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하는 링컨
임두환
화사한 봄날, 금쪽같은 세 살배기 손자 지훈이를 데리고 아파트 주변을 맴돌았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어서 짬이 날 때면 함께 놀아주곤 했다. 귀엽고 예뻐서도 그렇지만 아내가 손자를 돌보느라 팔다리와 어깨가 아프다며 한의원을 찾아서였다.
오늘도 여느 때나 다름없이 어린이놀이터를 지나려는데 한쪽 모퉁이에 헌책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버리기는 아깝고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 읽으라는 배려였으리라. 호기심으로 뒤적이다 보니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존경해 오던 에이브라함 링컨으로 책 이름은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이었다. 제목부터가 마음에 끌려 살펴보니, 누군가 세트set로 구입하고서 책장도 넘기지 않았다.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이라면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존경의 대상이었으리라. 나 역시 중학교 시절, 링컨 대통령의 전기傳記를 읽고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린 시절 삶의 처지가 그랬고, 나도 노력하면 링컨 대통령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구나 싶어서였다. 링컨은 1860년 5월 16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 그해 11월 6일에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후보 더글러스 상원의원과 겨루어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보통 우리는 링컨이 노예를 해방시킨 대통령으로만 알고 있지만 ‘남과 북’ ‘흑인과 백인’으로 분열 되었던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만든 진정한 통일 대통령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부터 42대 클린턴 대통령까지 41명의 대통령을 지도력, 위기관리능력, 정치력, 인사관리, 도덕성으로 나두어 평가했는데 1위가 링컨, 2위에 누스벨트, 3위는 워싱턴이었고 4위는 제퍼슨, 클린턴은 23위였다. 링컨 대통령은 1809년 2월 5일 나무와 숲이 울창한 시골마을이었던 켄터키주의 조그만 한 마을에서 태어나 토끼ㆍ사슴ㆍ다람쥐들과 친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비록 집은 가난했지만 정직하고 성실한 아버지와 인자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 밑에서 그런대로 행복하게 지냈다.
링컨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넘어서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7전8기의 사나이였다. 링컨은 어렸을 때부터 독서광 또는 책벌레로 불렸다. 학교 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못했던 그는 독학으로 해결해야 했다. 한마디로 주경야독이었다. 링컨은 책을 읽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좋은 문장이 나오면 메모를 해놓고 글을 쓰기 위해서 문법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17세에 ‘절약’ 이라는 수필을 써서 오하이오주 신문에 발표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지 않는가.
링컨은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역사ㆍ과학ㆍ문학ㆍ종교 등 모든 분야에 몰두하였다. 링컨에게 신앙심과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어머니 낸시였다. 어려서부터 자연의 세계에 눈을 뜨게 했고,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적인 사고로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도록 했다. 어머니는 무엇보다 링컨의 마음속에 신앙심과 꿈을 심어주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러했던 어머니가 링컨이 10세 되던 해에 풍토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뒤 1819년 12월 2일 새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는 외로워 할 링컨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정성을 들였다. 참으로 본받아야할 인물이었다. 링컨의 생애는 ‘실패와 불행’이라는 글자가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녔다. 그는 크고 작은 선거에서 무려 일곱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고 사업에도 두 번이나 실패하여 빚을 갚는데 무려 17년의 세월이 걸렸다. 10세 때 친어머니를 잃었고, 20세에는 누이마저 세상을 떠났다. 27세 때에는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이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42세와 53세에는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언제나 링컨의 마음에는 친어머니 낸시의 신실한 믿음의 뿌리가 밑받침 되었던 것이다.
1863년 11월 게티스버그 연설은 총 266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3분 내외의 짧은 연설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연설에서 링컨은 민주 정치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던가. 이 말은 지금까지도 민주주의를 가장 잘 표현했던 연설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링컨은 1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석상에서
“이 낡은 책은 바로 어머님께서 저에게 물려주신 성경입니다. 저에게 물려주신 이 낡은 성경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이 되어 여기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대로 이 나라를 통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는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이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도 굽이굽이마다 어려움이 많았다. 어려서는 가난에 시달려야 했고, 중년에는 가방끈이 짧은 탓으로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중학생 때였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참고서가 없다보니 아무리 노력을 해도 1등을 넘볼 수가 없었다. 나는 결심했다. 돈이 없으니 서점에서 영어와 수학참고서를 훔쳐야겠다고…. 어느 날 서점에서 책을 보는 체하다가 참고서를 책가방에 슬쩍하고서 나가려는데 주인아저씨가,
“학생, 이리 와봐! 가방에 넣은 것 있지?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고 해도 학생이 그러면 안 되지? 이번에 한 번은 봐주지만 다음에는 용서 못한다.”
하고는 크게 꾸중도 않으시고 보내주었다. 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생의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대본도 리허설도 없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명심해야할 것은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다시 일어나서 오뚝이처럼 살았던 링컨 대통령이었다. 그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나침반’이었고, 나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