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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글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김문홍
류석환의 문학이야기(3)
극적인 구성과 객관적 상관물
김문홍의 『저, 여기 있어요』를 읽고
Ⅰ. 이야기 들어가기
김문홍의 『저, 여기 있어요』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극적인 요소이다. 그 다음으로 부각되는 것이 소품처럼 쓰이는 객관적 상관물이었다.
동화는 서사문학의 한 장르로서 서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서사란 사건이나 사건의 연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인간과 인간이 주어진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서술한다는 것이다. 동화가 구체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순수예술적인 미의 추구에서 벗어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의식을 우위에 두는 양상을 띠게 된다. 동화가 시대와의 관련 아래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점에서 역사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에 수렴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보는 열네 편의 동화는 역사성을 보여주는 작품과 철학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대별할 수가 있다. 그러나 보다 더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소재로 등장하는 대상인물들이다.
그래서 작품의 대상인물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여 정리해 보기로 한다.
첫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틀>, <이틀(2)>, <가로등과 개망초 이야기>, <아버지와 눈길>, <눈 오는 밤>, <눈사람이 된 아버지> 등 6편이다.
둘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선생님이 좋아요>와 <선생님이 좋아요(2)>이다.
셋째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혼자 집에서>와 <봄볕을 따라>이다.
넷째 ‘타인’에 대한 이야기로 <저, 여기 있어요>, <방 한 칸의 꿈>, <영호, 활짝 웃다>, <꿈꾸는 돌멩이> 등 4편이다.
Ⅱ. 이야기 펼치기
1.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6편
가. <이틀> 연작
<이틀>과 <이틀(2)> 등 두 작품은 전쟁으로 인한 아버지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8월 6일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날이다.
-“키리코 아버지가 저 놈 보는 앞에서 딸애를 안아주는 걸 보고 거기서 애비의 정을 그리워하는 게지.”-
개망초 꽃향기를 맡고 계란 생각을 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소년이 일본아이 키리코를 통하여 그 애의 아버지를 좋아한다.
-계란 부침에서는 언제나 아버지의 냄새가 물씬 풍겨서 좋았다. 그래서 개망초 꽃만 보면 자르르 입속에서 군침이 돌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버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참, 정말 그랬지. 피는 못 속인다고 저 놈도 지 애비를 닮아 속엣말을 그냥 두지 못하고 그냥 내뱉더구나.”-
소년이 아버지를 닮아 강직하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순진함이 키리코와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소년과 키리코는 한동안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소년이 들고 있던 개망초 꽃 한 송이를 소녀의 머리에 예쁘게 꽂아 주었다. 키리코도 꽃 한 송이를 꺾어 소년의 귓등에 슬며시 꽂아 주었다.-
-“키리코! 해방이 아니라 독립이야, 독립!”-
-“이제, 너희 조선 땅에 이씨는 건 다 싫단 말이야.”-
-“키리코야, 그리고 영훈아. 전쟁은 우리 어른들이 일으켰으니까 모든 책임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어. 너희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 그러니까 너희들은 다툴 필요가 없는 거야.”-
와타나베 선생님의 말에 소년은 키리코와의 갈등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감정은 어찌하지 못한다.
-“영훈아, 우리 일본은 미워해도 좋지만 키리코는 미워하면 안 돼, 알았지?”-
8월 16일 아침 일본으로 떠나는 소녀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키리코야. 영훈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가 없는 건 아니란다.”-
-“그래, 그건 아버지 말씀이 맞아. 영훈인 여기 이렇게 우리 키리코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거야.”-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까지 거든다. 소년과 키리코의 갈등관계는 표면적으로 여실히 드러나지만 속마음에는 그리움을 남는다.
-“영훈아. 아무리 네 걸음이 빨라도 자동차는 따라 잡을 수 없단다.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결국 아버지로 인해 그리움을 알았고 아버지 때문에 하나의 그리움은 없어졌지만 또 하나의 그리움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시대상의 아픔을 아이들의 그리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 <가로등과 개망초 이야기>
게딱지 같은 판잣집들이 올망졸망 늘어선 가난한 동네에 있는 가로등이 본 이야기이다.
-밥상 위에 원고지를 펼쳐놓고 시를 쓰고 있을 아버지, 그 어깨 너머로 응얼응얼 입속으로 시를 궁글리고 있을 혜림이의 모습이 아른아른 떠오릅니다.-
시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가 쓴 시를 시화를 만들어 육교 위에서 파는 혜림이를 지켜보는 가로등이다.
_“시가 밥을 먹여 주나, 돈을 가져다주나…… 시가 없어도 우린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지.”-
-“흥, 그래도 그냥 구걸하는 것보단 낫구나.”-
-“나야 시는 잘 모르지만 읽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구나. 그럼, 좋은 시 아니겠니?”-
-“아저씨, 시에는 보통 상품처럼 값이 매겨져 있지 않아요. 마음에 느낀 크기만큼만 주시면 됩니다.”-
여기에서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느껴진다. 시인의 가난함은 현실이 시보다 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의 꿈은 사라지지도 않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 꿈이 딸 혜림이의 마음속에서 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시가 밥이 되고 피가 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어 본다.
-“시인의 피가 되고 밥이 되고 희망이 되고 시가 되고 싶다는 개망초의 꿈이 정말 대단하구나.”-
바로 이 꿈이 곧 그 시를 지은 시인의 소망인 것이다.
-“생각하고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 꿈은 이루어지는 거야.”-
다. <아버지와 눈길>
이 작품은 오월 광주사태 때 몰매을 맞아 정신이 이상해진 아버지가 할머니의 임종을 보러오는 이야기이다. ‘눈’을 용서라는 의미의 객관적 상관물로 이용한다.
-쩌그 저 눈 좀 보란께. 눈은 참말로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어야. 미운 것 덮어주고, 보기 싫은 것도 감추고…… 아무 것도 안 보이게 해 참말로 좋아야.-
눈발은 아버지의 울음 소리마저 야금야금 삼켜버린다.
아버지 세대의 역사적 비극을 미학적으로 보여준다.
라. <눈 오는 밤>
눈 오는 밤에 술꾼 아버지를 기다리는 상우가 예수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도 아버지는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우리 식구 얼굴 보기 미안해서 마시고, 집 나간 너희 엄마 미워서 마시고, 또 세상에 화가 나서 마시는 게지.-
이런 할머니의 말에 상우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길바닥에 쓰러진 아버지에게 윗옷을 벗어 덮어주는 아저씨 머리 위의 가시 면류관을 보고 예수임을 안다. 상우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아버지에게 예수님이 안 보이냐고 묻는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오히려 상우가 배를 곯아 눈에 헛것이 보인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함박눈을 사랑이라는 의미의 객관적 상관물로 이용하고 있다.
아저씨는 골목에서 넝마 같은 바지를 벗어 떨고 있는 아이에게 손수 입혀준다. 아이는 귀신이라도 만난 듯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간다.
-아버지! 세상엔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분명 존재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세상에 분풀이하기 겁나니까 술이나 먹고 자식에게 분풀이한다고 하자 아버지가 잘못 했다고 한다.
-눈발은 세상 모든 부끄러움을 덮을 모양이다. 아버지의 화난 마음도, 할머니의 기침소리까지도. 함박눈은 밤 내내 이어질 모양이다.-
눈이 세상을 덮듯이 인간들의 삶이 행복으로 채워질 날을 기대해 본다.
마. <눈사람이 된 아버지>
소도둑을 잡으려다 살인을 한 아버지가 십 년만에 돌아오는데 마중 나간 소년이 폭설로 늦어져 만나지를 못한다. 폭설로 버스마저 끊겨 집까지 아저씨와 소년이 눈길을 간다. 벌써 복선이 드러난다. 소년도 아저씨가 낯이 익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감나무골까지 시오리 길을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눈싸움까지 한다.
소년에 집에 도착하자 아저씨는 할머니께 문안 인사나 드리고 가야한다면 마당으로 들어선다. 아저씨는 섬돌 밑에 무릎을 꿇고 앉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비명을 지른다.
-아범아, 인제 왔구나!
종구 아버지!-
어느 새 눈사람이 된 아버지를 소년이 부등켜 안으며 ‘아버지!’라고 소리친다.
첫 장면에서부터 결말이 예견되어져 감동의 폭과 깊이가 줄어들어 못내 아쉽다.
2.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2편
가. <선생님이 좋아요> 연작
<선생님이 좋아요>와 <선생님이 좋아요(2>는 오늘날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오십이 넘은 조우신 선생님이야기이다.
-희망초등학교 아이들치고 조우신 선생님을 모르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 다른 나이 많은 선생님들은 영어 발음이 어렵다고, 또는 컴퓨터를 잘 모른다고, 머리가 희끗희끗해 어머니들이 싫어한다고 명예퇴임으로 학교를 떠났지만 조우신 선생님은 달랐다.-
조우신 선생님은 영어발음도 정확하고 인터넷에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다른 선생님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하고, 청소도 혼자 하고, 아이들을 꼭 안아주며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고, 책을 열심히 읽는다. 연기력도 배우처럼 대단하고, 소녀가장의 급식비도 대주고, 무용도 직접 연습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일을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지각은커녕 결근도 한 번 안하는데 어버이날 결근을 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님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결근했는데 조우신 선생님은 심한 감기에 걸렸다며 마스크까지 하고 다음 날 출근한다.
<선생님이 좋아요(2)>에서는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첫째 일화는 ‘즐거운 생활’ 과목의 연구 수업 날의 이야기이다. 조우신 선생님이 스스로 연구 수업을 하겠다고 하자 교장 선생님이 젊은 선생님에게 맡기면 된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 자꾸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뒤로 밀려나는 건 싫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수업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수업은 개구쟁이들 때문에 아이들이 뒤죽박죽 섞이며 공을 마구 차기 시작한다. 참관하던 선생님들과 어머니들이 걱정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공에 정신이 빼앗겨 막무가내로 뛰어다닌다.
-한동안 호루라기를 불어대던 조우신 선생님이 갑자기 멈추어 섰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지가랑이를 접어올린 조우신 선생님을 어느새 아이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공을 차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도 웃옷을 벗어제끼고 같이 공을 찬다.
-조우신 선생님의 손에는 항상 교과서가 들려져 있었다. 퇴근할 때도 지하철 전동차의 좌석에 앉기가 무섭게 교과서를 펼쳐들고 공부할 내용을 꼼꼼하게 챙기곤 했다.-
둘째 일화는 바른생활 시간 때 영규가 아버지의 발을 씻어드린 느낌을 발표한 이야기이다. 술에 취해 영규를 데리러 온 영규 아버지가 영규의 발표를 듣고 잘못을 뉘우친다.
셋째 일화는 연극하는 날의 이야기이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낸는 상규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 조우신 선생님이 상규를 역할을 맡는다.
-갑자기 텔레비전 안에서 한 아저씨가 튀어 나온다. 그 아저씨는 갑자기 상규의 머리 위에다 텔레비전을 씌운다. 상규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텔레비전을 벗겨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소용이 없다.-
아이들이 달려들어 텔레비전을 벗겨내자 조우신 선생님을 교실 바닥에 벌렁 드러우며 텔레비전 귀신한테 홀렸다고 고함을 친다.
넷째 일화는 어린이날 조우신 선생님이 어린이들을 왕으로 모시는 이야기이다. 복도를 뛰는 아이, 싸우는 아이, 수학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아이 등을 왕으로 모시는 이야기이다.
조우신 선생님은 가장 일찍 학교에 나왔다가 가장 늦게 집으로 돌아가시는 좋으신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이상을 그려내고 있는데 성적 위주인 현실의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선생님의 이상이 마냥 존경 받을지 의문이 간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작품을 통해 오늘의 교육현실이 점수따기로 몰락하고 있다는 암시를 준다. ‘역효과의 법칙’이 여실히 드러난다.
3. ‘가족’에 대한 이야기 2편
가. <혼자 집에서>
토요일 오후 혼자 집을 지키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소원대로 혼자 집을 지킨다.
-“우리 식구 말고는 절대 문 열어줘선 안 된다. 경비원아저씨나 앞집 아저씨가 문을 두드려도 열어줘선 안 돼.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야.”-
자장면과 탕수육을 배달 온 아저씨마저 문을 열어주지 않고 돌려보낸다. 우리 가족 말고는 믿을 수 없다는 무서운 세상인데 광호인들 어쩌겠는가.
인터폰이 울리며 아파트 복도 계단에 독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광호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고 소름이 돋는다. 그렇잖아도 무서움과 외로움이 밀려든 광호는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는다.
다시 인터콤이 울리며 화면에 낯익은 경비아저씨의 얼굴이 나타난다.
-낯이 익어도 문을 열어주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말을 빌린다면, 문을 여는 순간 아저씨의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광호는 놀라 수화기를 든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걱정이 되어 전화하는 낯익은 목소리를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로 착각하고, 전화선이 독사로 변하고, 세탁기가 혼자 돌아간다.
-나는 저녁을 먹은 둥 마는 둥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잠이 들었다. 세탁기가 흥얼흥얼대는 소리, 복도 쪽에서 들려오는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 이따금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그 사이 사이로 가끔 끼어드는 천둥소리가 잠결에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뒤부터 나는 혼자 집을 지키는 것을 싫어했다. 타율적인 간섭과 지시에서 벗어났다고 기뻐하며 어쩔 줄 모르게 뒹굴던 내가, 언제 이렇게 구속과 통제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진정 가족들로부터의 구속과 통제를 좋아한다.-
현실의 삭막함과 각박함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결국 광호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어른들의 보호망 속으로 들어간다. 이상이 현실 속으로 추락한다. 어린이의 세계가 어른들의 눈높이로 보호 받지 않고 당당하게 어린이답게 펼쳐지기를 갈망한다.
나. <봄볕을 따라>
이 작품은 ‘세한도’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구성의 복선으로 삼아 수빈이의 외할머니 댁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아흔을 바라보는 외할머니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수빈이 가족이 외할머니 댁으로 간다. 가족들 중에 둘째 외삼촌만 오지 않았다.
IMF 때 사업이 부도나 가출한 이후로 소식이 없는 문수 외삼촌을 기다리며 외할머니가 잘잘못을 상기한다.
-얘들아. 그때, 그때 내가 무수에게 한 짓이 잘못이었냐? 아무리 사업이 중요하고, 먹고 살기가 중해도…… 조상님들이 대대로 지켜온 이 땅보다 중하기야 하겠느냐 말이다.-
여기서 가족이란 한 핏줄이므로 서로 도와야 하고 위로해야 한다고 한다. 가족 모두가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마음속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외할머니가 문을 열어 보라고 한다. 벚나무 아래 문수 외삼촌이 무릎을 꿇고 있다. 모든 가족들이 둘째 외삼촌을 둘러싸고 활짝 웃는다.
이제 세한도에도 봄볕이 들 것만 같는데 외할머니는 조용히 두 눈을 감은 채 누워 계신다.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가족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한다.
4. ‘타인’에 대한 이야기 4편
가. <저, 여기 있어요>
숲 속 나라의 음악회에 참석하는 점박이 너구리가 나비넥타이가 없어 참석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너구리는 음악회에 참석하게 된다.
-어, 이상하네? 나비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데…… 오늘은 웬 일로 날 통과시켜 주는 거지?-
점박이 너구리는 시 낭송을 마치고 박수를 받는다. 음악회를 마치고 다람쥐 임금님이 기념을 나누어 준다. 그런데 노랑나비 아가씨를 부르는데 점박이 너구리의 목에서 날아오른다. 지금까지 너구리의 목에 나비넥타이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가장 보람스런 일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받기보다는 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 이것이 바로 자비요 사랑이다.
나. <방 한 칸의 꿈>
60평 아파트에서 단칸 3평짜리 슬레이트 집으로 이사온 4식구는 새우잠을 잔다. 나와 누나는 눈발을 받으며 어머니를 마중나간다. 집으로 오다가 애기가 나오려고 하는 젊은 여자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여자는 아들을 낳는다.
-누나. 그걸 축복이라고 하는 거야. 아기가 이 세상에 툭 떨어진 것도, 그 생명을 우리가 마중한 것도…… 이 모두가 축복이야.-
아침이 되자 여자와 아기가 없어졌다. 어느 누구도 그 이상한 일을 입 밖에도 내지 않는다. 눈발만 사브작 사브작 내리고 있다. 생명의 의미를 가진 객관적 상관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도움이 진정한 사랑이다. 대가나 보답을 바라는 도움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이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 <영호, 활짝 웃다>
평화초등학교에서 유명한 영호를 아이들이 무서워하게 된 것은 지난 겨울 문방구 사건 때문이다. 불량식품을 팔다가 영호에게 들킨 문방구 아주머니가 영호의 따짐에 다시는 불량식품을 팔지 않게 되었다. 이 소문이 있고 나서 아이들이 영호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복도를 뛴다던지, 휴지를 버린다던지, 하급생을 괴롭힌다던지, 군것질을 하는 일은 영호 앞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야외학습을 다녀올 때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여중학생들을 통쾌하게 내쫓아 버렸다.
영호는 아픈 할머니와 동생과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술주정에 가출하고 실직상태인 아버지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힘들고 지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학교를 위해 봉사하는 영호…… 따뜻한 아랫목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그럼 뭔가?-
가진 자의 베풂은 과시욕이요 우월감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왜냐하면 베풂의 양이 가진 것의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못 가진 자의 베풂이 진정한 나눔이요 사랑이다.
라. <꿈꾸는 돌멩이>
철딱서니 없는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돌멩이로 비유한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쓸모가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없어.-
쓸모 있는 일이라고 해보지 못한 돌멩이가 이 말을 듣고 자신의 쓸모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가 쓸모 있는 일이란 꼭 큰일만이 아니라고 하며 금붕어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돌멩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쓸모 있는 일을 하도록 주문을 왼다.
지렁이 한 마리가 땅속에서 기어나와 바싹 말라붙었다. 살려달라는 지렁이를 움직이지 못하는 돌멩이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자 민철이가 발로 차는 바람에 틈이 생긴다. 그 틈으로 지렁이를 들어오자 쓸모 있는 일이 된다.
그래도 다 죽어가는 지렁이를 위해 쓸모 있는 일을 생각한다. 그때 물벼락이 쏟아진다. 금붕어를 비닐봉지에 넣어오던 영철이가 넘어져 쏟아진 물이었다. 살판이 난 지렁이가 땅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비로소 쓸모 있는 일을 한 영철이가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야호! 이 하찮은 돌멩이도 큰일을 하다니……, 나도 쓸모가 있군 그래.-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므로 저마다 쓸모가 있다. 다만 자신의 쓸모를 아직 모르거나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을 뿐이다.
Ⅲ. 이야기 마무리하기
김문홍의 『저, 여기 있어요』를 편의상 대상인물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작품마다 강하게 풍겨지는 것이 극적 서사성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연극의 대본으로 각색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서사성이 극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복선 처리가 너무 드러나 보이는 경향이 짙다. 몇 작품은 첫장면부터 결말이 예측되기도 하여 극적 긴장감이 흐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구성을 하다 보니 개연성이 무리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더러는 복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이미 눈치핸 것을 억지고 끌고가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마치 붕어빵처럼 구성의 틀이 짜여져 있는 느낌이다. 호떡처럼 누르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구성이었으면 더욱 감동적이고 완결성을 보이겠다고 생각된다.
본격적인 환상동화는 소수이지만, 작가의 특이한 기량으로 복선 처리나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작품의 수준을 미학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미학적 요소인 전경와 후경의 조화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창작기법의 귀감이 된다.
한 마디로 재미성보다는 교훈성이 짙은 작품들이다. 재미성은 교훈성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든다. 마치 연극을 하기 위한 무대장치 같은 기능으로 재미성이 느껴진다. 물론 배경이 있어야 연극을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배경은 사건을 드러내고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연극의 소품처럼 사건의 진실이나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객관적 상관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즉 축자적인 의미를 넘어 추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정보매체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서사성이 극적인 만큼 주제의식도 분명한 것이 이 작품의 백미요 동화문학을 넘어 예술의 본질을 뚜렷이 보여주는 전형이다. 수학공식처럼 구성이 너무나 완벽하여 전범의 틀처럼 보여지기까지 한다. 단편 구성에 본보기가 되며 아울러 복선 처리와 객관적 상관물을 이용한 시적 표현방법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맹목적 모방을 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 모방을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품의 수준은 사건의 구성보다 메시지의 전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즉 재미성은 교훈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창작의 목적이 아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동화문학의 수준이 한층 향상되기를 바란다.
첫댓글 선배님의 멋진 평론 잘 읽었습니다. 작가는 비판을 무서워하지 말란 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