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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강경애-어머니와 딸 (2)
세인이가 기지개를 켜며 벌떡 일어나 앉는다.
"오마이!"
영감은 세인이를 껴안았다.
"아가, 밥 먹자."
세인은 도리를 치고 어머니께로 가서 젖가슴을 헤치고 팠다. 아버지는 샛문을 열고,
"밥 먹어라, 울기는 와! 어서 나려와!"
세인은 토닥토닥 아버지 곁으로 와서 갸웃하고 보았다.
"오마이, 누나 울어. 이렇게 울지."
조그만 손으로 눈을 부비치며 어머니 앉은 곳으로 달려온다. 그는 본체만체하고 한숨만 후후 쉬었다.
조반상을 물리자 이춘식이와 처신이가 들어선다. 영감은 황망히 일어나며,
"이리 오시오. 집이 누추해서……"
아랫목을 가리키고 방안을 휘휘 둘러보며 윗목으로 앉았다.
춘식은 들어서자마자 어떤 토굴 속에 들어온 듯하였다. 한참 후에야 방안 속이 어림해 보였다. 도배하지 않은 바람벽이며 불그죽죽한 장롱짝, 엉성그려물은 갈자리입, 어느 것 하나 원시시대를 상상케 아니할 것이 없었다. 더구나 먼지내가 코를 벗튀우는 것 같았다. 그는 수건을 내어 코를 가리고 있었다.
영감은 샛문을 열고 보니 딸이 없었다. 그는 부엌으로 나갔다.
"이애 어디 갔노?"
세인이를 업고 왔다 갔다 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글쎄요, 이제 곧 나갔는데……"
영감은 얼굴을 찡그리며
"어서 데려오게."
그는 새침하고 밖으로 나갔다. 영감은 방으로 들어오며,
"촌년이 돼서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얼마 후에 발소리가 들렸다. 영감은 밖으로 나갔다.
"왜 혼자 오누?"
"어디 있습디까?"
"에잇……"
춘식은 부부의 이야기를 듣자 처신이를 찔러가지고 일어났다. 영감은 돌아보자 얼굴이 벌개지며,
"어째서 가시럅니까, 곧 올 터인데요."
그들은 웃으며,
"보나 다름 있겠습니까? 내일 가겠습니다. 옷은 다 맡기었습니다."
그들은 가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여덟 점 차로 예쁜이는 그리운, 그리운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되었다.
가을이 깊었다. 창문의 딸 예쁜이는 부자 이춘식의 호강첩으로 팔려갔다는 소문이 읍촌간에 자자하게 퍼졌다.
둘째는 처음에는 곧이듣지 아니하였다. 보다도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새록새록이 들어오는 소문은 그로 하여금 괴로우나마 믿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가슴을 졸이며 알아본 결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다만 하나인 과부의 외아들 같은 희망은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그의 짤막한 과거를 돌아본다면 그나마 희망에 넘친 행복한 날이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본 그 순간에 다만 한번만이라도 시원한 말을 나누고 떠났다면 차라리 나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잊어보려 하였다. 자기로서도 알지 못할 쓰림과 질투의 불길이 날이 갈수록 무섭게 타올랐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생사를 헤아리지 않을 만큼 되었었다. 그리하여 그의 얼굴은 파리해 가고 가뜩이나 무거운 입이 철문같이 굳게 닫혀버렸다.
그는 밤마다 발길 가는 대로 맡겨두며 번번이 읍등새 솔밭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소나무 밑에 펄썩 주저앉아서 노송나무를 힘껏 껴안고 차츰차츰 깊어가는 가을밤에 고즈넉히 잠든 송화읍을 내려다보았다. 전에 볼 수 없던 함석집들이 가운데 들어앉아, 둘러앉은 초가집들을 노려보는 듯 비웃는 듯이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찰나에 떠오른 눈, 비웃는 그 눈, 천진한 어린 자기를 속인 말끔한 거짓말이 그의 전 신경을 비상히 흥분시킴을 따라 쓰라렸던 과거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젊어서 남편을 잃은 그의 홀어머니는 어린 그를 하늘같이 믿고 여름이면 김품 팔고 겨울이면 삯바느질 같은 것으로 그날그날 겨우 살아갔다.
둘째가 열두 살 나던 해 가을이었다. 여름철이 들면서부터 그의 어머니는 소화불량증을 얻어 노상 굶다시피 하면서도 삯김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철이 바뀐 어느 날 그는 견디지 못하여 하던 일을 겨우 대강대강 마쳐버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정신없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어린 둘째는 솔가리를 긁어다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오마이!"
언제나 그는 방문을 열어 잡고 이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여러 날 신고(辛苦)에 두 눈등이 푹 꺼진 그의 어머니는,
"왜?"
겨우 눈을 뜨고 아들을 보았다. 군데군데 해진 잠방 적삼이라든지 발꿈치가 쑥 나온 목달이가 새삼스럽게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곁에 앉은 아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배고프겠구나. 아파서 나는 밥 못하겠으니 식은 밥이라도 갖다 먹어라, 아이고!"
그는 긴 한숨을 푹 내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응."
둘째는 부엌으로 나가서 들그렁 들그렁 하더니 조밥 바리와 된장 그릇을 안고 들어왔다. 그는 씩씩하며 나뭇단 끌어들이듯이 밥술은 큼직큼직하였다. 부리나케 푹푹 퍼먹은 그는 숟갈을 공중 던지고,
"오마이, 나 배 불러."
"오냐."
어머니 대답을 들은 그는 그릇을 버려둔 채 어머니 곁으로 달려와서 눕자마자 코를 골아 넘긴다.
그의 어머니는 똑부러지게 아픈 곳은 없다 하더라도 전신의 맥을 출수가 없으며 따라서 호흡이 곤란해졌다. 나중에는 가래까지 올랐다. 방안은 찬바람이 실실 돌았다. 새어드는 달빛은 아들의 얼굴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그는 젖먹던 힘을 다하여 이불을 끌어다 아들에게 덮어주었다.
자기의 병이 위중할수록 막연하게 어린 아들의 신세가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 따라서 저 어린것을 놓고 내가 아주 죽나 보다 하는 끔찍한 생각은 하늘이 무서워서 못하여 보았던 것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가래가 성해지고 바람에 밀려다니는 나뭇잎의 와삭이는 소리와 요란스럽게 들리던 벌레 울음소리가 차츰차츰 가늘어지며 주위가 암흑으로 변해지는 것을 느낄 때 그의 가슴은 죽음이란 것 앞에서 마지막으로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잠든 아들을 깨워 보렸으나 태산준령이 콱 내려앉은 듯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수가 없었다. 그의 눈은 점점 흰자위만이 남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둘째는 왈칵 일어났다.
"오마이, 오줌 눠."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흔들었다.
"요강 달라오!"
오줌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두 눈을 딱 감고 시원하게 누고 나서 그 자리에 되는 대로 누어버렸다. 그러나 눈 오줌은 사정없이 그의 해진 옷 속으로 푹 젖어 먹었다. 그는 잠결에 괴로움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오마이!"
갑자기 추움과 무서움이 휘딱 들어 두 눈이 올랑해졌다.
둘째는 어머니 곁으로 바싹 다가앉아 흔들었다.
"오마이!"
어머니는 정신이 뻔하였다. 그러나 마치 가위눌린 사람 모양으로 말도 할 수 없으며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도 대답이 없음에 안타까워서 둘째는 머리맡으로 가서 그의 어머니의 눈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무서움을 느꼈다.
"오마이, 왜 그래, 응야!"
그는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아들의 우는 것을 번연히 아는 어머니는 어떻다고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그러나 그는 역시 순간이고 아무것도 분간치 못하는 의혹으로 변해지는 것이었다.
둘째는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밤마다 켜지던 등불이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눈물을 씻으며 또 한 손으로 성냥을 더듬어 불을 켰다.
"오마이! 나 보라우, 어서야!"
어머니의 감겨지는 눈을 뻐기고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무엇이라고 중얼거렸다. 음성은 들리지 않고 입만 놀렸다.
"무어! 에 그 정 크게 하려마."
어머니의 입술을 똑똑히 들여다보며 그대로 입술을 놀려 보았다.
"주부. 응, 주부!"
얼핏 작년 여름에 엉덩이의 종기로 인하여 어머니와 주부[의원]네 집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응, 주부, 주부. 내 갔다 와!"
그는 우뚝 일어섰다. 문밖으로 뛰어나오자 무서운 김에,
"오마이! 난 가! 응."
이런 말을 남기고 앞으로 뛰었다.
오불꼬불한 논두덩을 지나고 밭머리를 지나 읍등새 솔밭 사이로 들어섰다. 바람에 솔포기 흔들리는 소리가, 동무들에게서 들은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무서운 범이 나오는 듯, 그리고 자기의 발자취 소리에 놀라 휘끈 돌아보면 둥그런 달이 자기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 무서운 솔밭도 지나고 외나무도 건너지른 쪽다리를 기어 건너서 새로 닦은 큰 길 위로 들어서 줄달음질쳤다.
의원집까지 다 온 그는 팍 고꾸라지자 두 걸음을 쳐서 일어났다. 단숨에 돌층계를 올라서 차디찬 대문짝에 착 달라붙었다.
"오마이, 문 열어!"
얼결에 빽 소리치고 숨을 죽이고 엿들었다. 여기저기서 짖는 개소리만이 점점 요란스럽게 들렸다.
"문 열어요!"
전신에 땀이 훈훈히 흐르며 눈물이 그렁그렁 떨어졌다.
눈을 딱 감고 대문짝을 쳐다리고 나니 안으로부터 인기척이 나며 문이 방싯 열리자 뚱뚱한 주부가 나타났다.
"웬 아이냐?"
자다 나온 텁텁한 소리였다. 둘째는 반가움에 와락 달려 들어가 칵 매어 달렸으나 한참 동안은 말을 못하고 애만 썼다.
그는 달빛에 둘째의 얼굴을 비춰보니 한 번 본 아이 같았다. 그는 머리를 돌려 생각해보더니,
"너 종기로 앓던 애지?"
"네, 울 오마이, 저 울 오마……"
숨이 찼다.
"그래 너의 오마니가 어떻단 말이냐?"
"저 죽어가요, 아파서……"
"어디가 아프다든?"
"겨워요, 그러고 말 못해요."
"음."
의사는 둘째를 물리쳤다.
"앓다가 낫지. 울지 마라. 내일 아침 내 갈 것이니 어서 가거라."
"나 혼자요?"
안타까운 듯이 의사를 쳐다보았다.
"그럼."
의사의 머리에 아직 새로운 것은 작년 약값도 절반도 받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밤도 오래고 더구나 촌이 되어 가고 싶지 않았다.
"올 때도 너 혼자 왔니?"
"네, 갑시다, 우리 집에. 네?"
바투 대들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내일 가겠으니 어서 가거라!"
자기 어머님 같은 사람인 줄 알고 대들었으나 사정없이 그를 몰아낸다.
"내일 간다. 잘 가거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빗장을 걸고 들어가 버렸다. 둘째는 멍하니 섰다가 문 사이로 들어가는 의사의 뒷덜미를 바라보았다.
"정말 오겠수우?"
아무 대답없이 안대문까지 쾅 닫겨 버렸다.
둘째는 대문 밖에 우두커니 서서 누가 또 나올까 하고 기다리다 못해 두 주먹을 부르쥐고 앞으로 뛰었다. 나무도 산도 얼씬얼씬 움직였다.
집까지 달려온 둘째는 방문을 벼락같이 열고,
"오마이!"
뛰어들어 어머니 가슴에 팍 엎어졌다. 문바람에 등불마저 꺼져 버렸다. 둘째는 어머니 얼굴 위에다 얼굴을 마주 대고,
"주부가 안 오지, 내일 오겠대, 응."
뜨거운 눈물이 차디찬 송장 위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곁집 닭은 홰를 치고 꼬끼요 하고 울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둘째는 깊이깊이 가라앉았던 분까지 왈카닥 치몰려 하늘을 뚫을 듯하였다. 그는 두 주먹을 다져 쥐고 벌떡 일어났다.
*
예쁜이는 예쁘장한 계집애를 낳게 되었다. 두 눈이 분명하고 얼굴 판장은 어머니 비슷하면서도 어머니보다 생김생김이 뚜렷하였다. 우리의 여주인공이 될 옥이였었다.
외롭던 끝에 계집앨망정 생기고 보니 몇 달 동안 갖은 수고와 입으로 담지 못할 악형당한 것도 꿈속으로 사라지고 더할 나위 없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것에다가 혼자서 중얼중얼 주고받고 하는 것이었다.
주옥이 어머니가 혹간 지나가다 귓결에 들으면 벼락같이 문이 열렸다.
"그 잘난 계집애만 가지고 빈둥빈둥 놀 테야!"
평생 말할 때에도 달싹도 못하는 판에 긁어닥치는 듯한 큰 소리에 금방 무슨 변이라도 나는 듯싶었다. 그리하여 머리를 푹 숙이고 가슴은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반편, 반편 하니, 저런 반편이 어디 있다가 내 속을 요다지도 태워주니! 이 야이 못난 년아!"
하고 달려들어 어린애를 뺏아 가지고 안방으로 홱 들어가 버렸다.
어린애는 발악을 하고 운다. 뒤이어 어떻게나 하는지 죽는 소리가 난다. 울음 마디마디가 예쁜이의 뼈끝마다 새어드는 듯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는 더 참을 수 없어 벌컥 일어나서 방안으로 빙빙 쏘다니다가 두 눈이 벌개져서 안방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치를 챈 주옥 어머니는 앞질러 딱 막아서서 노려보았다.
"잘못했습니다…… 네. 애기 주시오. 참말이야요."
그의 눈은 애처롭게 타올랐다.
주옥 어머니는 일종의 통괘감을 느끼며.
"무엇을 그래 잘못했단 말이냐?"
그는 무엇이라 대답할 것이 난처하여 마지막에는 울음으로 대하였다.
"아씨, 저 입 보시우."
둘러선 행랑어멈 침모는 눈짓을 하여 입을 막고 웃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잔인한 흥미도 다해지면 사정없이 어린애를 내쳐주었다.
그는 어린애를 안고 비실비실 자기 방으로 건너가서 맞은 자리를 어루만지며 볼과 볼을 남몰래 마주 대었다. 어린애는 눈을 맞추자 방싯방싯 웃었다.
어슬막에 대문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뒤이어 흐트러진 신발소리가 들리자
"나리 오신다!"
하는 소리가 거푸 들렸다.
예쁜이는 애기를 멀찍이 눕히고 밀장문 사이로 바라보았다.
얼근히 취하여 비칠비칠 들어오는 남편의 탁 트인 얼굴, 안방에서 마주 나오는 다닥다닥 붙은 주옥 어머니. 첫눈에 벌써 외모만은 기운 짝이었다.
주옥 어머니는 생글생글 눈웃음치며,
"아빠 오신다, 주옥아."
주옥이는 빠르르 나와서 아버지에게 안겼다. 부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방으로 들어가자 밀장문이 스르르 쾅쾅 닫히고 만다.
멍하니 바라보던 예쁜이는 어쩐지 허전함을 느꼈다. 역시 순간이었다. 그는 어린애를 꼭 끼어 안고 전등불 아래 빛나는 조그만 눈을 말없이 언제까지나 들여다보았다.
방으로 들어간 주옥 어머니는 남편의 기분이 좋을 때를 이용하여 예쁜이의 말을 꺼내리라 하고 눈치만 슬슬 보며 갖은 아양을 다 떨고 있었다.
저녁상이 들어온다.
"난 먹었어."
춘식은 벌렁 누웠다. 어멈은 도로 부엌으로 나갔다. 주옥이는 아버지 팔에서 잠들었는지 색색 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할테요? 저 반편은."
"왜 또, 갑자기?"
"정말 반편부려 못 보겠소, 여보."
"마음대로 하지."
이 말에 생긋 웃었다.
"내야 어찌 알겠소. 당신 마누라를…… 집으로 보내면 어떠우?"
"보내지, 그럼."
순간에 그는 아찔하도록 좋았다.
"애는 떼어서 젖유모 주지요."
벌써 예쁜이의 안타까워하는 꼴이 눈에 보였다.
"글쎄."
"노비는 얼마나 줄까?"
"한 십원 주게나."
춘식은 귀찮다는 듯이 가만히 팔을 빼고 모로 누웠다.
"내일 보내겠소."
"마음대로 해."
그는 주옥의 베개를 내려 베어준 후 가만히 밖으로 나와서 한 바퀴 돌았다.
아침이 되자 주옥 어머니는 전에 없이 일찍 일어나서 안팎으로 나다니며 새살랑하였다.
문밖까지 나와서 남편을 보낸 주옥 어머니는 상노를 데리고 건넌방으로 와서 그는 담박 달려들어 어린애를 잡아 안고 일어섰다.
"가라! 네 집으로! 엣다 이것 가지고……"
포갠 일원짜리 지폐를 예쁜이의 앞으로 던졌다.
예쁜이는 가슴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숱하게 많은 돈을 보기가 처음이나 ‘가라’는 째는 듯한 소리는 그의 귀를 아프도록 울리었던 것이다. 상노는 돈을 집어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어서 갑시다."
얼결에 예쁜이는 따라 일어섰다. 방문턱까지 나온 그는 앞이 허전하였다.
"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부르짖고 돌아보았다.
주옥 어머니는 품에 안긴 어린애는 그와 눈을 맞추고 방싯방싯 웃고 있었다.
남편 춘식이는 낮에는 어느 회사 사장으로 출근하고 밤이 되면 기생아씨들에게 둘러싸여서 밤새우는 것이 거의 일과 되다시피 하였다.
예쁜이를 같이 데려다 놓고는 마누라의 새우는 것도 돌아보지 않고 도리어 욕질까지 하면서 밤이 되면 끈히 건너오더니 며칠 지나서 역시 싫증이 났는지 발길을 뚝 끊어버리고 혹시 어찌다 마주치는 때가 있어도 본둥만둥하여 두는 것이었다.
따라서 안방 아씨는 나날이 기승스러워 가는 것이었다.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달려들어 머리채를 휘어 쥐는 것이 매일 되다시피 하였다.
그리하여 온갖 일을 다 시키는 것이었다. 마루걸레, 방걸레, 빨래질, 동자…… 손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괴로우라고 시키는 것이 그에게는 갑갑하지 않고 십상 좋게 생각되었다.
어느 날, 그는 밥을 퍼들이고 밥 한 그릇 국 한 사발을 가지고 건넌방으로 건너가려니까,
"여기저기 벌리지 말고 어멈과 같이 먹지!"
안방에서 나오는 표독스러운 소리였다. 그는 놀라 꿈칠하여 하마터면 국그릇을 짓몰 뻔하고 겨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무엇보다도 그릇 깨뜨리지 않은 것이 적이 안심되었다. 어멈은 안방으로부터 빈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개밥 주었수?"
"아니오."
"아이구 입때 무얼 했수, 그래? 촌 양반이 왜 개밥 주는 것도 몰우? 기차라!"
부뚜막에 긁어 놓은 솔치에다 식은 밥을 뒤섞고 찌개국물을 타서 개밥통에 들썩 부어주는 것이었다.
"에스, 에스!"
부르니 새카만 강아지가 꼬리를 저으며 달려들어 처럭처럭 먹기 시작하였다.
그는 속으로, ‘에스는 무엇일까? 우리 곳에서 검둥이, 복술이란 개 이름을 그렇게 부르나?’ 어쩐지 에스라는 이름이 서먹서먹하여 다정한 맛이 없었다.
그는 멍하니 서서 개 주둥이 속으로 차츰차츰 없어져 가는 허리가 길쭉길쭉한 흰 밥알을 보았다. 사명절 때나 아버지 생일이라야만 먹는 줄 알았던 흰 이밥을 이 집에서는 개에게까지 먹인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문득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의 피나던 손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벼를 베시다가 엄지손이 벤 것이었다. 빨간 피가 죽죽 흐르는 것을 예쁜이가 달려가서 제 고름 끝을 잘라 처매어드렸다.
피는 점점 더 흘러 옷에 묻고 벼이삭에까지 발려도 아버지는 탐스러운 벼이삭에 끌려 아픈 것도 아무것도 모르시는 모양이었다.
육칠월 된 햇빛 속에도 구슬땀을 흘리시며 만지고 또 만져서 키워놓은 쌀알! 비가 안 오면 안 온다고 걱정, 너무 오면 온다고 걱정, 한시 한초를 마음 놓지 못하고 키운 눈물, 땀, 피로써의 결정인 이 쌀알을 아버지는 만져도 못 보고 지주와 빚장이에게 홀랑 빼앗기고 마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다 늙으신 아버지는 장 위도 성하지 못하시건만 파슬파슬한 호좁 쌀밥을 잡수시며 잘 넘어가지 않는 탓으로 이따금 물 한 모금씩 마시던 것이 방금 보이는 듯했다.
어느 사이에 그는 눈물이 흘렀다. 그는 남몰래 눈물을 씻고 나서 다시 개밥을 보았다. 어김없는, 아버지가 애써 지어 놓은 쌀밥이었다.
만일 아버지가 저 쌀밥을 보시게 되면 얼마나 아끼실 쌀알이랴! 얼마나 대견할 쌀알이랴! 그러나 이 집에서는 아까운 것도 귀한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이 집안사람들은 자기와는 딴 나라 사람들과 같이 생각되었다. 그런 사람들과 한 솥에 밥을 먹고 한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기막혀 죽을 것 같았다.
어멈은 말똥히 쳐다보다가,
"밥 먹우…… 개먹는 것이 아깝소, 그래?"
그는 어멈을 돌아보며 밥상을 보자 가슴이 멍청해지며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도리어 끔찍해 보였다.
주옥이는 토닥토닥 나왔다.
"나, 물!"
그는 주옥이를 볼 때마다 세인이가 그리워졌다. 따라서 귀여운 마음으로 주옥이를 보았다.
그는 떠놓은 물을 입에 대어 주었다.
"싫어!"
안에서는,
"찬물 주어라."
그는 수돗물을 뽑아서 주옥의 입에다 대었다. 꿀꺽꿀꺽 마시고 나서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예쁜이는 빙긋이 웃었다. 별안간 찰싹하고 예쁜의 따귀를 갈겼다.
"반편! 가야! 네 집으로 가야!"
하고 침을 탁 뱉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자 무엇이라고 종알종알하는 소리가 들렸다. 따라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멈도 ‘너무 한다. 어린 계집애가!’ 이런 생각을 하며 숟갈을 놓고 일어났다.
"살아 무얼 해요, 어린애한테 그런 모욕을 받고……"
귀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예쁜이는 골치가 우썩하며 전신의 열이 머리로 치떠밀어 올리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푹 내려감고 찬물을 벌떡벌떡 들이키고 있었다.
행랑어멈은 발 빠르게 안방으로 냉큼 들어갔다.
예쁜이는 어멈의 사라지는 뒤꼴을 바라보자 펄썩 주저앉았다.
"못 가요! 난 못가요!"
처음으로 내는 요란스러운 목소리였다. 모두가 눈이 둥그래질 뿐이었다.
주옥 어머니는 오목한 눈이 한층 더 옴쑥해졌다.
"이년, 이 오라질 년, 어디 못 가나 보자. 염치없이 왜 우리 딸 가져가겠다니? 흥, 이년아 글쎄."
침을 탁 뱉으며 암팡지게 노려보았다.
"끌어내게!"
집안이 쩌렁쩌렁 울었다. 상노는 또다시 달려들어 예쁜의 두 손을 사정없이 나꿔챘다. 그는 푹 고꾸라지며 두 팔을 마음껏 뿌리쳤다.
"애기 주어요! 내가 낳았지 누가 낳았단 말이야!"
예쁜이의 입술에서는 빨간 피가 흘렀다. 상노는 예쁜이의 허리를 깍지 끼었다.
별안간 대문이 활짝 열렸다. 뒤이어 나타나는 키가 들어꽂은 듯한 험상스럽게 생긴 한 사나이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상노를 잡아나꿔채 팽개쳤다.
둘러섰던 계집들은
"악!“
하고 뿔뿔이 도망질쳤다.
사나이는 예쁜이의 앞에 딱 막아섰다. 예쁜이는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가 상노를 밟아치운 데 눈이 뜨였다. 예쁜이는 최후 용기를 다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점점 뚜렷이 나타나는 이 사나이. 예쁜이의 눈은 찢어질 듯이 둥그래졌다.
"둘째야!"
나는 듯이 일어나 그의 가슴속에 자기의 흐트러진 머리를 푹 파묻었다.
"예쁜아!"
두멍깨 같은 그의 시커먼 손이 그의 어깨로 돌아가자 꽉 껴안았다.
"잊지 않았구나!"
따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쁜이는 머리를 번쩍 들고
"애기! 가지고 어서 갑시다. 네. 누가 올 테야요!"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무슨 소리인지 잘 아는 까닭이었다.
둘째는 담박 안방으로 뛰어들자 잡히는 대로 잡아나꿔챘다. 주옥 어머니는 어디로 숨은 꼴이었다. 어린애는
"악“
하고 울었다. 둘째는 어린애를 껴안고 밖으로 나왔다.
예쁜이는 어린애를 받아 안고 죽어 넘어진 상노놈을 건너서 허방지방 나왔다.
"어디 가냐?"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우중우중 들어서는 경관들은 달려들어 항쇄 족새, 들째를 얽어 놓았다.
예쁜이는 기절해 넘어지고 말았다.
며칠 후 예쁜이는 경관들에게 호위되어 남대문 정거장까지 나왔다.
눈 딱 불거진 형사가 차표를 사서 예쁜이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는 차표를 내던지고,
"난 못해요, 둘째를 놔주어요. 아모 죄 없는 사람이야요. 내가 상노를 죽였어요! 이년이 죽였어요!"
"가만히 있어, 둘째도 곧 보낼 테야."
예쁜이는 순사에게 대어 들었다.
"참말이야요? 거짓말 말으세요. 나는 혼자는 안 가겠어요!"
그는 팔싹 주저앉았다. 순사는 달려들어 일으켰다.
이 꼴을 본 모든 사람들은 예쁜이에게로 눈이 쏠렸다.
차는 미끄러져 들어왔다. 꾸리묵거시듯한 사람의 물결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예쁜이는 차안으로 끌려왔다. 차는 움직였다. 순간에 예쁜이의 정신은 펄쩍들었다. 그는 아기를 마루바닥에 팽개치고 미친 듯이 창 앞으로 달려갔다.
"둘째야! 둘째!"
소리를 치고 뛰어내리려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꼭 붙잡았다.
예쁜이가 내려온 그 해 봄에 창문네 생명줄은 떼이고 말았다. 몇 식구의 살아갈 길은 하루아침 가볍게 떨어지는 말 한 마디로 캄캄하게 되었다.
창문이는 딸이 내려온 것, 더구나 준 이태 동안에 갖은 고생 당한 이야기를 듣고 치밀어 오르는 분을 억제하기가 힘들었으나 그러나 밥줄이 무서워서 꼼짝 못하고 꿀떡꿀떡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양과 같이 순하던 그는 며칠 밤새운 끝에 맹호 같은 기세로 일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아들, 딸, 늙은 마누라도 보이지 않고 다만 원수인 이 춘식이만이 딱 막아섰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날 새벽에 아내를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어디 잠깐 다녀오겠네."
"어디를 가셔요?"
예쁜 어머니는 선뜻함을 느꼈다. 남편의 성질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디요, 말씀하고 가시오."
그는 아내를 꾹 찔렀다.
"애들 깨겠구만."
세인의 옆으로 가서 얼굴을 맞대보고 예쁜이를 어루만지며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았다가 벌컥 일어났다.
"혹시 이번 갔다 며칠 걸릴지 모르니까 세인이 울리지 말고 예쁜이에게도 잘 위로하여 주게."
여기까지 말한 그는 앞이 캄캄함을 느꼈다. 그러나 꾹 참고 어둠 속으로 달음질쳤다.
신발소리가 멀어질수록 그의 가슴은 터지는 듯하였다. 남편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다음날부터 세 식구는 날마다 아버지를 기다리나 날이 가고 철이 바뀌어도 점점 막연하였다.
세인이는 눈만 뜨면 아버지를 부른다.
"오마이, 오늘은 아부지 과자 사 가지고, 응?"
하도 여러 번 거짓말을 하다 나니 입이 썼다. 그러나 세인의 안타까워하는 꼴을 보고는 번번이,
"그래."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나중에는 세인이도 곧이 듣지 않고 덮어놓고 어머니 손목을 잡아끌고 나섰다.
"아부지한테 가자! 아부지한테."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다음날 세인의 손목을 잡고 나섰다.
"야, 난 가겠다."
예쁜이는 부엌으로부터 나왔다.
"어디?"
"견디겠니? 야 때문에."
모녀의 눈에는 약조나 한 듯이 일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오마이, 나도 가!"
따라 나선다.
"너까지 그러지 마라. 하도 조르니 바람이나 쐬이랴고 촌으로 슬슬 돌아다니다가 올 테다. 어서 어린 것 데리고 집이나 잘 보아라."
등에 업힌 애를 들여다본다.
"엄마, 엄마!"
"오, 다녀오마 아가."
이렇게 어르고 나서 영감이 떠난 길로 정처없이 나섰다.
예쁜이는 하는 수 없이 신작로까지 따라나섰다.
"그럼 이내 와. 오마이 안 오면 나도 곧 갈 테야."
머리를 푹 숙이고 울었다.
"오냐"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였다. 무 밑둥 같은 딸 하나를 남겨놓고 다시 오게 될지 말지한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가슴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세인은 산모롱이로 돌아갔다. 그는 펄썩 주저앉아 어린애를 집어 동댕이쳤다.
"이년의 계집애! 네 아비 때문에 우리 어머니, 동생은 떠나누나. 죽어라!"
어린애는
"악"
하고 어머니게로 달려들었다.
한참 성풀이를 하고 나니 도리어 후회가 났다.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나, 내 팔자 사나워 그렇지.’ 이렇게 위로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떠난 지 며칠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거의 일 년이 지난 후에 이러한 풍문이 돌았다. 예쁜 아버지가 춘식이를 죽이려다 못 죽이고 도리어 잡혀서 몇 달 후에 애통이 터져 죽었다는 것, 어머니와 세인이도 이 소식을 듣고 한강에서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예쁜이는 그만 실신상태에 빠졌다. 먹을 것 없고 입을 것 없는 데다 하늘같이 믿고 바라던 어머니, 세인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희망조차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는 담배를 배우고 술을 입에 대었다. 그리고 난봉가를 불렀다.
냄새를 맡은 사내놈들은 수캐처럼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여보세요 이리 와 앉으세요."
처음 보는 사내에게도 탁탁 매어 달려 손을 잡아끌었다.
"술, 술 사주어요 술 아니면 난 못 살아요!"
그의 눈은 가느다랗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사내를 얻게 되었다. 그 통에 몇 놈이 저마다 주먹담판을 하는 바람에 게딱지같은 집이 몇 번이나 무너질 뻔하였다. 그러나 그 중 힘센 매질꾼으로 호난 김명구가 이기고 말았다.
어머니를 빼앗긴 이제 네 살 된 어린 아기는 윗방 구석에서 해종일 혼자서 놀다가는 안타깝게 어머니가 그리워서 샛문 사이로 고개를 갸웃하고,
"엄마!"
어머니는 사내놈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갖은 아양을 다 피우다가,
"이 계집애, 가만있어라."
소리를 냅다 치는 바람에 어린애는 눈을 꼭 감고 숨어 버리고 말았다.
예쁜이가 사내 얻으면서부터 아기는 윗목 구석에서 혼자 자게 하였다. 밤중에 한 번씩이라도 깨보면 고양이 나드는 윗방이 무서웠다. 그리하여 눈을 꼭 감고 이불을 치덮을수록 여전히 무서워졌다. 그러다 혹시 오줌이 마려우면,
"엄마!"
가만히 불렀다. 이마 끝에 땀이 쪽 흐른다. 대답을 기다리던 그는 차마 또 다시는 불러보지 못하고 자리에 그냥 싸 버리고 만다. 아침이 되면 예쁜이는 아기를 차고 던지고 하며 때렸다.
"다시 또 오줌 싸겠니?"
망치를 둘러메면,
"안 그래……"
조그만 손을 눈에 꼭 붙였다.
끼니때가 되면 사내는 번번이 아기를 미워하였다.
"밥을 작작 쳐 먹어야지."
그 커단 눈을 흘깃흘깃 하였다. 예쁜이는 자기가 욕하고 때릴 때에는 모르다가도 사내가 무어라면 화가 바짝 치밀었다.
"여보, 먹는 건 죄 아니랍데다. 밥 먹는 것까지 그렇게 밉소."
밥숟갈을 뎅그렁 내치고 새침하여졌다. 사내는 눈을 부라리며,
"그래, 밉다! 꼴 못 보겠다. 모두 나가!"
발길로 예쁜이를 내밀쳤다. 예쁜이는 얼굴이 발갛게 되어 사내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꼴을 본 아기는 나분 술을 놓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뽕나무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나가고 오던 사람들은 어린것이 하도 괴망스럽게 무엇을 생각하는 듯한 것이 귀엽고도 불쌍하였다.
"아가, 엄마가 무어라든?"
손을 잡고 들여다보면 잠자코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그럼 아빠가?"
뒤를 돌아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는 아기를 덤썩 안고 자기 집으로 갔다. 한참 후에 예쁜이는 아기를 찾아와서 그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리하여 사내의 골을 풀어주려고,
"아가, 아빠라고 해보아라."
웃으면서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눈이 둥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아빠다! 그래야 과자도 사오고 명절빔도 해준다."
예쁜이는 성이 와락 나서,
"아빠라고 불러 봐!"
아기는 눈을 꼭 감고,
"아니야, 아빠는 없어……"
사내는 골이 한층 더 났다. 예쁜이는 눈을 부릅뜨고,
"나가라, 이 계집애. 너 같은 것 길러서 소용없다!"
사내 할 말을 미리 앞질러서 그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사내는 흥 하고 머리를 외어 꼰다. 예쁜이는 아기를 내밀쳤다.
"나가라, 이 계집애!"
그는 문턱을 꼭 잡고,
"아빠!"
소리 없이 눈물이 샘솟듯 하였다.
"아비라는 소리 듣기 힘들다."
씩 돌아앉았다. 예쁜이는 웃으며,
"아직 철없으니까 그렇지요."
변명하였다.
이렇게 사내와 딸 사이로 다리를 놓다가, 놓다가도 결국은 명구와 예쁜이는 갈라지고야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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