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시회(URISI)
 
 
 
카페 게시글
좋은 詩 읽기 스크랩 붉은 수수밭 / 안명옥
동산 추천 0 조회 20 15.11.24 19: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붉은 수수밭 / 안명옥

 

 

아침마다 팬티 하나를 더 가지고 다닌 적 있었다

등 떠밀어대는 바람의 손에

밀물로 들어선 지하철 안

비릿한 바다냄새가 출렁거리고 팔 하나와 가방은

어느 아주머니 가슴 위에 수평선으로 걸려 있고

사람과 사람이 침몰 직전의 배들처럼 흔들리는 시간

청바지를 입은 은밀한 부위에

어느 날은 두툼한 물고기가 다가와 살래살래 문지르다 가고

어떤 날은 배 한 척이 노를 저어와 비벼댔다

뒤를 돌아보면

점잖은 물고기의 표정들

몸 비틀어 저항하는 눈으로 쏘아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늦더라도 버스를 탈걸.

여러 번 갈아타더라도 버스를 탈걸.

치욕의 침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였다

먹은 것 없는 아침이 자꾸 헛구역질을 할 때

몸은 붉은 수수밭을 지나온 듯 젖어버렸다

개봉에서 종로3가까지 내내

어이없는 망각된 몸의 멍한 반응

그런 날은

회사 출근 도장 찍기 전에 화장실에서 젖은 팬티를

갈아입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 안명옥 시집 『 칼 』 2008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