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
― 문태준(文泰俊·1970∼ )
볕에 널어두었던 고추를 걷고 양철로 덮었는데
밤이 되니 이슬이 졌다 방충망으로는 여치와 풀벌레가
딱 붙어서 문설주처럼 꿈적대지 않는다
가을이 오는가, 삽짝까지 심어둔 옥수숫대엔 그림자가 깊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옥수수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
가을이 오는가, 감나무는 감을 달고 이파리 까칠하다
나무에게도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 일 그런 성싶다.
지게가 집 쪽으로 받쳐 있으면 집을 떼메고 간다기에
달 점점 차가워지는 밤 지게를 산 쪽으로 받친다
이름은 모르나 귀익은 산새소리 알은 채 별처럼 시끄럽다 (부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시인의 집에 여장을 풀고 이틀 밤을 묶고 왔네요. 선풍기를 세 대나 돌려도 처서가 지난 된더위는 사그라지지 않았지요. 기타를 마음껏 칠 수 없는 시대의 주거 형태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맑은 물을 앞에 놓고 지난 시절 밤낮으로 불렀던 노래 몇 곡은 그래도 위안이 되었네요. 이튿날 본격적인 투어 일정에 따라 서해안 간척지 등 몇 곳을 둘러봤습니다. 안면도로 향하는 길목에서는 남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내가 10∼15세, 사춘기를 맞았던 집터에 이르렀을 때 심장은 고동쳤습니다. 아버지가 손수 심었던 뒤꼍의 소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랐고 집 밖 변소에 가는 길은 지금도 여전했습니다. 고행(苦行)의 길이었지요. 문명의 이기가 없던 시절 나는 완전히 기어서만 뒷간엘 다닐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남이 볼세라 낮엔 가지 못하고 어둠이 내려야만 갔던 그 시절! 정 견딜 수 없을 때는 기어가다 누군가가 지나가면 멈춰 예수님처럼 길에 뭣인가 쓰는 척했던 그 시절이 전신을 에워쌌지요. 아련했습니다. 창터 입구 이모네 집에서 이모님까지 모시고 고남 외가에 다녔던 길! 뒷좌석에 어머니는 안 계셨습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