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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나일강 따라 압도하는 불가사의, 위대한 문명유적이 던지는 거대 감동
2025년 1월, 최고 전문가가 이끄는 이집트 유적답사
유성환 서울대 교수는 최고의 이집트학자이며 문헌학자입니다. 그는 부산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한 후 5년간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 우연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이집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2005년 미국 브라운대 이집트학과 석박사통합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2012년 이집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고대 서아시아 전반의 문명과 역사, 언어와 예술, 종교와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사문학 작품과 장례문서, 역사적 비문, 의학 파피루스 등과 같은 고대 이집트의 주요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문헌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틈틈이 원전 번역과 주해 작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유 교수는 2020년부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고대 이집트의학에 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고대 중근동의 팬데믹 : 문명의 어두운 동반자>(씨아이알출판사)를 출간했습니다. 2022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 전문 패널로, 2023년에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강연자로 각각 출연했습니다.
▲나일강가 룩소르 신전의 야경Ⓒ유성환
유성환 교수가 인솔하는 이집트 유적답사가 2025년 1월, 처음으로 진행됩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답사를 진행하는 유 교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고대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함께 세계 최초의 문명이 생겨난 곳입니다. 영겁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에 의한 약탈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아직도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여행지입니다. 수천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 기자 고원의 쿠푸·카프레·멘카우레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국가가 성립된 이래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의 분묘 즉, 왕묘를 건설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파라오들이 크고 장엄한 분묘를 만들었던 이유는 영원히 보존되고 유지될 왕묘를 지상에 건립함으로써 내세에서 자신의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왕묘의 건축양식과 내부장식에는 당시의 내세관이 언제나 반영되었기 때문에 왕묘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 그룹Ⓒ유성환
카이로 근교의 기자 고원에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가 건설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시간의 풍상을 견디고 지금까지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현존하는 유일한 유적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천문학•수학•기하학•의학을 바탕으로 거대 건축물을 정교하게 건설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하게 맞춘 것이나 평균 무게 2.5톤의 석재 블록을 147미터 높이로 230만 개나 쌓아 올린 것이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의 모습은 방사하는 태양광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제4왕조부터 태양신 신앙이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갚은 관련이 있습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에는 전체 길이 74미터, 높이 20미터 규모의 스핑크스가 기자 고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의 경우와 같이 석재를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석회암 기반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핑크스의 얼굴이 누구를 묘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카프레의 얼굴로 보는 견해가 현재의 학계의 정설입니다. 스핑크스의 몸체에는 심하게 침식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수천 년 간 여러 번에 걸쳐 머리만 제외하고 모래에 완전히 파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고원 입구의 스핑크스Ⓒ유성환
[다슈르 - 스네페루의 굴절 피라미드와 적색 피라미드]
고왕국 시대 제4왕조의 첫 번째 왕 스네페루는 다슈르와 메이둠에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슈르의 ‘적색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가 완성되기 전에 스네페루는 메이둠에 하나의 피라미드를 지었으며 다슈르에도 ‘굴절 피라미드’로 불리는 피라미드를 또 하나 건설했습니다.
메이둠의 피라미드에서는 ‘타워’라고 불리는 각추형의 코어에 석재를 둘러 피라미드의 외관을 갖추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한편 높이 105미터의 ‘굴절 피라미드’는 49미터를 기준으로 피라미드 아래쪽은 58-60도의 각도로, 기준점 위쪽은 54도로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피라미드의 각도가 너무 가팔라서 석재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발생했거나 전체 무게 때문에 붕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각도가 조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기자 고원의 삼각뿔 형태의 완전한 피라미드가 지어지는 데 과도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유성환
[룩소르 – 왕가의 계곡 왕묘와 장제전]
고왕국 시대, 중왕국 시대와는 달리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더 이상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룩소르 서안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에 거대한 암굴묘를 만들었고 동시에 서안의 경작지 주변에 장제전을 건립했습니다.
신왕국 시대의 왕들이 피라미드 대신 암굴묘를 택한 것은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결합을 부활의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저녁이 되어 태양이 서쪽 지평선에 떨어지면 지하세계(내세)로 들어간 뒤 지하세계에 있는 강을 따라 여행을 하며 밤이 가장 깊어진 시각에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오시리스와 결합하여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왕이 내세에서 부활하기 위해서는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이 신비로운 결합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왕이 매장된 암굴묘의 벽면에는 태양선을 타고 지하세계를 여행하는 태양신의 모습과 오시리스 신과의 결합, 그리고 일출 전 부활에 성공한 태양신의 모습 등이 다양한 주문과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암굴묘는 제18왕조의 아멘호텝 1세에서 제20왕조의 람세스 11세에 이르기까지 신왕국 시대의 거의 모든 파라오들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왕묘로는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견된 투탕카멘의 왕묘, 전실과 묘실을 비롯한 왕묘의 거의 모든 공간이 채색 부조로 장식된 세티 1세의 왕묘, 천문도를 비롯한 왕실 전용의 장례문서로 화려하게 장식된 람세스 9세 왕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계곡’Ⓒ유성환
‘왕가의 계곡’ 근처에는 왕들이 사후 아문 신과 자신을 위한 신전 의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건설한 장제전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 장제전 중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것이 바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입니다.
아랍어로 ‘북쪽 수도원’을 뜻하는 데이르 엘-바흐리에 위치해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고대 이집트 건축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전건축의 기본적인 문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랐던 다른 파라오들의 장제전과는 달리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회암 절벽을 배경으로 3층 테라스의 형태로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의 독창적인 아름다움 이외에도 장제전에는 신왕국 시대 당시의 국제무역 관계와 종교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부조와 신전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세르-제세루’, 다시 말해 ‘성소 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성소’이라는 뜻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단계적인 상승을 상징하는 세 개의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테라스 앞에는 열주랑과 거대한 뜰이 펼쳐져 있으며 신전 중앙에는 폭 13미터, 길이 400미터의 중앙 통로가 지금은 지표면 아래에 묻혀있는 계곡신전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세 번째 테라스에는 높이가 3미터, 무게 7.5톤에 달하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시리스 상이 각 열주 앞에 세워졌으며 두 번째 테라스의 남쪽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북쪽에는 아누비스와 태양신 레-호라크티의 신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천상을 상징하는 맨 위의 세 번째 테라스 중앙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아문 신의 지성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잊지 못할! 나일강 따라 압도하는 불가사의, 위대한 문명유적이 던지는 거대 감동
2025년 1월, 최고 전문가가 이끄는 이집트 유적답사
유성환 서울대 교수는 최고의 이집트학자이며 문헌학자입니다. 그는 부산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한 후 5년간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 우연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이집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2005년 미국 브라운대 이집트학과 석박사통합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2012년 이집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고대 서아시아 전반의 문명과 역사, 언어와 예술, 종교와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사문학 작품과 장례문서, 역사적 비문, 의학 파피루스 등과 같은 고대 이집트의 주요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문헌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틈틈이 원전 번역과 주해 작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유 교수는 2020년부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고대 이집트의학에 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고대 중근동의 팬데믹 : 문명의 어두운 동반자>(씨아이알출판사)를 출간했습니다. 2022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 전문 패널로, 2023년에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강연자로 각각 출연했습니다.
▲나일강가 룩소르 신전의 야경Ⓒ유성환
유성환 교수가 인솔하는 이집트 유적답사가 2025년 1월, 처음으로 진행됩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답사를 진행하는 유 교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고대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함께 세계 최초의 문명이 생겨난 곳입니다. 영겁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에 의한 약탈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아직도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여행지입니다. 수천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 기자 고원의 쿠푸·카프레·멘카우레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국가가 성립된 이래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의 분묘 즉, 왕묘를 건설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파라오들이 크고 장엄한 분묘를 만들었던 이유는 영원히 보존되고 유지될 왕묘를 지상에 건립함으로써 내세에서 자신의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왕묘의 건축양식과 내부장식에는 당시의 내세관이 언제나 반영되었기 때문에 왕묘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 그룹Ⓒ유성환
카이로 근교의 기자 고원에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가 건설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시간의 풍상을 견디고 지금까지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현존하는 유일한 유적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천문학•수학•기하학•의학을 바탕으로 거대 건축물을 정교하게 건설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하게 맞춘 것이나 평균 무게 2.5톤의 석재 블록을 147미터 높이로 230만 개나 쌓아 올린 것이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의 모습은 방사하는 태양광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제4왕조부터 태양신 신앙이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갚은 관련이 있습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에는 전체 길이 74미터, 높이 20미터 규모의 스핑크스가 기자 고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의 경우와 같이 석재를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석회암 기반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핑크스의 얼굴이 누구를 묘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카프레의 얼굴로 보는 견해가 현재의 학계의 정설입니다. 스핑크스의 몸체에는 심하게 침식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수천 년 간 여러 번에 걸쳐 머리만 제외하고 모래에 완전히 파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고원 입구의 스핑크스Ⓒ유성환
[다슈르 - 스네페루의 굴절 피라미드와 적색 피라미드]
고왕국 시대 제4왕조의 첫 번째 왕 스네페루는 다슈르와 메이둠에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슈르의 ‘적색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가 완성되기 전에 스네페루는 메이둠에 하나의 피라미드를 지었으며 다슈르에도 ‘굴절 피라미드’로 불리는 피라미드를 또 하나 건설했습니다.
메이둠의 피라미드에서는 ‘타워’라고 불리는 각추형의 코어에 석재를 둘러 피라미드의 외관을 갖추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한편 높이 105미터의 ‘굴절 피라미드’는 49미터를 기준으로 피라미드 아래쪽은 58-60도의 각도로, 기준점 위쪽은 54도로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피라미드의 각도가 너무 가팔라서 석재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발생했거나 전체 무게 때문에 붕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각도가 조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기자 고원의 삼각뿔 형태의 완전한 피라미드가 지어지는 데 과도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유성환
[룩소르 – 왕가의 계곡 왕묘와 장제전]
고왕국 시대, 중왕국 시대와는 달리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더 이상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룩소르 서안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에 거대한 암굴묘를 만들었고 동시에 서안의 경작지 주변에 장제전을 건립했습니다.
신왕국 시대의 왕들이 피라미드 대신 암굴묘를 택한 것은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결합을 부활의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저녁이 되어 태양이 서쪽 지평선에 떨어지면 지하세계(내세)로 들어간 뒤 지하세계에 있는 강을 따라 여행을 하며 밤이 가장 깊어진 시각에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오시리스와 결합하여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왕이 내세에서 부활하기 위해서는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이 신비로운 결합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왕이 매장된 암굴묘의 벽면에는 태양선을 타고 지하세계를 여행하는 태양신의 모습과 오시리스 신과의 결합, 그리고 일출 전 부활에 성공한 태양신의 모습 등이 다양한 주문과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암굴묘는 제18왕조의 아멘호텝 1세에서 제20왕조의 람세스 11세에 이르기까지 신왕국 시대의 거의 모든 파라오들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왕묘로는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견된 투탕카멘의 왕묘, 전실과 묘실을 비롯한 왕묘의 거의 모든 공간이 채색 부조로 장식된 세티 1세의 왕묘, 천문도를 비롯한 왕실 전용의 장례문서로 화려하게 장식된 람세스 9세 왕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계곡’Ⓒ유성환
‘왕가의 계곡’ 근처에는 왕들이 사후 아문 신과 자신을 위한 신전 의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건설한 장제전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 장제전 중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것이 바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입니다.
아랍어로 ‘북쪽 수도원’을 뜻하는 데이르 엘-바흐리에 위치해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고대 이집트 건축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전건축의 기본적인 문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랐던 다른 파라오들의 장제전과는 달리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회암 절벽을 배경으로 3층 테라스의 형태로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의 독창적인 아름다움 이외에도 장제전에는 신왕국 시대 당시의 국제무역 관계와 종교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부조와 신전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세르-제세루’, 다시 말해 ‘성소 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성소’이라는 뜻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단계적인 상승을 상징하는 세 개의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테라스 앞에는 열주랑과 거대한 뜰이 펼쳐져 있으며 신전 중앙에는 폭 13미터, 길이 400미터의 중앙 통로가 지금은 지표면 아래에 묻혀있는 계곡신전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세 번째 테라스에는 높이가 3미터, 무게 7.5톤에 달하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시리스 상이 각 열주 앞에 세워졌으며 두 번째 테라스의 남쪽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북쪽에는 아누비스와 태양신 레-호라크티의 신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천상을 상징하는 맨 위의 세 번째 테라스 중앙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아문 신의 지성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잊지 못할! 나일강 따라 압도하는 불가사의, 위대한 문명유적이 던지는 거대 감동
2025년 1월, 최고 전문가가 이끄는 이집트 유적답사
유성환 서울대 교수는 최고의 이집트학자이며 문헌학자입니다. 그는 부산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한 후 5년간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 우연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이집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2005년 미국 브라운대 이집트학과 석박사통합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2012년 이집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고대 서아시아 전반의 문명과 역사, 언어와 예술, 종교와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사문학 작품과 장례문서, 역사적 비문, 의학 파피루스 등과 같은 고대 이집트의 주요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문헌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틈틈이 원전 번역과 주해 작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유 교수는 2020년부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고대 이집트의학에 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고대 중근동의 팬데믹 : 문명의 어두운 동반자>(씨아이알출판사)를 출간했습니다. 2022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 전문 패널로, 2023년에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강연자로 각각 출연했습니다.
▲나일강가 룩소르 신전의 야경Ⓒ유성환
유성환 교수가 인솔하는 이집트 유적답사가 2025년 1월, 처음으로 진행됩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답사를 진행하는 유 교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고대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함께 세계 최초의 문명이 생겨난 곳입니다. 영겁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에 의한 약탈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아직도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여행지입니다. 수천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 기자 고원의 쿠푸·카프레·멘카우레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국가가 성립된 이래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의 분묘 즉, 왕묘를 건설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파라오들이 크고 장엄한 분묘를 만들었던 이유는 영원히 보존되고 유지될 왕묘를 지상에 건립함으로써 내세에서 자신의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왕묘의 건축양식과 내부장식에는 당시의 내세관이 언제나 반영되었기 때문에 왕묘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 그룹Ⓒ유성환
카이로 근교의 기자 고원에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가 건설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시간의 풍상을 견디고 지금까지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현존하는 유일한 유적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천문학•수학•기하학•의학을 바탕으로 거대 건축물을 정교하게 건설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하게 맞춘 것이나 평균 무게 2.5톤의 석재 블록을 147미터 높이로 230만 개나 쌓아 올린 것이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의 모습은 방사하는 태양광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제4왕조부터 태양신 신앙이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갚은 관련이 있습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에는 전체 길이 74미터, 높이 20미터 규모의 스핑크스가 기자 고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의 경우와 같이 석재를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석회암 기반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핑크스의 얼굴이 누구를 묘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카프레의 얼굴로 보는 견해가 현재의 학계의 정설입니다. 스핑크스의 몸체에는 심하게 침식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수천 년 간 여러 번에 걸쳐 머리만 제외하고 모래에 완전히 파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고원 입구의 스핑크스Ⓒ유성환
[다슈르 - 스네페루의 굴절 피라미드와 적색 피라미드]
고왕국 시대 제4왕조의 첫 번째 왕 스네페루는 다슈르와 메이둠에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슈르의 ‘적색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가 완성되기 전에 스네페루는 메이둠에 하나의 피라미드를 지었으며 다슈르에도 ‘굴절 피라미드’로 불리는 피라미드를 또 하나 건설했습니다.
메이둠의 피라미드에서는 ‘타워’라고 불리는 각추형의 코어에 석재를 둘러 피라미드의 외관을 갖추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한편 높이 105미터의 ‘굴절 피라미드’는 49미터를 기준으로 피라미드 아래쪽은 58-60도의 각도로, 기준점 위쪽은 54도로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피라미드의 각도가 너무 가팔라서 석재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발생했거나 전체 무게 때문에 붕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각도가 조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기자 고원의 삼각뿔 형태의 완전한 피라미드가 지어지는 데 과도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유성환
[룩소르 – 왕가의 계곡 왕묘와 장제전]
고왕국 시대, 중왕국 시대와는 달리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더 이상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룩소르 서안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에 거대한 암굴묘를 만들었고 동시에 서안의 경작지 주변에 장제전을 건립했습니다.
신왕국 시대의 왕들이 피라미드 대신 암굴묘를 택한 것은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결합을 부활의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저녁이 되어 태양이 서쪽 지평선에 떨어지면 지하세계(내세)로 들어간 뒤 지하세계에 있는 강을 따라 여행을 하며 밤이 가장 깊어진 시각에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오시리스와 결합하여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왕이 내세에서 부활하기 위해서는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이 신비로운 결합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왕이 매장된 암굴묘의 벽면에는 태양선을 타고 지하세계를 여행하는 태양신의 모습과 오시리스 신과의 결합, 그리고 일출 전 부활에 성공한 태양신의 모습 등이 다양한 주문과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암굴묘는 제18왕조의 아멘호텝 1세에서 제20왕조의 람세스 11세에 이르기까지 신왕국 시대의 거의 모든 파라오들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왕묘로는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견된 투탕카멘의 왕묘, 전실과 묘실을 비롯한 왕묘의 거의 모든 공간이 채색 부조로 장식된 세티 1세의 왕묘, 천문도를 비롯한 왕실 전용의 장례문서로 화려하게 장식된 람세스 9세 왕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계곡’Ⓒ유성환
‘왕가의 계곡’ 근처에는 왕들이 사후 아문 신과 자신을 위한 신전 의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건설한 장제전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 장제전 중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것이 바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입니다.
아랍어로 ‘북쪽 수도원’을 뜻하는 데이르 엘-바흐리에 위치해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고대 이집트 건축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전건축의 기본적인 문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랐던 다른 파라오들의 장제전과는 달리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회암 절벽을 배경으로 3층 테라스의 형태로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의 독창적인 아름다움 이외에도 장제전에는 신왕국 시대 당시의 국제무역 관계와 종교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부조와 신전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세르-제세루’, 다시 말해 ‘성소 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성소’이라는 뜻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단계적인 상승을 상징하는 세 개의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테라스 앞에는 열주랑과 거대한 뜰이 펼쳐져 있으며 신전 중앙에는 폭 13미터, 길이 400미터의 중앙 통로가 지금은 지표면 아래에 묻혀있는 계곡신전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세 번째 테라스에는 높이가 3미터, 무게 7.5톤에 달하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시리스 상이 각 열주 앞에 세워졌으며 두 번째 테라스의 남쪽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북쪽에는 아누비스와 태양신 레-호라크티의 신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천상을 상징하는 맨 위의 세 번째 테라스 중앙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아문 신의 지성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잊지 못할! 나일강 따라 압도하는 불가사의, 위대한 문명유적이 던지는 거대 감동
2025년 1월, 최고 전문가가 이끄는 이집트 유적답사
유성환 서울대 교수는 최고의 이집트학자이며 문헌학자입니다. 그는 부산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한 후 5년간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 우연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이집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2005년 미국 브라운대 이집트학과 석박사통합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2012년 이집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고대 서아시아 전반의 문명과 역사, 언어와 예술, 종교와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사문학 작품과 장례문서, 역사적 비문, 의학 파피루스 등과 같은 고대 이집트의 주요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문헌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틈틈이 원전 번역과 주해 작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유 교수는 2020년부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고대 이집트의학에 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고대 중근동의 팬데믹 : 문명의 어두운 동반자>(씨아이알출판사)를 출간했습니다. 2022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 전문 패널로, 2023년에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강연자로 각각 출연했습니다.
▲나일강가 룩소르 신전의 야경Ⓒ유성환
유성환 교수가 인솔하는 이집트 유적답사가 2025년 1월, 처음으로 진행됩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답사를 진행하는 유 교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고대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함께 세계 최초의 문명이 생겨난 곳입니다. 영겁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에 의한 약탈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아직도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여행지입니다. 수천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 기자 고원의 쿠푸·카프레·멘카우레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국가가 성립된 이래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의 분묘 즉, 왕묘를 건설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파라오들이 크고 장엄한 분묘를 만들었던 이유는 영원히 보존되고 유지될 왕묘를 지상에 건립함으로써 내세에서 자신의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왕묘의 건축양식과 내부장식에는 당시의 내세관이 언제나 반영되었기 때문에 왕묘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 그룹Ⓒ유성환
카이로 근교의 기자 고원에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가 건설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시간의 풍상을 견디고 지금까지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현존하는 유일한 유적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천문학•수학•기하학•의학을 바탕으로 거대 건축물을 정교하게 건설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하게 맞춘 것이나 평균 무게 2.5톤의 석재 블록을 147미터 높이로 230만 개나 쌓아 올린 것이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의 모습은 방사하는 태양광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제4왕조부터 태양신 신앙이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갚은 관련이 있습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에는 전체 길이 74미터, 높이 20미터 규모의 스핑크스가 기자 고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의 경우와 같이 석재를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석회암 기반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핑크스의 얼굴이 누구를 묘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카프레의 얼굴로 보는 견해가 현재의 학계의 정설입니다. 스핑크스의 몸체에는 심하게 침식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수천 년 간 여러 번에 걸쳐 머리만 제외하고 모래에 완전히 파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고원 입구의 스핑크스Ⓒ유성환
[다슈르 - 스네페루의 굴절 피라미드와 적색 피라미드]
고왕국 시대 제4왕조의 첫 번째 왕 스네페루는 다슈르와 메이둠에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슈르의 ‘적색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가 완성되기 전에 스네페루는 메이둠에 하나의 피라미드를 지었으며 다슈르에도 ‘굴절 피라미드’로 불리는 피라미드를 또 하나 건설했습니다.
메이둠의 피라미드에서는 ‘타워’라고 불리는 각추형의 코어에 석재를 둘러 피라미드의 외관을 갖추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한편 높이 105미터의 ‘굴절 피라미드’는 49미터를 기준으로 피라미드 아래쪽은 58-60도의 각도로, 기준점 위쪽은 54도로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피라미드의 각도가 너무 가팔라서 석재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발생했거나 전체 무게 때문에 붕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각도가 조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기자 고원의 삼각뿔 형태의 완전한 피라미드가 지어지는 데 과도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유성환
[룩소르 – 왕가의 계곡 왕묘와 장제전]
고왕국 시대, 중왕국 시대와는 달리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더 이상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룩소르 서안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에 거대한 암굴묘를 만들었고 동시에 서안의 경작지 주변에 장제전을 건립했습니다.
신왕국 시대의 왕들이 피라미드 대신 암굴묘를 택한 것은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결합을 부활의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저녁이 되어 태양이 서쪽 지평선에 떨어지면 지하세계(내세)로 들어간 뒤 지하세계에 있는 강을 따라 여행을 하며 밤이 가장 깊어진 시각에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오시리스와 결합하여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왕이 내세에서 부활하기 위해서는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이 신비로운 결합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왕이 매장된 암굴묘의 벽면에는 태양선을 타고 지하세계를 여행하는 태양신의 모습과 오시리스 신과의 결합, 그리고 일출 전 부활에 성공한 태양신의 모습 등이 다양한 주문과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암굴묘는 제18왕조의 아멘호텝 1세에서 제20왕조의 람세스 11세에 이르기까지 신왕국 시대의 거의 모든 파라오들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왕묘로는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견된 투탕카멘의 왕묘, 전실과 묘실을 비롯한 왕묘의 거의 모든 공간이 채색 부조로 장식된 세티 1세의 왕묘, 천문도를 비롯한 왕실 전용의 장례문서로 화려하게 장식된 람세스 9세 왕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계곡’Ⓒ유성환
‘왕가의 계곡’ 근처에는 왕들이 사후 아문 신과 자신을 위한 신전 의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건설한 장제전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 장제전 중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것이 바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입니다.
아랍어로 ‘북쪽 수도원’을 뜻하는 데이르 엘-바흐리에 위치해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고대 이집트 건축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전건축의 기본적인 문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랐던 다른 파라오들의 장제전과는 달리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회암 절벽을 배경으로 3층 테라스의 형태로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의 독창적인 아름다움 이외에도 장제전에는 신왕국 시대 당시의 국제무역 관계와 종교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부조와 신전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세르-제세루’, 다시 말해 ‘성소 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성소’이라는 뜻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단계적인 상승을 상징하는 세 개의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테라스 앞에는 열주랑과 거대한 뜰이 펼쳐져 있으며 신전 중앙에는 폭 13미터, 길이 400미터의 중앙 통로가 지금은 지표면 아래에 묻혀있는 계곡신전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세 번째 테라스에는 높이가 3미터, 무게 7.5톤에 달하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시리스 상이 각 열주 앞에 세워졌으며 두 번째 테라스의 남쪽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북쪽에는 아누비스와 태양신 레-호라크티의 신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천상을 상징하는 맨 위의 세 번째 테라스 중앙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아문 신의 지성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잊지 못할! 나일강 따라 압도하는 불가사의, 위대한 문명유적이 던지는 거대 감동
2025년 1월, 최고 전문가가 이끄는 이집트 유적답사
유성환 서울대 교수는 최고의 이집트학자이며 문헌학자입니다. 그는 부산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한 후 5년간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 우연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이집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2005년 미국 브라운대 이집트학과 석박사통합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2012년 이집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고대 서아시아 전반의 문명과 역사, 언어와 예술, 종교와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사문학 작품과 장례문서, 역사적 비문, 의학 파피루스 등과 같은 고대 이집트의 주요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문헌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틈틈이 원전 번역과 주해 작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유 교수는 2020년부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고대 이집트의학에 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고대 중근동의 팬데믹 : 문명의 어두운 동반자>(씨아이알출판사)를 출간했습니다. 2022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 전문 패널로, 2023년에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강연자로 각각 출연했습니다.
▲나일강가 룩소르 신전의 야경Ⓒ유성환
유성환 교수가 인솔하는 이집트 유적답사가 2025년 1월, 처음으로 진행됩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답사를 진행하는 유 교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고대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함께 세계 최초의 문명이 생겨난 곳입니다. 영겁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에 의한 약탈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아직도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여행지입니다. 수천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 기자 고원의 쿠푸·카프레·멘카우레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국가가 성립된 이래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의 분묘 즉, 왕묘를 건설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파라오들이 크고 장엄한 분묘를 만들었던 이유는 영원히 보존되고 유지될 왕묘를 지상에 건립함으로써 내세에서 자신의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왕묘의 건축양식과 내부장식에는 당시의 내세관이 언제나 반영되었기 때문에 왕묘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 그룹Ⓒ유성환
카이로 근교의 기자 고원에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가 건설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시간의 풍상을 견디고 지금까지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현존하는 유일한 유적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천문학•수학•기하학•의학을 바탕으로 거대 건축물을 정교하게 건설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하게 맞춘 것이나 평균 무게 2.5톤의 석재 블록을 147미터 높이로 230만 개나 쌓아 올린 것이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의 모습은 방사하는 태양광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제4왕조부터 태양신 신앙이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갚은 관련이 있습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에는 전체 길이 74미터, 높이 20미터 규모의 스핑크스가 기자 고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의 경우와 같이 석재를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석회암 기반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핑크스의 얼굴이 누구를 묘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카프레의 얼굴로 보는 견해가 현재의 학계의 정설입니다. 스핑크스의 몸체에는 심하게 침식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수천 년 간 여러 번에 걸쳐 머리만 제외하고 모래에 완전히 파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고원 입구의 스핑크스Ⓒ유성환
[다슈르 - 스네페루의 굴절 피라미드와 적색 피라미드]
고왕국 시대 제4왕조의 첫 번째 왕 스네페루는 다슈르와 메이둠에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슈르의 ‘적색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가 완성되기 전에 스네페루는 메이둠에 하나의 피라미드를 지었으며 다슈르에도 ‘굴절 피라미드’로 불리는 피라미드를 또 하나 건설했습니다.
메이둠의 피라미드에서는 ‘타워’라고 불리는 각추형의 코어에 석재를 둘러 피라미드의 외관을 갖추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한편 높이 105미터의 ‘굴절 피라미드’는 49미터를 기준으로 피라미드 아래쪽은 58-60도의 각도로, 기준점 위쪽은 54도로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피라미드의 각도가 너무 가팔라서 석재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발생했거나 전체 무게 때문에 붕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각도가 조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기자 고원의 삼각뿔 형태의 완전한 피라미드가 지어지는 데 과도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유성환
[룩소르 – 왕가의 계곡 왕묘와 장제전]
고왕국 시대, 중왕국 시대와는 달리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더 이상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룩소르 서안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에 거대한 암굴묘를 만들었고 동시에 서안의 경작지 주변에 장제전을 건립했습니다.
신왕국 시대의 왕들이 피라미드 대신 암굴묘를 택한 것은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결합을 부활의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저녁이 되어 태양이 서쪽 지평선에 떨어지면 지하세계(내세)로 들어간 뒤 지하세계에 있는 강을 따라 여행을 하며 밤이 가장 깊어진 시각에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오시리스와 결합하여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왕이 내세에서 부활하기 위해서는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이 신비로운 결합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왕이 매장된 암굴묘의 벽면에는 태양선을 타고 지하세계를 여행하는 태양신의 모습과 오시리스 신과의 결합, 그리고 일출 전 부활에 성공한 태양신의 모습 등이 다양한 주문과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암굴묘는 제18왕조의 아멘호텝 1세에서 제20왕조의 람세스 11세에 이르기까지 신왕국 시대의 거의 모든 파라오들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왕묘로는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견된 투탕카멘의 왕묘, 전실과 묘실을 비롯한 왕묘의 거의 모든 공간이 채색 부조로 장식된 세티 1세의 왕묘, 천문도를 비롯한 왕실 전용의 장례문서로 화려하게 장식된 람세스 9세 왕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계곡’Ⓒ유성환
‘왕가의 계곡’ 근처에는 왕들이 사후 아문 신과 자신을 위한 신전 의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건설한 장제전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 장제전 중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것이 바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입니다.
아랍어로 ‘북쪽 수도원’을 뜻하는 데이르 엘-바흐리에 위치해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고대 이집트 건축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전건축의 기본적인 문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랐던 다른 파라오들의 장제전과는 달리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회암 절벽을 배경으로 3층 테라스의 형태로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의 독창적인 아름다움 이외에도 장제전에는 신왕국 시대 당시의 국제무역 관계와 종교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부조와 신전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세르-제세루’, 다시 말해 ‘성소 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성소’이라는 뜻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단계적인 상승을 상징하는 세 개의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테라스 앞에는 열주랑과 거대한 뜰이 펼쳐져 있으며 신전 중앙에는 폭 13미터, 길이 400미터의 중앙 통로가 지금은 지표면 아래에 묻혀있는 계곡신전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세 번째 테라스에는 높이가 3미터, 무게 7.5톤에 달하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시리스 상이 각 열주 앞에 세워졌으며 두 번째 테라스의 남쪽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북쪽에는 아누비스와 태양신 레-호라크티의 신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천상을 상징하는 맨 위의 세 번째 테라스 중앙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아문 신의 지성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