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해랑길 56코스(장항도선장 입구 - 와석마을 노인회관)
여 행 일 : ‘24. 7. 13(토)
소 재 지 : 충남 서천군 장항읍 및 마서면 일원
여행코스 : 장항도선장→장항송림산림욕장→솔리천교→옥남1리→백사마을→하소마을→와석마을(거리/시간 : 14.2km, 실제는 15.88km를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56코스를 걷는다. 8개로 이루어진 서천·보령·홍성 구간(56-63코스)의 첫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서천군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진하는 여정이다. 장항 송림산림욕장과 매바위공원이 주요 볼거리로 꼽히는데, 난이도는 별이 2개(전체 5개)로 분류된다.
▼ 들머리는 장항도선장 입구(충남 서천군 장항읍 신창리)
서천-공주고속도로 동서천 IC에서 내려와 29번 국도를 타고 장항방면으로 달리다가 ‘하구둑사거리’에서 68번 지방도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장항읍에 이른다. 서해랑길(서천 56코스) 안내도는 장항도선장 입구, 육교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 ‘장항 도선장’을 출발, 서천의 서쪽 해안을 걸어 ‘송석리(마서면)’까지 가는 14.2km짜리 여정이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길을 산들바람까지 맞아가며 걸을 수 있는 멋진 구간으로, 서해바다의 작은 섬들이 그려내는 예쁜 풍경화는 덤이라 할 수 있다.
▼ 10 : 02. ‘장산로(68번 지방도)’를 따라 서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길가 담벼락은 홍보의 장이다. 타일 벽면을 화선지삼아 금강하굿둑 철새도래지, 춘장대해수욕장, 문헌서원, 희리산자연휴양림 등 ‘서천팔경’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넣었다.
▼ 10 : 12. ‘장항항(長項港)’은 스치듯 지나간다. 1938년 개항하여 장항공단의 배후시설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곳에도 ‘뜬다리부두(浮棧橋)’가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군산항처럼 일제가 농산물 침탈을 목적으로 만든 역사적 시설은 아닌 것 같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 4차선의 ‘장산로’ 왼쪽으로는 철로가 함께 간다. 장항역과 장항항·장항공단을 잇던 철로로 장항역이 새 역사로 이전하면서 열차 운행이 끊겼으나, 철로는 녹이 슨 채로 남아있었다. 열차 운행시간 안내판이나 차단기 등 옛 시설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 10 : 23. 발아래로 천리길을 내달려온 금강이 거센 기세로 서해와 몸을 섞는다. 그 연안에 아담한 공원(안내판은 ‘친수서설’이라고 적었다)이 조성되어 있었다.
▼ 뒤돌아본 ‘장항항’. 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꽤 크다. 이웃한 군산항과 연계하는 ‘군장항 건설사업’이 진행된 결과일 것이다.
▼ 10 : 26. ‘LS메탈(주) 장항공장’ 앞을 지나간다. 우리에게 ‘장항제련소(長項製鍊所)’로 더 익숙한 곳으로, 1936년 일제가 국내의 비철금속(금·은·동 등) 수탈을 위해 세운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 ‘LS메탈(이정표 : 종점 12.5km/ 시점 1.7km)’ 앞에서 도로를 벗어난다. 그리고 샛길인 ‘화송길’로 들어간다.
▼ 10 : 28. ‘LS메탈’ 맞은편에는 ‘후망산(後望山, 90.1m)’이 있다. ‘LS메탈’의 거대한 굴뚝이 올라앉은 ‘전망산’과 마주보는 모양새인데, 그 산등성이에 ‘장암진성(長巖鎭城)’이 들어앉아 있다.
▼ 조선 중종 9년(1514)에 쌓은 진성(鎭城)으로, 성벽은 해발 4∼43m 사이의 산 구릉과 해수면에 임해 석축으로 만들어졌다. 둘레는 640m(동서 190m, 남북 100m). 역사다리꼴에 가까운 형태로 남벽과 북벽에 각각 1개소의 문지가 있단다. 현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 10 : 31. 68번 지방도(장산로)와 다시 만나 횡단보도를 건넌다.
▼ 잠시지만 ‘장산로 101번길’을 따라간다. 담양이나 곡성, 진안의 메타세쿼이아 길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의 풍치를 자랑하는 멋진 구간이다.
▼ 10 : 34. 널찍한 도로를 벗어나 들길(이정표 : 종점 11.9km/ 시점 2.3km)로 들어선다. 갈대가 무성한 습지 사이로 오솔길이 나있다.
▼ 전망산과 후망산 사이는 옛날 해수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게 물길이 막히면서 자연스레 습지로 변했다. 습지 너머 ‘전망산(前望山, 56m)’이 자신도 보아달라며 고개를 내민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인 장항제련소의 거대한 굴뚝과 함께이다.
▼ 10 : 41. 불 꺼진 장항제련소의 굴뚝을 벗 삼아 걷기를 7분. 장항송림산림욕장의 널따란 (제4)주차장에 이른다.
▼ 서천 송림마을의 ‘솔바람 숲’은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5회·6회)이 2년생 묘목을 식재하면서 조성됐다고 한다. 바닷가 모래날림과 바람으로부터 장항농고와 주변 마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단다. 현재 70년생 곰솔(해송) 약 12,000본과 그 아래서 자라고 있는 맥문동 등 초화류가 서해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생태공간을 이룬다. 2019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됐다.
▼ 서천은 왜 ‘9경’을 고집하는 것일까? 다른 지자체들은 다들 ‘팔경’이라며 대표 볼거리 여덟 곳을 뽑는데도 말이다. 서천을 ‘구경’하고 ‘구미’당기는 ‘Good품’을 사가라는 홍보용 멘트인 ‘9경(景)·9미(味)·9품(品)’이라면 몰라도 따로 사용할 경우에는 ‘8경’으로 통일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 오랜만에 서해랑길 고유의 제대로 된 이정표(종점 11.4km/ 시점 2.8km)를 만날 수 있었다. 시점 및 종점의 방향과 거리에 더해 근처 주요 기점까지 표시해 놓았다.
▼ 솔숲으로 들어선다. 6만평에 가까운 숲은 어른의 허리통만큼이나 굵직굵직한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다. 5km쯤 된다는 산책로는 그런 숲속을 사통팔달로 헤집는다. 마음 내키는 길을 골라잡아 반대편으로 가면 된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면 소나무의 피톤치드와 서해의 선선한 바람과 아름다움이 함께 느껴지며 심신은 저절로 힐링이 된다. 때라도 잘 맞추면 맥문동의 보랏빛 향기에 젖어볼 수도 있다나?
▼ 10 : 49. 장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장항 스카이워크’. 높이 15미터의 공중 산책로인 스카이워크는 서천의 펄과 바다와 녹음을 한데 아우르는 전망대다. 드넓게 펼쳐지는 서해바다와 서천갯벌 풍광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발아래에 울창한 송림 숲이 있어 힐링을 선사한다. 또한 백제와 일본, 신라와 당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벌인 동북아시아 최초의 국제전 역사 탐방도 겸할 수 있다.
▼ 스카이워크는 15m 높이의 아찔한 하늘길이다. 피톤치드 가득한 소나무 숲을 발아래에 두고 걷는다. 시선은 서천 바다의 멋진 풍경을 마주하면서 말이다.
▼ 하늘 길의 끄트머리에 이를 즈음 ‘기벌포 해전 전망대’라고 적힌 표지판과 맞닥뜨린다. 기벌포는 서천 남서쪽에 걸친 장항읍 일대의 옛 지명으로,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을 수호하던 관문이었다. 백제는 관문인 기벌포를 적군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했고, 결국에는 나라가 망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트린 신라와 당 연합군이 한반도 패권을 두고 반목해 벌인 최후의 해상 전투도 바로 여기서 펼쳐졌다.
▼ 250m 길이 스카이워크의 끝은 ‘전망대’.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가도록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던지 망원경까지 설치해 탐방객들의 조망을 도와준다.
▼ 전망대에 서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금강하구와 서해바다, 그리고 근대 산업중흥을 이끌었던 장항제련소까지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군산시가지와 새만금방조제도 희미하나마 조망할 수 있었다.
▼ 시선을 비틀자 이번에는 작은 섬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유부도와 유자도, 그 오른쪽은 큰대죽섬과 작은대죽섬, 그리고 묵도일 것이다. 그밖에도 꽤 많은 섬들이 서해바다를 마치 돛단배라도 되는 양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 11 : 03. 스카이워크에서 내려서면 이번에는 ‘서천갯벌’이 맞아준다. 멸종위기 철새 17종과 각종 저서동물 181종이 서식하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이다. 그런 점을 인정받아 2021년 전북 고창갯벌 등 3곳의 갯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참고로 ‘서천갯벌’은 ‘개발 대신 보전’을 택해 지켜낸 소중한 자산이다. 매립과 개발이냐, 생태와 보전이냐의 갈림길에서 서천은 생태와 보전을 택했다. 고심 끝에 내린 판단이 옳았음을 유네스코가 증명해 준 셈이다.
▼ 저 갯벌에는 동죽·맛조개·고동·소라·돌게 등 수많은 갯벌 생물이 서식한다고 했다. 조개갈퀴나 호미 등으로 표면을 걷어내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잡을 수 있어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즐거운 여름을 선사해 준단다. 갯벌에서 노닐고 있는 수많은 저 인파가 그 증거라 하겠다.
▼ 바닷가에서 올려다본 스카이워크. 15m나 되는 허공에 매달려 있지만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강화유리처럼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소재로 바닥을 깔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 11 : 06. 길은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소나무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내놓은 산책로는 여간 고운 게 아니다. 보드라운 흙길(맨발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에다 방문객들이 소나무 숲에서 편안한 힐링 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벤치, 정자, 운동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들을 두루 갖추었다.
▼ 장항송림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맥문동’이다. 19만㎡(5만 7500평)의 소나무 숲에 600만 본을 식재,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런 자랑거리를 지자체에서 놓칠 리가 없다. 맥문동에 대한 설명으로도 모자라 권혁춘 시인의 시비까지 세워놓았다. 매년 8월말에서 9월초에는 ‘맥문동축제’도 열린다고 했다.
▼ 송림이 끝나갈 무렵, 잠시지만 해변을 따라 걷기도 한다. 그런데 갯벌을 두부 자르듯이 나눠가며 울타리처럼 쳐놓은 저 목책은 용도가 대체 뭘까?
▼ 솔숲에는 캠핑장도 들어서 있었다. ‘솔바람캠핑장’이라는데 ‘작은 도서관’도 눈에 띈다. 갯벌체험으로도 모자라 독서까지 즐길 수 있다니 이 아니 좋을 손가. 하지만 텐트가 듬성듬성 들어선 것이 입소문은 아직 덜 탄 모양이다.
▼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서천의 갯벌은 멸종위기 철새 17종과 각종 저서동물 181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그래선지 둘레길의 이름까지도 ‘철새 나그네길’이란다.
▼ 11 : 19. 송림을 벗어나 ‘장항산단로’로 내려선다. 바닷가에 걸터앉은 ‘송림 캠프’에서 구수한 파전 냄새로 나그네를 홀리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초반부터 막걸리로 목을 축일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대로를 따라 70m쯤 걷다가 왼쪽으로 난 골목(장항산단로11번길)로 들어선다. 이정표(종점 9.7km/ 시점 4.5km)가 길을 안내해 준다.
▼ 소서(小暑)가 지났다지만 초복(初伏)은 이틀 뒤에나 우리를 찾아온다. 삼복더위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상이변은 삼복보다도 더 높이 수은주를 끌어올렸고, 들녘의 고추는 저렇게 빨갛게 익어간다.
▼ 11 : 24. 마을길을 지나 송림리의 북쪽 해안에 이른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송림리 곶(串)을 가로질러 왔다고 보면 되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솔리천 배수갑문’을 만난다.
▼ 곶(串)의 끄트머리로도 길이 나있었다. 널따란 물양장까지 갖춘 선착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3층의 갯골어울림센터(어민회관인 듯)가 서천군의 개발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 ‘솔리천’이란다. 장항읍 창선리에서 발원해 송림리에서 서해로 합류되는 3.67km 길이의 지방하천이다. 솔리천은 수만 마리의 도요새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금강하구에 위치한 유부도와 함께 도요새 서식의 핵심지역으로 꼽힌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노랑부리백로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 11 : 32. 솔리천 방조제를 지나 옥남1리(‘솔리마을’일 것이다)로 들어섰다. 이어서 마을안길(옥남길)을 따라 북진한다. 참! 이 마을에 ‘장항 국가생태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고 했다. 시골인데도 여러 동의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하나 더. ‘솔리(率里)’는 옛날에 부자가 계속해서 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 이후부터는 마을길과 들길을 번갈아가며 걷는다. 축사와 비닐하우스 등 전형적인 시골풍경이 연이어 펼쳐지는 구간이다.
▼ 녹음방초(綠陰芳草)의 계절. 그 푸름 속에서 빨갛고 노란 칸나가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저런 칸나 꽃밭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넓이도 관상용이라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었다. 구근 채취를 목적으로 재배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칸나의 구근은 지혈·소종·항암·항염에 효능이 있다고 했다. 류마티스관절염·학질·산증·각기·부스럼 등의 치료제로도 쓰인단다.
▼ ‘도깨비 가지’도 연보라 빛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냈다. 청초한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으나, 실제는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식물로 농민들에게는 기피 대상이다.
▼ 저 망고수박 밭은 이번 장마의 피해? 아니면 수확을 끝낸 뒤 남은 이삭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군침이 도는 풍경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따 먹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 이즈음 눈에 들어오는 건물 하나. 태양광 패널을 머리에 이고 있는데, 생김새가 자못 괴이하다.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는 농·어촌체험 관련 시설일지도 모르겠다. 들녘과 바닷가를 함께 끼고 있으니 체험장으로 이만한 곳도 없지 않겠는가.
▼ 11 : 52. 옥남리에서 ‘남전리’로 넘어오자 특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변에 주차장에서나 볼 법한 차량방지턱이 줄줄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 11 : 55. 잠시 후 백사마을로 들어선다. 법정 동리인 ‘남전리(南田里)’를 구성하는 자연부락 중 하나로, 서쪽 바닷가에 모래가 많다고 해서 ‘백사장’ 또는 ‘백사정’ 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 서해랑길에서 약간 빗겨나 있는 바닷가로 나가봤다. ‘백사장(白沙場)’이란 별칭까지 갖고 있다면 그만한 볼거리가 있지 않겠는가. 맞다. 이곳은 고려 말기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백사정(白沙亭, 지금은 터만 남아있단다)이란 정자를 짓고 안빈낙도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하얀 모래밭에 우뚝 솟은 정자’라나?
▼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해안은 하얀 모래 대신 시커먼 갯벌만 가득했다. 옛날 이곳을 찾은 선비들이 바닷가를 거닐며 글을 읽고 시를 지었다고 했는데, 저런 갯벌을 보고 시를 지을만한 흥취가 났을까 싶다.
▼ 대신 갯벌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습지는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했다. 데크 탐방로라도 만든다면 탐방객들을 유치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 백사마을은 해안가와 맞닿은 나지막한 구릉지에 기대듯 들어서 있다. 서해랑길은 마을 뒤 구릉지(이정표 : 종점 6.4km/ 시점 7.8km)를 넘어간다. 바닷가로 길을 내는 게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 12 : 05. 고개를 넘은 서해랑길은 자연스레 바닷가로 향한다. kakaomap는 이곳을 ‘삼바골’로 적고 있었다. 농경지로 개간된 골짜기라고 보면 되겠다.
▼ 12 : 12. 그렇다고 무작정 진행해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중간에 논두렁을 이용해 맞은편 산자락으로 들어붙어야하니까 말이다(해안길을 따로 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표지기(리본)을 잘 찾아가며 진행할 일이다.
▼ ‘앞장불산’의 능선은 임도를 따라 넘는다. 울창한 숲속으로 길이 나있어 오늘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에 제격인 구간이다.
▼ 12 : 21. 능선을 넘으면 ‘신창동(新艙洞)’이다. 법정 동리인 월포리(月浦里)를 구성하는 자연부락 중 하나로 선창가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란다. 그래선지 바닷가를 따라 수산업체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 월포선착장으로 내려서서 해안길을 따라 북진한다.
▼ 이즈음 매바위공원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들쑥날쑥 하는 것이 리아스식 해안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 12 : 27 – 12 : 49. 하릴없는 배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물양장(이정표 : 종점 5.1km/ 시점 9.1km)’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정자의 그늘에다 바다에서 냉장고 바람까지 불어오니 이만한 쉼터가 없었다. 덕분에 우린 준비해간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느긋하게 쉬어갈 수 있었다.
▼ 12 : 49. 2차선의 ‘마서로’를 따라 100m남짓 걷다가 왼쪽으로 나뉘는 소로(같은 ‘마서로’이지만 1차선)로 들어선다.
▼ 12 : 51. ‘죽산배수갑문교’를 건너면 커다란 저수지가 얼굴을 내민다. 오른쪽에는 대규모 태양광발전단지가 들어서 있다.
▼ 염전 아니면 양식장이 있었을 법한 곳에 들어선 대규모 태양광발전소.
▼ 12 : 58. 하소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이정표(종점 4.4km/ 시점 9.8km)가 1km쯤 더 걸으면 매바위공원을 만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참고로 ‘하소마을’은 직진해야 만날 수 있다.
▼ 13 : 01. ‘하소길’을 만나자 이번에는 대하양식장이 길손을 맞는다.
▼ 단지를 이루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데, 개개의 방죽마다 수차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 13 : 07. 민가 몇이 듬성듬성 들어서있는 하소마을을 빠져나와 바닷가로 내려선다. 그리고는 해안길을 따라 매바위공원으로 간다. 참! ‘하소’라는 지명은 지형이 소처럼 생긴 ‘소매’ 아래에 위치한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했다.
▼ 13 : 12. 잠시 후 도착한 ‘하소마을 선착장’.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56코스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인 ‘매바위 공원’이 왼쪽에 있기 때문이다.
▼ ‘매바위’란 공원 이름은 공원 한가운데 있는 집채만 한 저 갯바위에서 따온 것이다. 매를 닮아 그렇게 부른다는데, 둥근 바위의 형상에서는 매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매를 꼭 닮았던 이 바위는 어느 해인가 태풍으로 목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 탐방로는 공원을 한 바퀴 빙 둘러 나있다. 공원은 이런 산책로 말고도 조형물과 구름다리, 정자, 나무 덱 등으로 잘 꾸며져 있다. 하지만 공원 이름을 적은 팻말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것은 흠이라 하겠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이나 포털사이트 전자지도로는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지자체가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널리 알리는 것이란 걸 모르는 모양이다.
▼ 공원은 조망의 명소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갯벌과 함께 까마득한 갯벌 가운데로 이어지는 길이 드러난다. 이 일대의 갯벌은 죽산리 어민들이 관리하는 바지락·가무락·동죽·굴 양식장이라고 한다.
▼ 공원 앞 갯벌에는 칼바위, 먹섬, 한목 등의 이름을 가진 갯바위들이 늘어서 있다. 그 뒤로 길게 늘어진 섬은 ‘임가르매(가르마를 탄 것처럼 생겼다나?)’일 것이다. 하나 더. 이곳은 썰물 시간이 해지는 시간과 맞아떨어지는 날에 찾는 게 제일이라고 했다. 드넓은 갯벌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노을 풍경 한가운데로 들어가, 일몰과 겹치는 저 바위들을 배경으로 삼으면 ‘인생 사진’ 몇 장쯤은 너끈히 건질 수 있단다.
▼ 공원에는 매의 형상을 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없는 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원을 조성한 취지를 감안했었더라면, 틀림없이 목이 떨어나가기 전의 형상으로 만들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 13 : 24. 선착장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해안길을 따라 북진한다.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선박들이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구간이다. 바다에 있어야 할 배들이 하나같이 뭍으로 올라와있는 것이다. 주민들 말로는 ‘금어기(禁漁期)’라서 발이 묶인 탓이라고 했다. 하나 더. 금어기가 해제되면 저 배들은 경운기에 이끌려 바다로 간다.
▼ 뒤돌아 본 ‘매바위 공원’. 선착장에서 갯벌로 나가는 길이 살짝 드러난다. 썰물 때의 뱃길이라고 보면 된다. 갯벌이 드러나 배를 띄울 수 없으니 경운기에 배를 싣고 갯벌 끝까지 가서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것이다.
▼ 13 : 36. 그렇게 한참을 걷자 또 다른 선착장(이정표 : 종점 2.2km/ 시점 12km)이 나온다.
▼ ‘아목섬(거위의 목처럼 생겼단다)’ 방향. 반짝이는 갯벌 한가운데로 잔돌이 깔린 길이 이어져 있다. 죽산리의 어민들은 바다가 멀리 물러나는 썰물 때는 경운기 뒤에 배를 싣고 이 길 끝까지 가서 바다에 배를 띄운다. 이게 또 이색적인 풍경으로 비쳐지면서 탐방객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나? 맞다. 끝 간 데 없는 갯벌 위로 배를 싣고 바다로 가거나,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배를 싣고 나오는 경운기들의 행렬이 어디 그리 흔한 풍경이겠는가.
▼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숲속으로 들어간다. 녹슨 어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조금은 어수선한 풍경을 보여준다.
▼ 13 : 41. 청해수산 앞에서 ‘마서로783번길’을 따라 하소마을로 간다. 죽산리에 속한 자연부락이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죽산교회’가 큼지막하게 들어서있다. 저 교회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이 하소마을, 왼쪽은 상소마을이라고 한다.
▼ 13 : 44. 하소마을 못미처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농로를 탄다. 죽산리 들녘을 벗어나 송석리의 드넓은 들녘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13 : 54. 서해랑길은 ‘동지산 마을’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가 56코스 종점인 ‘와석마을’로 간다. 하지만 난 그보다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종점이 코앞인데 일부러 돌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이다.
▼ 조상의 얼이 깃는 보호수라고 했다. 그래서 소중히 관리해오고 있단다. 그런데도 수령이 322년이라는 팽나무는 죽어 있었다.
▼ 14 : 02. 송석리 ‘와석마을’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마을에 넓은 바위가 누워있다고 해서 ‘눈돌’로 불리다가 한자화되면서 와석이 되었다. 서해랑길(서천 57코스) 안내도는 마을회관(눈돌노인회관) 맞은편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이 15.88km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해주었다. 어느 현인은 친구를 일러, 힘들 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 말을 편견 없이 끝까지 들어주고, 외롭고 쓸쓸할 때 나의 허전함을 채워주며, 내가 잘못할 땐 뼈아픈 충고도 가리지 않는, 늘 따뜻한 눈길로 내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집사람은 내게 둘도 없는 친구가 분명하다. 더불어 그런 친구를 둔 나는 분명 ‘성공한 인생’이다.
|
출처: 비공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