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 푸거
아우크스부르크의 상인
인류 최초 평민 억만장자
영원한 부의 진리
부자 중 부자 520조 추정
야콥 푸거( Jakob Fugger, 1459년 3월 6일 ~ 1525년 12월 30일)는 독일의 은행가이다. 방직공 집안의 평민 출신이다. 유럽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는 거상이 되었다.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의 재산을 다 합쳐도 그의 자산을 따라가지 못한다. 한 인간의 오묘한 인생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과연 그는 부의 화신일까? 그는 행복했을까?
사람들은 부에 열광한다. 시대를 거스르고 돈이라는 주제는 모든 이들을 설레게 한다. 숨 막히는 부를 소유한 인간의 광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이다. 막대한 부는 신밧드의 모험처럼 신명 나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그는 르네상스 시기에 출현했다. 16세기 유럽,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인으로 오로지 자신의 사업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최초의 자수성가형 억만장자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에게 돈 갚으라고 독촉장을 보낸 자이다.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본주의자였다. 14세에 홀로 베네치아로 가서 정식으로 돈공부를 했다. 중2병환자인 시간을 잘 활용했다. 내가 첫 월경을 하고 첫사랑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세상으로 나가 부를 연구했다. 돈을 향한 젊은 투사의 아슬아슬한 인생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운명의 여신은 모든 것을 그에게 다 주었을까? 인간의 한계는 어디이며 그 결과는 무엇일까?
정식 상인이 되기 위해 복식부기, 회계법, 무역업과 다빈치의 기술을 배웠다. 합스부르크 왕국 막시밀리안 1세의 결혼예복을 제작했다. 아버지 대신 대금을 받으러 갔다. 돈대신 티롤광산의 채굴권을 요구했다. 어린 나이에도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다빈치의 기술을 이용해 폐광산의 물을 빼고 지하수를 퍼내 금과 은을 얻는다. 학문과 실용기술이 운과 맞아떨어지는 신이 준 시간이었다. 유럽최고 상인가문이 되었다.
채권, 철강업, 가마솥 놋쇠, 제조업으로 메디치가문의 10배의 재산을 축적했다. 교황한테 돈을 빌려주고 면죄부판매에 동조했다. 면죄부는 수백 년간 지속되어 온 관행이었지만 푸거은행이 키운 규모는 결국 종교개혁을 불러온다. 한 사람의 존재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면죄부가 판매되면 50%는 푸거은행직원이 받아갔다. 칼 5세의 선거비용을 담당했다. 로마교황청의 자문이었다. 루터가 푸거를 비난했다. 권력과 돈을 교묘하게 잘 조율했다. 결국 그는 돈놀이의 장인이었다.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거대 자본과 권력의 융합으로 마구마구 먹어치우는 흰 수염고래 같은 존재였다. 빛의 속도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요즘, 그의 삶은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500년 전, 독일인 야콥 푸거는 당시 유럽 금융업계의 대부였다. 선조가 임진왜란에 도망 다니던 순간에 그는 돈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단순히 돈을 좇은 건 아니고 체계적으로 돈을 연구했다. 교황과 왕들과 사업을 한다. 암흑시대인 중세에 칼 5세에게 돈 갚으라고 소리친 자였다. 그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언제든 끌어올 수 있는 자금 동원력이었다. 교황청 사제들을 돈으로 매수했다.
경영과 분산 투자 정경유착의 화신이었다. 전쟁과 암투, 정치와 종교를 이용, 황제보다 더 부자가 된다. 금, 은, 구리돈이 되는 것들에는 다 투자했다. 봉제업과 직접 양을 키워 방직업으로 부자가 되었다. 전쟁무기인 대포와 후추를 직수입 인도에 구리를 수출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황제를 만들었다.
돈을 버는 데 젊음을 보냈고 돈을 지키는데 노년을 보냈다. 정경유착의 결과로 합스부르크왕가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걷는다.
1521년 자신의 고향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67채의 집을 지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반을 준다. 140 가정이 현재까지도 살고 있다. 아직도 1년 집세가 1200원이다. 자격조건은 가난할 것, 가톨릭신자, 푸거가문을 위해 매일 기도, 주기도문, 아베마리아를 불러야 한다.
독일부동산 10대 가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부자이다. 임진왜란 때 조상 정탁 좌의정은 나라에서 하사한 집과 땅을 사양했다. 백성들의 고혈을 원치 않았다. 상당히 유감이다.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빌붙어살 생각을 하면 상상 만으로도 벅차다.
현대에도 적용가능한 경제 원리를 뉴턴이 물리법칙을 찾듯 적용했다. 자산배분 원칙을 만들었다. 주식, 부동산, 채권, 금화로 4등 분해라! 넷 중에 하나는 안 좋을 것이다. 포트폴리오 자체는 상승인플레이션이 오면 금과 부동산으로 벌고 채권은 잃는다. 디플레이션이 오면 채권은 잃는다. 현대에도 적용가능이다.
임진왜란으로 우리가 고통받고 있을 때 그는 떼돈을 벌고 있었다. 우리가 공자왈 맹자왈할때 그는 사업 실무를 배워 삶에 적용했다.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는 베드로 성당을 짓고 싶어 했다. 교황에게 2조 정도의 돈을 빌려주었다. 교황청 전용은행이 되었다. 조카들이 부를 세습했으나 레판토해전, 네덜란드 독립전쟁, 잉글랜드와의 해전에 막대한 돈을 썼고 여러 차례 파산해 푸거가문이 빌려준 돈은 회수되지 못했다.
그의 인생을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세상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읽었고 발 빠르게 움직인 자이다. 권력자와 겨루어 이긴 자이다. 권력의 흐름을 빨리 읽고 여기저기 잘 붙었다. 경영자로서는 단연 역사상 최고 개인기를 지닌 자였다.
눈 한번 감았다 뜨니 오백 년이 흘렀다. 이조백자 속 봉황이 하늘로 승천할 시간이다. 병풍이 미인대회에 나온 여인처럼 경매에 오르고 수백 년을 견뎌온 느티나무가 고목이 되었다. 돌부처도 눈을 감을 만큼의 세월이 지났다.
아버지는 날마다 일기를 썼다. 난 부자다. 난 성공한다. 난 하는 일마다 잘된다. 사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신문사에서 광고로 올린 글을 보고 대리점 신청을 했다가 거액을 날렸다. 소송까지 했으나 찾지 못했고 젊은 검사는 아버지께 반말을 했다.
상당히 신경질 적이었고 쐐기 같은 외모에 말투엔 독이 묻어 있었다. 법을 아는 자가 도덕을 모른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아버지는 많은 외상 장부와 계약서를 태웠다. 아버지는 수재였고 공부를 잘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고 약지 못했다. 시대의 운도 따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정직했다.
복싱선수가 꿈이었던 아버지는 매일 삼천배를 하듯 줄넘기를 했고 어느 날 샌드백을 주먹으로 치고는 다시는 그때의 분노를 말하지 않았다. 환갑이 넘어 자식들 몰래 태권도장에 등록했다가 부상을 입고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아버지의 도전을 응원한다. 어르신 일자리 창출회에 갔다가 코로나를 옮겨왔다.
살면서 정말 많은 돈을 벌어도 봤고 날려도 봤다. 내 빈한한 비렁뱅이 마음이 문제였다.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가 그를 만난다 하여도 난 결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리라. 지난 3년을 절벽아래로 떨어졌다. 수많은 원망의 말들을 수의처럼 꼭꼭 접어서 옷장 깊이 감추리라! 죽은 지 오랜 시계의 사체를 버려야겠다. 죽은 후에도 돈이랑 완전히 하직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돈에 대한 열망이여, 이젠 안녕(Good Bye)!
"부모님처럼 살지 말자!"가 모토였는데 삼천갑자 동방삭보다 더 많이 내리막을 굴렀다. 거울 속의 거울처럼 시련이 계속 이어졌다. 돈문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노력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시대적 불운이었다. 날마다 경제신문 읽고 강의 듣고 쓰고 외우고 책 읽고 어찌 보면 허상을 쫒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걷는다. 오늘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걷고 또 걷는다.
난 사실 야콥 푸거의 부에는 전혀 관심이 전혀 없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랑 삶에 대한 바른이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