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원제 : Death of a Salesman
1951년 미국영화
감독 ; 라즐로 베네덱
원작 : 아서 밀러
출연 : 프레드릭 마치, 케빈 맥카시, 밀드레드 더녹
카메론 미첼, 하워드 스미스, 로얄 빌
돈 키퍼, 제시 화이트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
골든 글로브 남주우녕상
'세일즈맨의 죽음'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의 유명한 희곡이며 어느 나이든 세일즈맨을 주인공으로 하여 대략 24시간 정도 시간동안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일종의 미국판 '1886년생 윌리' 입니다. 엄청 힘겨운 삶을 살아온, '가장' 이라는 무게감이 짓누르는 힘겨움을 제대로 보여준 비극이지요. 우리나라의 '마부(61)' '국제시장(2014)' 등의 작품들이 아버지이자 가장이라는 이름하에 몸고생, 마음고생을 하는 주인공의 험난한 삶을 통해서 힘겨운 가장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도 '가장의 비극'을 다룬 작품중에서 가장 처연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세일즈맨의 죽음' 입니다.
브룩클린에서 보스턴까지 긴 거리를 운전하며 다니는 63세의 늙은 세일즈맨 윌리(프레드릭 마치), 지친 몸으로 귀가한 어느날 그는 물건을 팔러 목적지까지 가지도 못했습니다. 뭔가에 홀린듯 이상한 기분으로 집으로 되돌아 온 것입니다. 지쳐서 돌아온 그를 위로하는 아내 린다(밀드레드 더녹), 그날은 집을 나가 있던 장남 비프(케빈 맥카시)가 모처럼 오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둘째 해피(카메론 미첼)와는 달리 비프는 윌리의 온갖 기대를 받았지만 34살이나 되도록 아직 정착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프가 집에 올 때마다 무슨 이유인지 아버지와 심한 다툼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날도 오랜만에 만나 아버지와 다투는 비프, 밤 늦은 시간 홀로 거실에 있던 윌리는 갑자기 과거로 '빙의'를 하고 이런 아버지의 낯선 행동을 본 비프는 해피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왜 저러셔?"
브룩클린에서 보스턴까지 긴 운전을 하며
세일즈를 하는 노령의 윌리
지친 몸을 이끌로 소득없이 귀가한 윌리
무능하고 허세만 많은 윌리에게 헌신적이고
따뜻한 아내 린다
인간이 힘겨운 것을 억지로 억누르고 참으면 뭔가로 '빙의'가 될까요? 이건 '82년생 김지영'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이 아서 밀러의 희곡에서도 윌리는 힘들거나 난처한 상황을 맞이하면 과거의 자신으로 '빙의'를 합니다. 이 장면들을 통해서 윌리의 과거 사연들이 보여지곤 합니다.
윌리는 한 회사에서 무려 36년을 몸바쳐 일한 세일즈맨이었고, 사장과도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죽고 그 아들 하워드가 자리를 물려받게 되자 늙고 실적도 형편없는 윌리는 찬밥 신세입니다. 기본급도 없이 수당만 받게 된 윌리는 변변한 실적을 올리지 못해서 생활비를 갖다 줄 수 없게 되자 사업을 하는 오랜 친구이자 이웃인 찰리에게 50달러씩 빌려서 집에 갖다 주곤 했습니다. 즉 윌리는 형편없는 세일즈맨이라는 이야기죠. 그럼에도 그는 이룰 수 없는 꿈과 허세를 갖고 늘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사람은 약자일수록 허세가 심하기 마련이지요. 회사에서는 이미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윌리지만 브룩클린에서 보스턴까지 장거리 운전을 하며 세일즈를 하는 것이 힘겨워 적은 월급을 받더라도 뉴욕 본사의 내근직을 하고 싶어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윌리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윌리와 비프, 비프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장남'입니다. 윌리의 과한 기대가 비프에게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쳤지요. 그렇지만 윌리는 여전히 그걸 깨닫지 못합니다. 34살이나 되어서도 사실상 백수신세인 비프에게 굉장히 대단한 아들인양 찬사를 늘어놓습니다. 비프는 그런 아비지를 증오합니다. 린다는 아들 비프에게 슬쩍 묻습니다. '대체 아버지에게 왜 그러는거냐"
윌리의 두 아들
작은 아들 해피는 직장을 가진 바람둥이고
큰 아들 비프는 자리를 못 잡은 상황
한때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던 형제들
윌리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고
특히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였던 큰 아들
비프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힘들때 자주 과거로 빙의하는 윌리
비프의 희망과 꿈은 사실상 고교 3학년때 무너졌습니다. 비프는 수학을 낙제하여 졸업을 못할 처지에 놓였고, 아버지와 만나 해결하기 위해서 멀리 보스턴까지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온 비프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고, 그는 진학하려던 대학의 이름이 새겨진 운동화까지 태워 버립니다. 대체 그날 보스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제목 '세일즈맨의 죽음' 은 이미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제목에 있는 것이지요. 아서 밀러는 1차 세계대전, 30년대 경제 대공황, 2차대전 등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살아온 1880년대에 태어난 윌리 라는 노인의 모습을 통해서 무능력한 가장이지만 과거의 꿈과 허세, 그리고 아들에 대한 지나친 희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남자의 신기루 같은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윌리는 사실 과거에도 그리 잘 나가는 세일즈맨이 아니었을 거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세일즈에 뛰어난 소질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윌리는 늘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양 큰소리를 치고 있고, 그게 자기 혼자 그러고 끝나는 것이 아닌 장남 비프에게 전이시키고 있습니다.
위태위태하게 전개되던 영화는 내근직을 사장에게 요청하다가 오히려 해고되어 버리는 윌리의 막막한 좌절,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모처럼 과거 잠깐 일했던 곳의 사장 올리버를 만나고 온 비프와의 마지막 말다툼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비프는 마음속에 억눌렀던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다 하면서 '현실'에 대한 직시를 부르짖습니다. 울면서 호소하는 아들의 진심어린 절규조차 애써 외면하는 윌리, 이것으로 사실상 상황은 끝난 것입니다.
아버지와 윌리의 어떤 사연....
어머니에겐 감추었던...
만나기만 하면 크게 다투는 윌리와 비프
"내가 이제 내근직을 했으면 하네, 월급은 많지 않아도 돼"
"정신차리세요. 회사에서 당신은 필요없어요"
다시 과거로 빙의된 윌리
과거의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현실에서 실제 윌리 같은 존재는 무척 많습니다. 다단계회사, 방판회사, 보험회사, 세일즈를 중시하는 많은 회사에서 사회의 코너에 몰린 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거대한 꿈을 세뇌받으며 '연봉 1억' 운운하면서 '희망'이라는 비현실적 허상만을 갖고 달리고 있습니다. 돈을 쫓는 사람들의 '희망'을 담보로 그들을 착취하여 돈을 버는 회사들.... 기본급 한 푼 안주면서 이들 조직은 사회에서 정규직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코너에 몰린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고문을 하며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서 그들을 판매전선으로 내몰고 착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이용당하면서도 늘 연봉 1억을 벌거라는 이룰 수 없는 희망 속에서 '조작된 선임 성공자'의 모습을 롤 모델 삼아서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지요.
63세의 윌리처럼 실제로 과거에 사로잡혀서 허언만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고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꼰대'라고 비하합니다. 어렵게 사는 중장년들을 보면 자칭 과거에 잘 나가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잘 나갔던 과거가 과연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늘상 잘 나갔던 과거를 부르짖으며 어렵고 힘겨운 현재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제가 이랬던 적은 처음이야'라고 하면서. 자신의 무능탓을 사회탓, 경제탓, 대통령탓을 하면서, 평생 그렇게 살아가죠. 결코 잘 나간적이 없는 '만들어낸 가상의 과거'에만 사로잡힌 채.
1930년대 한바탕 미국을 뒤흔든 경제 대공황의 10여년의 고통을 경험한 이후 아서 밀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무능한 가장, 무능한 세일즈맨의 나이든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을 통해서 늙고 지친, 그리고 더 이상 희망마저 사라진 세일즈맨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1949년 발표된 이 작품은 1951년 명배우 프레드릭 마치가 주인공 윌리을 연기하여 혼신의 명연기를 보여주었고, 이 영화를 통해서 프레드릭 마치는 아카데미상 후보,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이라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우리생애 최고의 해'와 함께 그의 일생일대의 연기작이 된 것이죠.
아버지와의 식사자리를 모처럼 마련한 형제들
그 와중에도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둘째 해피
무너져버린 현실, 무너진 아들에 대한 기대를
인정하지 못하는 윌리
수학낙제때문에 아버지를 찾아서 보스턴까지 갔던 비프
이날 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제발 이제 환상에서 벗어나세요, 아버지
집세도 보험료도 다 내서 이제 평생 처음으로
빚에서 벗어났는데 왜....
원래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공연에서는 리 J 콥이 윌리를 연기하여 명연기를 펼쳤다고 하고, 아서 밀러도 리 J 콥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프레드릭 마치가 캐스팅되었습니다. 아내역의 밀드레드 더녹과 둘째 해피역의 카메론 미첼은 무대공연에 이어서 영화에도 그대로 캐스팅되었습니다. 리 J 콥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프레드릭 마치의 열연과 여러 수상을 통해서 미스캐스팅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한 셈입니다. 사실 무대극과 달리 영화에서는 노안배우이긴 하지만 40세밖에 안된 리 J 콥은 그 역을 맡기에는 너무 젊었지요. 대신 리 J 콥 에게는 1966년 TV영화버전으로 만들어진 작품에서 결국 윌리 역을 연기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작품에서도 린다 역은 밀드레드 더녹이 다시 연기했습니다. 이후 1985년 더스틴 호프만 버전으로 TV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워낙 무대극에 최적화된 배경과 스토리인 만큼 극장용 보다는 TV영화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널리 공연된 인기 무대극이기도 한데 저는 우리나라 대학로 대극장 공연때 이순재 버전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감독 라즐로 베네덱이 연출했는데 이 감독은 우리나라에는 말론 브란도 주연의 오토바이 폭주족 영화 '난폭자'의 감독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주로 TV에서 많이 활동했고 극장용 영화는 많이 연출하지 않아서 생소한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958년에 뒤늦게 개봉되었는데 아마도 당시 6.25 전쟁 직후 힘겨운 가장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마음 아파했을 관객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70년대, 80년대,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도 계속 우리나라에 많이 공연된 원작이지만 영화는 58년 개봉된 이후 방영된 기억이 없고, 출시조차 되지 않아서 매우 희귀작이 되었으며 좋은 화질의 영상도 구하기 힘든 작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이제 집 융자금도 다 냈고 35년만에 처음 빚을 다 갚았는데.."
남편의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린다의 안타까운 모습이 아련한 엔딩입니다.
ps2 :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든 먹고사는 문제가 인류의 삶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결국 가족간의 행복과도 직결되고 있지요. 다만 못사는 것을 남탓 세상탓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 똑같은 세상에서 잘사는 누군가도 있으니까요.
ps3 : 프레드릭 마치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아프리카의 여왕'의 험프리 보가트에게 돌아갔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훌륭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50세가 넘도록 아카데미 주연상을 못 수상한 험프리 보가트에 대한 전관예우라고 생각합니다. 프레드릭 마치는 이미 주연상을 수상한 배우였고, '젊은이의 양지'의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말론 브란도가 험프리 보가트보다 더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지만 햇병아리 배우였기 때문에 험프리 보가트가 행운을 받은 것이라고 봅니다. 험프리 보가트는 오히려 '말타의 매' '시에라마드레의 황금' 케인호의 반란' 등의 영화에서의 연기가 아카데미상에 걸맞았다고 생각합니다.
ps4 : 100세 시대인 지금은 도대체 몇 살까지 밥벌이를 해야 할까요?
ps5 : 에드워드 G 로빈슨이나 70년대의 잭 레몬이 윌리 역할을 했어도 참 잘했을 것 같습니다.
[출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51년) 무너진 가장의 비극|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