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숨진 지 43년만에 '적 교전-무장반란 등 방지하다 사망' 인정... 국방부, 유족에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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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12일,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12.12쿠데타 과정에서 희생된 김오랑 중령, 정선엽 병장, 박윤관 상병에 대한 33기 추도식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29번 묘역 깅오랑 중령 묘소에서 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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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12 군사반란(쿠데타) 당시 반란군에 맞서다가 숨진 고 김오랑 육군 중령의 사망구분이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됐다. 고인이 반란군의 총격에 숨진 뒤 43년만이자, 지난 1997년 대법원이 12.12 사건을 군사반란이라고 명확히 규정한 지 25년 만이다.
29일 고 김 중령 유족에 따르면, 국방부 중앙전공상심의위원회는 이날 문자 메시지를 통해 "재심사 신청을 심사한 결과 '전사' 결정되었다"고 유족 측에게 통보했다.
앞서 지난 9월 26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그동안 순직으로 처리됐던 김 중령의 사망 구분에 대해 '전사'로 재심사할 것을 국방부장관에 요청한 바 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고인이 쿠데타군에 대항하다가 사망한 사실이 명백한 만큼 '직무 수행 중 사망'을 의미하는 순직보다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다 사망'을 뜻하는 전사가 적합하다는 의미였다.
김 중령, 12.12 반란군 총기 난사 저지 중 응사... 피살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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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시위원회가 고 김오랑 육군 중령 유가족 측에 통보한 문자 메시지. 국방부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에 맞서다가 김오랑 중령의 사망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 결정했음을 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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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이었던 김 중령(당시 소령)은 정 사령관을 불법적으로 체포하려 들이닥친 신군부 측 제3공수여단(3공수) 병력에 맞서 총격전을 벌이다 수 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사망 직후 작성된 군 기록에는 김 중령이 먼저 3공수 병력에게 사격해 3공수가 이에 응사함으로써 사망했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반란군이 총기를 난사하면서 정 사령관을 체포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김 중령이 응사했고, 이에 반란군이 총격해 김 중령이 피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고인은 지난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12·12 반란군에 맞선 '참 군인'
김오랑 중령, 보국훈장 받는다14일 정부 국무회의에서 원안대로 의결...보국훈장 삼일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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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12.12쿠데타 과정에서 희생된 김오랑 중령, 정선엽 병장, 박윤관 상병에 대한 33기 추도식이 2012년 12월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29번 묘역 깅오랑 중령 묘소에서 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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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4일 국무회의를 열어 12·12 군사반란 당시 상관을 보호하려다 쿠데타군에게 목숨을 잃은 고 김오랑 육군 중령(육사 25기 ·당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에 대한 훈장 추서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오늘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 올라온 고 김오랑 중령 훈장 추서 안건이 원안대로 의결되었다"고 말했다. 고 김 중령에게는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될 예정이다. 순직 35년 만의 일이다.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반란을 일으킨 신군부에 맞서다 순직한 김 중령은 '참 군인'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979년 12월 13일 오전 0시 20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끈 신군부는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를 급습, 군사 반란을 진압하려는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를 시도했다. 당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이던 김오랑 소령은 권총을 들고 쿠데타군과 총격전을 벌였고, 여섯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배우자 백영옥씨가 국방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민원을 제기한 결과, 1990년 중령으로 한 계급 추서되었지만 그동안 김 중령의 명예는 온전하게 회복되지 못했다.
김 중령에 대한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결의안은 지난 17대 국회와 18대 국회에서도 각각 발의된 바 있지만 국방부와 안전행정부의 비협조로 빛을 보지 못했다. 김 중령이 '전투 참가' 등 상훈법의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이 바뀐 것은 지난 해 김 중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민홍철 민주당 의원이 '고 김오랑 중령 훈장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뒤부터다. 이전과는 달리 군 출신이 많은 국회 국방위에서도 김 중령의 명예회복에 대한 여·야간 이견이 좁혀졌다.
지난해 4월 29일 국회 본회의는 '고 김오랑 중령 훈장추서 및 추모비 건립촉구 결의안'을 재석 227명에 기권 6명, 찬성 221명의 압도적인 지지로 가결했다. 이후 정부는 국회를 통과한 결의안을 수용, 지난 10일 차관회의를 거쳐 이날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제출했다.
민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군사 쿠데타에 맞서서 의롭게 죽어간 고인에게 국가가 당연히 수여했어야 할 훈장"이라면서 "너무 늦었지만 정부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고인의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진행이 더디다는 점"이라면서 "그래도 고 김 중령과 같은 분들이 추앙받고 역사 속에 교훈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참 군인 김오랑 기념사업회' 김준철 사무처장도 "당초 요구했던 무공훈장이 아니라 보국훈장이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반대 한 표 없이 훈장추서 및 추모비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자체로서 김 중령의 정당성은 국민적 합의로 인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