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서굴 벽화
돈황 석굴을 최초로 굴착한 때느 366년이라고 한다.
지금의 남아 있는 석굴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 초에 굴착한 것이다. 돈황의 초기 석굴의 벽화에 강한 채색은 인도와 서역지역의 영향이다.
285굴은 북위 시대애 굴착하여 벽화를 남겼다. 285굴은 채색이 된 서역회화와 중국 양식 회화가 혼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돈황 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미술이 나타난 시기는 북위 시대(386-534)이다. 서위 때(535-556) 때가 되면 회화에서 중국적인 요소들이 뚜렷이 드러난다. 돈황의 초기 석굴에는 서역 양식과 중국 양식이 섞이지 않고 따로따로 그려진 것들이 여럿이다. 그러나 점차 한 그림에 뒤섞여서 나타남으로, 혼합 양식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서역 미술이 중국 미술에 영향을 엄청 많이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조 때의 불교 그림에는 본생담 고사, 승려들의 이야기 들을 그림으로 남겼다. 석가의 본생담도 많다.(석가가 전생에 베픈 일들) 자기의 살을 베어 주고 비둘기를 살린 이야기며, 굶주리는 호랑이에게 자기 몸을 바치는 이야기 등등이다. 북위 말기에 굴착하여 벽화를 남긴 249굴에는 서역미술과 중국미술이 융합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요약하면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인도와 서역의 채색화도 함께 들어와서 중국 미술에 영향은 준다. 그래ㅓ 중국 미술이 화려해지진다. 이 시기의 북조에서는 분묘 벽화가 크게 발전한다.
중국 미술이 색채를 사용하여 화려해진 것은 불교 미술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불교가 들어오는 것은 종교적 전표만이 아니다.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