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간디를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에게 그 는 가히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일대기를 서술한 자서전이 400권이 넘습니다. 그의 어록만도 80권이 넘습니다. 1948년 1 월, 그가 어떤 미치광이에 의해 피 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도 전역에서 그를 따라서 자살한 사람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많이 잡으면 100만 내지 200만이고, 적게 잡으면 20만 내지 60만이라고 합니다. 간디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진정 내 마음을 드리는 대상이면, 정말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자기 생명까지라 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간디 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생명 을 바치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었다 고 한다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사랑을 한 몸으로 받고 있다고 고백하는 우리야 어떠 해야겠습니까? 주님은 헌신자를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사랑에 죽음으로 댓가를 치루며 이 세상을 떠나간 순교자들은 너무나 많다.
당신은 무엇을 주님께 바치고 있는가? 대상 29:9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희생으로서의 봉헌 (본문:골1:24)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위해서 자기를 선뜻 내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바울은 주를 위해서 기쁨으로 자기를 희생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의 희생은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과 열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롬8:17) 1) 하나님의 후사인 성도로서의 고난 주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은 성도에게 있어서 특별한 일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후사로써 당하는 고난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라고 가르칩니다. 기업을 잇게 될자들이라는 말인데, 특별히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입니다. 이 말이 시사하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첫째는 우리의 신분이 놀랍게 격상되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아래에서 난 우리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분인데 우리가 그분과 함께한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성도를 이처럼 존귀한 자로 여기십니다. 왕후 장상의 자리와 바꿀 수 없는 것이 성도의 신분입니다. 둘째는 우리에게도 주가 당하신 것과 같은 고난이 따르게 됨을 알게 해 줍니다. 그분은 고난을 겪으셨는데 우리에게는 이것이 없다면 형평의 논리를 떠나서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불변합니다. 2) 영광에 동참하기 위한 고난 성도가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영웅심에 이끌려서도, 주변의 강요에 못이겨서도 아닙니다. 주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남을 돕고자 자기를 희생하는 게 아니므로 결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성도가 주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도 영광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므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더욱 주의 일에 정진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고난을 통해서만 영광으로 갈 수가 있기에 전혀 불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었습니다. 고난을 싫어하여 피하는 사람은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2. 주의 교회를 위한 수고(골1:18)] 1) 주의 몸인 교회 바울은 주의 교회를 위해서 가장 많이 수고하고 애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를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기꺼이 자기 육체에 채우고자 할 정도로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태도는 교회에 대한 바른 인식에 기초됩니다.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교회는 건물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잘 조직된 집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가식적인 한 면들에 불과합니다. 근본적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이 같은 사실은 우리가 교회를 위해 어떻게 수고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교회를 위한 봉사는 곧 주의 몸을 위한 봉사이므로 성실하게 임해야 하겠습니다. 2) 교회의 지체인 성도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많은 지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성도들은 그 지체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그 머리는 주님이십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지체로서의 구실을 다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지체라는 사실은 두 가지를 교훈합니다. 첫째는 성도 상호간의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고, 여러 다른 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되었으니 하나가 되도록 힘서야 합니다. 둘째는 지체의 역할이 갖는 중요성입니다. 작은 부품 하나가 기능을 못하면 기계가 작동을 멈추고, 몸의 한 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몸 전체가 고통을 당합니다. 성도 개개인의 역할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3. 복음 전도를 위한 헌신(막16:15) 1) 복음 전도에 대한 명령 성도의 값진 희생은 복음 전도를 위한 헌신으로 표현됩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영혼들을 향한 뜨러운 마음의 소유자로 복음 전도를 위해 열정의 불꽃을 유감없이 태웠습니다. 복음 전도는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주의 명령입니다. 임의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기호나 장식품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로 이 명령에 충실토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러시아에서, 중국에서, 아프리카에서, 중남미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드로아에 있을 때에 마게도냐 사람의 도와달라는 요청을 주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리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 일을 명하고 계십니다. 2) 복음 전도를 위한 책임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보다 먼저 주의 은혜를 받았으므로 이런 생각에 지배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의식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의식이 강할수록 책임을 생각하게 되고, 영혼 인도에 정열을 쏟게 됩니다. 성실한 사람, 일등 시민은 책임의식이 강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귀한 책임을 뒤로 미루거나 잊어버린 채 자기 생활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성도가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이 일에 관심조차 없다면 그는 주의 책임을 업신여기는 것이므로 책망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책임을 중요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책임에 충실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책임감이 강해야 더 큰 일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결론 지금 주님은 많은 할 일을 가지고 계시며, 일꾼들을 부르십니다. 바울처럼 기꺼이 주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일꾼들,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수고하기를 마다 않는 사람들, 복음 전도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그리고 순종함으로 행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