 이끌기 위해 롱테이크의 미학을 중점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시적 영감은 현실 너머의 세계라기보다는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공감대이다. 그러므로 마치 우리의 무의식을 헤매는 듯한 영상미와 주인공들의 여정은 기억의 탐색이자 영화가 시간 예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2시간짜리의 시간 모험. 그것이 <봉인된 시간>이라는 자전적인 저작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고백담이다. 그러나 망명 시절의 생활은 병과 고향에 대한 향수로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희생 The Sacrifice>은 그의 고별사인 셈이다. 마른 나뭇가지에도 매일 물을 주면 언제가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신념은 최고의 영화감독이 남긴 인간 구원의 메시지다. 그의 영화 역시 인간의 영혼에 물을 주는 물주전자와 같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
주인공 알렉산더(엘란드 요셉손)는 은퇴 후 시골의 외딴집에서 어린 아들 고센과 말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부자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세상의 종말을 부를 만한 세계 전쟁이 발발했음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다. 알렉산더는 본인의 집에 찾아온 친구들과 세계적 혼돈의 원인, 그곳에서 예술이 지니는 역할, 나아가 가족과 겪었던 과거의 개인적 시간을 토로하고 감정을 분출한다. 그 끝에서 알렉산더는 자신의 지난날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선택에 이르고 아들 고센에게 자신이 믿고자 했던 세상의 가치를 물려준다. 20세기 영화사에서 진정한 예술가, 영상 시인 등으로 불리며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했던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유작이다. <희생>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간소한 컨셉과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수십년 동안 타르콥스키가 주창하던 예술론과 믿음의 가치관이 방대한 대사와 넉넉한 속도의 이미지로 전환되어 영화를 지탱한다. 1995년 한국 최초 개봉 이후 30여년 뒤에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다. 글 이우빈 2024-08-21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