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할 것이 많은 때, 주님을 바라보자
염려되는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 (마 6:25) 하셨고 베드로 사도는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벧전 5:7)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받으면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염려를 하며 살았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염려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가에 대하여 무지했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막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우리 마음에 염려가 가득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는 비참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염려가 가득해질 때, 우리는 염려가 사라지기까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영혼이 너무 낙심하였지만,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님만을 그래도 생각할 뿐입니다.” (시 42:6)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반드시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살면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한번은 마음이 너무 답답하여 힘들었을 때가 있었는데, 서재를 정리하다가 구석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윙크할 때』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제목이 참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제게 윙크하시며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함께 식사할 때 누군가 살짝 윙크를 보내면, 그 작은 몸짓 하나에 아이의 마음은 설레곤 했습니다.
그 윙크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얘야, 내가 지금 네 생각을 하고 있어. 너는 내게 자랑스러운 아이야. 걱정하지 마. 모든 일이 다 잘될 거야.”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내가 너를 주목하고 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을 보고 있다. 네 기도를 다 듣고 있다. 염려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
그 믿음 하나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주님은 저의 갈급함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 그 믿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게 정말 하나님의 윙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런 식으로 신앙지도를 하면 안 됩니다.”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다시 마음이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 “내가 언제 윙크했냐?” 하실까?
아니면, “내가 얼마나 많이 윙크했는데,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구나!” 하실까?
결론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의 신호를 보내셨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 염려하고 방황했던 것입니다.
염려할 일들이 많은 이 때, 더욱 주님을 바라봅시다.
첫댓글 아멘