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업(The Set-Up, 49년) 복싱영화의 수작. 출연 : 로버트 라이언, 오드리 토터, 조지 토비아스 알란 백스터, 월리스 포드

[아스팔트정글]

                                                                                             셋업

원제 : The Set-Up

1949년 미국영화

감독 : 로버트 와이즈

출연 : 로버트 라이언, 오드리 토터, 조지 토비아스

알란 백스터, 월리스 포드, 퍼시 헬튼

할 베일러, 제임스 에드워즈

로버트 라이언, 호리호리하고 엄청난 장신에 마른 얼굴, 삶의 굴곡을 보여주는 깊게 패인 주름, 거칠지만 따뜻함도 있는 인상, 40년대부터 60년대에 활약한 할리우드의 수많은 배우 중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톱스타는 아니었을지언정 그만의 개성있고 강한 연기로 꾸준히 비중있는 역할을 한 배우였습니다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저명한 감독의 여러 유명한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존 스터지스의 '무법지대' 로버트 알드리치의 '특공대작전' '프로페셔날' 니콜라스 레이의 '왕중왕' 전쟁영화 대작인 '사상최대의 작전'과 '발지 대전투' 구슬픈듯한 음악이 유명한 서부극 '자랑스런 사나이' 등이 국내에 개봉된 그의 유명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미개봉작 중에서 수작은 더 많았습니다. 반 헤플린을 집요하게 쫓는 킬러를 인상깊게 연기한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폭력행위' 나 살인사건과 퇴역군인들의 범죄물에서 악당 역이 인상적이던 에드워드 드미트릭의 '십자포화' 역시 필름느와르 영화인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어둠속에서' 그리고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안소니 만 감독의 '낙동강 고지 최후의 고지전' 등이 수작으로 꼽히는 그의 작품들입니다.  뭐 대략 꼽아도 걸출한 작품들이 꽤 많은 배우입니다.

그런데 이 배우가 출연한 모든 영화중에서 IMDB 평점이 가장 높은 영화는 바로 1949년에 출연한 '셋업' 이라는 작품입니다.  IMDB 평점 7.9 점으로 로버트 라이언 출연작 중에서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와 함께 공동 1등입니다.  레너드 말틴의 무비 가이드 평점 역시 별 세개 반(네개 만점)으로 아주 우수한 점수이고, 1949년 제 3회 칸 영화제에서 2개 부문의 수상을 했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거장 로버트 와이즈가 연출한 작품이며 링지 선정 10대 복싱영화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와일드 번치'나 '사상 최대의 작전' 등 평점이 높은 로버트 라이언 출연작이 '조연출연'인데 비해서 '셋업'은 단독 주연 출연작입니다.  즉 로버트 라이언의 최고의 작품은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영화였습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오래전부터 꽤 궁금했던 영화가 바로 '셋업' 이었습니다.

경기조작을 논의하는 양측 매니저​

경기를 앞두고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스토커, 선수가 아니라 환자같은 모습​

복서인 연인의 건강을 걱정하는 줄리

35살의 퇴물복서가 23세의 젊은 선수를 상대하는 상황​

복싱경기하러 가는데 마치 회사에 출근하듯

양복에 넥타이를 맨 모습이 흥미롭다.

40년대에는 복장이 양복밖에 없었는지.

복싱영화입니다.  복싱영화는 흔히 '록키 시리즈'와 '성난 황소'가 쉽게 떠오르는 장르 수작이지만, 그 외에도 '상처뿐인 영광'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챔피언'  안소니 퀸 주연의 '헤비급 복서를 위한 진혼곡'  마틴 리트의 '위대한 백인의 희망(개봉제 복서)' 험프리 보가트의 유작인 '황금의 갈채' 등 수작 고전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셋업' 역시 그들 영화들에 견주어서 손색이 업는 수작입니다.

하룻밤의 잠깐 동안에 벌어지는 어느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러닝타임이 73분에 불과한 영화지만 영화속 시간과 상영시간이 거의 비슷합니다.  어느날 밤에 벌어진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실제 촬영일수는 20일 걸렸다고 합니다.) 

35살된 퇴물 복서 스토커(로버트 라이언), 20년간 복서로 활동한 그는 23세의 젊은 복서 타이거 넬슨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연인인 줄리(오드리 토터)는 스토커가 복싱을 그만 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스토커는 이날 경기를 승리로 이끌고 더 도약하겠다는 미련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타이거 넬슨은 리틀 보이라고 불리우는 악당 도박사가 키우는 신예입니다. 리틀 보이는 스토커의 매니저에게 50달러를 건네주고 일부러 져주는 경기를 해달라고 거래를 합니다. 스토커의 악덕 매니저 티니는 굳이 스토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가 넬슨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나누기 싫어서 거래 사실을 비밀로 합니다.  이런 음모를 모른 채 링위에 올라선 스토커, 젊은 넬슨을 맞아서 그의 공세를 정신력으로 견디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명승부를 펼칩니다. 스토커가 의외로 선전하자 매니저인 티니는 당황하는데..... ​

차마 스토커의 경기를 볼 수 없어 경기장에

못 들어간 줄리에게 치한이 들러붙는다.​

비좁은 라커룸에서 대기하는 선수들의 모습과

애환을 잘 보여준 작품

30대 중반, 복서로서는 퇴물이 된 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를 펼치는 장면을 감동스럽게 보여주고 있는데 악덕 매니저를 만나서 눈물겨운 투혼에도 불구하고 험한 일을 겪는 안타까운 내용입니다.  옛날 복싱 경기는 도박사나 갱들이 뒤에서 조종하면서 짜고 하는 승부조작 경기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런 마수에 걸린 주인공의 수난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런 소재의 영화로는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황금의 갈채'가 대표적입니다.  자기 선수를 돈에 팔아먹고 지는 경기를 조작하는 것도 악덕이지만 돈을 나누기조차 싫어서 조작거래를 비밀로 하는,  정말 천하의 악덕 매니저를 만난 스토커라는 선수의 눈물겨운 분투기입니다.  복싱 영화중 가장 길고 리얼한 파이트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3분 4라운드 12분간의 경기를 완전 풀타임으로 보여줄 만큼 경기장면이 깁니다. 역대 복싱영화 중 실제 경기시간 보다 길게 경기장면을 보여준 경우는 전무후무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로버트 라이언의 복서연기가 참으로 리얼했습니다.

복싱 장면에 대한 리얼함도 매우 뛰어나지만 좁은 대기실에서 경기에 참여하는 각 선수들의 심리와 상황을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뷔전을 앞두고 긴장해 있는 신인선수, 현 미들급 챔피언을 우상처럼 동경하며 그렇게 되기를 열망하는 선수, 성경책을 갖고 다니며 의지하는 선수, K.O승을 거두고 돌아와 떠벌이는 선수, 유망주로 뻗어나가고 있는 흑인선수 등의 모습이 보여지며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스토커는 베테랑 답게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라커룸에서 묵묵히 대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

일생 일대의 명연기를 보여준 로버트 라이언​

로버트 라이언과 상대배우 모두 실제 복서 출신이라

엄청난 명경기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1940년대, 거대한 메인대회가 아닌 지역대회인 점을 감안해도 굉장히 열악한 라커룸이 당시의 빈약한 환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0평 남짓해 보이는 비좁은 공간에 여러 선수들이 함께 대기하고 있고, 그런 환경에서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는 지역 4라운드 무명 복서들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싱, 프로레슬링, 메이저리그 야구가 인기가 높은 미국 스포츠의 특징도 잘 보여주고 있고 복싱 경기장에 와서 라디오로 야구 경기를 함께 듣는 관중의 모습도 비추어집니다.

1940년대가 지금보다 복장이 매우 보수적인 시대라는 것을 감안해도 스토커가 경기를 하러 체육관으로 가면서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가는 것이 아이러니했습니다. 요즘은 평소에도 양복을 출근할 때 아니면 잘 안입는데 경기를 하러 가는 선수가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가다니요. 

복서인 연인을 걱정하는 줄리 라는 여성의 심리도 잘 나타났는데 스토커가 전해준 티켓을 쥐고 경기장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줄리가 경기를 보러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노심초사하는 스토커의 모습, 경기장에 들어서서도 줄리가 앉아있어야 할 자리를 계속 바라보는 스토커의 모습등이 사랑하는 연인간의 감정표현이 잘 된 장면입니다.  아주 짧은 영화이며 긴 복싱 경기 장면이 나오는 영화지만 짧은 시간동안 여러가지 다양한 심리를 보며준 수작입니다.   ​

복싱영화 중 가장 리얼하고 긴 경기장면이

나온 영화​

조작경기의 희생양이 되는 스토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은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졌지만 60년대에 등장한 두 영화보다 훨씬 이전인 40년대부터 이미 명감독으로서의 싹수가 보이던 인물입니다.  1945년 연출한 '신체강탈자'는 발 루튼 제작 호러영화중 최고 수작으로 꼽히고 있고, 1951년에 연출한 '지구가 멈추는 날' 역시 고전 SF의 수작으로 꼽힙니다.  1956년작 '상처뿐인 영광'은 '셋업' 이어서 연출한 복싱소재 영화 수작입니다. 이미 40-50년대에 여러 편의 볼만한 작품들을 연출했는데 '셋업'은 40년대 성행해던 필름 느와르 장르이며 복싱소재 영화로서 짧은 시간임에도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한 영화입니다.  특히 너무 애틋한 결말이 인상적이며 거의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칸 영화제 수상을 통해서 로버트 와이즈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지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로 미개봉작이면서 방영, 출시 등도 되지 않아서 일반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작품이지만 로버트 라이언이 일생일대의 열연을 했고, 거장 로버트 와이즈의 40년대 숨겨진 수작입니다.  특히 복싱 영화중에 손꼽힐 명작입니다. 제목 'The Set-up' 의 의미는 사전에 승패를 정해놓은 조작경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조작경기의 희생양이 되는 처절한 주인공을 연기한 로버트 라이언의 배우로서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ps1 :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돈을 버는 것이 투기 종목 선수인데 그런 선수를 뒤에서 악용하고 뒷돈거래를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정말 악덕 인간들이지요.  우리나라에도 매니저나 프로모터를 잘 못 만나서 피어나지 못한 선수들이 많이 있었지요.  특히 세계챔피언까지 지냈음에도 자산관리를 잘 못해서 힘든 삶을 살아간 안타까운 선수들도 있고.

ps2 : 신문을 파는 사람의 모습, 우리나라에도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직업이지요.  오래전에는 지하철 역마다 신문을 파는 사람들이 중요 기사를 외치며 다녔었는데.

ps3 : 복싱경기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조작경기 때문에 걸려서 징계를 받은 선수들이 있었죠.  최근에 UFC에 진출한 격투기 선수중에도 그런 사건이 있었고.  경기조작은 스포츠계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악행입니다.

ps4 : 로버트 라이언이 35세 퇴물 복서로 등장하는데 실제 나이는 40세 였습니다. 그 나이에 이렇게 격렬한 장면을 오래 연기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키가 크긴 하지만 헤비급 복서로 나오기엔 좀 마른 체형인데 요즘 같으면 그정도 체중(200파운드가 안되는) 이라면 감량해서 라이트 헤비급으로 경기할 것입니다. (나중에 86kg 이하인 크루저급이 신설되었는데, 크루저급 선수들도 평소 체중은 90kg 중반이 넘지요) 당시만해도 헤비급 선수의 체격이 요즘보다 매우 작았고, 로버트 라이언은 실제 대학시절 복싱 챔피언 경력이 있었습니다.  선수로서의 경력이 40세의 나이에도 리얼한 장면을 무리없이 소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상대선수로 나온 할 베일러 역시 아마츄어 전적 52승 5패, 프로전적 15승 8패의 전문 복서였습니다.  괜히 명장면이 나온게 아니죠.

ps5 :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이 영화의 엄청난 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난 황소'의 연출때에 상당히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ps6 : 영화속 시간과 실제 상영시간이 비슷한 영화의 최초의 영화라고 IMDB에 나와 있는데 오류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롱테이크 영화 '로프'가 1년 빨랐습니다.  그 이후 '하이눈' 비포 선셋' 같은 영화들이 있었죠.

[출처] 셋업(The Set-Up, 49년) 복싱영화의 수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