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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강경애-어머니와 딸(3)
예쁜이는 밥 먹을 턱은 없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읍으로부터 몇 고개 넘어가 무초리라는 곳에서 술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러는 사이에 아기는 열 살이 되었다. 지금은 제법 물 길어 밥을 곧 잘하였다. 그리하여 예쁜이는 술상이나 차리는 외에 양 끼니 때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인물 고운 새 술장수 났다더라, 소문이 나니 어딧놈이 다 안 불려오는지 몰랐다. 그리하여 밤낮으로 장구소리 그칠 사이가 없고 싸움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예쁜이는 술만 취하면 둘러앉은 사내놈들에게 헛욕질을 대고 퍼부으며 보기 싫게 입을 벌리고 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휘몰이 장단을 쳐서 사내놈들을 쫓아버린 후 앞마당 풀바탕에 털썩 주저앉아 고함을 치며 울었다. 옛날 둘째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딸은 어머니 팔을 부여잡고,
"오마니, 들어가자우. 남들 욕해."
그는 목에 핏대줄을 올리며,
"욕하면 어떠냐, 개 같은 놈들. 내가 저희 덕에 산다더냐!"
한참이나 악설을 퍼붓다가는 금시로 아리랑 타령을 스러져가는 듯이 눈물 섞어 부르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아기는 어뜩 새벽에 일어나서 조그만 동이를 이고 물 길러갔다. 윗집 봉준 어머니는 마당을 쓸다가 어린것이 매일 아침 다니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키워서 자세히 보았다.
"아가 춥지 않니?"
"아니오."
쳐다보는 그 눈은 별같이 빛났다.
"어마이 무얼 하니?"
"술 취해서 자고 있어요."
"응."
머리를 끄덕이며,
"네가 밥하니?"
"네."
"용쿠나. 애기 어서 가 밥해라. 그리고 우리 집에 놀러 오너라."
"네."
돌아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그의 뒷맵시를 한없이 바라보던 그는 즉각적으로 범상한 애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리고 탐스러운 생각이 났다. 자기는 아들이 있으면서도 항상 알찍은 마음이 한편에 있었던 것이다.
동네에서는 그 부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소년과 수로 유복자를 데리고 유족한 생활 속에서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그것뿐이었다. 따라서 한낱 부인으로서도 남자 못지않은 수단이 있는 여자라는 밑에 맹목적으로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 부인의 과거를 잠깐 애기하고 지나가자.
이 부인의 기억에 아직 새롭게 남아 있는 것은 자기는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손을 빌어 평양 고아원에서 칠 세까지 자란 후에 어떤 사람의 손을 거쳐 기생학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기생학교를 졸업한 그는 나날이 소문이 높아져서 열 칠팔 세에 평양의 유명한 예기 산호주라면 누구나 모를 사람이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면서부터 별난스러운 그는 쓰라린 현실 속에서 다소 침착하여졌으나 그러나 여전히 좀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누구나 그를 초면으로 대하게 되면 다소 환멸을 느끼고 말 한 마디라도 헛놓고 하다가는 번번이 콧방을 맞고 나서 며칠 몇 달을 지내는 사이에 그의 엄연한 인격에 여지없이 굴복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부호 자제들이 날마다 그의 무릎 앞에 꿇어 돈으로나 기타 무엇으로든지 그의 마음을 사보려고 갖은 모양을 다 피우나 넘어갈 듯 넘어갈 듯 하면서도 아주 넘어가지 않는 그만큼 그의 이름을 나날이 올라갔던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 그는 항상 혼자 있기를 좋아하였다. 그때에 자기의 본성이 발로되는 것이었다. 두 눈을 가만히 뜨고 끝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그는 평상시와는 딴판인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어느 때나 위급할 때를 당하게 되면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 가지고 모든 것을 후회 없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든지 무심코 듣고 보는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자기에게 대조해 보고 끝없이 자기의 처지를 불만히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의 장래라는 것은 눈물나리 만큼 불쌍하게 보였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남과 같이 남편을 얻어 아들 딸 낳고 자미있게 살아볼까. 에라! 생각하면 무엇하리, 나 같은 년에게.’
나이가 한두 살 많아갈수록 그의 가슴은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갈수록 태산만이었다.
그에게는 돈, 그것이 악마같이 생각키웠다. 그리고 알뜰한 인정, 그것이 안타깝게 그리웠던 것이다. 세상에는 사내가 많고 많건마는 이년에게는 사내 하나가 태이지 않았담! 이렇게 탄식하고 남몰래 우는 적이 많았다.
그가 스물한 살 잡히던 때, 우연한 기회에 어떤 보기에도 초라한 고학생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후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남몰래 그의 하숙으로 자주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여름밤 비는 느실느실 오기 시작하였다. 졸이는 가슴으로 손님들을 억지로 쫓다시피 하고 보니 새로 두 시 반이었다. 그는 분주히 옷을 갈아입고 미리 약조한 곳으로 가보니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그는 감격의 치밀리는 기쁨이 진하여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입때 기다리셨소?"
그를 만나면 어쩐지 수줍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슴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앞으로 슬금슬금 걸었다.
"그러믄요."
침묵 속에 그들은 걸었다. 이때마다 번개질을 하였다.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는 차츰차츰 가까이 들렸다.
"공부도 그만둘 테야요."
그는 놀라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묻는 사이에 돈 때문일까 혹은 나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공부도 아무것도 귀치 않으니까요."
"특별한 사정이 있습니까? 숨김없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네."
"별한 사정도 없이 그저 모두가 귀치 않고 당신……."
그는 여기까지 끊고는 잠잠하였다. 듣던 그는 반가우면서도 한 켠으로 겁이 났다.
"강수 씨, 당신은 그러한 번민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송할 때가 아닙니다. 만일 당신께서 이 사람으로 인하야 공부도 치워버린다면 단연코 당신과 가까이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만을 깊이깊이 알아주시지요. 그러고 앞으로 부족하나마 당신의 학비까지도 저의 힘 미치는 데까지는……."
머리를 숙였다. 한참이나 말없이 걷던 그는,
"고맙습니다!"
겨우 이렇게 대답을 하고 부끄럼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고상한 말에 감복되었다.
그들은 송림 새로 들어섰다. 강수는 어떤 소나무 아래 앉으며,
"여기 앉으십시오."
자기 양복 웃저고리를 벗었다. 그는 분주히 도로 입히며,
"모두 낡은 옷입니다. 새 옷이라면…… 이까짓 옷 버리면 어떻습니까?"
강수 옆에 걸터앉았다.
별안간 강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십니까?"
그는 잠잠히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번갯불이 번쩍했다.
이리하여 돌이라도 녹일 듯한 사랑이 계속될수록 반면에 산호주의 격렬한 후원은 강수의 용맹스러운 힘이 되고야 말았다. 하여 무사히 중학을 마치고 일본까지 건너가게 되었다.
애인을 보낸 산호주는 사내놈들의 단련을 받다 못해 어떤 때는 매까지 맞는 때가 종종했지만도 모든 모욕이 남편을 위해 하거니 하여 스스로 위로받으며 오히려 그들을 골라서 한 푼이라도 빼앗을 궁량만 하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다. 어느덧 형설의 공을 쌓아 가지고 그리운 고향으로 나온 강수는 평양 모 중등학교 교편을 잡게 되었다.
중화로부터 그의 부모들은 아들의 뒤를 따라 평양성내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의 혼사담은 바짝 일게 되었다.
하여 산호주에게는 말 한 마디 전함 없이 그곳 사립 모 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깨끗한 여학생과 드디어 약혼되어서 문밖 예배당 내에서 목사의 주례하에 성대한 결혼식은 끝나고 말았다.
바로 결혼식 열흘 앞두고 산호주를 찾아온 강수는 아무러한 눈치도 그에게 보이지 않고 간 후 발길을 뚝 끊고 말았다.
소문을 들은 산호주는 새삼스럽게 놀라지는 않으면서도 자기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을 얼핏 깨달았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 한 마디로 오륙년간 받은 자기의 상처를 눌러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용이히 매워지지 않는 그 상처는 마침내 그로 하여금 벙어리라는 별명까지 듣게 하였다.
그는 손님 맞기를 싫어하고 불러도 가기를 싫어했다. 그저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끝없는 침묵 속에 별 신기맹통한 공상도 못하면서 꽁하니 앉아 있었다.
어떤 날 그는 모란봉 위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잔잔히 흐르는 대동강 물, 다정히 모여 앉은 능라도 수풀도 별한 아름다움과 흥미를 그에게 주지 못하였다. 그저 그렇다 할 뿐이었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이상히 생각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실연의 쓴맛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럴까? 강수 때문에? 딱히 강수 때문인 것 같지 않았다. 어쩐지 자기 가슴속에 열이란 하나도 없어지고 차디찬 송장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면 세상을 버릴까 하는 최후까지 마음 키워 보았으나 그다지 염증나게 세상이 싫지도 않았다. 그저 그만그만하였다.
몇 사람의 지나치는 신발소리도 들었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한참 이러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 그는 발길을 돌렸다.
그의 앞에 딱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 얼른 쳐다보니 강수였다. 한참 동안 강수를 쏘아본 그는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산호주, 잠깐만 기다리오."
그는 우뚝 섰다. 발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은 느긋느긋함이 돌았다. 산호주는 머리를 돌렸다. 바짝 다가선 강수는,
"한번 집까지 가려는 중에 잘 만났습니다."
"네."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주춤 물러났다. 씨근씨근하는 그의 숨소리가 불쾌했던 것이다.
"용서하여 주시겠소? 물론 영리한 당신인 것만큼 이번 일에 대하여는 관서할 것으로 믿습니다마는. 네, 용서하시지요. 환경이 나로 하여금 그리 맨들었소마는, 그러나 당신만은 내가 잊을 수가 있소?"
우두커니 서서 듣고 있던 그는,
"그렇겠소."
"용서하시지요? 나는 믿습니다."
"더 할 말 없지요?"
그는 다시 돌아섰다. 그리하여 천천히 내려왔다. 멍하니 바라보던 강수는,
"산호주!"
빽 질렀다. 그는 돌아보았다.
"전과 같이 나를 사랑하겠소? 안 하겠소?"
사랑이란 말을 들을 때 그는 웃음이 칵 쓸어 나왔다. 그는 입을 틀어막고 한참이나 진토록 웃었다. 강수는 몸이 바짝 달아서,
"그새 다른 놈 붙인 것이로구나!"
하고 노려보았다. 웃는 것이 무엇보다도 불쾌했던 것이다. 산호주는 쓸쓸한 코웃음을 던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몇 번이나 지나치는 길가에서, 혹은 요리집에 불리어가서 강수를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인사를 건네는 것뿐 아무 다른 눈치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강수는 행여나 하여 그의 뒤꽁무니를 따라 본 때도 있으며 오밤중에 산호주 자는 방문을 두드린 적이 많았다.
몇 달이 지나자 산호주는 자기가 홀몸이 아닌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달 밝은 밤, 소리도 인적도 없이 진절머리나는 평양을 벗어나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얌전한 집을 사고 논밭 합하여 십여 마지기를 샀다. 그리고 대강 한 세간살이를 마련하여 재미를 알아올 만한 때 해산을 하게 되었다,
그의 원하던 대로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것을 안고 들여다볼수록 신기맹통스러웠다. 따라서 차츰차츰 차디차던 그의 가슴은 따스한 모성애로부터 녹아갔다.
어린 봉준이는 매일 달라 갔다. 몇 달이 지나자 젖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꽃송이 같은 입을 벌려,
"엄마, 엄마."
하였다. 빼빼 말라붙었던 그의 눈에서 감격에 넘치는 눈물이 그의 볼을 적시게 되었던 것이다.
봉준이가 자라날수록 그의 희망은 커졌다. 하여 살림살이를 어쩌는 수가 없이 일감을 만들어 가며 잠시도 놀지 않았다.
일꾼을 데리고 밭 몇 마지기를 손수 부쳤다. 그리하여 여름에는 농사 뒤치기에 눈코 짬이 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엄마!"
하는 소리만 들으면 어려운 줄을 모르고 악하고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동네에서도 이 부인을 흠모치 않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농사하는 집일망정 깨끗하여 먼지 있는 것을 볼 수 없으며 심지어 뜰 앞 구석에 박혀 있는 돌 한 개라도 사람의 발부리에 채이지 않도록 자기를 잡아놓는 일이며, 항상 손부리에서 노는 호미, 괭이, 걸레, 비, 화로, 성냥갑, 바느질 그릇, 암질러 잃어버리지 않도록 급한 때 얼른 찾도록 교묘히 정돈해 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냥 한 개비를 무단히 없애지 않고 실 한 바람을 유효하게 썼다. 하여 점점 늘어가는 그의 가세는 매해 달라갔다.
그러는 사이에 봉준의 나이 일곱 살이 되었다. 그는 분주히 그곳 예수교학교에 아들을 입학시켰다.
그 후부터는 아침이 되면 봉준이가 책보를 들고 학교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는 말없이 아들의 가는 뒤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것을 사람을 맨들어놔야 할 텐데……’ 이렇게 생각할 때 어머니란 책임이 무겁고도 막연함을 깨달았다.
동네 새 술장수집이 생긴 후로 잠잠하던 촌동네가 뒤숭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내어 쫓자는 사람으로, 덮어놓고 욕질하는 사람으로, 한동안은 그에게로 부산히 문안 겸 노친네 젊은 부인네들이 저녁이 되면 모여들었다.
그는 언제나 말없는 웃음으로 그들을 대해 주면서 밤낮으로 우는 예쁜이의 정형이 불쌍하였다. 따라서 그의 앞으로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그의 어린 딸은 연중에 탐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꼭 다문 입술, 사려 깊은 듯한 그의 눈은 장래가 있다는 것을 그로 하여금 상상케 하였다.
이렇게 생각이 들수록 예쁜이에게서 이 아이를 자기에게로 뺏아올 마음이 들었다. 자기가 예쁜이보다 어머니로서의 모든 책임 이행이 낫다해서 그렇다는 것보다도 영업이 영업인 것만큼 그 어린 천진한 것에게 벌써부터 술 냄새와 사내놈들의 꼴을 보이는 것이 자기 경험을 미루어 가엾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가 마당에 나왔다가도 아기만 뵈면 손짓을 하여 손목을 꼭 잡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밥이든지 무엇이든지 먹여 보내곤 하였다.
아기는 눈만 뜨면 봉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언제나 고요히 웃는 눈, 항상 쓰다듬어 주는 그의 흰 손, 그리고 가늘고도 부드러운 그의 음성이었다. 더구나 봉준의 고운 옷감을 끊어다 손수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아기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아기는 가만히 자기 어머니를 생각해 보았다. 구석구석이 때묻은 옷을 내버려두는 것, 그리고 술이나 마시고 마시고, 해종일 마시고는 사내놈들의 무릎과 무릎 사이로 옮아 다니는 꼴이었다. 그는 울고 싶었다. 아니 남몰래 우는 적이 많았다. 그는 쓰라린 현실로부터 그의 이지(理知)는 엉뚱나게 발달되었던 것이다.
아기는 틈만 있으면 봉준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가, 밥 먹었니?"
"네."
"더 먹지?"
"싫어요."
봉준이는 공부한다고 책을 벌려 놓고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그는 옆구리로 다가앉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봉준이 어머니는,
"아기도 공부하고 싶으니?"
그는 머리를 폭 숙였다.
"학교 가고 싶어?"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애기의 대답이 없음에 ‘아마도 아직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그러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아기의 눈물이 봉준 어머니 손에 떨어졌다. 그는 놀라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어째 우니?"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한테 꾸지람 들었니?"
봉준 어머니는 너무 안타까움에 그의 목을 얼싸안고 들여다보았다. 봉준이도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가, 말해라. 웅?"
"학교 가고 싶어……"
울음 섞어 말하였다. 순간에 봉준 어머니의 가슴은 쾅하고 내려앉음을 느꼈다.
"오냐, 너도 물론 배우고 싶었을 테다. 내가 어리석게 네 마음을 몰랐구나!"
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그렇게 알뜰한 것을 공부를 못 시켜 주나, 배우지 못함에 그 어린 가슴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랴,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가, 내일부터 학교가라. 어머니보고 물어보고 학비는 내가 물어주마. 응?"
그는 금시로 눈물 괸 눈에 웃음이 돌았다.
"어머니가 못 가게 하면……"
애처롭게 그를 쳐다보았다.
"오냐, 내 말하마."
그 후부터 아기는 봉준의 집으로 아주 옮아오고 예쁜이는 사내놈을 달고 멀리 뛰어버렸다.
봉준 어머니는 아기의 이름을 옥이라고 지었다. 십여 살이나 먹도록 이름 없는 한낱 생명이었던 것이다.
봉준 어머니가 옥이를 데려다 놓고 가지각색 옷을 맵시 있게 꽃다대처럼 해서는 입히곤 하였다.
따라서 옥이도 나간 어머님 생각은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따금 봉준이가 툭 부러지게,
"가아, 너의 엄마한테로 가야."
이런 소리를 듣고 나면 어린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것이었다. 봉준 어머니는,
"봉준아, 나는 너의 엄마는 아니고 옥이 엄마다! 네가 나가라."
웃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보면,
"아니야 엄마."
그에게로 와서 안기려면 물리치며,
봉준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면 잠잠하였다.
"안 그러지, 봉준아. 옥이도 이리 온."
두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옛날 영웅 이야기 같은 것으로 짤막한 동화 같은 것을 하여 들이곤 하였다.
옥이 열네 살 잡히고 봉준이는 열한 살 나던 해 가을, 그의 어머니는 감기에 걸려 십여 일 꼿꼿이 앓은 결과로 아주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봉준과 옥이 손을 붙잡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한 채 가고 말았던 것이다.
바로 임종시에 애들의 선생인 김영철이를 데려다 놓고 불쌍한 두 어린것들의 장래를 부탁하였던 것이다.
피가 흐르는 듯한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무거운 짐을 한 어깨에 짊어진 영철 선생은 그 둘이 아플세라, 혹은 공부를 잘 못할세라 안팎으로 마음을 졸여가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들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언을 따라 옥이 스무 살 잡히던 해에 그곳 예배당 내에서 그들의 혼례식은 끝이 났다.
시어머님은 본을 따라 옥이는 세간 살림을 나무랄 여지가 없이 잘하였다.
남편인 봉준이는 곧 평양으로 공부 보내고 혼자서 농사 뒤를 쳐가며 남편의 학비를 보냈다. 이리하여 동네에서는 입 든 이마다
"나 어린것이 용해"
이렇게 일컬음을 듣곤 하였다.
봉준이가 평양서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자 영철 선생의 권으로 옥이는 읍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송화읍 내에 예수교 안으로 경영하는 청년학원에 그를 입학시키고자 함이었다.
그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공부에 재미를 붙여 밤잠을 못 자고서라도 남에게 떨어지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 인해서 학교 선생들까지 옥이를 사랑하고 학생들한테까지 질투심을 받게 되었다.
3. 남편
남편이 동경으로 간 후부터는 행동이 수상쩍은 일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이러한 편지를 하기 전까지는 차마 그에게 대하여 의심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역시 편지가 온 후에라도 제가 셈이 없어 그러거니, 철만 들면 어머니를 생각하기로서니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 이러한 위로로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나 며칠에 한 번씩 온다는 편지는 돈 보내라는 것 외에는 어서 이혼하고 당신도 다른 남편 얻어가라는 충고 비슷한 형식을 취하여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좋게만 해석하던 옥이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하여 그 잘하던 공부도 차츰차츰 뒤로 물러가며 따라 밤이면 꼬박 일어 앉아 새우는 밤이 점증하였다. 자기를 생각하여서 그러는 것보다도 나 어린 남편의 장래를 위하여 어쩌면 그로 하여금 편하게 마음대로 해주는 동시에 일생을 행복스럽게 만들어줄까, 자기의 신세를 마쳐 버리게 된다더라도 남편에게 행복함이 된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감행할 것 같았다.
옥이는 바느질그릇을 앞으로 당겨 놓고 일감을 들었다. 그러나 바늘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벌써 왔어야 할 남편이 아직 아무런 기별 없이 잠잠하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하여, 혹은 중로에서 무슨 남다른 일이나 만나지 않았나, 또는 동무집에 중참을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뒤숭숭하여졌다.
바라보니 조그만 거미 한 마리가 옥이 앞으로 조루루 내려와서 바느질그릇 위에 떨어지더니 또다시 줄을 거두어 가지고 천장으로 올라간다. 그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거미가 내려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일어났다.
뜰 앞 포플러나무 가지 위에서는 매미소리가 요란스럽게 난다. 옥이는 가만히 가만히 밖으로 나가서 나뭇가지를 살펴보았다. 매미는 푸르릉 하고 날아갔다. 숨이 답답하도록 햇빛이 내리눌렀다.
옥이는 골방 문 앞으로 왔다.
"나무 또 하러 가겠나?"
"가지요."
기성이는 일어났다.
"그만두게. 그러고 차부에 나가보게."
"오늘은 꼭 오시나요?"
매일같이 냄새나는 차부에 우두커니 나가 섰기가 열 쩍었던 것이다.
"글쎄, 나가 보게나. 늘 나가다가 오늘따라 없이 안 나가는 날 마침 오늘 오신다면 여지 나가던 보람이 없어지지 않나?"
그는 마지못하여 옷을 툭툭 털고 어정어정 걸어 나갔다. 그리 댐치 않은 꼴이었다.
"어서 빨리 가보게!"
소리치고 나서 안방으로 들어왔다.
밖으로부터 기성이가 가방은 들고 뛰어 들어온다. 순간에 그의 가슴은 쿵, 하는 소리가 자기 귀에도 확실히 들렸다.
"주인님 오십니다."
기성이는 아까와는 딴판으로 엉덩춤을 추며 지게를 얻어 지고 밖으로 나간다.
그는 몸 둘 곳을 알지 못하여 두루두루 보다가 부엌으로 나왔다.
어쩐지 가슴이 둘렁둘렁하기 시작하였다.
‘행여나 오늘 온다면 어쩔까, 어쩌기는 무엇을 어째?’
이렇게 생각하며 픽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뒤숭숭하였다. 그의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똑딱똑딱 시계를 따라 점점 가슴이 답답해 질 뿐이었다. 그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 후 가만히 일어났다.
구둣소리가 나자 남편이 들어왔다. 성큼 올라서서 방안을 들여다보며,
"옥씨, 어디 가셨소?"
부엌 뒷문에 비껴선 옥이는 두 눈이 캄캄해지면 땅 속으로도 퐁당 들어가면 좋은 것 같았다. 이때처럼 자신이 무겁고 귀찮을 때는 처음이었다.
기성이는 지고 온 고리짝을 내려놓고 땀을 씻으며 부엌으로 들어왔다.
"뎜심 어떻게 하나요."
옥이는 머리를 돌렸다.
"한 그릇 시켜 오게."
말소리가 들리자 봉준은 부엌 샛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옥씨, 안녕하시댔소?"
그의 얼굴빛은 아주 담홍빛으로 되었다. 기성이는 옥이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빙긋이 웃고 밖으로 나갔다.
"어서 이리 들어와요. 왜 그러고만 있소? 반갑지 않아요?"
묻는 말에는 그리 탐탁히 굴지 않던 사람이 이번에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럴수록 옥의 가슴은 점점 더 의문으로 꽉 채워졌다.
국수 그릇이 들어오자 상을 차려 기성이를 주었다. 그는 받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남편은 나왔다.
"여보 옥씨, 들어와요."
옥의 등을 밀었다. 그는 안타깝게 얼굴이 확확 달았다.
"어서 들어가세요."
그는 벙글벙글 웃으며,
"같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상을 들어 옥의 앞에 갖다 놓고,
"기성이, 공기 들여오게. 빈 그릇이라야 잘 알아 듣겠군. 여보게, 빈 그릇 들여다주게."
빈 그릇을 받아 놓고 국수를 덜어 자기 앞에 놓았다.
"같이 먹읍세다, 우리."
저를 들어주었다.
"금방금방 먹었어요."
"먹기는 나도 먹었소. 하 권할 때 못 이기는 것처럼 하고 들구려."
옥이는 그의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입은 꽤꽤 썼다. 남편은 얼른 먹고 저를 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옥씨."
그도 따라 저를 놓았다.
"요새 방학했지요. 당신네 학교에서도!"
"네."
"공부 자미나요?"
"그렇지요, 뭐."
"김 선생님 늘 오셨소?"
"네."
남편은 벌컥 일어나서 양복을 훌훌 벗고,
"기성이, 고리 끌르게!"
그는 분주히 달려가서 고리짝을 벗기고 가로세로 줄진 하오리를 내어 입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옥이는 ‘저것은 또 무엔고’ 어쨌든 남편이 하는 것은 다 좋아 보였다.
남편은 꺽둑이를 신고 마당으로 나갔다.
"여보게 기성이, 자네 다락 지을 줄 아나?"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주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글쎄요, 지으면 짓겠지요."
"그렇지, 자네쯤 해서 다락 못 짓겠나?"
그는 벙글벙글 웃으며 포플러나무 아래로 왔다.
"여기다 짓게. 빨리 지어야 하네 정, 울짱 있나?"
"좀 있지요."
"잘 되었네. 어디 있나?"
복술이는 밖으로부터 들어오자 컹컹 짖었다. 그는 복술이를 어루만졌다.
"강아지가 이렇게 컸나?"
마루에서 고리를 뒤지고 있는 옥이를 쳐다보았다.
밤낮으로 쓰다듬어 기른 복술이를 어루만질 때 옥의 가슴은 오싹해짐을 느꼈다.
기성이는 울짱을 한아름 안고 뜰 안목캐로 나왔다. 그리하여 구렁을 파고 기둥 네 개를 세웠다. 기성이가 땀을 씻는 동안 봉준은 괭이를 둘러메고 헛괭이질을 하였다.
"것도 못하겠네그려. 자네 용허이."
기성이는 허허 웃었다.
이리하여 봉준은 잔심부름 뻔뜩케 하여 해질녘에 겨우 다락을 지어놓았다.
"수고 단단히 했네. 고맙네."
부엌으로 뛰어들자 개숫물에 손을 씻으며,
"저 봐요, 옥씨!"
옥이도 따라 웃었다.
"좋지요, 기세는 밥 많이 주."
기성이를 쳐다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들은 어리둥절해졌다. 따라 어림상은 없어지고 떨리던 옥의 가슴도 적이 가라앉았다.
저녁을 물린 그들은 봉준의 권으로 다락 위에 올라앉았다. 그는 자기 손끝에 노는 기구를 전부 다락으로 옮겼다. 그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남편은 바이올린을 내어 뜯었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처량하게 들렸다. 그도 시원치 않은지 이번에는 하모니카를 내어 불었다. 어깨까지 들썩들썩 하였다.
모든 것에 능통한 남편을 쳐다보는 옥이는 속으로 ‘어머님이 계셨더라면 얼마 기뻐하시랴’ 남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기성이는 두 분을 똑바로 뜨고 봉준이의 몸세 놀리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하모니카도 싫증이 난 봉준은,
"자리 올려다 주우."
이제야 기성이는 제정신이 들었던지 후닥닥 일어나 내려왔다. 뒤를 이어 옥이도 내려와서 자리를 올려주었다.
"옥씨, 편안히 주무시오 나 위해 오늘 수고 많이 하였소."
늦게 일어난 남편은 다락문을 열고 부시시 나왔다. 미리 떠다 놓은 세숫물에 세수를 하고 다락으로 올라가서 한참 후에 나오는 그의 얼굴은 한층 더 환해졌다. 그는 밥상을 마주 앉으며,
"옥씨도 잡수어야지요?"
"먹었습니다."
몇 술을 뜨는 듯하더니 상을 물리었다.
"오늘 주일날이지요?"
"네."
남편은 양복을 바꾸어 입고 연해 면경 속으로 자기를 비춰보았다.
"기성이, 다락에서 솔 들여다 주게."
가져오는 솔을 받아 위에서부터 내려 쓸었다. 햇빛에 일어나는 먼지는 오색으로 빛났다.
"예배당에 갑시다. 당신 예수 잘 믿지요 그래서 나 위해 기도 많이 하신 댔지요."
옥의 얼굴은 빨개졌다. 오밤중에 일어나 눈물 먹어 쓴 편지 일면이 그의 앞에 빤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예수를 진실히 믿게 되었지요 그려."
빙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나가는 뒤꼴을 물끄러미 바라본 그는 ‘빠른 것은 세월이다!’ 하고 생각하였다.
재종 소리에 놀란 그는 분주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서 부엌 대문을 걸고 사랑문을 들여다보며 기성이에게,
"집 잘 보게."
하고 사립문을 지치고 골목 새로 빠졌다. 복술이는 뒤를 따랐다.
예배당 가까이 오자 우렁차게 울려 나오는 찬미 소리가 들렸다. 문안을 들어서며 ‘참으로 남편이 왔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남자 방을 힐끔 쳐다보았다.
"왜 언니 늦게 오시우?"
옥의 손을 꼭 잡아 제 곁에 끌어 앉히는 학생을 바라보니 상애였다. 따라 학생들은 눈으로 옥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상애는,
"숙희라는 여자 왔어."
가만히 말하였다.
"어디?"
그의 가슴은 호기심에 들떴다.
"언니 뒤, 네 사람 건너서."
이번엔 입을 막고 말하였다.
그는 조심히 돌아보았다. 트레머리 한 얌전한 처녀들이 가지런히 앉았다. 순간에 그는 일종의 질투 비슷한 감정이 떠올랐다.
"어때?"
"곱구나"
"곱기는 무어 고와? 그렇게 치장해서 안 고울 년이 어디 있담 정, 신랑도 왔겠시다리?"
"응."
"반가와?"
"그렇지."
그는 의미 있는 웃음을 웃고 나서 찬송을 불렀다.
예배 다 마치기까지 옥은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남편과 숙희가 번갈아 떠올랐다. 따라 점점 자신은 아무것으로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많이 알고 쓰기도 잘 할 터이지. 나도 배우면 되겠지.’ 이리하여 겨우 가라앉히는 사이에 벌써 예배는 끝났다.
욱욱 밀려나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두 여자의 가는 뒷맵시를 바라보았다. 날씬한 허리, 알맞은 키와 샛노란 구두, 하얀 팔뚝 속으로 비치는 손시계.
등을 툭 치매 돌아보니 기순이었다.
"언니 남편도 왔구려."
저켠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두 여자의 가는 뒷맵시만을 눈이 뚫어지도록 바라보는 것이었다. 순간에 그의 얼굴은 화끈 달았다. ‘그렇겠지!’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었다. 남편이 어째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따라 그의 전신의 맥은 탁 풀리고 앞이 캄캄하였다.
"언니, 오후에 또 오지."
"글쎄."
이렇게 맥없이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복술이는 앞장섰다. ‘나에게는 복술이 밖에 없다.’하고 눈물이 쑥 비어졌다.
"얼마나 기쁘나?"
남편과 영철 선생이 마주 앉았다.
"방학하고 곧 내려오지 무엇하기 여직껏 있었담. 옥이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네."
빙긋이 웃어 보였다.
"글쎄올시다. 동무 집에서 붙잡아서……"
옥이는 윗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부엌으로 나갔다.
"자네 이번 학비는 전보담 많이 썼지. 될 수 있는 데까지는 절약해 쓰게."
돈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그는 듣기 싫었다.
"조선과 달라서……"
"음, 그런 줄은 잘 아네마는…… 내장골 논을 또 팔아야겠네."
"팔지요."
선생을 쳐다보았다.
"지금 곧 팔게 하지요."
철없이 덤벙대는 봉준이를 물끄러미 바라본 선생은 난처하게 생각되었다.
"아무 때나 팔겠나, 내일 모레 벼를 비게 되었는데…… 늦은 가을쯤 가서 내어놓겠네. 아껴 쓰도록 하게.
그는 벌컥 일어나 왔다 갔다 하며 마루로 나왔다. 그의 발밑은 산뜻한 쾌감을 느끼며,
"무얼 하시우?"
옥의 이마 끝에는 땀이 방울방울 맺히고 불빛에 두 볼이 빨개졌다. 첫눈에 ‘과연 미인이다.’하고 봉준은 속으로 중얼대었다.
옥은 땀을 씻으며,
"점심 하지요."
"여보 그만 두. 더운데 시원하게 국수나 사다 먹고 말지. 어서 들어오우."
점심을 먹은 봉준은 방에 앉았기가 어째서 불쾌하였다. 그는 모자를 들고 일어났다.
"참, 지독히 덥군."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 후,
"저는 놀러 나갑니다."
하고 나가 버렸다.
"이번은 좀 나아진 것 같으네. 자네께 구는 것이."
옥이는 잠잠히 머리를 숙였다.
"그렇지 않나, 말하는 것이나?"
숙인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두 볼은 붉어짐으로 대할 뿐이었다.
"논은 팔기로 되었네. 봉준이까지 팔라니까."
"네? 팔라고 합데까?
감추었던 설움이 왈 쓸어 나왔다. 선생은 한숨을 쉬며,
"돈을 들이면 돈이 나오겠지. 그렇지 않나? 어쨌든 하던 공부는 마쳐야겠으니까……"
언지를 못 얻어 잔뜩 들이켰던 눈물은 좍 쏟아졌다. 선생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한창이나 묵묵하니 앉았던 그는,
"우는 것으로 일 치우겠나. 그런데 봉준의 말을 들으니 오는 봄에는 자네도 서울로 다리고 가겠다대."
그의 귀는 번쩍 띄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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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료 주심에 댓글로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