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샌프란시스코에 가신다면 머리에 꽃을 꽂는 걸 잊지 마세요..
(Scott Mckenzie: San Francisco)
--오래전, 무척 좋아했던 노래입니다. 미국약사로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고 싶어서.
길을 가다가 이 노래가 들려오면 지나치지못하고 노래가 끝날때까지 멍하고 서 있어요. 지금도..
나이 50을 바라보는 현직약사입니다.
약대에 재학하면서 병역문제나 대학원등 진로고민을 하시는 후배님들께
부족하지만 진심어린 마음 하나를 전합니다.
저는 약대 4년중 4학년생활을 가장 편하게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도 타 학부 학생들은 취업준비로 바쁘던 시간에 저와 동기들은 남의 일 인양 여유를 가질 수 있었지요.
(지금도 일부 재학생들은 그러겠지요.)
국가고시에 불합격할 위험이 보이는 학생은 학부모소환을 시키고 유급경고를 할 정도로 국가고시준비를 시키던 약대에
다닌 탓으로 오히려 정신적,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었죠.
그 과정에 순순히 복종하면 약사국시는 걱정없었으니까요.
국가고시는 걱정하지않아도 될 정도의 성적이었기에 졸업반이면서도 저학년때보다 시간적인 여유를 느꼈습니다.
과 수석은 약사국시 전국수석을 기대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당시 상대적으로 누렸던 시간적,정신적인 여유..
하지만 그 캠퍼스생활이 세월이 흐른 지금은 큰 회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그 여자 잡을 걸.. 이 남자와 결혼하지 말 걸.. 도 많지만
성인남녀,세대구분없이 가장 후회하는 일이,
공부 좀 할 걸..이라는 것을 어느 방송기사에서 본 듯 합니다.
약대입학하시고 나면 많이 느슨해지시죠. 작은 꿈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으로.
지긋지긋한 공부스트레스의 압박에서 해방된 듯한 착각으로.
아니면 의치한입학에 대한 미련으로 새학기 우울증을 겪는 분도 계실테고요.
이제 라이센스를 얻으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학과공부와 캠퍼스생활에 익숙해져 흘러가는 시간들..
제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은 약사가 되는 일을 최소한의 일이라 생각치못하고 최대라 생각했던 안일함이었습니다.
약대 입학후 새로운 출발. 하나에 하나를 더 할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개국,공직진출,제약회사취업,대학원진학,연구직외에도 변리사,외국약사로의 진출,사법고시,의대편입등
정신적,시간적으로 모든 영역을 넘볼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현실에 안주해 버린 약대생활4년.
약사라는 영역을 바탕으로 그 역할을 넓힐 수 있는 인생을 생각하지 못한 대학생활의 나태함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선택에 의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여러분은 선택이상의 필요한 부분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라이센스하나로 틀을 이루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의치한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각 포탈의 논쟁에서 약사로서의 사회생활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어려울 때 큰 위력을 보일 수 있는 나만의 스펙이 이젠 약사도 필요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게 싫다면 살아 갈 인생의 질을 조금이나마 윤택하게 하기위해서라도..
군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우연히 외국약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OVERSEAS PHARMACIST! 설레는 말이었죠. 외국, 미국약사가 될 수 있다!
문과교차지원으로 입학한 저는 졸업때까지도 약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않은 시절에 알게 된 그 사실은 저에게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종로근처 OPI(overseas phamacist institute)사무실에서 조석준박사님이 임상약학과 1차시험(FPGEE) 강의를
하셨습니다.
미국현지에서 1차시험준비를 하시다가(수차례 낙방후)오신 약사님들을 통해 우리 현실과는 다른 미국약사의 위상과 연봉,
약사로서의 보람과 사회적 인식,현지 생활등을 생생히 들었습니다.
1년공부후, 비자를 받고 1차시험 원서접수하면서 시카고행 비행기를 예약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사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 있던 저는 고민끝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전공과목을 원서로 다시 배우고 약사국가고시준비와는 다른 임상약학을 공부하면서 진짜 약사가 되간다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영문성적증명서를 받아보고서 흘려보낸 캠퍼스생활을 반성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순간 가장 아쉬웠던 점은 약대 재학중에 이런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에도 남의 등에 떠밀려 약대에 입학해서 방황했던 시간들보다
그 길에서 새롭게 발견한 오솔길을 따라 큰 길로 개척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에 더 남아 있습니다.
약대재학중인 사랑하는 후배님들!
하나에 하나를 더하는 일에 미치세요. 훗날 저처럼 후회하지 마시고.
학과공부 열심히 하셔서 장학금으로 부모님어깨를 단 한 번이나마 편하게 해 드리는 것도
하나에 하나를 더하는 일입니다.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셔서 소중한 경험을 가득 쌓는 일도 하나를 더하는 일이구요.
당구를 치셔도 동기들끼리 재미로만 치지마시고 포켓볼에 진지하게 미치면 귀하게 쓰일 곳이 있습니다.
재학중 생약에 미치시면 개국시 큰 힘이 됩니다.
영어에 미치면 캐나다약사가 보입니다.(캐나다약사는 4년제 졸업생도 응시 가능합니다)
1.2학년 학과공부에 미치면 약대입문시험이 보입니다.(약대생이 다시 약대입문시험을 본다고 미친게 아닙니다)
어학능력과 약대입문시험에 좋은 성적을 보이면 미국약사가 보입니다.
(2003년이후 4년제 약대졸업생은 미국약사시험에 응시하지 못합니다. 미국약대편입외에는 방법이 없지만
6년제 약대졸업생은 응시가능합니다. 외국인으로 미국약대편입은 사실 어렵지요. 어렵겠지만 뜻이 계신 분들은
6년제 약대재입학이 현실적으로 나은 방법입니다.)
외국약사 준비하시는 연령대가 3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 다양합니다만,
가장 큰 벽은 어학능력입니다.
대부분 결혼하시고 자녀들 어학과 유학문제로 기러기아빠를 고민하게 되면 외국약사를 생각하게 됩니다만
뒤늦게 다시 공부하기가 쉽지 않고, 특히 회화능력 부족으로 중도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의치한의사보다 약사라는 직업으로 외국으로 진출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미국약사취득후 유럽진출(FTA,기타 국가간 인정협약)하시려는 약사님도 계셨고
향후 확대 될 제주도,영종도경제특구에서 외국인약사로서의 활동을 목표로 공부했던 약사님도 있었습니다.
제가 드린 얘기는 약사로 진출할 수 있는 여러 진로중 한 부분이고 이런 선배도 있구나라고 편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흘러가는 약대생활을 꽉 붙잡고 자신에게 따져 물어가는, 유익하게 미쳐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첫댓글 where did you get this inter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