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즐긴 황금의 연휴였다.
아니 황금보다 더 좋은 연휴였다. 어떻게 황금으로 이처럼 좋은 시간을 살 수 있을까.
6월5일이 아버님 기일이어서 당초 3일 두타산행, 4일 암벽, 5일 별유천지 릿지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시간을 두타산에서 보낼 계획이었는데, 3일 산행이 취소되고 4일 결혼식 참석으로 일정이 반토막 나서 5일 하루만 릿지등반을 하게 되었다. 목적지는 두타산의 별유천지... 몇년 전 동해에 있는 뫼우산악회에서 개척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역시 꿈은 가지고 있다보면 이루어지게 되는 법.
뫼우산악회도 있지만 번거롭게 하고 싶지않아서 후배 재중이에게만 연락하니 흔쾌히 동행하겠다고 한다. 산행 전날 삼척에 잠시 들렀다가 무릉계곡의 무릉반석 식당에 도착하니 밤 12시였다. 대충 근처에 텐트치고 자려했는데 무릉반석이 아직 열려있어서 들어가니 늦은 시각까지 손님을 치룬 모양이다. 동해, 삼척, 강릉지역 산꾼들이 두타산에 올 때는 으례 거쳐가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이곳과의 인연도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갓난쟁이 딸들이 어느새 대학을 졸업고 직장생활을 한다. 연휴에 엄마 혼자 고생할 것 같으니 멀리서 둘째 딸까지 와서 일을 더들고 있었다. 착한 딸들이다. 간단히 한 잔하고 텐트 대신 식당의 마루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아침 8시가 좀 지나자 재중이 왔다. 밤새 야간근무 하고 곧바로 달려와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무릉반석 식구들과 형수님의 맛깔스런 된장찌개에 산에서 따온 표고버섯, 산나물로 아침식사를 하니 얼마만에 먹어보는 고향의 맛인지 모르겠다. 그 사이 뫼우산악회 팀들이 먼저 올라가고 우리도 뒤따라 매표소를 통과하는데 관리소 직원이 한마디 한다. '암벽등반은 안됩니다' 도대체 왜 안된다는 건지, 또 그들에게 되고 말고를 허락한 권한이 있는지 따져보고 싶었지만 말없이 지나쳤다.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
별유천지는 용추폭포와 박달령 갈림길에서 박달골 쪽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었다. 시작 지점이 등산로 바로 옆이라 찿기도 쉬웠다. 도착하니 먼저 출발한 뫼우팀들이 이미 등반을 시작하고 있었다.
두타산 박달골. 6월5일 황금처럼 햇살이 눈부시던 날 별유천지에서 인간세상을 벗어나보고픈 사람들이 모였다.
별유천지 1피치 등반. 1피치는 오른쪽의 크랙과 가운데 슬랩으로도 오를 수 있다.
1피치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뫼우산악회원들... 동해시의 정통 클라이밍 클럽이다.
나의 오늘의 자일샤프트(Seilschaft) 재중이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왼쪽 위로 약간 사선을 그리면 올라가는 좁은 크랙을 뜯으며 올라간다.
제 1피치 마지막 구간을 넘어가고 있다. 슬랩을 넘어 숲지대로 올라간다.
제1피치 상단
숲의 바다에 둘러싸인 두타산의 명물 용추폭포가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제2피치를 오르는 뫼우팀. 2피치는 쌍크랙으로 크랙 가운데 박힌 바위가 등반을 어렵게 한다.
2피치를 끝낸 후 후등자 확보 중인 재중이
제 3피치 등반
저 위에서 3피치 마지막 구간을 넘어가는 선등자. 마지막 구간 2미터 정도 벙어리 크랙을 레이백 자세로 넘어가야 한다.
제4피치는 숲에 가려 사진을 못찍었다. 3피치 끝나고 4피치 시작지점으로 접근하는 재중
제 5피치는 넓은 침니 구간.
제5피치의 상단에 모인 클라이머들... 5피치를 오르고 나니 왜 루트 이름을 별유천지라 붙였는지 알것 같다. 두타 청옥 쪽으로 탁트인 전망은 가히 별유천지라 부를만 하다.
6피치 쉬운 크랙과 침니 같은 마지막 부분을 오르면 실질적인 등반은 끝이다. 그 다음 좁은 구멍바위를 빠져나가거나 소나를 타고 오르면 별유천지 정상이다.
시원한 조망과 너럭바위가 있는 별유천지 정상
정상 등 뒤로 학등능선과 연칠성령 초록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왼쪽 아래로 제트크랙과 등반자들이 보인다.
제트크랙을 등반중인 클라이머들... 고도감이 상당하다.
크랙의 고수님들 제트크랙에 붙어 보시기를....
왼쪽 바위가 별유천지 정상이고 가운데 천장 아래로 뫼우산악회에서 신루트를 개척하고 있다. 오른쪽에 제트크랙이 보인다.
산악인들의 보금자리인 무릉반석. 형수님의 토종닭 백숙, 산채비빔밥 등 손맛이 일품이다. 들러보면 후회없을 맛집이다.
눈부신 날을 기쁘게 보낸 하루였다. 산친구들, 바위, 숲의 바다, 시원한 공기, 맑은 계곡... 행복했다. 밤 새 잠 못자고도 기꺼이 자일샤프트가 되어준 재중이와 멋진 길을 만들어준 뫼우산악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사람은 늘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하는지도...... 이 암벽들보며 발도 못댈 위인이지만, 가슴 설레는 것은 무슨일인지요? 다른 사람이 다녀온것 보는 것도 즐겁네요
암벽도 나름 매력 있지~~~ 산속에서 산을 보는거랑 바위에 매달려서 위에서 산을 느끼는거랑은 많이 틀린데 요즘 주변인들이 사고가 많아서 권해주고 싶지는 않네요~~ 기냥 스포츠 클라이밍은 어떠서요~~~ 요것도 매력 있는데 언니가 팔근력이 좀 딸리는거 같더구만~~~ 발란스는 좀 있는거 같고~~~ ㅋㅋㅋ 그냥 눈으로 즐기셔요~~
글 읽다가 깜놀. 기경언니가 간 걸로 생각하고 읽다보니... 두타산 여기 가보고 싶었어. 아주 골때리는 산이라고 말을 많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