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 강 문 석 -
등대에 붙박여 서서 한동안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관광지도가 보여주는 15개의 고만고만한 섬들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바다로 눈을 돌렸다. 가까운 신도와 장죽도 죽도만 그 모습을 보여주고 나머지 섬들은 서녘으로 설핏 기운 햇살이 해면에 부서지는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세월호를 집어삼킨 맹골만 수도는 하조도 너머 관매도 동거차도 병풍도 3개의 섬 사이를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섬들도 역시 30킬로미터 밖이라 막막하다. 직접 현장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그쪽으로 향하는 배가 있을 리 없다. 사고발생 1년 반이 지났는데도 팽목항 등대 앞은 여전히 요란한 구호와 게시물들이 덕지덕지 나붙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찾는 이들이 없어 항구는 적막에 휩싸였는데 도대체 저러한 저주의 굿판이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위도 상으론 사는 곳과 비슷한 한반도의 남녘이지만 동서로 끝에서 끝에 위치하다보니 팽목항을 찾아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고 안내지도에 나타난 진도항과 팽목항 두 개의 항구이름이 낯설게 다가왔다. 진도의 남단에 위치한 유일한 항구라면 당연히 진도항이라야 맞지 않겠는가. 그런데 팽목항이 덧붙어 있는 것이다. 사연이야 없지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논의를 거쳐 그 이름을 하나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참사 직후부터 시도 때도 없이 TV가 틀어대던 팽목항에 진저리를 치던 아내였다. 그러던 아내가 오늘 함께 따라나서 준 것이 여간 고맙지 않다. 더 이상 미루다간 영원히 팽목항을 가보지 못하고 끝날 것 같아 서둘러 찾아 나선 게 오늘이다. 늦은 오후라 항구엔 대형 여객선 한 척만 무료하게 정박해 있었다.
차량까지 승선할 수 있도록 여객선은 입을 크게 벌린 채 대기하고 있었지만 배를 오르는 차량이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여객선 대합실은 선착장 건너편에 붙었고 대합실 정면으로 뻗어나간 방파제 끝에 빨간 등대가 외롭게 서있었다. 한동안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던 추모관은 문이 굳게 잠겼다. 조립식 건물로 앉힌 작은 법당은 외벽에다 민박예약 전화번호를 버젓이 달고 있어서 영업을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법당과는 다소 떨어져 성당이 있었지만 역시 자물통에 먼지가 쌓였다. 20여 년 전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신칸센고속철이 폭삭 내려앉을 정도의 대참사였다.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질서를 지키면서 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있었다.
당시 그러한 참사현장을 지켜보던 세계가 ‘역시 선진국 시민들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며 놀랐다. 그러고 지금 다시 구마모토에서 똑같은 비극이 일어났고 거기 대처하는 일본 국민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번에도 하나같이 슬퍼하되 정도를 넘지 않는 애이불상哀而不傷과 슬프긴 하지만 겉으로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하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더욱 노란리본으로 대변되는 세월호 참사는 부끄럽고 화까지 치밀게 한다. 정녕 지구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낯 뜨거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고물 선박을 해외에서 사들여 불법개조를 할 때부터 참사는 예견되어 있었다.
자살한 선주로부터 검은 돈을 받고 불법개조를 묵인한 공무원 집단과 안전수칙을 내팽개친 승무원들까지 총체적으로 썩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안전 불감증에 걸린 중증환자들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행 중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였다. 그런데도 마치 참사가 일어나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대한민국을 향해 온갖 해코지를 해대며 날뛰는 저 불순한 세력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사회라면 어떻게 남의 불행을 팔아 그것도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팔아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려는 날강도 짓을 할 수가 있겠는가. 율곡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언젠가는 하늘의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국가를 부정하는 세력과 한 패가 되어 허구한 날 길거리에서 깽판을 벌이는 놈들을 왜 저승사자는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일까. 한때 대권을 쥐겠다고 나섰던 자도 노란리본을 달고 미친 듯이 광화문 광장을 헤집고 다니면서 수학여행 가다가 참변을 당한 유족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뜻 있는 국민들 심장을 팍팍 상하게 만들었다. 실로 한심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다. 등대를 감싼 철제울타리 바깥에 나뒹굴고 있는 빈 소주병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구천을 떠도는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팽목항을 찾았다면 도저히 저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제법 그럴 듯하게 꾸며서 이름붙인 ‘하늘나라 우체통’에는 느닷없는 ‘행복발전소’까지 등장했다.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우체통 꼭대기에 안테나처럼 해박은 쇠막대기에다 묵주와 염주를 혼란스럽게 휘감아 장식을 해놓고 있다. 교리를 조금이나마 안다면 저런 짓거리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굿판을 벌인 세력들이 어떻게 하면 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거꾸러뜨릴까 작심하고 저지른 일 같았다. 침몰한 선박은 다음 달에 인양을 시작하여 3개월이면 마무리할 계획이란다. 부디 수습 못한 9구의 시신도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카메라에 팽목항을 담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반시간 동안 등대에서 유일하게 만난 청년은 노인의 집착이 좀 유난스러운지 힐끗힐끗 살피면서도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취재차 왔는지 그의 오른쪽 어깨에도 카메라가 한 대 걸려 있었다.
어느 시인이 참사 1주기에 쓴 글도 팽복항에 걸려있다. 그 시인은 이 글 말고도 사이버 공간에다 대고 연재하듯 자주 팽목항을 읊었다. 이곳에 내건 글은 사고 발생 직후 급박한 상황에서 배에 갇힌 딸이 엄마와 통화한 내용인데 창작으로 보긴 어려울 것 같았다. 당시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모자이크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다. 그 역시 군데군데 대통령과 정부 담당 공무원을 향한 원망과 저주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제목은 문학적인 완성도를 생각해선지 제법 그럴 듯하게 ‘꽃이 되고 별이 되어’다. 맨 처음은 ‘하얀 목련이 파르라니 떨며 지고 있었다. 검은 안개가 서해바다를 짓누르고 있었다’로 시작된다.
“…그런데 엄마, 우리 배만 출항한대. 밤안개가 유령처럼 세월호를 끌고 있나봐. 엄마, 꽝 소리가 났어. 배가 이 큰 배가 한 바퀴 빙 돌았어. 미쳤나봐. 배가 기울고 있어. 그런데 엄마, 가만히 있으라고 해. 엄마, 선장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되겠지? 그럼 경찰이 와서 구해주려나 봐. 엄마, 걱정 마. 엄마아빠가 얼마나 세금을 잘 냈는데…. 경찰이 와서 구해줄 거야. 우리 구해주지 못하면 경찰도 아니지. 옆에 둘라 에이스호가 왔어. 선장이 우릴 구하려고 불렀나봐. 우리가 탈출만 하면 구해준대. 그런데 엄마, 배가 계속 기울고 있어. 49도, 50도, 51…. 해경 123정이 왔어. 헬기 소리도 들려. 우릴 구하려고. 우릴 구해주지 못하면 선장도 아니지.
그러면 선장이 될 수 없지. 진도의 어부들도 고기잡이를 중단하고 우리 곁으로 달려왔어. 엄마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하는 것 아니야. 정말이야. 그런데 엄마, 해경 123정은 우리 곁을 빙빙 돌기만 해. 엄마, 선내 대기하라고 또 방송이 나와. 배는 점점 기우는데. 61도 … 63도… 그래도 기다리면 엄마 곧 만날 수 있겠지. 벌써 뉴스에도 나왔다니까. 대통령도 우릴 구하려고 애쓰고 있겠지. 다른 건 몰라도 약속은 잘 지킨다는 대통령이잖아. 선장도 선장실에서 애태우고 있겠지. 승객을 버린 선장이라면 쇠창살 박힌 유리 동물원 안에 갇우어 손톱으로 유리창 박박 긁다가 죽어가는 고통을 알 때까지 해줘야지. 엄마, 그런데 말이야.
엄마 걱정할까봐 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물이 차올라. 서서히 물이 차올라. 발목 위로 무릎 위로 배꼽 위로…. 엄마, 그런데 말이지 다시 우리 만날 때 나에게 꼭 알려줄 게 있어. 왜 안개 속으로 세월호를 밀어 넣었는지를. 왜 가만있으라고 했는지, 왜 배는 급선회를 했는지, 왜 우릴 탈출 못하게 했는지…. 엄마, 엄마가 흘리는 눈물 대신 그것을 꼭 알려줘야 해. 아니면 그것을 내 묘비명에 새겨줘도 좋아. 잊지 않게. 그리고 내가 탔던 세월호 인양해서 마지막 친구까지 모두 구했다는 소식도 꼭 전해줘야 해. 엄마, 그만 울어. 강아지를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겠다는 다인이도 여기 있고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좋아 교사를 꿈꾸는 아혜도 여기 있는데… 아! 물이 차올라. 가슴 위까지… 모가지까지…
엄마, 나 춥지 않아. 엄마가 사준 빨간 윗옷을 입었고 구명조끼도 입고 있는 걸. 구명조끼는 알바 하는 승무원 지영이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자기는 마지막에 나갈 거라면서 벗어서 나한테 입혀줬어. 엄마, 4월 16일… 10시 12분이야. 배가 너무 기울었어. 90도… 95도…. 엄마, 물이 턱까지 차올랐어. 엄마, 이게 마지막 통화가 될지도 몰라. 그런데 왜 이렇게 엄마가 보고 싶지? 엄마, 진짜 보고 싶네. 엄마, 그동안 엄마한테 잘못한 것 다 용서해줘. 아빠한테도 그렇게 전해줘. 동생한테도 보고 싶다고, 용서해주라고. 엄마, 내가 진도 어느 섬의 나지막한 언덕에 꽃이 되어서 내가 어두운 그믐밤 하늘 한 귀퉁이에 별이 되어서 나의 이 향기 나의 이 빛깔로 늘 엄마 곁에 있을 거야. 늘 엄마 곁에서 엄마 지켜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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