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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상적광선원(常寂光禪院) 원문보기 글쓴이: 사기순
유마경과 이상향
- 사바에서 부르는 불이(不二)의 노래
화공 강설 ∥ 604쪽 ∥ 29,500원 ∥ 민족사 펴냄
세월호 참사, 패닉 상태에서는 벗어났으나 그 사건은 큰 생채기로 남아 한 달 보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고 있다. 이즈음…….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을 통해 이 세상은 고통의 바다,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 사바세계임을 절감한다. 고통은 개인적으로는 공부의 계기로, 사회적으로는 변화, 변혁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한편 고통스러울수록 이상향을 찾기 마련인데, 물질만능의 욕망이 빚은 참사, 그로 인해 전 국민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민족사에서 출간한 『유마경과 이상향』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마경은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구절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대승 경전이다.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있는 유마경의 세계, 이상향은 어디에?
『유마경』은 희곡풍의 경전으로 매우 드라마틱하다. 출가승이 아닌 유마 거사(居士)가 경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붓다의 십대 제자들 및 여러 보살들과 대화를 나누며 불법에 대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마 거사는 해박한 교리 이해와 깊은 수행력을 갖춘 이다. 핵심을 찌르는 그의 질문에 붓다의 십대 제자들과 여러 보살들이 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결국엔 유마 거사에게 지도를 받는데, 그 모습은 수행승이 아닌 일반 재가자들에게 통쾌함을 준다. 동시에 세속에 살면서 수행해도 깨달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유마경과 이상향』은 유마경의 본격 해설서다. 『유마경』은 대승불교의 실천 수행,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실천 덕목을 논하는 경전이다. 한마디로 재가불교운동의 소의 경전(이념적, 실천적인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약 25년 간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하나조노(花園) 대학과 불교대학 B.A.(京都 日本), 죠지아 주립대학, 하바드 대학 HDS,위스칸신 주립대학 등에서 불교학을 연구한 화공(華公)스님의 학문적 결실이 집약된 첫 책이다. 화공 스님은 그 후 벨로잇칼리지(WI USA) 부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부산 범어사 내원암에 주석하면서 법을 전하고 있다. 또 해인사 강원 15회(1974) 출신이기도 하다.
화공 스님은 알려지지 않은 석학이다. 화공 스님은 불교학뿐만이 아니라, 동서양 철학은 물론이고, 신학까지 두루 섭렵한 박학다식한 학승(學僧)이다. 이 책은 단순한 유마경 해설서가 아니고, 인도 대승불교사상사 전반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특히 앞부분 서막 [유마경과 이상세계](p.19쪽부터 시작됨)는 이 책의 정수(精髓)이고, 핵심이며, 하이라이트다. 그 첫 소제목--‘현실세계는 번민의 늪인가’는 제목부터 번갯불에 맞은 양 정신을 아찔하게 한다.
비극의 주인공
화공 스님은 “현실세계에서 인생이라는 드라마는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주인공인 이상 누구나가 이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가 자기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 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이다(23쪽에서).”이어서 “자신의 운명을 남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는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의 주인공으로서만이 이 현실이라는 무대에 등장한다.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인생은 희·로·애·락하며 그저 끌려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각본에 짜인 그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삶은 결국 현실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한 고통스러운 무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벗어날 길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화공 스님은 일찍이 해인사에서 강원을 졸업(1974년)하고, 일본과 미국에서 25년 동안 공부했다 이 책은 오랜 기간 학문적 탐구를 부단히 해 온 화공 스님의 학문, 수행과 사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인생의 비극은 비교로부터 시작
“인생의 비극은 비교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려면 비교하지 말라는 뜻이다. 선불교에서 수행자의 지침서로 알려진『신심명信心銘』에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하여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다만 비교우위해서 취사선택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과연 현실세계에서 비교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가치관은 대부분 이원론적 비교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은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의 절대적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물을 대립적 관계에 의해서 인식한다는 말이다.”(24쪽)
“유마경은 중생이 주인이 되어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불국(佛國)의 법률서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만나게 되는 이 한마디는 화공 스님의 메시지를 직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모두 ‘드라마 불국(佛國, 이상세계)’의 주인공이다. 그 세계의 성공 여부는 주인공의 관점 여하에 달렸다. 불국의 법률서인 유마경을 읽으면서 이상세계를 실현하자는 것이 화공 스님의 메시지이다. 다소 두꺼운 이 책의 전편 행간 하나하나에 가득 배어 있다.
“유마경은 이 고통의 무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과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현실세계가 바로 이상세계라는 것을 불이법문不二法門(이원론적인 대립적 사고의 초월)으로써 설파하려는 것이 유마경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유마경의 가르침은 사바세계에 한쪽 발을 깊숙이 빠뜨리고 있는 나의 운명[인생]을 미래에 내디딜 다른 한쪽 발로써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곳(이상세계)으로 남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의 힘으로 나를 운전해 다다른다는 가르침이다.”
-본문 p.24 중에서
그렇다. 유마경의 핵심 가르침은 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 이원론적인 대립적 사고를 초월하면 온갖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이 너와 나, 진보와 보수, 더러움과 깨끗함, 선(善)과 불선(不善), 생사와 열반, 출가자와 재가자 등 둘로 나누어 놓고, 분별하고 집착하는 데서 오는 것, 그 점만 제대로 알게 되어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고통을 참고 살아야 할 사바세계 즉 현실세계를 남의 힘이 아니라 바로 내 힘으로 이상향, 이상세계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 경의 핵심 가르침이다. 너도 나도 사바에서 불이(不二)의 노래를 부르면서 실천하면 이 땅 그대로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이 되는 것이다.
불교의 핵심 사상이 담긴 유마경을 다방면으로 조명
“무엇이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인지, 그 가르침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등의 문제에 관해 의심을 풀어 줄 수 있는 한 권의 경전을 찾는다면 유마경이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불자로서의 신앙생활에 대한 방법론을 논한다면 유마경 한 권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중략) 유마경 한 권이면 재가불자로서 불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다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문 pp.10~11 중에서
『유마경』은 본래 14장(14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이 14장을 총 4막으로 구성했다. 서막-유마경과 이상세계/ 1막-유마 거사의 병과 붓다의 제자들/ 2막-문수보살과 유마 거사의 대담/ 3막-붓다와의 만남/으로 나누었다. 드라마틱한 유마경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았는데,각 장마다 전체적인 해설을 하고 내용에 따라 경전 번역문과 원문,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서막--유마경과 이상세계--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세계를 두루 진단하고 현실세계를 이상세계로 만드는 방법, 보살에게는 중생계가 불국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보살사상과 대승불교의 흥기, 인도불교의 멸망, 불전문학의 르네상스, 유마경, 구마라습의 일생 등을 통해 유마경이 발생한 인도 사회를 총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유마경 이해를 돕고 있다. 불교 교리적인 해석은 물론이고 종교 사회학적인 측면, 동서양 철학을 두루 망라하여 해설해 줌으로써 인도 종교사는 물론이고 불교 교리 전반에 대한 자상한 설명을 통해 유마경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유마경의 번역과 더불어 해설 내지는 잡다한 군더더기를 덧붙였는데, 이는 독자에게 본문 이해와 함께 일반적 불교 교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시도였다. 불교 교리를 연구하는 입장에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불교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읽힐 수 있는 내용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도한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화공 스님은 잡다한 군더더기라 표현하였지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거기에 있고, 그것은 이 책의 돋보이는 장점이기도 하다. 스님의 자상한 설명 덕분에 독자들은 불교 교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회에 대한 안목을 기르게 된다.
또한 불교는 물론이고 동서양 철학을 꿰뚫은 스님이 고통의 근본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명쾌하게 제시해 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통해 고통이 치유되고 삶의 지혜가 열린다. 또한 이 땅을 그대로 이상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실천 덕목이 가슴에 새겨진다.
우리는 함께 업을 지으며 살고 있다. 혼돈과 좌절과 아픔 속에 헤매는 대신 이 땅을 어떻게 하면 이상향으로 만들 수 있을지 힘써 고민하고 적극 실천해야 할 때다. 욕망으로 점철된 사회 시스템 변화를 갈망하는 이즈음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대승보살의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는 『유마경과 이상향』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마경의 보살정신을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재현할 것인가가 한국불교의 미래를 살아 있는 불교로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라는 스님의 말씀, 이는 한국불교의 화두이자 나아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이다. 한편 고통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길이 유마경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침으로 다가온다.
** 이 책의 특징적인 서술 **
《인도 불교의 멸망(57쪽)》
기존의 인도 종교관은 기원전 15C~13C경 인도에 침입한 아리안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4성계급제를 만들어 원주민인 드라비다Dravida족과 문다Munda 족 등 모든 피지배자들을 최하층 계급인 노예계급으로 분류, 그들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성계급제도는 한번 정해지면 자자손손 그 신분을 바꿀 수도 없지만, 직업 또한 바꿀 수 없도록 종교적 배경을 설정해 두었다.
인도의 전통종교 즉 브라만교와 그 교리로부터 파생된 차별문화, 소위카스트제도의 근저에는 브라만Brahman이라는 항구 불변하는 우주의 근본원리이자 창조주로서의 존재, 그리고 그 성질을 그대로 지닌 개인을 지배하는 원리인 아트만이 있다. 이 아트만을 피조물에게 주입시킴으로써 운명론적 탄생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창출된 것이다. 또한 카스트 제도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아리안 족과 피지배계급 간의 혼혈을 막고, 이를 어긴 자들을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라 하여 4성제에도 들지 못하는 인간 이하의 위치에 내려 놓았다.(중략)
물론 노예집안에서 탄생한 후손은 노예라는 아트만을 지녔으므로 자자손손 노예다. 이들은 어떠한 수행이나 공덕을 쌓는다 하더라도 바뀔 수 없다고 하여 일생족一生族이라고도 한다. 기득권자들에 의해 그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욕망 위에 카스트라는 불평등의 인종차별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를 뒷받침할 종교적·철학적 체계를 갖춘 것이 부분적이나마 인도의 종교요, 문화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은 계급사회를 근본부터 흔들어버리는 것이었다.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하는 인도 사회에서 불교교리의 위치는 기존세력에 대한 사상적·문화적 이단아였으며, 그 영향은 기존 세력을 뒤엎을 수 있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혁명은 혁명이되 무혈혁명이며, 종교혁명이요, 문화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사회에 불교가 치켜든 깃발은 만물의 창조주인 신을 내세우는 브라만의 사상과 교리를 부정하는 표상이었다. 그리고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한 카스트 문화와,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계급사회를 근본부터 흔들어버리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를 깨달음으로써 인간이면 누구든지 차별 없이 최후의 경지인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불교의 3법인의 의미를 종교사회학적으로 접근할 때 그 의미는 한층 더 뚜렷해진다. 인도불교에 있어서 제행무상의 의미는 오히려 인도의 전통적 종교와 문화의 근간을 뿌리부터 뽑으려는 혁명적 사고에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도의 범신론적 종교사회에 불교를 불교라고 할 수 있게 특색 지을 수 있었던 3법인의 가르침은 불교 교리적 관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불교가 인도 사회에 끼친 영향은 한층 더 커진다. 그러므로 제행무상을 단순히 “만물은 항상 하는 것이 없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변한다.”는 의미만으로 이해하면, 설사 그 의미가 진리라고 하더라도 인도불교와 그 문화를 이해하기에는 한계에 봉착한다. 불교의 3법인의 의미를 종교사회학적으로 접근할 때 그 의미는 한층 더 뚜렷해진다. 인도불교에 있어서 제행무상의 의미는 오히려 인도의 전통적 종교와 문화의 근간을 뿌리부터 뽑으려는 혁명적 사고에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라는 가르침은 항구 불변하며 만물의 창조주인 신神〔God〕도 존재하지 않으며 자자손손 불변하는 출신성분의 주체도 없다는 의미로서 인도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교리의 실천행으로 붓다의 교단은 그 구성원으로서 노예 계급인 수드라Sūra나 불가촉천민〔혼혈인〕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붓다의 교법을 근본으로 한 불교도의 수행법 또한 인도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다. 불교교단에 수드라 계급 즉 노예 계급에 속하는, 아리안 족의 인도 침입이전의 선주민들이 아무런 차별 없이 붓다의 제자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붓다의 10대제자 중 지계제일의 호칭을 얻은 우파리Upāi 존자가 바로 샤캬 족의 이발사였던 수드라 계급이었다.
이와 같이 불교의 수행법은 스스로의 무지에 대한 지혜의 증득〔상구보리上求菩提〕이며 타인의 무지에 대한 구제운동〔하화중생下化衆\生〕이었다. 이 중생 구제 운동이 바로 대승적 사상을 근본으로 한 보살행이며 초기의 뭇 성문들이 행하였던 수행이었다. 다만 그러한 수행에대승이라거나 보살행이라는 그 어떠한 이름도 붙일 필요가 없었을뿐이며, 그런 까닭으로 보살행이라는 이름 자체도 불교교단의 초기에는 없었다.
불교적 용어로 중생 구제라고는 하나 사실 이 활동은 최초로 인도사회의 카스트 제도를 타파한 종교〔불교〕운동이었으며, 불교의 사회운동이요,무혈혁명이었다. 이것은 또한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의 사상적 원천이며 힌두로부터 불가촉천민의 해방을 주도한 암베드칼Bhīrā RājīAmbedkar(1891~1956)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현대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가 법적으로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카스트 제도는 지금도 인도 사회 곳곳에 암적인 요소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 2천여 년 전 붓다 당시에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가히 상상이 되는 부분이다. 근대에 들어와 불가촉천민출신인 암베드칼의 영향에 힘입어 힌두교도였던 많은 슈드라나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로 개종하거나 또는 자이나교나 기독교,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현상은 진정한 종교인으로서의 자기혁신이라기보다,어쩌면 힌두의 인종차별적 문화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으로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 반 브라만교적 성향은 브라만교도들의 격렬한 저항을 가져왔으며, 붓다의 생존시에 늘 있었던 사건으로 경전의 이곳저곳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불교의 기본 교리가 숙명적으로 기존 인도 사회의 기득권자들에게 위협적이었다는 점이 불교가 그 탄생지인 인도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대승경전의 불전문학의 르네상스》
인도인들의 상상력(69쪽)
상상력이 풍부한 인도인들의 불전문학은 이상향을 향한 비현실적인 묘사를 서슴지 않았다. 현실세계가 엄하면 엄할수록 현실세계에서의 삶을 부정함과 동시에 이상향–불국토 혹은 정토–으로 향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현실세계〔사바세계]의 부정이 현실세계의 이상세계 즉,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요, 사바세계가 바로 열반涅槃이 라는 등식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현실세계에서의 고통이 극심하면 할수록 고통 받는 스스로의 존재는 자기가 바라는 모습이 아닌 자기모순의 환상일 뿐이다. 고통의 현실은 실제의 자기 모습일 수 없고, 꿈이요, 환이며, 물거품이요,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고통 받는 자기의 모습은 일시적인 환상에 의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금강경에서 “인간의 육신은 마치 꿈이요, 환이며, 거품이요, 그림자 같고, 또 이슬이나 번개와 같다(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라고 육신의 무상함을 설파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위법의 무상함을 깨닫기만 한다면여래를 본다는 것은 여반장이라는 것이 이 경전에서 설하는 요지다.
현실세계의 자기 부정과 함께 현실세계 속에서의 완전한 인간상–보살–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대승경전의 기본적 자세다. 어떠한 환경에서건 어떠한 상태에서라도 스스로 고통 받는 생을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불교는 현실세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승불전은 지역에 따라 또는 부파에 따라 발전 진화를거듭하며 그 교리와 사상의 극대화를 이루었다.
많은 대승경전들에는 각기 그 독특한 이름과 의미를 갖고 있다. 금강경은 금강석과 같은 지혜로 번뇌 망념을 깨뜨린다는 의미라고 하나, 오히려 금강석처럼 깨뜨리기 어려운 번뇌 망념의 실체를 드러내는 경이라고 보기도 한다. 화엄경은 보살이 일체의 수행을 성취한 공덕을 꽃에 비유하여 그 공덕으로써 불국토를 장엄하는 내용을 주제로 지어진 이름이다. 우주는 비로자나毘盧遮那(바이로차나Vairocaṇa) 붓
다의 현현顯現으로서 한 티끌 속에 전 우주가 들어 있고, 한순간 속에 영원을 안고 있는, 일즉일체一卽一切요 일체즉일一切卽一의 우주관을 전개하고 있다.
◉ 저자 화공華公 스님 약력
범어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하나조노 대학·불교대학 B.A.(京都 日本)·죠지아 주립대학·하바드 대학 HDS·위스칸신 주립대학에서 수학하였다. 벨로잇칼리지(WI USA) 부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선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부산 범어사 내원암에 주석하면서 법을 전하고 있다.
◉ 목차
머리말 ┃ 10
【서막】 유마경과 이상세계 … 14
제1장┃중생세계가 불국토
현실세계는 번민의 늪인가?•19 ┃인생의 비극은 비교로부터 시작•24 ┃현실세계를 이상사회로•27 ┃보살에게는 중생계가 불국•29 ┃부파불교와 스투파 신앙•31
제2장┃아비달마와 실천수행
보살사상과 대승불교의 흥기興起•39 ┃인도불교의 멸망•57 ┃대승경전은 불전문학의 르네상스•65 ┃유마경이란?•72 ┃번역자 구마라습과 그의 일생•86
【제1막】 유마 거사의 병과 붓다의 제자들 …91
제1장┃무명無名 보살들의 보살행 불국품佛國品 제1
불국佛國의 세계와 등장인물•9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94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실체•97 ┃보살은 볼룬티어volunteer의 어머니•104 ┃무명無名 보살들의 역할•108 ┃불전에 등장하는 힌두 신들의 무대•112┃천계天啓 문학과 게송偈頌•121 ┃왕생불국토의 자격•131 ┃견성見性의 의미•137┃우물 안 개구리의 세계•140 ┃돼지와 붓다의 차이•143 ┃신통의 세계•150 ┃심즉불心卽佛•155
제2장┃거짓과 방편의 불가사의 방편품方便品 제2
진정한 방편•157 ┃욕망欲望과 대원大願의 차이•159 ┃유마 거사의 보살행•166 ┃존경할 인간상의 정의•168 ┃독사 굴 속에서 떨어지는 꿀을 받아먹는 사람들•173 ┃법신法身과 화신化身•177
제3장┃ 유마 거사의 힐난과 붓다의 10대 제자들의 수행
제자품弟子品 제3
10대 제자들의 수난•185 ┃연좌宴坐의 의미•187 우란분절盂蘭盆節•194 ┃걸식의 진수眞髓•199 ┃진정한 해탈의 상相•210 ┃불석신명不惜身命•216┃실상법實相法•223 ┃아나율의 맹세•228 ┃살신성인•234 ┃무혈혁명•239 ┃수계의 의미•242 ┃깨진 질그릇•251 ┃타아선打啞禪•256
제4장┃ 일등조우一燈照隅의 무진등無盡燈 보살품菩薩品 제4
보살들의 수난•265 ┃수기受記의 유래•270 ┃도량의 의미•278 ┃무진등無盡燈•288 ┃법의 연회•300
【제2막】 문수보살과 유마 거사의 대담 …309
제1장┃유마 거사와 아픔의 실체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 제5
유명 보살들의 이름의 유래•307 ┃문수보살의 등장•314 ┃대비심으로 일어나는 병•318 ┃빈방의 정체•322 ┃보살이 앓는 병의 실체•325 ┃보살의 병문안•328 ┃병든 보살의 마음가짐•335 ┃방편과 지혜의 함수관계•341 ┃보살행의 정의•350
제2장┃겨자 속의 수미산 부사의품不思議品 제6
어리석음의 극치•355┃구법자의 자세•361 ┃아삼캬Asaṃkhya의 세계의 의미•365 ┃현실세계의 신통•369 ┃이상세계의 현상現象•375 ┃성문성聲聞聖의 비애•382
제3장┃허깨비의 깨달음 관중생품觀衆生品 제7
사바세계의 주인•385 ┃무집착의 본보기•387 ┃허깨비를 향한 자애행•392 ┃보살승과 성문승의 수행•398 ┃여법如法과 집착•401 ┃해탈과 무위•410 ┃변신남녀•415 ┃무소득의 증득•420 ┃천녀의 서원誓願•421 ┃남녀의 구분과 차별•422
제4장┃무간지옥에서 피는 연꽃 불도품佛道品 제8
지도자의 길•427 ┃불도의 다양성•432 ┃여래의 종족•438 ┃보살의 역량•448
제5장┃ 이원론적 대립의 초월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 제9
사바세계와 이원론의 세계•455 ┃무언과 불이세계•470
제6장┃사바세계의 향연 향적불품香積佛品 제10
이상세계•475 ┃향기의 세계•480 ┃능력자의 수행•486 ┃기적•490 ┃중생 교화법•495 ┃사바세계의 장점•499 ┃왕생정토의 조건•503
【제3막】 붓다와의 만남 …507
제1장┃마음의 향기 보살행품菩薩行品 제11
붓다의 증명•509 ┃음식의 공덕•514 ┃불사의 소재•524 ┃유위법有爲法의 응용•530 ┃무위법無爲法의 유위법•537
제2장┃ 사바세계에서 만나는 여래 견아촉불품見阿閦佛品 제12
여래와 붓다의 육신•541 ┃여래를 만나는 법•545 ┃유마 거사의 서원•551 ┃유마 거사의 능력•557 ┃유마경 수지 독송의 공덕•561
제3장┃계체수문繼體守文 법공양품法供養品 제13
교단과 제행무상•563 ┃성주괴공의 자연법이•567 ┃가훈의 전승•572 ┃최상의 공양•576 ┃법공양의 진수•579 ┃자타카•582
제4장┃미래세의 불교 촉루품囑累品 제14
삶의 흔적•585 ┃보살의 성상性相•589 ┃교법의 영원성•593 ┃인도불교의 미래•595
참고문헌 ┃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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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의 번역과 더불어 해설 내지는 잡다한 군더더기를 덧붙였는데, 이는 독자에게 본문 이해와 함께 일반적 불교 교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시도였다. 불교 교리를 연구하는 입장에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불교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읽힐 수 있는 내용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도한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유마경은 이 고통의 무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과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현실세계가 바로 이상세계라는 것을 불이법문不二法門―이원론적인 대립적 사고의 초월―으로써 설파하려는 것이 유마경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유마경의 가르침은 사바세계에 한쪽 발을 깊숙이 빠뜨리고 있는 나의 운명[인생]을 미래에 내디딜 다른 한쪽 발로써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곳―이상세계―으로 남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의 힘으로 나를 운전해 다다른다는 가르침이다.
-본문 p.24
인생의 비극은 비교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려면 비교하지 말라는 뜻이다. 선불교에서 수행자에게 지침서적인『신심명信心銘』에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하여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다만 비교우위해서 취사선택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⁴⁾ 과연 현실세계에서 비교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의 가치관은 대부분 이원론적 비교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은 사물ㆍ사건을 있는 그대로의 절대적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물을 대립적 관계에 의해서 인식한다는 말이다.
-본문 pp.24~5
사물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가치관은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불교에서는 주장한다.불교에서 흔히 논하는 지혜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지혜를 스스로 증득한다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요,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마경에서는 이러한 분별을 떠난 차별이 없는 세계를 불이법문이라 하였으며 이원론적 대립으로부터 초월하는 가르침을 내리고 있다.
-본문 p.26
이러한 종교와 문화를 지닌 사회에서 초기 불교승려들의 편력 유행을 통한 중생제도는, 카스트제도를 아무런 저항 없이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피지배자들, 무지에 의해 차별이 차별인지도 모르며 어리석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깨우치게 했던 계몽운동이었다. 지배자들에 의해 설정된 카스트제도 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노예이며 자자손손 노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상적 설정, 그 설정을 뒷받침하는 철학적[베다Veda³⁵⁾→우파니사드], 종교적[바라문교→후의 힌두교]인 체계화로부터 벗어나, 가상적 현실세계³⁶⁾를 부정하고 진리의 현실세계에 눈뜨게 하는 민중운동이었다.즉 붓다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가르침은, 인도의 전통적 사고思考이며 또 그 사고가 카스트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아트만ātman사상³⁷⁾[자아의 본질 또는 영혼]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무폭력 혁명이었던 것이다.
-본문 p.59
인도의 범신론적 종교사회에 불교를 불교라고 할 수 있게 특색지울 수 있었던 3법인의 가르침은 불교 교리적 관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불교가 인도사회에 끼친 영향은 한층 더 커진다. 그러므로 제행무상을 단순히 “만물은 항상 하는 것이 없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변한다”는 의미만으로 이해하면, 설사 그 의미가 진리라고 하더라도 인도불교와 그 문화를 이해하기에는 한계에 봉착한다. 불교의 3법인의 의미를 불교 교리적 해석보다는 종교사회학적으로 접근할 때 그 의미는 한층 더 뚜렷해진다. 인도불교에 있어서 제행무상의 의미는 오히려 인도의 전통적 종교와 문화의 근간을 뿌리부터 뽑으려는 혁명적 사고에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라는 가르침은 항구 불변하며 만물의 창조주인 신[神God]도 존재하지 않으며 자자손손 불변하는 출신성분의 주체도 없다는 의미로서 인도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교리의 실천행으로 붓다의 교단은 그 구성원으로서 노예계급인 수드라Śūdra나 불가촉천민[혼혈]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붓다의 교법을 근본으로 한 불교도의 수행법 또한 인도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다. 불교교단에 수드라 계급 즉 노예계급에 속하는 아리안 족의 인도 침입 이전의 선주민들이 아무런 차별 없이 붓다의 제자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붓다의 10대제자 중 지계제일의 호칭을 얻은 우바리Upāli존자가 바로 샤캬 족의 이발사였던 수드라 계급이었다.
이와 같이 불교의 수행법은 스스로의 무지에 대한 지혜의 증득[上求菩提]이요 타인의 무지에 대한 구제운동[下化衆生]이었다. 이 중생 구제 운동이 바로 대승적 사상을 근본으로 한 보살행이며 초기의 뭇 성문들이 행하였던 수행이었다. 다만 그러한 수행에 대승이라거나 보살행이라는 그 어떠한 이름도 붙일 필요가 없었을 뿐이며, 그런 까닭으로 보살행이란 이름 자체도 불교교단의 초기에는 없었다.
-본문 pp.60~1
보살사상이란 자기희생을 기본으로 한 민중의 실천운동이다. 이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대승경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딱딱하고 난해하기 그지없는 법에 대한 연구[아비달마]에서 탈피하여 자유와 무한의 세계로 잘 발달된 인도인들의 상상력은 전통적인 자타카의 일화逸話를 받아들여 붓다의 교법을 바탕으로 하여 일반 민중을 위한 대승경전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대승경전은 붓다의 기본정신과 교법을 사상적 배경으로 한 작자미상의 픽션fiction이라 할 수 있다.
-본문 pp.67~8
상상력이 풍부한 인도인들의 불전문학은 이상향을 향한 비현실적인 묘사를 서슴지 않았다. 현실세계가 엄하면 엄할수록 현실세계에서의 삶을 부정함과 동시에 이상향―불국토 혹은 정토―으로 향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현실세계[사바세계]의 부정이 현실세계의 이상세계 즉,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요, 사바세계가 바로 열반涅槃이라는 등식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현실세계에서의 고통이 극심하면 할수록 고통 받는 스스로의 존재는 자기가 바라는 모습이 아닌 자기모순의 환상일 뿐이다. 고통의 현실은 실제의 자기모습일 수 없고, 꿈이요, 환이며, 물거품이요,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고통 받는 자기의 모습은 일시적인 환상에 의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금강경에서 “인간의 육신은 마치 꿈이요, 환이며, 거품이요, 그림자 같고, 또 이슬이나 번개와 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라고 육신의 무상함을 설파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위법의 무상함을 깨닫기만 한다면 여래를 본다는 것은 여반장이라는 것이 이 경전에서 설하는 요지다.
-본문 pp.69~70
현실세계의 자기부정과 함께 현실세계 속에서의 완전한 인간상―보디삿트바―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대승경전의 기본적 자세다. 어떠한 환경에서건 어떠한 상태에서라도 스스로 고통 받는 생을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불교는 현실세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승불전은 지역에 따라 또는 부파에 따라 발전 진화를 거듭하며 그 교리와 사상의 극대화를 이루었다.
-본문 p.70
대승경전은 사회의 각 처 각 분야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불교의 사회관·인생관·세계관·우주관 등 인간과 관련된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승불전은 이렇게 하여 발전 진화하며 다양성을 띤 불전문학의 꽃을 피우고 성전聖典의 한계를 초월하여 철학과 함께 사회과학의 분야에까지 그 발을 넓히게 된 것이다. 그중 극적이요 감동적으로 불교의 인생관과 사회관을 희극화하여 드라마로 펼친 것이 바로 유마경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p.71
유마경의 하이라이트는 그 무엇보다도 불이법문不二法門에 있다고 한다. 불이법문에 대해서는 제9장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서 31보살들과 문수보살 그리고 불이법문에 대한 문수보살의 질문에 유마거사의 묵묵부답까지 합하면 모두 33가지의 불이不二의 예를 들고 있다. 불이법문,즉 둘이 아니라는 가르침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 의미는 현실세계에서 실현가능한 것일까? 불이의 가르침은 이원론적 대립의 초월을 의미한다.무엇이 불이법문인지에 대한 문수보살의 질문에 유마거사의 답변은 무언無言이었으며, 그의 묵묵부답에 대해 문수보살은 진정한 불이법문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문수보살에 의하면, 일체 법에 있어서 말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모든 문답을 여읜 것이 바로 불이법문이라고 한다. 묵묵부답 즉 무언은 그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의 분석과 이원론적 대립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진정 묵묵부답이 불이의 세계일까?
일반적으로 가부可否의 질문에 묵묵부답이면 긍정으로 받아들인다. 이 긍정이라는 의미의 함축도 오직 가부의 질문이 전제되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만약 문수보살 이외 31보살들의 불이에 대한 견해를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에도 유마거사의 무언이 문수보살이 찬탄한 불이의 의미를 띨 수 있을까? 유마거사의 묵묵부답이 불이법문이 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경우는 모든 세상사에 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답변이 전제되었을 때만이 존재한다. 아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는 무언은 불이법문은 물론 그 어떠한 가치관도 거기에서 유출해 낼 수 없다. 말 한마디 못하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의 무언의 행동이 무념무상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의 무언의 행동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번뇌 망념에 대한 무념무상이요, 대립에 대한 무언일 때 불이법문은 이루어진다. 현실세계의 고통에서 또 다른 세계의 이상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가 고통스러운 원인은 그 세계를 고통스럽게 하는 나에게 기인한 것이니, 그 원인의 제공자인 스스로가 원인을 제거한 순간 현실세계가 바로 이상세계라는 것이 유마경의 기본적 가르침이다.
-본문 pp.79~81
유마거사처럼 세속적 삶 속에서 붓다의 교법을 실천하고 진리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미래가 현실사회 속에서 살아 있는 불교로서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1,500여 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골동품으로 화하여 옛 영화를 관광 상품으로 팔아먹는 집단으로 전락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서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다. 유마경의 보살정신을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재현할 것인가가 한국불교의 미래를 살아 있는 불교로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본문 p.84
첫댓글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뱡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