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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역 앞 ‘가고파 시비’ 곁에 세워진
이은상 선생 폄훼 철판 碑는 없어져야 한다
-고향의 위대한 선조를 왜 억지로 지우려 하는가
오하룡 시인, 마산문협 고문
1.들어가기,
-노산 선생의 허물을 억지로 만드는 사람들
마산역 광장에는 마산의 상징 문인 이은상 시인의 작품 <가고파>가 웅장한 돌에 새겨져 서 있다. 이 비는 저 지난해(2013년) 2월 ‘가고파’를 사랑하는 시민 단체인 마산 로타리클럽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어색하게도 이 ‘가고파’ 시비 옆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요람 민주성지 마산 수호비’라는 이름의 철판 비가 낯설게 서 있다. 이 비는 노산 이은상 선생에 대한 해당되지 않는 허물을 들추어 마산에서의 노산 선생 지우기에 앞장선 일부 시민단체가 세운 것이다.
이들은 얼토당토않게도 노산 선생의 친 독재 협조, 3.15폄하 등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이유를 들어 설치 반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그 시비를 제막하려하는 전날 밤, 시비 전면에다 페인트를 들이붓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시비제막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그 자리에서 반대시위를 벌이던 그들도 마산로타리클럽 회원과 마산 문인들을 비롯하여, 노산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완강한 대응에 의해 자신들의 주장은 무색해졌다. 그러자 그들은 상습화된 왜곡된 논리로서 이 비를 세우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이 땅의 관리인 마산역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불법으로 세운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 허구성을 낱낱이 지적한 마산문인들의 입장발표가 있었고, 그 밖에도 본인을 비롯하여 여러분이 칼럼 등을 통해 그들이 문제 삼는 불합리한 부분을 해명하여 왔다. 이런 사정에 밝은 분들에게는 중언부언의 군소리가 될 것으로 여겨지나, 그간의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자칫 이들의 주장에 대해 이해가 쉽지 않을 우려가 있어서 다시 둔필을 들어 이들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용기를 가져본다.
여기서 용기를 들먹거리는 것은, 이 문제의 비를 세운 사람들이 또 거친 대응을 해오리라 여겨져서이다. 그렇다고 진실을 왜곡한 현실을 어찌 그냥 방관할 수 있으랴.
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비의 ‘상단 평면’에는, 그들의 눈에는 노산 선생의 행적에서 허물로 덧씌운 내용을 열거하고, ‘비의 정면’에는 시 노래 형식을 빌어 ‘가고파’를 패러디한 노래 글을 만들어 읊어 놓았다. 그 아래에는 이 비를 세운 취지문, 참여한 단체를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노산 선생을 흠집 내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들은 처음에는 이은상 선생에게 친일혐의를 씌워 가장 큰 문제인 것처럼 앞세웠다. 친일 혐의가 없자 이번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의 친 독재와 3.15의거에 대한 폄하를 문제 삼아 왔다. 이 비문의 핵심도 이것에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마산문인들은 이들의 부당성을 끊임없이 지적하여 왔다. 그러나 이들은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왜곡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친일 흔적이 없으면 그 부분만이라도 솔직히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명색이나마 사회 정의를 표방하는 시민단체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없는 친일로 하여 그동안 노산 선생은 얼마나 명예를 훼손당해 왔는가를 생각하면 이 사실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한번 문제 삼으면 비록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하더라도, 반성은커녕 다른 문제 꺼리를 들고 나와 우겨대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는 기왕에 이런 비가 섰으므로 이에 대해 아무런 반론이 없으면 이 자체가 진실인양 인정될 우려가 있으므로, 새삼 중언부언 되는 일이지만 다시 해명성 설명을 곁들이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침묵이 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것이 철칙이므로 지금 서둘 것이 없다’고 자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마냥 침묵한다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양식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보며, ‘언젠가’라는 불확실한 미래를 무한정 기다리는 것은 책임회피로 보여 둔필을 들기로 한 것이다. 이제 노산선생은 마산 출신의 대 시인으로서의 위치에 당당히 복원되어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보는 것이다.
2.철판비의 내용
그러면 구체적으로 문제의 철판비 속의 내용을 진실 측면에서 분석하여 보기로 한다. 철판비를 구성한 기둥에 ‘불합리 불합법’이란 글씨가 낙서처럼 흐리게 쓰여 있는 게 보인다. 이 글씨가 이 비의 핵심임을 드러내고 있다.
‘불합리 불합법’은 노산 선생이 3.15 의거를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몰아가는 저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노산 선생이 언급한 ‘불합리 불합법’은 당시 3월15일 일어난 ‘마산사태’ 또는 ‘마산사건’을 일어나게 한 원인이 당시 집권 자유당 정부라는 점을 지칭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노산 선생이 ‘3.15의거를 불합리 불합법한 불상사’라 한양 몰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다시 자세히 풀어가겠지만 ‘불합리 불합법한 불상사’가 아니라 ‘불합리 불합법이 빚은 불상사’로 언급한 점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진실의 접근인 것이다.
1) 철판비 상단 평면의 비문모두 선으로 8개 단락으로 구획 짓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좌측부터 시작
첫째 단락
이승만 정권하에서
3.15가 일어나기 얼마 전 이은상은 문예유세단을 조직하여
자유당 대구 유세에서 시국을 임진왜란과 비교하면서
“이순신 같은 분이라야 민족을 구하리라 그리고 그 같은 분은 오직
이대통령이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둘째단락
‘28일 인천 유세에 이어 실시된 동당의 전국유세 계책은 다음과 같다.
오일 하오 2시(대전) 이은상’
-1960년 2월 28일자 <서울신문>
셋째 단락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 시인 이은상 씨는 이승만 박사의 위대함과 아울러
이기붕 의장의 성실하고 자애로운 인간성을 설명하여 깊은 감명을 주었다.”
-1960년 3월 5일자<서울신문>
넷째 단락
“(이은상 선생에게 나온 문교부 지원금을) 군사혁명을 하는데 좀 써야겠다,
이해해 달라고 하니까 (이은상 선생이) 동의해 주셨어요.
516 군사혁명 공약을 이은상 선생에게 맡기자는 얘기도 있었는데,
거사시기가 노출 될까 포기했습니다.”
-2002년 4월호 <월간조선>(‘두목 김용태, 혼신의 5시간 증언’)에서
*김용태는 군사정권의 무임소 장관을 지내기도 함.
다섯째 단락
“...조상의 얼과 전통을 찾아서 되살리고
세계의 한국으로 큰 발자국을 내디뎠기
민족의 영도자외다, 역사의 중흥주의자외다”라고 찬양
-박정희 묘비 헌시비문 中
여섯째 단락
소위 마산사태에 대한 질문에
‘불합리 불 합법이 빚어낸 불상사’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비정상적인 사태’
‘무모한 흥분’이며 ‘시위가 확대되면
‘과오와 과오의 연속으로 이적의 결과‘가 되고 말 것이므로
마산시민들에게는
‘내가 마산사람이기 때문에 고향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 자중하기를 바란다.’
-1960년 4월 15일자 <조선일보> ‘마산사태를 이렇게 본다’ 라는 인터뷰 기사 中
일곱째 단락
이 겨레 위하시어 한평생 바치시니
오늘의 백수홍안 늙다젊다 하오리까
팔순은 짧으오이다 오래도록 삽소서
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 위해
일생을 한결같이 몸 바쳐 오신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
1955년 <희망> 4월호에 ‘송가(頌歌)’라는 제목으로 이은상이 지은 이승만 대통령 탄신 80주년을 기념하는 축시
여덟째 단락
당신 원로 중 원로인 이은상이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에게 바친 경하글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당선을 경하하며”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여론“
“아울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국민의 간절한 뜻을
이 자리를 빌어 말씀 드리고자 한다.”며 글 아래 자필 서명을 남겨 놓았다.
-<정경문화> 1980년 9월호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2) 앞 정면의 글
(위 평면 비면의 내용을 ‘시인의 친독재가’라는 제목을 붙여 가고파 시풍으로 패러디 하고 있다. 필자 주)
시인의 친독재가
이승만 자유당 영구집권 음모 동조
독재자와 그 후계자 정부통령 당선 위해
전국을 유세하며 부정 선거 힘보탰네
3.15와 4.11 마산 사건은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
지성잃은 데모요 비정상적 사태로다
고향걱정 한다면서 은근슬쩍 겁주기를
무모한 흥분으로 과오를 범치 마라
과오와 과오 연쇄는 필경은 이적행위
4월 학생혁명 탑문 516위해 써 줬을 뿐
쿠테타 협력 유신지지 학살자에 아첨 떨며
독재 권력 품속으로 가고파라 가고파라
(사이에 ‘큰 글자로 한국민주주의 요람
민주성지 마산 수호비‘라고 제목을 달고 그 아래 취지문을 넣음, 필자 주)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진실을 덮을 수는 없고 거짓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 역사의 정수, 3.15 마산 정신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은상의 반민주 친 독재 행적을 널리 시민에게 알리고
3.15정신을 올곧게 계승하기 위하여
뜻있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이 비를 여기에 세운다.
2013.10.
315정신계승 시민단체연대회의
전국철도노동조합 부산지방본부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3. 진실 접근을 위한 내용 분석
1) 비면의 평면에 나열된 8개 단락의 글에 대하여
첫째단락;
*‘이은상은 문인유세단을 조직하여’라고 된 부분; 이은상 선생이 직접 유세단을 조직하였다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있을 때 그렇게 몰아갈 수 있다. 그런 제시 없이 두루뭉수리 그가 선거유세단을 조직한양 즉, 주체인양 표현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고 말하였다고 한다.’라고 한 어미 부분; 직접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애매하게, ‘말하였다고’ 하고 있다. 누가 어디서 그렇게 말했는지, 아니면 어떤 매체가 보도했는지 밝히지 않으면서 이처럼 얼버무린 것은 진실이라 할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의 상징인물이 된 것도 그가 퇴진(하야)하고 난 이후다. 그 전에는 그런 개념이 없거나 희박하였다. 그렇다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 표현은 이은상의 개인적인 신념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둘째 단락;
*서울신문 1960년 2월 28일 날짜, 그날 오후 2시 자유당의 인천 유세에 이어 다음달 5일 2시 대전 유세에 이은상 선생이 나선다고 밝힌 기사로, 첫째 단락에서 의문시 되는 선생의 유세 참여 근거 제시로, 그 연장선상에서 문제를 인식하라는 것으로 억지 나열에 불과하다.
셋째 단락;
*서울신문 3월 5일자에 난 기사로 유세에서 ‘이은상 시인이 이승만 박사의 위대함과 아울러 이기붕 의장의 성실하고 자애로운 인간성을 설명하여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 표현을 썼는지 밝혀야 하고, 강연 전문의 전체 문맥에서 파악해야 할 문제이지 부분만으로 그를 부정선거의 앞잡이인양 모는 것은 진실이 아니지 않는가.
*이 부분도 첫째 단락에서처럼 애매한 의문제시로 문제 삼자는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
넷째단락;
* 5.16혁명 세력과 친밀함을 허물삼아 노산 선생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위한 증거제시로 보인다. 5.16주체세력인 김용태 씨의 2002년 4월호 월간 조선의 증언으로 노산 선생에게 개인적으로 지원된 금액을 혁명에 쓰겠다니까 동의했다는 것이다. 혁명이후 40년이나 지난 일로 김용태 씨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도 의문이고, 그들로서는 노산의 협력이 그들이 한 짓을 합리화 하는 수단으로 중요하므로 이런 말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런 증언을 신뢰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식의 흠을 잡자면 누군들 흠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부분은 노산 선생의 행동이 그간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당시의 분위기로 봐 혁명세력은 노산을 어떻게든 이용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권력에 노산 선생이 직접 가담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다섯째 단락;
* 박정희 대통령 추모 헌시 쓴 것을 잘못인양 문제 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사후 4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에 와서도 국가산업화 발전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 민주화측면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산 선생은 박정희 통치 18년을 지켜봐 왔다. 그런 그가 확고한 신념으로 그 인물을 평가하여 추모시를 썼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신념의 소산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여섯째 단락;
조선일보 1960년 4월 15일자 <마산사태를 이렇게 본다>라는 6개 항목 설문에 대한 노산 선생의 답변에 대한 것이다. 노산 선생의 3.15폄하운운은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작은문학 49호(2013년 봄 여름호, 29페이지)를 비롯하여 인터넷 불로그 등에 <노산 선생은 3.15를 폄하하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분석 기고한바 있다. 이 단락에서 저들은 필자를 비롯한 문인들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꽉 막힌 왜곡된 고집을 풀려 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지면 사정으로 그 6개 항목을 다시 중복 소개하지 않지만, 그 전문을 제대로 읽어보았다면 이런 억지는 계속 부리지 않을 것이다. 한번 읽어서 이해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더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어떤 이는 노산 선생이 좀 쉽게 답변을 했으면 이해가 빠를 텐데, 한문 투로 써서 일반인들이 어렵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같은 지면의 답변에 소설가 김팔봉은 ‘마산사건이 촉발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에 대해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선거를 부정하게 치른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쉽게 답변했다면 노산 선생처럼 곡해하는 일이 없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쉽게 쓰면 이해되고, 한문 투로 신중한 어휘를 구사한 그것만으로 오해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뜻이 어디 가겠는가.
*‘불합리 불합법(不合理 不合法)이 빚어낸 불상사(不祥事)’에 대하여; ‘마산 사건이 촉발된 근본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데 대한 노산 선생의 답변은 이랬던 것이다. 한문 투의 이 말이 어려워서인가. 이들은 당시의 3.15사건을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한 것을 ‘3.15를 불합리 불합법한 불상사’라고 한양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불합리 불합법’은 ‘3.15의거’를 그렇게 본 것이 아니라 ‘3.15 사태’ 즉, 폭력과 인명살상이 동반된 ‘마산사건’이 터지게끔 원인제공을 한 자유당 정부가 정치적으로 합리적이지 않고 불법적인 부정선거를 저질렀기(빚어낸) 때문에 ‘마산사태’라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저들은 ‘3.15의거’를 ‘불합리 불합법한 불상사’라고 받아들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젊은이들은 그 시대의 어려운 상황을 모르고 있다. 3.15는 ‘의거’인데 왜 ‘마산사태’ 또는 ‘마산사건’이라고 하느냐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의거를 ‘불상사’로 표현한 것에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노산 선생이 설문에 대한 답변을 쓸 때의 신문보도는 ‘마산사태’ 또는 ‘마산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표현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사건’, 그 ‘사태’가 ‘의거’로 규정되기 까지는 그랬던 것이다.
비록 ‘의거’의 성격으로 마산 ‘사건’은 일어났으나 처음에는 난동으로 볼 수 있게끔 격렬한 시민운동으로 일어났다. 부정선거에 대한 자연스런 울분은 점차 국가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이어져 시위가 격화되자, 파출소 같은 공공건물이 불타고 파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불상사’ 즉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므로 ‘불상사’라고 부르게 된 사정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치안을 책임진 경찰과의 필연적인 대립은 선량한 시민의 희생을 불러오게 된다. 이때는 동족상잔의 6.25 전쟁의 참화에서 휴전을 맞고 겨우 7년여가 지난 시점으로 지리산 등의 일부 지역에는 공비의 출몰로 인한 불안감이 채 가시지도 않고 있었다. 나라의 미래를 의식하는 국민이라면 진정으로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당시의 시대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걱정 없는 평화시대에 부정선거가 저질어지고 그에 따라 저항운동이 일어난 한가한 나라 사정이 아니었음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지성(知性)을 잃어버린 데모’, ‘비정상적인 사태’, ‘무모한 흥분’이며 시위가 확대되면 ‘과오와 과오의 연속으로 이적의 결과’가 되고 말 것이므로 마산 시민들에게는 ‘내가 마산사람이기 때문에 고향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 자중하기를 바란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작은문학 49호에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으나 지면이 다르므로 여기서도 약간의 설명을 곁들인다. 이 부분 노산 선생의 우려 섞인 답변은, 어느 한 가지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격렬한 데모에 어찌 이성이나 지성이 통할 것인가. 그러나 노산 선생은 이성적인 ‘지성’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런 기대를 한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되는 격렬한 시위라면 ‘비정상’이지 ‘정상’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공산세력과 전쟁을 겪은 상황이고, 종전이 아니라 전쟁을 잠시 쉬는 휴전 상황이니, 우리나라가 혼란으로 난관에 봉착한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런 사태까지 걱정하여 ‘이적’을 들먹인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따라서 이들이 이런 노산 선생의 답변을 문제 삼는 것은, 황당하게도 노산 선생이 그런 사태를 잘한다고 부추기지 않고 왜 만류하는 태도를 취했느냐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것이다. 부정한 정부를 타도하기 위한 시위이니 노산 선생까지 나서서, 도시야 망가지든 말든 시민들이야 더 희생되든 말든 사태를 확대시켜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논리로 보이는 것이다.
한 도시의 운명이 좌우되고, 사태에 따라서는 더 많은 인명 손실은 물론이고 애써 모은 재산까지 한 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찌 그런 일을 노산 선생이 앞장서 나서지 않고, 수습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문제 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노산 선생은 진정으로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다운 답변을 하고 있다. “내가 마산사람이기 때문에 고향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 자중하기 바란다.” (저들은 ‘자중하기 바란다.’는 표현까지 문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더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해야 된다는 말인가.)
이보다 더한 절실한 당부가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애향, 애족, 애국자를 3.15를 폄하한 사람으로 몰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협소한 의식의 사람들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할 것이다.
일곱째 단락
*1955년 잡지 <희망>에 이승만 대통령 탄신 80주년 축시 쓴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노산 선생이 앞장서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만류하는 태도를 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그가 앞장섰다고 실현 되는 일도 아니었겠지만, 한편으론 평생을 나라사랑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모습을 지켜본 그로서는, 진정으로 그가 나라의 기틀을 잡기위해, 독립운동 할 때의 기백으로 더 집권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더욱 이때는 휴전을 2년 정도 지난 시점이어서, 그가 정치를 잘못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축시를 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노산의 축시가 무엇이 문제된단 말인가.
여덟째 단락
* 정경문화 1980년 9월호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의 노산의 글에 대한 것이다. 여기 비문에 소개한 글과 김봉천(소설가) 지음 <노산 탄신 100주년 기념 노산 이은상 선생)(2002.12.5. 창신고등학교)에 소개된 원문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단순 비교해 보더라고 여기 글은 노산 선생이 전두환 정권에 아부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왜 이렇게 사사건건 노산 선생을 폄훼 왜곡과장하려 할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새 대통령에 바란다
1. 창조적 진화를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2. 자주 민주 노선의 정책 수행자가 되라.
3. 국제적 통찰력의 소유자가 되라.
4, 강력한 지도자로서 국민의 동반자가 되라.
5. 인재를 사랑하고 널리 물어야 한다.
6. 법치와 덕치를 겸행하라.
7. 국민의 스승으로서의 지도자가 되라.
전기 김봉천의 설명에 따르면, 노산 선생이 여기에 응할 무렵은 지병인 방광암으로 고통을 겪을 때여서 전두환 정권과 사적인 관계나 교류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나라만 의식한 진정어린 충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억지로 이 정권에 까지 얽어매어 군사 독재에 협력한양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허물 씌우기가 아닐 수 없다 할 것이다.
2) 앞 정면의 글에 대하여
*‘친독재가’ 내용 분석
첫 연; 노산 선생의 이승만 사랑은, 한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자로서의 이승만을 보는 그 연장선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가 부정까지 해가며 독재하도록 음모하고 동조하였다고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 할 것이며, 한두 군데 유세한 것을 전국을 돌았다고 하는 것도 지나친 과장이지 진실이 아니라고 본다.
둘째 연; 당시는 마산사건, 마산사태라고 부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3.15의거라고 왜 부르지 않느냐고 오늘의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不合理 不合法이 저질은 不祥事’라는 표현을 ‘3.15의거를 불합리 불합법한 불상사‘로 부른 것처럼 억지 써서는 안 된다. ’불합리 불합법‘은 당시 부정을 저질은 자유당 정부를 말한 것이며, 그로 하여 마산사태, 마산사건 즉 ’불상사‘가 일어난 것으로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명료하게 의미가 드러나는데도 두루 뭉실 3.15를 ’불상사‘로 말한 양 몰아가서는 안 된다. 3.15의거가 왜 ’불상사‘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잘 살펴야 한다, 당시는 3.15 의거가 ’마산사태‘, ’마산사건‘으로 불리고, 파출소 등 공공건물이 불타고 파괴되고, 선량한 시민이 피를 흘리는 위중한 사건임을 바로 받아들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정부의 잘못(不合理 不合法)으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不祥事)‘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잘못 표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지성 잃은 데모’요 ‘비정상적인 사태’는 사실 그대로다. 앞뒤 문맥을 자르지 않고 보면 바로 이해된다. 그것을 진실이 아니고 문제가 있는 양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보면 이 글은 억지그대로이므로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워해야 정상이다.
셋째 연; 당시 혁명세력인 김용태의 대담 속에 나오는 내용은, 시간적으로 40년의 간극이 있었던 일로 그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4월 학생비문을 노산이 지은 것을 문제 삼는 것은, 그때가 어느 땐가. 노산 선생이 그 글을 쓰는데 흠결이 있었다면 맡겼겠는가. 상식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신지지 학살자에 아첨 떨다’ 등은, 집권한 전두환 정부에 대한 바라는 바를 응답한 내용에 불과한데 그것이 어찌 아첨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 ‘친 독재가’는 공허한 거짓의 ‘친 독재가’이므로 이 비를 세운 사람들의 스스로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증거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비를 세운 단체의 글에 대하여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진실을 덮을 수 없고 거짓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큰 따옴표로 이렇게 쓰고 있는 부분을 보면, 지금까지 분석에서 드러났듯 이 글은 이 비를 세운사람들 스스로에게 해당하는 글임을 알 수 있다.
저들이 ‘이은상의 반민주, 친 독재 흔적을 널리 시민에게 알리고’라고 한 부분을 가장 먼저 살펴보자. 이은상의 반민주라고 한부분이나 친 독재라고 한 부문도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노산 선생의 정치적인 신념에 불과한 부분이다, 그것을 문제 삼아 자꾸 제기하여 억지 쓰는 편협한 행동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비정상적인 행위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게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3.15의거 정신이란 무엇인가. 부정과 불의를 못 참고 행동으로 나서는 정의감이다. 사실이 아닌 데도 귀 기울이지 않고. 스스로의 자존만을 앞세우는 잘못된 자세를 바로 잡는 것이 3.15정신에 부합되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평생을 애국애족과 애국문학으로 일관한 고향의 대 선배 시인을 욕되게 한 지금까지의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이제부터 선생의 문학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업적을 기리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들의 철판비 옆에는 굴뚝처럼 생긴 철봉으로 된 기둥 조형물이 서 있다. 거기에는 의도적으로 낙서처럼 크게 처리한 한글 글씨가 보인다. ‘마산사태’는 글씨는 또렷하게 쓰고 ‘불합리 불 합법’ 글씨는 약간 흐리게 처리해 놓고 있다.
다시 밝히지만, 우리 문인들은, ‘불합리 불 합법’은 3.15의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의 무능하고 부정선거를 저질러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간 자유당 집권 정부를 말하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해명한바 있다. 그런데도 저들은 마이동풍 격으로 ‘무슨 소리냐, 노산 선생을 매장 시키기 위해서는 3.15의거를 그렇게 말했다고 몰아가야 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은 행태를 지속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억지를 잘 하는 짓인 양 자랑스레 밝히면서 ‘뜻있는 시민들이 이 철판비 건립에 성금’을 냈다고, 그러므로 이 비를 세운 것이 합당한양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분들 중에는 저들에게 동조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데도 진실을 잘 모르고 저들을 후원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도 처음에는 노산 선생을 끈질기게 문제 삼는 단체가 그동안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바로잡고 건전사회로 이끌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을 지켜보고 존경해 왔다. 모르긴 해도 이들은 처음에는 떠도는 소문에 의해 노산 선생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관심을 가졌으리라 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한동안 노산 선생에게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하여 이처럼 해명에 나서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지면에서나 앞서의 여러 지면에서 해명해 왔듯이, 지금까지 문제로 인식해 온 것이 상당 부분 허구였음이 드러나는데도 계속 침묵한다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흔쾌히 진실을 수긍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문제 삼았으니 ‘한 점이라도 오점이 있는 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 하는 식으로 계속 물고 늘어져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도 노산 선생의 평생이 완벽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드러난 행적이나 문학적인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므로 거기에 합당한 공정한 평가를 하자는 것 외에 다른 아무 의미도 없다.
잘못된 편견으로 하여 그동안 마산은 노산 선생을 너무나 그늘 속에 파묻어놓았다. 이제 그 그늘을 흔쾌히 걷어낼 시점에 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행동의 일환으로 먼저 마산역 앞의 ‘한국 민주주의의 요람 민주성지 마산 수호비’라는 구호로 서 있는 ‘철판비’가 철거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비는 노산 선생의 행적을 오해한데서 온 잘못된 실체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슬픕니다.
그러나 지엔북님께서 오하룡선생님의 글을 올려주셔서 고맙구요.
정치판에 휩쓸리지 싫어요.
그럴 힘도 남아있지 않구요.
제가 마산역근처에 있다가 떠난 새 또...
그래도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쓰을 곳이 없소이다.
노래 부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