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구겨진 옷
2026.7.26 수정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 중의 하나,
좀 구겨진 옷, 구겨짐은 부드럽다.
새로 말끔히 다려진 옷보다 군데군데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
아니 나만이 아는 곳에 나만이 아는 얼룩이 있는
어딘가 말끔하지 않은 듯 보이는 옷.
그 얼룩은 낯익다.
낯익어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한다.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 중의 하나,
행복이 넘치는 듯, 말쑥한 사람보다는
어딘가 좀 불편한 곳이 있는 사람.
나는 낯을 가린다.
무엇인가를 잘 하다가도 사람들이 쳐다보면
정신이 아뜩해지면서 실수하게 되는 나.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 중의 하나,
좀 흐트러진 집안 풍경,
흐트러짐은 편안하다.
약간 흐트러진 의자,
약간 고물이 된 팔걸이,
이런 것은 나에게 편안함,
자유 그런 것을 준다.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 중의 하나,
약간 세련되지 못한 것,
약간 유치하나 열심히 격식을 차린 것.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 중의 하나,
약간 서툰 사람,
약간 어눌한 그 사람의 목소리.
느릿느릿한 말투.
느림은 가끔 참 아늑하다.
나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 중의 하나,
너무 눈부시게 맑은 날보다는 약간 어둡고 흐린 날,
흐림은 간혹 따뜻하기조차 하다.
그러니까 눈부시게 맑은 날은 불안하다.
불안해서 조바심이 난다.
그런 날은,
내 뇌혈관의 실핏줄도 보일 듯 하다.
늘 나를 혼수상태에 빠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내 실핏줄들...
햇빛이 반짝거리며 쏟아지는 창틀을 보면
먼지들이 가득 모여 앉아 있는 것도 보이고....
일 센티미터씩 어두워라.
일 센티미터씩 서툴러라.
일 센티미터씩 어눌하라.
일 센티미터씩 촌스러워라.
일 센티미터씩 느리게 가라.
편안함은 우리의 피를 결국 따뜻하게 흐르게 하리라.
편안함은 곧 따뜻함을 우리에게 선물하리라.
따뜻함은 결국 우리에게 꿈을 주리라.
꿈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별을 주리라.
하느님처럼, 너무 쓰다듬어 한쪽이 닳은 별이라도.
별이 가득 둘러서 있는 어둠의 창틀, 그 창틀을 통하여
우리는 보다 깊은 어둠의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되리라.
생명스럽게 되리라.
결국 사랑하게 되리라.
하느님 처럼.
- 강은교 -
수지청즉무어(水至淸卽無魚)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인지찰즉무도(人至察卽無從)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따르는 친구가 없다
이 문구는 공자의 가르침과 행적을 모은
10권짜리 공자가어(孔子家語)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말이다.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고기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그 지극히 맑은 물에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플랑크톤 같이 여러가지 부유하는 작은 생물들이 있어야
고기는 그것을 먹고 살아가는 법이다.
또한 지극히 맑은 물에는 몸을 숨기기가 어려우므로
고기가 거기에 산다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래저래 고기는 지극히 맑은 물을 피하게 마련이다.
인지찰즉무도(人至察卽無從),
즉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따르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원리원칙에 충실한 나머지 판단하고 따지기를 잘하고
조금도 다른 사람의 결점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 옆에는 친구들이 붙어 있을리 없다.
약간 모자란 듯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친구들이 모여드는 법이다.
헐거워짐에 대하여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폭과 길이가
같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아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250미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하루 종일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헐거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 박상천 -
사람은 항상 새로운 것에 집중하곤 합니다.
지나간 것, 옛 것, 오래된 사람, 옛 지인은
고리타분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피천득 선생은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 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고 했습니다.
오비맥주의 전설과 같은 카피
'친구는 옛 친구, 맥주는 OB' 도
많은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유명한 카피는 오리콤 회사에 근무하던
우리나라 1세대 카피라이터 이인구 씨 입니다.
그는 이해인 수녀님의 친오빠입니다.
그 누군가에게 헐거운 신발처럼,
함께 구부러지는 낡음의 평화로 기억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문득 반추하게 되곤 합니다.
저는 너무 헐거워지려고 하다가 종종 아내에게 핀잔을 듣습니다.
술(작은 주님)을 만나면 가끔 그렇지요 ㅎㅎ
오늘은 주님의 날, 주일 아침입니다.
주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첫댓글 人至察卽無從
사람의 삶이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딱딱한듯...
때로는 모자란듯...
때로는 넘쳐난듯..
바른길도 좋지만...
굽은길도 좋구요...
삶에 情이 있으면..
즐거움이 따른답니다..
네닢 크로바의 행운을 쫒지말고..
세닢 크로바의 행복을 찾아야죠 .
행복은 멀리서 찾는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게 행복입니다..
모두 행복하소서...
감사합니다. 베드로 형제님
"행복은 멀리있는 행운을 쫓지않고 지금 이순간을 즐기는 것 " 공감합니다.
무더위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