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베이비> 폴 해기스의 두번째 프로포즈
당신의 가슴에 손을 대는 순간,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LA 교외의 한 도로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현장에 도착한 수사관 그레이엄의 표정이 당혹과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순간, 이야기는 36시간 전, 15명의 삶으로 돌아간다.
백인 부부 릭과 진 - 지방검사 릭과 그의 아내 진이 두 흑인청년에게 차를 강탈당한 밤, 아내 진은 주위 모든 것에 화가 난다. 집문 열쇠를 수리하러 온 멕시칸 남자 대니얼은 의심스럽고 가정부에겐 짜증이 난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모르고 있다. 자신이 정치적 성공에 몰두한 남편 때문에 외로우며, 36시간 후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을 만난다는 것을...
흑인 부부 카메론과 크리스틴 - 같은 시간, 흑인이자 방송국 PD인 카메론과 아내 크리스틴은 지방검사 릭의 강탈당한 차와 같은 차종이라는 이유로 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에게 검문을 당한다. 라이언은 여자에게 몸수색을 이유로 성적 모욕을 준다. 수치를 당한 아내는 남편을 비난한다. 그러나 남편은 그 사건이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줄까 두렵다. 아직...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 - 라이언은 아버지의 병 수발이 힘들기만 하다. 그의 폭력은 병든 아버지로부터 받는 아픔에 대한 화풀이일 뿐이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수치심을 안겨준 흑인 여자와의 운명적 만남을 알지 못한다. 또한, 핸슨은 라이언의 행동에 분노하지만 36시간 후, 그 역시 편견에 사로잡힌 엄청난 충돌이 있음을 감히 상상도 못한다.
이란인 파라드와 멕시칸 대니얼 - 페르시아계 이민자인 파라드는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을 사고 열쇠를 고치지만,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도둑이 가게에 침입한 날, 그것이 열쇠 수리공 멕시칸 대니얼 때문이라고 생각한 파라드는 결국, 대니얼의 어린 딸을 향해 총을 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오해는 기적과 구원을 가져온다.
흑인형사 그레이엄 - 살인사건의 현장, 그가 보고 있는 시체는 자신의 동생이다. 백인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를 선택한 그이지만, 지금 그 앞엔 동생의 시체와 함께 ‘동생을 죽인 살인자는 너’라는 어머니의 비난만 남아있다.
흑인청년 피터와 앤쏘니 - 36시간 전, 지방검사 릭의 차를 강탈했던 피터와 앤쏘니. 피터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끝에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충돌을 맞이한다.
LA.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36시간을 향해 그들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며 달려가고 있다.
아직, 그들은 모르고 있다. 서로와의 충돌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크래쉬' 이런저런 이야기
아픔의 밑바닥에서 묻다
“어떻게 해야, 당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폭발적 반향을 일으켰던 2005년 미국 개봉 당시, 영화 <크래쉬>는 인종 갈등을 다룬 영화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랍인, 한국인... <크래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서로 다른 표정의 얼굴들. 그러나 영화 <크래쉬>가 단지 정치적이거나 논쟁적 영화라면 그처럼 함께 느끼고, 함께 아파하며 사랑과 감동이라는 보편적 정서에 다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속, 그들이 찾고 싶어 하는 희망에 그처럼 함께 목말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기 한 경찰(맷 딜런)이 있다. 그는 늙고 병든 아버지의 간호에 지쳐 있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아픔은 타인에 대한 그의 배려를 앗아간다. 그리고 그는 알지 못한다. 자신의 일탈적 충돌이 전혀 뜻밖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인생이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는 것을. 관객은 또 다른 여자(산드라 블록)를 만난다. 그녀는 정치적 야심에 목마른 남편(브랜든 프레이져)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녀의 아픔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의심하고 소리치고 스스로 상처 입히는데, 왜 아파야 하는지 그녀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 직전의 사고현장에서, 몸을 가눌 수 없는 고통의 극한에서, 아픔의 밑바닥에 이르러서야 깨닫기 시작한다. 당신과 친밀하고 싶고, 당신과 소통하고 싶고,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받아들이고 싶었다는 것을! 충돌(Crash)이란 접촉(Touch)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며,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처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스스로 묻게 된다. "어떻게 하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까?...”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Stranger)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그들 사이에 가로 놓여 있다. 그 공포와 단절, 몰이해가 한 젊은 청년의 죽음을 결정하는 충격적 반전을, 영화는 침착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폴 해기스는 화해의 손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상처난 당신의 마음에 관계와 사랑의 의미를 되묻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영화이자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려줄 큰 충돌이 2006년 봄, 당신을 찾아온다.
헐리웃 톱스타들, 그들의 사랑이 특별한 기적을 만들다!
<스피드>의 산드라 블록, <오션스 트웰브>의 돈 치들, <미이라>의 브랜든 프레이져, <미션 임파서블 2>의 탠디 뉴튼, 그 외에도 맷 딜런, 라이언 필립, 루다크리스 브리지스 등...
우린 크레딧 리스트에서 이 화려한 스타들의 이름을 한꺼번에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제작비가 650만 달러? 알려진 바대로 산드라 블록이나 브랜든 프레이져의 출연료는 1,500만 달러를 넘는다. 배우 한명의 출연료조차 되지 않는 비용으로 그 많은 스타들을 총 동원,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기적이 일어났다!
"대본을 읽었을 때 완전히 큰 거 한방 맞은 기분이었어요." - 산드라 블록
"놀라웠죠. 구성과 인물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 브랜든 프레이져
"인물들이 선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요.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 맷 딜런
"정말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내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예요" - 라이언 필립
"사람들에게 진실의 힘을 보여주어야 해요." - 루다크리스 브리지스
대본을 읽고 ‘온 몸이 짜릿했다’는 골든 글로브 수상자 ‘돈 치들’은 “어떤 역이든 배역만 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산드라 블록’ 역시 “어떤 역이든 상관없으니, 출연만 했으면 좋겠다.” 는 고백을 한다. 그들이 원한 대가는 자신이 <크래쉬>에 출연한다는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감독 폴 해기스는 배우들 모두가 극에 완전히 몰입했고, 단 한순간도 스타의식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즉, 배우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면서 각자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고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건 모두가 진정으로 협력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헐리웃 최고의 스타들을 말 그대로 ‘매혹시킨’ 진실의 힘을 가진 영화 <크래쉬>.
이 매력적인 배우들의 엄청난 앙상블은 올해 제 12회 미국영화배우협회(SGA)에서 주는 ‘영화부문 최고의 캐스팅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씨네21 리뷰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작가 폴 해기스는 무장한 두 청년에게 자동차를 뺏긴 적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두려움을 털지 못했던 그는 자물쇠를 모두 바꾸었고, 강도들에 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왔을까, 그들은 재미로 자동차를 털었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 범죄자라고 생각했을까.” 폴 해기스는 그 경험에 25년 동안 LA에서 보고 겪었던 일들을 보태어 현실에 기반한 <크래쉬>의 시나리오를 썼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편집상을 수상한 <크래쉬>는 그가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가 되었다.
<크래쉬>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드는 LA에서 서른여섯 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고 있다. 흑인 형사 그레이엄(돈 치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밤의 LA 도로변에서 총에 맞아 죽은 청년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영화는 서른여섯 시간 전으로 돌아가 청년이 살해당하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준다. 지방검사 릭(브렌단 프레이저)과 그의 아내 진(샌드라 불럭)은 권총을 가진 흑인 청년 두명에게 자동차를 빼앗긴다. 집에 돌아온 진은 신경질적으로 행동하며 자물쇠를 바꾸러온 열쇠공까지 의심한다. 멕시칸 열쇠공인 대니얼은 페르시아계 이민자 파니드의 가게 자물쇠를 수리하다가 문을 고쳐야만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파니드는 그의 충고를 무시하고, 가게에 도둑이 들자 대니얼을 원망한다.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는 경찰 라이언(맷 딜런)은 TV 프로듀서 카메론(테렌스 하워드)과 크리스틴(탠디 뉴튼) 부부가 타고 가던 자동차를 검문하면서 사회보장국의 흑인 직원에게 수모를 당했던 화풀이를 한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후배 경찰 핸슨(라이언 필립)은 상사에게 파트너를 바꾸어달라고 요구하지만, 자신도 흑인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LA는 면적이 1200㎢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다. 땅은 넓지만 대중교통이 충분하지 않은 LA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타인에게 말을 걸지 않으며, 그레이엄의 대사처럼 “언제나 금속과 유리 뒤에 숨어 있다”. 폴 해기스는 이처럼 고립된 섬들이 모인 군도와 같은 도시 LA에서도,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자신이 던진 반작용의 파장 안에 놓이곤 한다고 믿는다. 야심에 불타는 검사 릭과 그에게 이용당하는 그레이엄은 자동차 강도사건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세개의 꼭짓점에 놓인 인물 중에서 누구도 그 사슬을 눈치채지 못한다. 라이언과 크리스틴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재회하고, 핸슨은 엉뚱한 장소에서 분노를 터뜨린 카메론의 목숨을 구하고, 파니드의 딸은 가출한 동생의 시신을 확인하러 병원에 온 그레이엄을 맞는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과 만남에는 인종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겹겹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커다란 폐곡선을 완성하는 <크래쉬>는 그 곡선 안에 놓인 사람들의 행동에서 인종에 기반한 편견을 찾아낸다. 선의나 악의가 아닌 그저 편견을. 젊고 때묻지 않은 경찰 핸슨은 부당하게 검문을 받은 카메론을 동정하여 그를 도우려 애쓰고, 인적없는 도로에서 흑인 청년을 자동차에 태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청년이 강도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 핸슨의 선의는 두 젊은이 모두에게 재앙이 되고 만다. 트레일러 주택에 사는 라이언은 고급 자동차를 모는 흑인 부부에게 부당한 폭력을 가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교통사고를 당한 흑인 여인을 구하는 헌신적인 경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크래쉬>는 LA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공격하는 적극적인 영화라기보다 일종의 운명론에 수긍하는 소극적인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얽혀 있고, 그 그물망 안에서 작은 몸짓 하나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그리하여 몇푼 아끼려다가 전 재산을 잃은 파니드는 그에게 충고를 해주었던 열쇠공 대니얼을 원망하여 총을 겨누지만, 발사된 총알은 뜻밖에도 구원의 기회가 되고 만다. 이처럼 수동적인 판타지에 기대고 있는 <크래쉬>는 오히려 그 때문에 LA를 벗어난 지역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영화가 됐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 마크 R. 해리스는 “모든 사람과 문화는 고유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이든 유대인이든 혹은 스웨덴이나 독일의 백인이든, <크래쉬>와 같은 대사를 말하고 긴장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크래쉬>는 LA라는 도시 자체를 캐릭터로 만들기도 했다. 수집에 기초하여 <크래쉬>의 시나리오를 창작한 폴 해기스는 제작기간 35일과 제작비 650만달러라는 열악한 조건에도 LA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에피소드들을 채집하듯 사실적으로 찍었다. 이 영화는 LA 한낮의 햇살과 도로를 메운 한밤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조명 삼아 LA 부촌과 빈민가를 두루 헤집는다.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LA는 천사들의 도시라기보다 높은 파티션으로 구획을 나눈 삭막한 사무실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크래쉬>는 언덕을 경계로 하여 흑인과 백인 거주지역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이 도시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기교를 구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에 잇대어놓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인연을 맺어주고, 여러 개의 사건을 실뭉치처럼 뭉쳐두었다가 다음 순간 풀어헤치기도 한다. <크래쉬>가 아카데미 편집상을 수상한 건 많은 이들이 예상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논란을 부를지 모르는 영화에 낮은 개런티로 출연한 배우들의 재능과 용기가 없었다면 <크래쉬>는 무척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출연을 결정한 돈 치들과 어떤 역이든 상관없이 출연하겠다고 선언한 샌드라 불럭, 분노에 찬 하층계급 백인을 연기한 맷 딜런, 끊임없이 세상을 의심하는 자동차 강도 역의 래퍼 루다크리스 등이 이 복잡한 이야기를 하나로 아우르는 현실적인 톤을 불어넣었다. 글 김현정 2006-04-04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