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먼저 생명의 위기를 설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재촉한 후, 바라문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많은 공덕을 쌓을 수가 있다며 설득했다.
그리고 석존이 하고 있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심(己心)의 격렬한 갈등극(葛藤劇)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석존은 미혹되어 마음이 천 갈래로 흐트러졌다.
체력도 소모되어 쇠약한 가운데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엄습해 왔을 것이다.
또 저 격렬한 고행에서도 아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을 것만큼 지금의 노력도 결국은 소용 없는 짓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떠 올랐을 것이다.
하여튼 욕망에 대한 집착이, 굶주림이, 졸음이, 공포가, 의혹이 그를 덮쳤다.
마(魔)란 정각(正覺)에 대한 구도(求道)의 마음을 뇌란(惱亂)시키려는 번뇌의 작용이다.
그것은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가 하면 육체적인 굶주림이나 졸음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혹은 불안이나 공포, 의혹이 되어 마음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인간이 그 마에 미혹되면 자기의 좌절을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정당화하는 법이다.
더구나 그것만이 이치에 맞는 것처럼 생각해 버린다.
예를 들면 석존의 '이렇게 해도 깨달음 따위는 얻을 수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은
그때까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없었던 만큼 언뜻 타당한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마는「어버이와 같은 생각을 갖느니라」(어서 917쪽)고 하지만 때때로 마는 자기의 약함이나 감정을 긍정하는 상식론에 의지하는 기분을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석존은 그것이 '마' 라는 것을 간파하고 생명력을 분기하여 잡념을 떨쳐버리고 소리 높이 외쳤다.
"악마여, 겁쟁이는 너에게 패배할지 모르지만 용자(勇者)는 승리한다. 나는 싸우겠다. 패배하고 사느니 싸우다 죽는 편이 좋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주위는 밤의 정적에 감싸인 채 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맑은 빛을 지상에 던지고 있었다.
마를 극복한 석존의 마음은 상쾌했다.
정신은 맑게 갠 푸른 하늘과 같이 한 점의 흐림도 없었다.
부동(不動)의 경지가 확립되어 그의 사념(思念)은 자신의 과거를 비추어 갔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상기했을 때, 잇따라 전생(前生)이 떠 올랐다.
둘. 셋, 넷 계속해서 과거의 생애가 되살아나 그것은 몇백, 몇천...의 생애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그때의 자신의 과거 모습이 선명하게 그의 뇌리에 그려져 갔다.
그리고 그의 사념은 다시 수많은 우주의 성립과 파괴에까지 다다랐다.
석존은. 지금 보리수 밑에서 명상하고 있는 자신이 구원의 옛날부터 생겼다가 멸하고, 멸했다가 또 태어난다는 그 연속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상세(三世)에 걸친 생명의 영원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 때. 태어난 이래 마음 속 깊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모든 불안이나 미혹이 사라졌다.
자기라는 존재의, 미동조차 하지 않는 깊은 뿌리에 간신히 도달한 것이다.
그는 무명(無名)의 어둠이 사라지고 지혜의 광명이 자신의 생명을 비추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산꼭대기에서 사방을 바라보듯 그의 경지는 열려져 갔다.
석존의 갈고 닦은 사념은 나아가 일체중생의 숙명으로 향해 갔다.
그의 흉중에 모든 중생이 살다가 죽고 또다시 태어나는 모습이 역력하게 비치었다.
어떤 사람은 불행한 모습이었고 어떤 사람은 행복한 모습이 었다.
그는 일념을 응축시켜 그 원인을 더듬었다.
불행한 숙명을 짊어진 사람들은 전세(前世)에서 자신들의 행동으로, 말로
혹은 마음으로 악행(惡行)을 저지르고 정법의 사람을 비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그에 따른 그릇된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후(死後)에 불행한 숙명을 짊어지고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것에 비해 행동, 말, 마음으로 선행(善行)을 하고 정법의 사람을 비방하는 일도 없이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올바른 행위를 한다면 사후는 행복하게 되었다.
현재세는 과거세의 숙업으로 결정되고 미래세도 또한 현재세의 행위로 결정된다.
지금 석존은 그것을 명확하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변전(變轉)하는 중생의 생사(生死) 속에서 엄한 생명의 인과이법(因果理法)을 명확히 깨달았다.
밤은 깊어 갔다. 석존은 무한한 대우주와 자기의 합일(合一)을 느끼면서 깊이 깊이 사유를 계속했다.
어느덧 새벽녘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동쪽 하늘에 샛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무수한 빛의 화살이 내리쬐는 것처럼 석존의 영지(英智)는 불변의 진리를 선명하게 비추었다.
그는 가슴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몸은 감동하여 어쩔줄 몰랐고 뺨은 붉게 물들고 눈에는 눈물이 넘쳤다.
"이것이다. 이것이다!"
이 찰나. 이 순간, 석존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마침내 불타가 된 것이다.
그의 생명의 문은 우주를 향해 열리고, 일체의 미혹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법' 위를 자재로 유희하고 있는 자신을 느켰다.
이 세상에 생(生)을 받아 처음으로 맛보는 경지였다.
석존은 깨달은 것이다.
- 대우주도 시시각각으로 변화와 생성(生成)의 리듬을 새기고 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 아이도 언젠가는 늙고 마침내 죽고 또 태어난다.
아니, 사회와 자연 또한 한 순간도 정지하고 있는 것이 없다.
그 유전(流轉)해 가는 만물(萬物)과 만상(萬象)은 반드시 무언가를 연(緣)으로 하여 생기고 멸(滅)해 간다.
무엇하나 단독으로 이루어 지지 않으며 모든 것은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서로 연관을 가지고 '연에 의해 일어난다' 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서로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되고. 연(緣)이 되며 더구나 그것들을 관철해 가는 ‘생명의 법'이 있다.
석존은 그 불가사의한 생명의 실체를 터득한 것이다.
자신이 지금 체득한 법으로 무한한 인생을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박해도, 곤란도, 역경도 이미 바람 앞의 먼지에 불과했다.
그는 생각했다.
‘사람은 이 절대적인 진리를 모르고 자신이 단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 착각이 결국은 인간을 욕망의 포로로 만들어 영원불변의 진리인 '생명의 법'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무명(無明)의 어둠을 방황하며 고뇌와 불행에 빠진다.
젊은날의 일기 1950년 11월 7일 (화) 가랑비 –22세-
「석존과 우리들은 본지(本地) 일체불이(一體不二)의 몸이니라. 석존과 법화경과 우리들의 셋을 전체 불가사의 일법(一法)으로써 전혀 셋의 차별이 없느니라」(〈수지관정구전초〉)
―. 광선선유포를 위해 선구에 서서 끝까지 전진하는 진정한 청년이 될 것. ―. 학회 수뇌에 관하여 명확한 판단을 해 갈 것. ―. 철저한 어서 연구와 실천을 위한 깊은 반성. ―. 내가 맡은 지부를 결연히 발전시킬 것. 병행해서 조직의 확립을 서두를 것. ―. 선생님의 사업 발전을 위한 사색. ―. 나의 신념에서 심천(深淺)을 반성. ―. 나의 경제 문제, 새로운 가정을 만들 시기.
경제적으로 정말 힘들다. 선생님 댁도 어려운 모양. 하루라도 빨리 편안하게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광포의 진두지휘를 청원할 뿐. #
1955년 11월 7일 (월) 쾌청 –27세-
건강이 좋아졌다. 휴식도 중요, 건강을 위해서는. 선생님 · 사모님과 앞으로의 바람직한 회사 방향 등에 대하여 협의.
밤, 나가노의 도우엔회관에서 2급 강의. 《절복교전》의 생명론으로 들어갔다. 나로서는 기분 좋게 끝났다고 생각한다. 사전에 먼저 공부한 것이 중요. 돌아오는 길에 N지부장 댁을 들렀다. 점점 더 추워진다. 보온 주머니를 끼고 산다니 젊은 나이에 정말 어처구니없다. #
1957년 11월 7일 (목) 흐린 뒤 맑음 –29세-
오수 6시 ― 추계 제17회 본부총회의 예행연습. 고라쿠엔경륜장에서.
아름다운 달빛이 달그림자 있어도, 그것을 바라보고 시를 읊을 여유 없으니.
무한한 대우주를 사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소련이 혁명 40주년 기념으로 ― 인공위성을 발사하였다. 대자연도 위대하고 인공위성을 만들어낸 인간의 힘 또한 위대하다.
11시 조금 넘어 귀가. 추워졌다.
M지부장의 실패에 대해 H씨와 함께 야단쳤다. 어쩔 수 없다. 반드시 변독위약(變毒爲藥)하길.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더욱더열심히 하겠습니다
매일의행복입니다~^^~
감기조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