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이동국 안티? 순간 포착일뿐
“스포츠 사진은 유난히 결정적인 순간이 중요해요. 그 순간을 놓치면 흔한 말로 ‘물 먹는’ 거죠. 항상 긴장하고 예측하면서 그 순간을 잡아내는 것 뿐이에요. 선수들이 헤딩할 때는 당연히 얼굴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죠. 어쩔 수 없어요. 미니홈피를 통해 화제가 됐던 제 사진들도 그냥 제 일상의 모습이에요. 자연스러운 사진을 재미있게 기록으로 남기는 게 전부죠”
최근 누리꾼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사진기자가 있다. 각 신문과 인터넷 매체에 뉴스를 전송하고 있는 연합뉴스의 한상균 사진기자다.
그는 한 때 누리꾼들 사이에서 ‘안티 이동국’ 사진기자로 불렸다. 그의 미니홈피는 널리 알려지기에 이르렀고 그곳을 찾은 일부 누리꾼들은 그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세는 역전됐다. 그의 허물 없는, 스스로 망가진 사진들을 목격한 누리꾼들은 점차 그의 ‘팬’으로 바뀌어 갔다. 이제는 그의 팬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누리꾼들이 줄을 잇고 있다.
팬들이 늘어가는 만큼 그에 대한 물음표도 쌓여 갔다. 그 궁금증들을 풀기 위해 20일 오후 (현지 시각) 뒤셀도르프 인근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2006 독일 월드컵 취재를 위해 한달 보름 동안 일정으로 출장을 와 있었다.
무엇보다 궁금한 점은 왜 자신이 등장한 사진들에서도 그렇게 망가져 있냐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해명 아닌 해명을 먼저 들어봤다. 인터뷰 자리에는 그의 입사 동기 황광모 사진기자도 동석해 간간히 추임새를 넣어줬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재미있는 일상을 기록할 뿐..이젠 아내가 잘 찍어줘"
▲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사진들 가운데 알려진대로 엽기적인 것들이 많다. 한 기자 본인과 아들의 사진들이 주로 그렇다. 다소 엽기적이기도 한 그런 사진들을 원래 좋아하는 것인가.
일상을 찍을 뿐이다. 자연스러운 사진,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사진을 좋아한다. 간혹 주변 선배들이 ‘네 사진은 진지하지가 않아, 그런데 진지하지 않아서 재미있다’라고 말씀해 주시기도 한다.(웃음)
▲ 그 사진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처음에는 아는 사람끼리만 알고 보는 거라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일상이었다.
- 청소 설정

그 전날 술을 먹고 늦게 일어났다. 맨날 그러니 집 사람이 뭐라 하더라. 애도 안 본다고 그러길래 애를 업고 청소해 주겠다고 나섰던 거다. 그러다 보니 ‘이거 찍자, 증거로 남기자’ 그렇게 된 거다.
- '마릴린 먼로'?

집 사람이 하얀 치마를 가져왔길래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입어 봤다. 재미있길래 찍자고 했다. 그 뿐이다.
- '폐인'의 식사

자기 전에 머리를 감고 잔다. 하지만 게을러서 항상 머리를 덜 말리고 잔다. 아침에 머리카락이 당연히 그렇게 붕 뜰 수밖에 없다.
- 점퍼 입고 스프 먹기

감기가 걸리면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잔다. 여름에도 추우면 양말을 신고 자는 편이다. 한 번은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아 점퍼를 입은 채 일어났다. 그런 상태로 스프를 끓여 달라고 해서 먹고 있었던 거다. 다만 집에 소파가 없었다. 그냥 바닥에서 평소처럼 앉아서 TV를 보면서 스프를 먹었다.
병 뚜껑을 눈 위에 붙여 놓고 찍은 사진은 그 맥주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식탁 위에서 그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주니가 투명한 식탁 유리 아래로 기어들어왔다. 마침 별 모양의 뚜껑을 주니 눈 위에 맞춰서 찍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찍었다. 그 뒤 나는 눈 위에 붙여 놓고 찍은 거다. 애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웃음)

(그것이 어떤 포즈였냐며 취재진의 재연을 요청하자 그는 머뭇거리면서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 전부 셀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아니지 않는가.
예전에는 셀프로 찍기도 했지만 이젠 집사람이 많이 찍어준다. 사진을 집 사람에게 조금씩 가르쳐 줬더니 이젠 잘 찍는다. 계속 그런 재미있는 사진을 찍으니까 집사람도 따라 찍기까지 하더라. 언젠가는 주니(준규의 애칭)가 대변을 봤는데 기저귀를 빼다가 그게 떨어졌다. 신기하게도 그게 바닥에 세로로 서 있어서 찍었다고 하더라. 자식의 대변이라 더럽지는 않았다.
▲ 사진기자는 사진을 주업으로 하기에 대부분 일상에서는 사진을 잘 안 찍으려 하는 것으로 아는데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요리사가 집에 오면 요리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찍는다. 사진기자로서 매일 일로 찍는다는 게 상당히 소모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과 별도로 일부로 가볍고 재미나게 찍는 부분도 있다.
"안티 사진기자?..스포츠 사진은 결정적인 순간 잡아야해, 어쩔 수 없어"
"선수들 표정도 그 순간마다 거의 비슷"
▲ ‘안티 이동국’ 사진기자로 불렸던 때가 있다. 해명해 줄 수 있는가.
처음에는 잘 몰랐고, 그런 걸 알게 된 다음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신경 쓰기 시작하면 사진을 못 올린다. 또 연합뉴스는 ‘통신사’라는 특성상 포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인터넷 매체에도 사진을 제공한다. 많은 누리꾼이 다양한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거다. 사태(?)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사실 스포츠지에서는 국가대표 A매치가 끝나도 많아야 사진 10장 정도 밖에 못 쓴다. 그것도 가공되고 정제된 것들이다.
(황광모 사진기자) 아마도 ‘안티 이동국’ 이야기가 나왔던 시기가 한 기자가 대표팀 전지훈련 취재를 위해 대표팀과 함께 사우디로 가고 있던 올 1월 중순 무렵이다. 때마침 매일 사진이 누리꾼에게 보여졌기 때문에 더 관심을 끌었던 게 아닐까.

(누리꾼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됐던 그의 사진들 가운데 일부. [사진=연합뉴스])
▲ 선수들의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담은 사진들을 꼭 올려야 했는가.
중요한 점은 그런 사진들이 모두 결정적인 순간을 담은 것들이라는 거다. 스포츠 사진은 항상 결정적인 바로 그 순간이 중요하다. 그걸 놓치면 흔한 말로 물 먹는 거다. 가령 공이 와서 받는(헤딩하는) 순간에 선수들의 얼굴은 당연히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사진기자들이 다 그 것을 잡아낸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수들도 다 알지 않겠나. 골을 넣고 멋진 세리머니 장면도 사진기사로 나가는데 자기 얼굴 이상하게 나갔다고 뭐라 할 선수는 많지 않을 것 같다. 간혹 누리꾼 중에 ‘스포츠 사진은 어쩔 수 없다고 대신 해명해 주기도 했다.(웃음)
(황광모 사진기자) 선수들마다 표정이 있다. 어느 상황이든 항상 헤딩할 때는 거의 똑같은 표정이 나온다. 무엇보다 이동국 선수는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였다. 당연히 그런 사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 기자는 셔터타임이 정말 좋은 사진기자 중 한 사람이다.
▲ 처음에는 ‘선수 안티’ 기자로서 누리꾼에게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 마음 고생은 없었는가.
미니홈피가 알려지고 욕이 하도 많이 올라왔던 때가 있다. 주위에서 아들 사진도 있으니 걱정을 해줬지만 크게 신경 안 썼다. 다만 어느 정도 친분 관계가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도록 로긴을 해야만 내용을 볼 수 있게 해놓았을 뿐이다.
▲ 주로 축구 사진을 찍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몸 담고 있는 연합뉴스는 통신사다. 아스팔트 위(집회나 시위 현장)부터 스포츠 사진까지 다양하게 찍는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야구와 농구 등 가리지 않고 사진 취재를 한다. 다만 월드컵과 맞물려 축구 사진을 좀 많이 찍었던 편이긴 하다.
▲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글을 남겨 오해를 사기도 했다. 무슨 뜻이었나.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다. 야구는 때때로 스포츠를 취재하는 사진기자에게 가장 지루한 취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아는 선수와 그냥 편하게 남긴 말이니 오해가 없으면 좋겠다.
"밥 제 때 못 먹는 게 가장 고생..희대의 낙종할 뻔도"
▲ 사진기사의 제목과 설명(캡션)은 본인이 직접 쓰는 것인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번 월드컵의 경우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하다. 이해해 달라.
▲ 지금까지 찍은 사진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나 특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었는가.
좀 무난하게 살았던 편이다. 튀는 것은 없었다. 어제 찍은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나 할까…. 항상 마음에 드는 사진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사실 학교 다닐 때 정말 싫어했던 질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이야기해보라는 거였다.(웃음)
▲ 고생했던 기억이나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말해줄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제 때 밥 못 먹는 게 가장 고생스럽다. 특히 골프 취재를 나가면 하루 종일 무거운 사진장비를 들고 밥도 못 먹고 따라다녀야 한다.
한번 정말 큰 일 날 뻔 했던 기억은 있다. 반기문 장관과 카다피를 만나는 날이었다. 카다피가 언제 올 지 몰라 하루종일 호텔에서 기다려야 했다. 마침 몸살 기운도 있었기에 바람도 쐴 겸 잠시 거리로 나가 스케치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호텔로 돌아왔는데 발칵 뒤집혔더라. 카다피가 오라고 그래서 한참 찾았다고. 5분만 더 늦었으면 희대의 낙종을 할 뻔했던 경험이다.

(사진기자로서 사진에 대해 말하는 그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 사진을 전공했는가.
우연찮게 사진학과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자주 사고를 치고 다닌 편이었다. 그 때 어머니 친구분이 ‘돌아다니기 좋아하니 사진하면 되겠네’라고 권유했고, 그렇게 입문했다. 이 일을 해보니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원래는 연출을 하고 싶었다.
▲ 앞으로도 사진기자 일을 계속 할 것인가.
이 일로 먹고 산다. 이거 안 하면 처자식도 있는데 어쩌겠는가. 혹시 로또에 당첨되면 모를까. 개인적으로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싶은데 현재로서는 능력이 안 된다.
▲ ‘팬’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해달라.
사실 사진기자가 이렇게 조명 받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찌 됐든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사진기자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가끔 이메일을 보내와 어떻게 하면 사진기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사진기자를 꿈꾸는 분들은 그만큼 고생할 것도 각오해야 한다. 이 직업은 몸도 피곤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큰 편이다. 월드컵도 아내와 가족과 함께 볼 수 없다. 6월 11일 주니 생일도 그냥 넘겼다.
▲ 자투리 질문이다. 기사를 송고할 때 ‘xyz’라는 아이디를 쓴다. 이 점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는 누리꾼이 있다. 어떻게 그 아이디를 사용하게 된 것인가.
큰 의미는 없다. 사람들에게 쉽게 기억될 수 있는 아이디를 생각하다가 결정한 거다. 판에 박힌 듯 자기 이름 이니셜을 쓰기는 싫었다. 그리고 한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웃음) 아, 다른 포털의 아이디는 'dbdbqpqp'다. 형상이 재미있지 않은가.(또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