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기 전에 절대로 알 수 없다!
저는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에서 친구 피터와 연구실도 같이 쓰고, 밥도 같이 먹으러 가고, 자는 시간 빼고는 항상 붙어 다녔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연구실에 앉아서 잠깐 동안 수다를 떨었습니다. 저는 피터에게 매일 물었습니다. “오늘 낮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어. 그럴 때 좋은 표현이 뭐야?” 피터는 저에게 상황에 맞는 표현을 몇 가지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열심히 연습해서 그 표현을 써먹곤 했습니다. 이때, 피터로부터 가장 먼저 배운 표현이 “우리는 해보기 전에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피터는 "이 표현이 미국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 도전한다!"라고 결심하고 아내를 꼬드겼습니다. “우리, 추수감사절 방학에 보스턴에 다녀올까?” 아내의 사촌이 MIT에서 공부하니, 얼굴도 보고 그 집에서 묵자고 했으나, 저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 가서 윌슨 교수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윌슨 교수께 편지를 썼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이런 사람인데 만나주시겠습니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피터에게 괜찮은지 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피터는, "윌슨은 우리 같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다"라면서, 저에게 제정신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네가 맨날 나에게 ‘우리는 해보기 전에 절대 알 수 없다.’고 말했잖니?” 저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답장이 왔습니다. 그 답장을 들고 피터에게 달려가자, 그는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윌슨 교수님을 만났고, 그 계기로 해서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편지가 제 인생에 어마어마한 전환점을 만들어주었습니다.(최재천)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이 속담이 "우리는 해보기 전에 절대 알 수 없다!"라는 말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전혀 근거가 없는 만용은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보기도 전에 겁을 먹거나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기도부터 해야 하겠지요.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지 용기가 필요하거니와, 기도한 후에 마음의 확신이 생겼다면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주님께서 감당할 힘과 용기를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