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한들한 음색은 사라지고, 거칠고 묵직한 김추자로 돌아왔다.
김추자(63)가 34년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 ‘It’s Not Too Late’를 미리 들어보니,
18세에 데뷔해 24세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그녀와는 매우 다른 허스키 가수로 바뀌어 있었다.
어떤 곡에서는 한영애가 떠올랐고, 또 다른 노래에선 전인권마저 연상됐다.
신중현 미발표곡 3곡을 비롯해 9곡이 실린 이 앨범은 다음 달 발매된다.
앨범 가장 파격적인 노래 ‘태양의 빛’… 신중현 미발표곡
신중현이 1980년대 쓴 미발표곡 ‘몰라주고 말았어’는 돌아온 김추자를 상징하는 곡으로 손색없다.
. “사라질까봐으/ 떠나갈까봐으” 하고 내던지는 창법도 무척 잘 어울린다.
역시 신중현 미발표곡인 ‘내 곁에 있듯이’는 과거의 김추자와 가장 흡사한 노래다.
정원영의 키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과 올드팝의 주법을 교차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한상원 기타는 사운드를 드럼통에 부어 바늘구멍으로 빼내는 듯하다.
김추자 1집에 실렸던 ‘가버린 사람아’는 원곡보다 키(key)를 3개나 낮췄다.
그 덕분에 어려서 창(唱)을 배웠던 김추자의 음색이 질펀하게 흘러 넘친다.
원곡보다 훨씬 금속성이 강조된 베이스와 “가버린 사람마으아” 하는 창법 때문에
매우 마초적으로 들린다.
신중현은 이 곡을 으스스한 기타 솔로로 마무리했으나, 김추자는 “가버렸네/ 가버렸어/ 가버렸다”
하고 없던 가사를 부르며 하드록으로 끝낸다.
앨범에서 가장 파격적인 노래는 ‘태양의 빛’이다.
신중현 미발표곡인 이 노래에서 김추자의 꾸미는 창법이 가장 강조돼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다.
간주에서 흐느끼는 듯했던 김추자는 마지막 1분에서 말 그대로 대성통곡하는 연출을 들려준다.
신중현의 평가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 이 밖에 이봉조 곡 리메이크 2곡과 김희갑 곡 리메이크 1곡, 정혜정이 쓴 ‘춘천의 하늘’이 실렸다.
한편 이날 회견에서 김추자는 무대를 떠난 것에 대해
“연예계 생활 당시 ‘간첩이다’, ‘CIA다’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는 노래하기가 싫었다”
고 말했다.
이것은 1971년 그녀가 ‘거짓말이야’를 부르며 췄던 춤 가운데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손동작이 난데 없이 “북한과의 수신호”라며 불거진 간첩설(說)을 가리킨다.
-
-
-
- '님은 먼 곳에' 등 히트곡을 남긴 1970년대 '섹시가수' 감추자.
‘거짓말이야’라는 노래 제목 자체가 유신 정권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했다.
김추자는 2007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음악이 주어지면 그때마다 동작이 저절로 나와 거기에 맞추거든요. 그 뿐이죠.
그런데 그 무렵 청와대 비서실에서 저더러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결국 안 들어갔거든요.
왜 오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청와대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괘씸죄’를 샀고 간첩으로 몰리게 됐다는 뉘앙스였다.
그녀는 “팍팍 올라가던 저를 꺾어놓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복합적인 이유로 저를 매장시키려 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했다.이미 스무살 때 전성기…
김세레나와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고 매니저가 소주병 휘둘러 100바늘 넘게 꿰매그녀 나이 스무살이던 1971년은 말 그대로 최전성기였다.
그 해 김추자는 여러가지 사건에 휘말렸다. 부산 합동 공연 때 피날레를 누가 할 것인지를 놓고
김세레나와 자존심 대결을 하다가 공연장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그녀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사라진 게 아니고 공연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에요.
부산 리사이틀은 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연이었습니다.
당시 포스터를 보면 제가 제일 크게 나와있고 다른 사람들은 게스트 형식으로 참가했어요.
당연히 제가 피날레 가수가 돼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해도 안 되기에 그런 거죠.”그녀는 이 일로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로부터 ‘가수자격 3개월 정지’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자격정지의 이유는 김세레나씨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워 가수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것인데
그건 완전한 오보였죠.
홧김에 제 화장품 박스를 걷어찬 게 전부예요.” 김추자의 해명이다.
그해 12월에는 전 매니저가 깨진 소주병을 김추자에게 휘둘러 100바늘 넘게
꿰매는 사건이 벌어졌다
. 성형수술을 6번이나 해야 할 만큼 얼굴이 망가졌다.
김추자는 그 사건에 대해 역시 신동아 인터뷰에서
“갑자기 그 사람이 저보고 결혼을 해달라고 했고 그걸 거절했더니 그 난리가 난 것”이라며
“그 사람은 해병대 출신에 레슬링 국가대표를 지냈는데 당시엔 조직폭력배가
분장실에 마구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여서 보디가드 겸 매니저로 썼는데 어이없게 된 것”
이라고 말했다.1980년 5집 앨범을 발표하고 그 이듬해 박경수 동아대 교수와 결혼한 뒤
음악 활동을 중단했던 김추자는 지난 2000년 컴백을 발표했었다.
당시 연습실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까지 했으나 미국 공연만 한 뒤 다시 활동을 멈췄다.
그녀는 6월 28·29일 서울 코엑스홀에서 복귀 무대에 오르고, 7월 6일엔
고향인 춘천에서 공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