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하원동 산1-1번지(서귀포시 영실로 506). 영실 주차장 서북서쪽
시대 ; 미상(고려시대 추정)
유형 ; 불교유적(사찰·사지)
이곳은 예전부터 사찰터가 있었으며 언제 창건되고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많을 때는 60여 스님들이 영실에서 수행하였다고 전하며 이곳에 있는 바위가 수행하는 스님들로 보인다고 하여 수행동(修行洞)이라고 불리게 됐다. 수행동이라는 곳에는 건물 흔적으로 보이는 석렬이 남아 있기도 하다. 오백나한전과 더불어 암자들이 곳곳에 있었고 초기 존자암지도 이곳에서 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폐사지로 방치되었던 옛 사찰터에 1978년 현 선덕사 신도회 최영범 부회장의 선친께서 시멘트 건축으로 오백나한전을 창건하였다. 그러다 2000년에 오백나한전 주지 학균 스님과 보현월 화주보살님이 중심이 되어 시멘트 법당을 허물고 전통 한옥양식의 목조(木造)건축물로 새롭게 지어졌다.(김보성 자료) 이 사찰은 ‘영실 오백나한전(靈室 五百羅漢殿)’이라는 명칭으로 2006년 4월 20일 서귀포시 향토유형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다.(지정서 참고) 다음 지도에는 ‘영원사’라고 나와 있다. 1978년 오백나한전 공사 중 철불상 1구가 발굴되었고 오백나한전 주지 학균스님은 발굴된 철불상을 비공개로 보관하다 2022년 초 대웅전 법당에 봉안하게 되었다.(김보성 자료)
법당 안에는 가운데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이곳에는 화엄사판 묘법연화경 권4∼7. 1책(제주도 유형문화재 제19-2호)이 보존되어 있다.
유형 ; 불교유적/불상(鐵造毗盧遮那佛坐像)
1978년 옛 사찰터에서 발굴된 철불상이다. 제주도에서는 철불상이 발굴된 예가 없으며 철불이 통일신라 시대 후기부터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양식이라 발굴의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으나 이 불상에 대해 전문가들의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 학계에 공개된 적이 없어 이름이 없으므로 먼저 불상에 대한 이름이 우선일 것이다. 수인(手印, 손모양)을 보면 비로자나 부처님의 손 모양인 지권인(智拳印)에 해당되므로 이 부처님은 비로자나부처님이고 문화재 지정하는 방식에 따라 명명하면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毗盧遮那佛坐像)’이다.
이 불상의 두상을 보면 머리카락이 소라처럼 끝이 말린 형태인데 이것을 나발(螺髮)이라 한다. 철불상은 나발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기 어려운데 오백나한전 철불상의 특징 중 하나라 하겠다. 미간 사이에는 백호(白毫)의 모양도 확인되며 법의(法衣, 옷)는 양 어깨를 감싼 통견(通肩)형태이다.
불상을 확인하는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손 모양을 보고 유추하는 방법인데 이 불상의 손 모양은 지권인에 해당된다. 지권인은 비로자나 부처님의 특징적인 손 모습이다. 일반적인 비로자부처님 수인인 지권인은 한손을 다른 한손이 감싸는 모습이 일반적이나 이 불상은 깍지낀 형태로 보인다. 이런 형태는 고려시대 이후에 보이는 모습이다. 발 모양은 오른쪽 발이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진 결가부좌(結跏趺坐)이며 길상좌(吉祥坐)라 할 수 있다. 양 무릎이 좁게 표현되어 전체적인 조형미를 떨어뜨린다.(김보성 자료)
인터넷에서 ‘철조비로자나불’로 검색해 보면 철원 도피안사, 장흥 보림사, 광주 증심사, 예천 한천사, 청양 장곡사, 해남 은적사, 상주 남장사,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비로자나불이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를 의미하는 신앙대상이며, 대승불교에서는 ‘화엄경’에서 시방제불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법신불(法身佛)이다.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이다.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하여 비로자나라고 한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처를 신(身)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色身)이나 생신(生身)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千葉蓮華)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華臺)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또, 큰 연화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 가운데에는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한다. 이 연화장세계의 교주는 곧 삼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로자나불이 허공과 같이 끝없이 크고 넓어 어느 곳에서나 두루 가득 차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의 배우자는 금강계자재모(金剛界自在母 Vajrad-hātviśvari) 또는 '타라'(Tārā)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출신 가문은 '모하'(Moha)였다고 한다. 회화에서 비로자나불은 흰색으로 채색되고 손은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용 또는 사자를 타고 다니고 수레바퀴를 상징으로 하며, 5온 중에서는 색을, 소리로는 '아' 또는 '옴'이라는 음을, 우주의 구성요소로서는 공간을, 감각으로는 청각을, 감각기관으로는 귀를 담당하고 있고, 인체에서의 위치는 머리이다.(다음백과)
경전상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은 ≪화엄경 華嚴經≫의 교주이다. 석가모니불을 응신(應身:세상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삼고 있는 비로자나불은 때와 장소 및 사람 등에 따라 가변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미혹에 결박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심으로 생각하고 맑은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든지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즉, 중생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간절히 희구하는 바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나 행위 경계에 따라 때를 놓치지 않고 때를 기다리지 않고, 어느 곳, 어느 때나 알맞게 행동하고 설법하며, 여러 가지 상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로자나불은 항상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명호, 여러 가지 삶의 방편을 나타내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경≫ 안에서의 비로자나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석가모니불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자마자 비로자나불과 일체를 이루게 되며, 그 깨달음의 세계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들에게 비로자나불의 무량한 광명에 의지하여 설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비로자나불에 의해서 정화되고 장엄되어 있는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의미한다는 큰 특징을 갖는다. 이 세계 속에 있는 우리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게 예배하고 귀의 순종함으로써, 부처님의 지혜 속에서 현실계의 상황을 스스로의 눈에도 비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로자나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보살행(菩薩行)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이는 형체가 없는 비로자나불이 보살들의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 형체 있는 것으로 화현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며, 최고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보살행이, 깨달음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에게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우리 나라 사원에서 이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각의 명칭이 붙여질 경우에도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게 된다. 또 비로전(毘盧殿) 또는 화엄전(華嚴殿)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만을 봉안하는 것을 상례로 삼고 있다. 법당 안의 비로자나불상은 보통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러나 고려 말기부터는 이 지권인이 변형되어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이 비로자나불상 뒤에는 비로자나 후불탱화가 봉안되는데, 이곳에는 보통 화엄경의 설법 장면이 많이 묘사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 2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