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지각 처리에도…여야 실세들 ‘지역구 예산 잔치’
[예산안 통과 이후]
與 정진석 63억 - 성일종 111억… 野 우원식 36억 - 위성곤 62억
예산안 대치-지각처리 와중에도 정부안에 없던 지역예산 끼워넣어
법인세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으로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가장 늦게 예산안을 처리한 여야가 나란히 실세 의원들의 예산 증액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도 예산안은 638조7000억 원(총지출 기준)으로 정부안 대비 3000억 원이 줄었지만 여야 주요 의원들은 정부안에도 없던 수십억 원의 지역구 예산을 챙겼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된 내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등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도부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은 정부안 대비 300억 원 넘게 증액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5선·충남 공주-부여-청양)은 총 9개 사업에서 63억3200만 원을 따냈고 성일종 정책위의장(재선·충남 서산-태안)도 111억400만 원의 지역구 예산을 증액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으로 꼽히는 여당 의원들도 지역구 예산 증액에 성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4선·강원 강릉)은 강릉 하수관로 정비 사업 등 지역구 예산 35억 원을 따냈고, 장제원 의원(3선·부산 사상)도 지역구 예산 49억3900만 원을 확보했다.
지역구 예산 증액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가세했다. 민주당 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재선·제주 서귀포)는 정부안에 없던 지역 예산 62억2200만 원을 따냈다. 예산안을 다루는 상임위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우원식 의원(4선·서울 노원을)과 예결위 야당 간사인 박정 의원(재선·경기 파주을)도 지역구 예산을 각각 36억 원, 42억5000만 원 얻어냈다.
이런 예산들은 정부안에 담겨 있지 않았지만 각 상임위원회와 예결위 소소위원회 등을 거치며 최종 예산에 반영됐다. 국회 관계자는 “정말 필요한 예산이라면 정부안에 이미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내년이 사실상 지역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해다 보니 의원들 간 증액 경쟁도 치열했다”고 전했다.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는 “본인 지역구 예산만 챙기는 의원들이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느냐”며 “국회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총지출 3년만에 깎고는… 여야,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
긴축 재정 강조하며 예산 감액후
여야 지도부 지역구엔 대폭 증액
친윤-예결위 간사 등 실세도 챙겨
“개인 홍보 현수막용 예산” 비판
“봄기운 가득 ○○ 발전 예산 확보.”
“당초 정부안에 들지 못했던 신규 사업을 포함시키는 성과.”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처리 시한(2일)을 훌쩍 넘긴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여야 의원들에게 부끄러운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여야 의원들은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부터 지역 예산 확보에 대한 홍보 자료를 쏟아냈다. 특히 여야 주요 의원들은 정부안에 포함돼 있지 않은 지역 예산을 국회에서 증액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안 총지출 규모가 국회 심사 과정에서 2020년도 이후 3년 만에 3000억 원가량 줄어든 와중에도 의원들의 ‘예산 나눠 먹기’는 반복된 것.
○ 긴축재정 강조한 與, 지도부는 수백억 지역 예산
당초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 시한(12월 2일)을 22일 넘긴 24일 새벽 ‘지각 통과’된 배경에는 감액 규모를 둘러싼 이견도 한몫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예년처럼 5조 원 규모의 감액을 요구했지만 정부 여당은 “긴축 재정을 기조로 예산을 편성해 감액 규모는 3조 원가량밖에 못 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여당 지도부 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의 대규모 증액에 나섰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충남 공주-부여-청양)은 동아시아역사도시 진흥원 건립 12억5000만 원 등 총 9개 사업에 63억3200만 원을 증액했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경북 김천)는 여당 지도부 인사 중 가장 많은 금액인 185억6900만 원을 확보했다. 김천∼구미 국도 건설 78억9900만 원, 문경∼김천 철도 건설 50억 원 등이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충남 서산-태안)도 지역 예산 증액 규모가 100억 원을 넘겼다. 성 의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는) 무려 6%나 국가예산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지역은 오히려 전년도 대비 6.8%나 더 많은 국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니 그야말로 ‘예산 폭탄’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친윤(친윤석열) 핵심 의원들도 지역 예산 증액 대열에 합류했다.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의 지역구인 사상구에는 사상드림스마트시티 20억9400만 원 등 49억3900만 원이 배정됐다.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도 강릉 하수관로·노후관로·노후차집관로 정비 사업에 20억 원 등 35억 원을 확보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철규 의원(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은 태백시 봉안당 신축 15억3100만 원 등 총 38억7100만 원을 확보했다.
○ 野 실세도, 국회도 예산 증액
민주당 의원들도 정부안보다 증액된 ‘이재명표 예산’과 별개로 지역구 예산을 챙겼다. 민주당 소속 우원식 예결특위 위원장(서울 노원을)은 노원 어린이복합체육문화센터 27억 원 등 4개 사업 36억 원을 따냈다. 또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박정 의원(경기 파주을)은 파주 음악전용공연장 30억 원 등 42억5000만 원을 확보했다. 또 민주당 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제주 서귀포)는 서귀포시 유기성 바이오가스화사업 예산으로 62억2200만 원을 확보했다.
이처럼 여야 주요 의원들의 지역구 증액 행렬이 이어지면서 ‘지역 민원’이 몰리는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관련 지역 증액 예산은 각각 3505억 원, 1438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여야는 의원 외교 등 국회 활동 예산 증액에도 합심했다. 여야는 의원 정책세미나 생중계 시스템에 40억 원, 헌정제도 관련 공론조사 30억 원 등 총 141억2800만 원의 국회 관련 예산을 증액했다.
이에 대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통상 여야 실세들이 증액해 가져간 지역구 예산 중에는 불용액(사용하지 못하고 남는 예산)이 굉장히 많다”며 “국회의원이 지역구 예산을 증액할 수는 있지만 이 증액이 정말 지역구를 위한 게 아니라 의원 개인의 홍보를 위한 ‘현수막용 예산’에 그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조권형 기자, 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